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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한주란씨가 사랑하는 딸 은정이에게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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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아침저녁이면 풀잎에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가 되었습니다. 한로는 일 년 24절기 중 열일곱 번째로 찾아오는 절기죠.


북한에서는 보통 이 때 가 되면 농작물을 빨리 거두어들여야 하는 사람들은 일손이 재게 움직여야 하고 그 보다 더 급한 것은 다가오는 한 해 겨울을 어떻게 보낼까, 하는 근심과 걱정이 하나 더 늘어나는 계절이기도 했습니다.
뭐, 요즘에야 사계절 더운물, 찬물이 나오고 중앙난방에다 먹을 걱정 없이 살다보니 가을이 와도 근심걱정거리가 전혀 없지만 그래도 어려워도 너무 어렵던 북한의 가을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겨울마련걱정도 아득한데 학교학생들부터 직장인들까지 겨울에 땔 화목이며 심지어 토끼사료라고 시래기 말린 것까지 바쳐야 하던 세상에 웃겨도 너무 웃기던 북한에 대한 돌이켜보기도 싫은 추억도 떠오릅니다.


게다가 요즘 북한에서 물난리로 집을 잃고 한 해 농사를 망친 사람들에게 노력동원을 시키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리고 있으니 저는 너무 가슴이 아파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든 만년대계가 아니고 그저 눈가림으로 대충 하다 보니 해마다 반복되는 일상이 되어버린 북한국민들의 노력동원, 그 무보수노동이 금년에도 북한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체신소에는 북한에 두고 온 어린 딸자식 걱정과 미안한 마음을 편지로나마 전하고 싶다는 서울 사시는 한 주란씨가 찾아오셨습니다.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11년 전 사랑하는 딸과 헤어져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는 한 주란입니다.
잠시만 집을 떠날 거라 생각하고 어린 달을 집에 두고 덜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던 것이 어제 같은데 야속한 세월은 벌써 11년이나 흘러갔습니다.
잠깐 돈을 벌어 돌아오마, 어린 딸과 한 약속은 다시는 지킬 수 없는 거짓말이 되었고 더 고통스러운 것은 두 번 다시 마날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어린 자식을 매정하게 떼어놓고 간 이 엄마를 원망하고 어쩌면 다시 보고 싶지 않을 만큼 이 엄마가 미워졌을 그 딸에게 저의 미안함과 그리운 마음을 꼭 전하고 싶어 이렇게 파랑새체신소를 찾았습니다.
저는 저의 진심어린 사과와 사랑의 메시지가 제 달에게 꼭 전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꿈결에도 보고 싶고 사랑하는 우리 딸 은정이에게

의할 곳 하나도 없는 차디찬 북녘 땅에서 외롭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 내 딸 은정아, 그 동안 잘 있었니?


이 엄마가 너무나 어린 나이었던 너와 헤어져 북한을 떠난 지도 11년이 넘었구나.


내 딸 은정아, 그 어린 것이, 연약하고 자그마한 자식하나 먹여 살리기 어려워 부모로써 차마 하지 말아야 할 걸음을 걸었던 엄마다.


내 입으로 딸 이름을 불러본지도 너무 오래 이제는 네 이름을 부르기조차 어색하고 선뜻 입을 열기도 어렵지만 엄마는 그 동안 마음속으로 내 딸 은정이 네 이름은 수천, 수 만 번을 불러 보았다.


어린 나이에 배는 얼마나 고팠고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은 또, 얼마나 많이 겪었을지 상상만 해 보아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구나.


가야하는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 버둥치는 네가 서로 붙잡고 눈물을 흘리던 일이 어제 같구나.


그런데 중국에서 몇 달간만 있다가 돈을 벌어 꼭 가겠다던 엄마는 다시는 서로 만날 수 없는 멀고도 가까운 나라 한국으로 오게 되었어.


한 걸음이라도 딸과 가까워지는 곳이 아니라 더 머 곳으로 오게 되었으니 이제 이 엄마는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고 보고 싶어도 눈물만 흘리는 신세가 되었다.


사랑하는 내 딸 은정아, 엄마는 매일같이 북두칠성이 바라보이는 북녘의 하늘은 쳐다보면서 우리 딸 혼자서 지금가지 무엇을 하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세 끼 밥이나 제대로 먹고 사는지? 아니면 험한 세상, 엄마를 원망하며 어는 길거리를 헤매고 있지나 않는지? 오만가지 걱정을 하고 있다.


너무나 가난해 먹고 사는 것도 어렵고, 심지어 빨래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참혹한 북한의 우리 집을 떠 올리면 지금도 기가 막힌다.


내 딸 은정아, 언젠가 어린 네가 큰 대야에 아빠 옷을 빤다고 담그어놓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문지르면서 “엄마!”를 하염없이 부르더라는 이야기를 전 해 듣고 엄마는 가슴이 메어져 땅을 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는 세월이 흘러 엄마 눈에 눈물도 다 말라버리고 말문까지 막혀버린 줄 알았는데 또, 너의 이름을 부르니 네 생각이 나고 눈물이 나는구나.
은정아, 나는 꿈속에서 너를 몇 번이나 만나고 헤어지고 했는데 그럴 때마다 네가 내 손을 꼭 잡고 “엄마야, 가지 마, 내 다시는 엄마 애 안태울게” 그러면서 울던 네 모습이 보이곤 한다.


은정아, 가슴이 찢기고 억장이 무너져도 꼭 가야만 했던 그 길이,
몇 달만 있다가 다시 오마, 꼭 돌아온다고 약속하고 떠났던 그 길이 이제 다시는 영원히 볼 수도 갈 수도 없게 되었으니 고통이면 이 보다 더 한 고통이 어데 있고, 비극이면 이 보다 더한 비극이 어디에 있겠니?


중국에서 1년 동안은 매일 너를 찾아 헤매는 꿈만 꾸었어.


엄마라고 자식을 낳아놓고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게 되어 내 딸아, 은정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이 엄마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용서를 해 달라고 빌고 싶지만 엄마는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다.


가정을 유지하고 살아보려고 엄마가 걸어 온 머나먼 인생길을 이제 와서 뒤 돌아보면 구비 구비 눈물과 그리움만 남았구나.


어린 딸 맘대로 제대로 한 번 사랑해주지도 못하고, 어린 네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아픔과 쓰라린 상처만 남겨준 이 엄마는 분명히 네 앞에 죄인이다.
생사를 위한 치열한 길에서 엄마는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가리지 않고 그저 돈만 보며 달리다보니 이렇게 딸자식과도 갈라지게 되었고 그 길에서 엄마 가슴에도 지울 수 없는 아픈 상처만 남게 되었어.


엄마를 잘 못 만나 외롭고 쓸쓸하게 가슴 아프게 살게 된 너를 생각하면 딸이라고 해도 엄마는 네 앞에 용서를 빌 용기조차 나지 않는다.


그래도 내 사랑하는 딸, 은정아, 한 번만 눈을 꼭 감고 이 엄마를 용서해주면 안 되겠니? 나는 네가 엄마를 반드시 용서하고 이해해 줄 날이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고맙다, 우리딸, 은정아,


그리고 은정아, 김책에 계시는 큰아버지, 큰 어머니, 삼촌들은 다 잘 지내고 계시는지 모르겠구나. 물론 어렵게 살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살아 계시는지, 어떻게 사시는지, 소식이라도 알고 싶구나.


내가 중국에 있다가 집으로 나가려고 연변의 북한 땅이 보이는 곳까지 갔었는데 비 사 구루빠들이 우리 집을 24시간 감시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차마 잡힐가 봐 건너가지 못하고 다시 중국으로 들어왔는데 그 길이 영원한 이별이 될 줄을 그 때는 꿈에도 몰랐다.


결국 엄마는 피눈물을 뿌리며  대한민국으로 왔다.


그러나 은정아, 엄마는 지금 너무 복 받은 땅에서 아무 근심걱정 없이 너무나 잘 살고 있단다.
먹을 것, 입을 것, 난방문제, 교통문제 심지어 외국여행도 옆집처럼 다니면서 북한에서였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복을 누리며 살고 있단다.
엄마는 한국으로 온 덕분에 세상에 북한 같은 나라는 없고 북한 인민들처럼 철저하게 감시를 당하면서 자유롭지 못하게 사는 나라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너무나 소중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정부가 준 임대주택에서 교육도 무상으로 치료도 거의 무료로 받으면서 이렇게 좋은 나라를 북한에서 나쁜 나라라고 욕을한 것에 오히려 자책감이 들 정도란다.


내 사랑하는 딸 은정아, 그러니 너도 엄마가 하는 말을 잘 새겨듣고 네 마음이 정리 되는대로 엄마가 있는 한국으로 곡 왔으면 좋겠다.
엄마는 그 날이 꼭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한국에서 너에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고 있단다. 우리 그 날까지 서로 앓지 말고 건강하게 살아가자.


하고 싶은 말은 많고 많지만 상봉의 그 날을 그리면서 오늘은 아쉬운 펜을 여기서 놓는다. 엄마는 네가 내 딸로 태어나 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고 나에게 딸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늘 행복하다. 항상 기죽지 말고 건강하게 살기 바라며 사랑한다. 사랑해, 엄마가 많이많이 사랑한다. 우리 딸
~서울에서 엄마가 ~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내 몸의 분신 같은 사랑하는 딸을 북한에 두고 온 한주란씨의 딸에 대한 그리움과 그리고 그 자식과 함께 오지 못한 미안함이 글줄마다 묻어나는 감동 깊은 편지였습니다.


어쩌면 엄마가 엄마의 도리를 다 지킬 수 없고, 자식이 자식 된 도리를 다 지킬 수 없는 그 험악한 세상이 빚어낸 비극의 한 토막이 아닐까요?


이렇게 분단 70년이 넘도록 남과 북은 아직도 서로 부르고 찾고 그리며 안타깝게 살고 있고 그 비극은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것이 더 안타까운 일입니다.


북한에 계신 한주란씨의 따님도 언젠가 엄마의 이런 심정을 이해하고 다시만날 그 날을 꼭 기대하시길 간절히 바라며 그럼 오늘 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6-10-21 (조회 : 1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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