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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전무철씨가 보고싶고 사랑하는 딸 희숙이에게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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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가을이면 땔감걱정, 김장걱정으로 눈이 덜어지는 산을 헤매고 다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따뜻하고 행복한 아파트에서 제가 이런 걱정을 잊고 산지도 어언 4년이 넘었습니다. 


대신 할 일이 많아진 대한민국에서 하루하루가 어떻게 빨리 가는지 세월을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수령이 곧 하나님이고 법이었던 나라에서 그들에게 충성하는 것이 세상의 미덕, 인줄로만 알고 살던 제가 인간의 삶이 끝없이 자유롭고 존중받고, 우대받는 대한민국에서 인생 2모작을 시작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너무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땅에서 인생의 두 번째 삶을 살고 계시는 모든 분 들이 다 그러하지만 저 역시 북한에 두고 온 혈육들에게 부치지 못하는 편지 사연을 전할 때마다 갈 수 없는 고향땅, 그 곳에서 살고 있는 혈육들이 못 견디게 보고 싶습니다.


소리치면 금방 손에 잡힐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그 끝을 알 수 없는 긴 터널 같은 통일에 대한 꿈과 희망, 그래도 잠시도 잊지 말고 그리고 그 끈을 놓을 수도 없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오늘 밤 우리 파랑새 체신소를 찾으신 전무철씨는 20여 년 전 헤어진 사랑하는 딸에게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아빠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아내의 등에 업혀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리광을 부리던 3살 먹은 어린 딸과 헤어져 탈북을 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가정의 행복보다 먼저였던 야속한 세상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사랑하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딸을 두고 온 것이 평생 가슴에 한으로 남아 미안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한창 재미있게 살아야 할 행복한 시절이었지만 돌아보면 제 인생에서 아파도 너무 아픈 상처를 남긴 가슴 아픈 이별이었습니다.

가까운 친척들이 있는 중국으로 들어가면 돈도 많이 벌고 금방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무지개꿈을 안고 중국으로 갔지만 그 것은 실천이 불가능한 헛된 꿈이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한국으로와 이제는 살아 갈 걱정이 없게 되니 두고 온 고향의  딸이 간절하게 그립고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저는 제가 쓰는 이 편지가 제 딸에게 반드시 가 닿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보고 싶고 사랑하는 딸 희숙이에게

보고 싶은 딸, 희숙아, 그 간 잘 있었니?


너무 어린 나이에 너와 헤어져 너는 아빠의 목소리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너의 목소리와 네 모습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내가 너와 헤어진지도 20년이 훌쩍 넘었구나.


딸아, 엄마 등에 업혀 내가 어리로 가는지도 모르고 “엄마, 나도 아빠 따라갈래! ” 하고 떼를 쓰며 재잘거리던 네 모습이 눈에 선 하구나.


어린 것이 나를 닮아 무척 말도 잘하고 영리했었지.
아빠는 그 때 너무 젊었고 사람들이 사노라면 이별과 상봉은 매일 있을 수 있는 일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헤어지면 다시 못 돌아 올 길을 간다는 것을 알았다면 내가 너를 두고 왔을 수가 없지.


지금도 눈만 감으면 그 때 너무 쉽게 자식과 이별했다는 말 못할 죄책감 때문에 나는 늘 너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늘 죄 지은 마음이다.
엄마 등에 업혀 재잘거리던 우리 딸도 이제는 20대 중반의 숙녀가 되었겠지?
어려도 너무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고생만 하게 만든 이 아빠를 용서해주렴.


보고 싶은 딸, 희숙아, 어린 네가 엄마마저 잃고 외가 집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면서 자랐을까, 를 생각해보면 내 가슴이 너무 아프다. 세상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너를 그 험한 세상에 두고 아빠가 걸어 온 길도 그보다 못지않게 세상풍파를 다 겪었단다.


그런데 어린 네가 겪었을 세상풍파를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슴에서는 피눈물이 흐른다. 너무나 매정하고 비정한 세월이었고 부모들이었다.
보고 싶은 딸, 희숙아, 아무리 외가가 키워주고 큰 아버지들이 곁에서 돌봐주었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네 엄마나 아빠의 사랑 같았겠니?


그 것도 북한의 형편이 어떤지 뻔히 아는데 어떻게 먹고 어떻게 자랐을지 생각해 보면 그래도 너를 키워준 외가 친척들이 너무 고맙고 그들에게 미안한 것이 아빠의 마음이다.


보고 싶은 딸, 희숙아, 네 나이 이제는 24살 잡혔는데 그렇게 크도록 곁에서 따뜻하게 지켜주지 못한 것이 그저 미안하다. 아빠를 많이 원망해라. 
희숙아 너 네 할머니도 한국에 사시는데 얼마나 건강하게 매일 행복하게 사시는지 모른다.


할머니도 아빠와 마주앉으면 희숙이 네 이야기를 하는데 너를 한국에 데려오지 못한 것을 얼마나 후회하시는지 몰라.
아빠는 한국에 와서 직장도 좋은 곳에 다니고 열심히 살고 있다.


보고 싶은 딸, 희숙아, 아빠가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버는 것은 너를 위해서이다. 아버지가 너를 사랑해주고 키워주지는 못 했지만 이제 남은 생을 다 바쳐 너를 도울 수만 있다면 못 할 것이 없을 것 같구나.


사랑하는 딸아, 이 세상 그 무엇도 자식과 부모사이의 천륜을 절대로 갈라놓을 수 없단다. 네가 지금은 이 아버지에 대해 존경과 믿음보다 원망을 더 많이 하고 있을 테지만 이제 통일이 되어 너를 만나면 나는 딸에게 부끄럼 없이 산 아버지로 떳떳하게 나설 것이다. 


내 딸 희숙아, 여기 한국은 북한처럼 매일같이 먹을 걱정, 입을 걱정, 불 땔 걱정을 전혀 하지 않는 나라다. 이렇게 말하면 너는 세상에 그런 나라가 어디에 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 사람들은 한 끼라도 어떤 것을 더 맛있게 먹을까가 고민이지 북한처럼  내일당장 무엇을 먹을까, 가 고민인 나라가 아니거든.


오히려 먹을 것이 너무 많아 고민인 나라, 누구나 인간답게 살고 당당한 자기 인권을 주장할 수 있는 나라에 아버지가 살고 있다.
우리가 북한에서 말하던 남조선은 매일 일한 것만큼 돈을 주고 열심히 살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는 나라란다. 아빠도 북한에 살 때는 북한이 선전하는 것처럼 세상에 북한같이 인민들이 행복한 나라가 없는 줄 알았어.


그렇지만 남조선에 살면서 세상을 알게 되고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면서 북한처럼 독재자가 정치하는 나라, 북한처럼 국민들이 나라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감옥 같은 나라는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단다.


보고 싶은 딸, 희숙아,  아빠는 그 거짓을 알았기에 다시는 북한 같은 나라에 살기가 싫어졌고 이 자유대한민국이 너무 좋다.
아빠의 바램은 오직하나, 북한에 사랑하는 내 딸이 있고 그 딸을 만나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 뿐 이다.


보고 싶은 딸, 희숙아, 너무 보고 싶구나 . 거리에서 네 또래의 딸애들이 지나가면 나는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한참이나 서 있곤 한다.
혹시 내 딸도 저 만큼 키가 클까, 저 애들처럼 저렇게 이쁘게 번했을까, 그냥 머릿속으로 그려만 본다.


생각 같으면 지금 당장 달려가 이쁜 내 딸을 꼭 안아주고 이제껏 아버지가 주지 못한 사랑을 다 주고 싶다. 하지만 하루길이면 어디든 갔다 올 수 있는 길이건만 우리나라는 왜 남과 북으로 갈라져 혈육이 서로 소식조차 주고  받지 못하고 남보다 못한 민족이 되어가고 있는지, 생각할수록 안타깝구나.
보고 싶은 딸, 희숙아, 올 겨울엔 무엇을 때고 살지, 무엇을 먹으며 살지 추운 겨울이 되어오니 아빠는 그 것이, 걱정이다.
너무 어린나이부터 아빠, 엄마의 사랑 없이 살아 와서 너는 이 아버지가 그리 보고 싶지 않을지 모르지만 아빠는 자나 깨나 내 딸 희숙이 생각 뿐 이니 네가 아버지의 이 마음을 제발 이해해주기 바란다.


우리 다시 만날 날, 꼭 잘 살날이 올 거니까 그 때까지 앓지 말고 건강하게 굳건히 살아 있어다오, 내 딸아.
혹시라도 내 목소리를 들으면 꼭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해주기 바라면서 오늘은 아쉬운 펜을 여기서 놓는다.


내 딸아, 꼭 잘 살아다오! 사랑한다, 딸, 아버지가 많이! 많이!

~서울에서 아빠로부터 ~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가슴에 안겨 재잘거리던 자그마한 딸이 이제는 다자라 20대 중반의 숙녀가 되었건만 만날 길도, 아니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인간의 도리보다 우선 먹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이 더 큰 문제였던 시절, 한 차례의 전쟁을 겪은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고 제3국으로 정처 없이 이민 아닌 이민으로 떠나던 시절이 북한에 있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쟁 아닌 전쟁의 희생양이 된 많은 탈북자들이 오늘은 한국에서 인간다운 삶을 찾았지만 여전이 두고 온 혈육들 때문에 완전하지 못한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전무철씨의 사랑하는 따님이 아버지의 이 아픈 심정을 잘 이해해 주시기를, 그리고 두 분이 꼭 다시 만나시길 간절히 바라며 그럼 오늘 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6-11-25 (조회 :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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