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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온소식] 7. 1997년 독일-폴란드국경지대 홍수피해, 그리고 북한의 홍수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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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저는 찰스 폰 덴코프스키입니다. 저는 베를린 독일에서 왔습니다.  

 

여러분께서는 9월 유럽국가 독일의 베를린에서 온 소식을 듣고 계십니다.

존경하는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아름다운 북조선 땅 북부지역에서의 경악스러운 홍수가 있었던 관계로 저는 여러분들에게 1990년 통일되었던 독일에서 1997년 이전 동독지역, 폴란드와의 국경제대에서 발생한, 가장 끔찍했던 홍수에 대한 극복이야기, 즉 어떻게 극복을 했는가에 대하여 전달해드리고자 합니다.

 

 <사진1>물에잠긴 동부독일지역

 

1997년 홍수의 원인은 저기압지대 Xolska와 Zoe을 둘러싸고 발생한 체코와 폴란드 산악지역에서의 장기간 그리고 광범위한 지역에서의 폭우, 소위 V-b-Wetterlage(날씨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동부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을 흐르는 마흐 강과, 오데르강은 강가, 물가 모든 곳을 뒤덮었습니다. 짧은 시간안에 7월 10일 폴란드남쪽과 체코의 먼 지역까지 홍수가 이어졌으며, 천여명의 사람들의 집을 잃었습니다. 폴란드 도시 오펠른은 철거되기까지 하였습니다.

 

 

7월8일 브란덴부르크의 환경청에서는 국경지대에 대해 홍수경보를 공포했는데요, 7월 14일에는 영향을 받는 지역구, 그리고 도시 프랑크푸르트에 대하여 알람스투페 즉 경보단계를 포고하였습니다.

 

7월 17일 라우지츠지역 나이세강과 오데르강의 합류지점에 있는 라츠도르프에 홍수가 왔습니다. 6미터 20센티의 수위는 수년동안 여름수준을 넘어선 거의 거의 3.5미터 였는데요, 이에 대한 예방으로써 제방의 높이는 점점 높아졌습니다.

 

강한 폭우를 통해 발생한 두 번째 강의 범람은 7월 18일부터 21일까지 오데르지방위쪽을 강타했습니다. 제방이 붕괴되었습니다. 수압은 평방 미터당 최대 6톤에 달했습니다.

아이젠휘텐이라는 도시의 오데르-슈프리운하에서는 제방에 균열이 생기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모래주머니와 둑이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나무를 둘러치는 등의 안전조치가 제방이 붕괴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7월 23일에는 브리스카우-핀켄헤르드지역의 제방이 오데르강과 질텐오르퍼 니더룽사이의 70미터, 후에 200미터에 달하는 높은 고도차로 인한 높은 유속을 통해 무너졌습니다. 7월 24일에는 아우리스지역의 약 9킬로미터에 달하는 제방까지 붕괴되었습니다. 따라서 5,500헥타르에 달하는 질텐도르퍼 니더룽 지역 저지대의 침수를 막는다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헸습니다.

 

<사진2> 동부독일지방을 휩쓴 홍수의 피해를 입은 지역들

 

그 사이에 독일군대, 연방방위군은 준장의 지휘아래 8,300명의 군인와 36대의 헬리콥터와 다량의 트럭, 제방확보와 대피를 위한 위한 기갑차량, 보트들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호헨부트젠 근초 오더브루흐 북쪽지방에서는 예방조치로6500명의 대피가 이루어졌습니다.7월 25일에는 노이글리첸의 제방 70.4킬로미터 중 150미터의 정도의 부분이 떨어졌습니다. 깊이 7미터, 너비 25미터정도의 큰 구멍이 갈라져 있었습니다.

 

모래주머니를 실은 독일연방군 헬리콥터가 생명의 위협을 무릎쓰고 일을 진행하게 되었으며, 제방의 구멍을 막았습니다. 이 일을 담당한 장교는 브란덴부르크지역의 공로훈장 표창을 받게 되었습니다.

 

헬리콥터는 군인들이 쌓아올린 수천개의 모래주머니를 지속적으로 날랐습니다. 잠수부로부터 물과 맞닿아 있는 제방은 궁극적으로 잘 막을 수 있도록 알루미늄으로 된 은박지들로부터 덮여있었습니다.

 

7월 27일 수위는 프랑스푸르트 오데르의 사상 최고인 6.56미터에 도달했습니다. 7월 28일에는 처음으로 토네이도라는 전투기를 운영하였습니다. 목적은 홍수지역에 대한 광학적인 진상규명이었습니다.

 

독일연방군 헬리콥터를 운영하는 모든 시간은 모래주머니를 옮기는데 다 사용되었습니다.

 

8월 10일 처음으로 수위가 가라앉았습니다. 이는 오데르강의 강바닥이 더 낮게 기울어졌으며, 근처 지류로 물이 뒤따라 갔기 떄문입니다. 독일연방군대는 다시 현장에서 3만명의 군인, 40대의 헬리콥터 및 3천여대의 차량 그중 2500대는 트럭을 가지고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사진3,4> 홍수와 맞서 각 구조작업과, 제방보호 및 재건 사업을 벌인 독일군대

 

국경 반대편 지역에서의 홍수지역이 개선되고 난 이후에는, 지원조직은 국제적인 구호 활동을 위해 스우비체라는 지역으로 파견하였습니다. 이 구호단체는 독일로부터 온 생필품 및 구호물품들을 대피한 폴란드 사람과 응급처치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분배하였습니다.

 

독일연방군이 기술부대와 지역소방대와 함께 정리작업을 하는 동안 브란덴브루크 지역환경공무원들은 파괴된 제방의 재건작업을 시작할 준비작업을 수행했습니다.

1997년 7월 18일부터 10월 10일 사이 3만여명의 군인들은 육군총장의 지휘아래 홍수의 극복, 그에 대한 충격들과 마주하였으며, 모든일에 함께 하였습니다. 그것은 독일연방군 사상 최대의 재해구호활동이었습니다.

 

8백만개이상의 모래주머니가 177000톤의 모래와 자갈로 채워졌으며, 이것들은 연방군, 시민단체, 소방대, 일반 대중들로부터 온것들이었습니다.

 

브란덴부르크 주 및 연방정부는 긴급구호 프로그램을 작동시켰습니다. 홍수 후 독일시민들의 기금모금활동이 시작되었으며, 기부금의 합계는 5천만유로, 약 4천에서 5천딸라였습니다.

 

궁극적으로 1997년 이 홍수는 통일 이후 7년째 되는 해에 모든 독일인들에 의해 극복되었음을 입증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독일정부는 인간의 삶으로 부터의 보호에 대한 위대한 책임감을 보여주었습니다.

 

 

존경하는 북조선 청취가 여러분,

지금까지 독일통일이 이루어진지 7년후에 있었던 대규모 홍수에 대한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던 심층보도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이제 북조선에 대한 독일과 유럽에서 온 소식들을 전해 드립니다.

 

1. 베를린 체크포인트 찰리에서의 북조선의 고문 전시회소식입니다.

 

2016년 8월 5일부터 9월 5일까지, 찰리라고 불리우는 통일전 국경통과지대였던 체크포인트찰리 박물관에서는 북조선으로부터 온, 국가안전보위부가 사용했던, 고문방법이라는 이름의 영구전시회를 개최합니다.

<사진5> 영구전시 이벤트로 마련된 초청강연에서 북한의 인권참상을 말하는 김주일 국제탈북민연대 사무총장

 

이 전시는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권조직 국제 엠네스티와 마찬가지로 남조선으로부터 온 탈북인인 김주일씨가 설립한 국제탈북민연대라는 단체가 조직화 하였습니다.

이 전시회는 여러 신문들을 통해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2. 북조선정부의 제 5차핵실험 관련 소식입니다.

 

북조선 정부는 2016년 9월 9일 풍계리에서 제5차 핵실험을 단행하였습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 실험에 대하여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에 대하여 중국과 러시아도 비난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특히 중국의 외무성에서는 명백히 북조선 정부가 단행하였던 핵실험에 대하여 눈에 띄이도록 화가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국제원자력기구 IAEA의 감독은 핵무기를 보유하기 위한 이 핵실험이 러시아와 중국의 동의 아래 북조선을 자제시키는 유엔의 결의를 위반하는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사진6> 독일 외무장관,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정부 또한 이 핵실험에 대해 비난하였으며, 독일 외무장관 뉴타인 마이어는 베를린 주재 북조선대사를 독일외무부로 소환하였습니다. 이는 독일연방정부의 비판을 북조선대사에게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3. "북한은 핵을 더욱 발전이킬 것이다" 라는 북조선 외무부장관의 유엔에서의 발표 소식입니다.

 

2016년 9월 24일 북조선의 외무상 리용호는 유엔 연설자리에서 자신의 조국은 지속석으로 핵을 발전시켜 나갈것이라는 내용을 발표하였습니다.

 

<사진7> 유엔에서 연설중인 리용호 외무상

 

일본은 매우 분노하는 반응을 보였으며 남조선은 북조선이 유엔으로부터 제명당할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핵관련 군비의 확장과 전쟁위험이 각 영토들의 평화에 회의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4. 북조선의 홍수 소식입니다.

 

북조선의 9월 심각한 홍수로 인해 적어도 133명이 사망하였습니다.

평양정부의 발표를 증거로 하여, 유엔의 긴급협조를 통해 전달된것처럼, 거의 400명은 여전히 실종상태입니다. 북조선 북동부지역의 홍수로 인하여 약 10만 칠천여 인민들이 집을 잃어버렸습니다. 적어도 약 14만명이 긴급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사진8> 홍수로 무너진 다리

 

러시아와 중국, 북조선을 나누고 있는 두만강은 라이언록이라는 태풍의 결과로 인하여 폭우가 내리고 강변위쪽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폭풍은 8월 말 일본에서도 약 19명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북동부지역의 일부지역은 외부세계로부터 차단되어 있는데요, 유엔인도지원조정국이 9월에 소식을 전했습니다. 44000명 이상의 거주지와 학교와 같은 공공건물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북조선의 국영보도에 따르면 도로 및 기타 교통전산망, 경장할 수 있는 토지와 공장들이 침수되어가 손상되었습니다. 또한 적십자사는 16000헥타르에 이르는 경작지로부터의 파괴에 대해 보여주었습니다.

 

<사진9> 피해복구중인 현장

 

유엔인도지원조정국의 보고 이후 지난 주 유엔대표단들과 국제구호단체들은 피해정도를 파악하기 위하여 해당지역을 방문하였는데요, 홍수로 인해 구호단체들은 지역의 숙소 재고품들을 물, 조리도구, 생필품등을 해당지역으로 지원하였습니다.

북조선 국영보도에 따르면 도로가 다시 통행할수 있게 만들도록 하고, 식품이외 건설자재들을 배포하도록 하였습니다.

북조선정부는 스스로 홍수로 인해 경제의 촉직을 위한 지속적인 인민동원이 새롭게 거행된다는 점을 전달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홍수로 인한 희생자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보고서에서 도시지역언론은 홍수피해자에 대한 조선로동당의 선도적인 역할을 강조하였습니다. 따라서 겨울의 시작 전인 10월까지 홍수피해지역에 20000가구를 다시 건설해야 합니다.

 

북조선에서의 자연재해는 특히 끔찍했는데요, 이에 대한 중요한 한가지 원인은 바로 부족한 사회설비입니다. 산악지역에서의 산림파괴행위는 대규모 침식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폭우가 내리면 물은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아래로 흐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 북조선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 때문에 국가는 오랫동안 외부로부터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북조선의 무기프로그람은 국가재정의 상당부분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5. 통일 후 26년이 지난 독일에서의 빈곤은 여전히 강하게 감소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독일통일 26주년인 현재, 약 8천3백만명의 독일인들 중에서의 빈곤, 가난, 결핍은 강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독일 통일이 이루어지고 난 첫번째 해에는 이전 동독지역에서의 대규모 실업사태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많은 국영기업들을 청산하고 정리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진10> 베를린 국회의사당의 모습  

 

 

하지만 이후 독일의 후원과 유럽연합을 통해 이전 서독의 번영했던 경제지역처럼, 더 발전하였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마지막으로 북조선지역을 향한 저의 사견을 함께 전달합니다.

 

아름다운 땅 북조선에서의 홍수로 인해 수백명이 사망하고 많은 가족들, 집들이 파괴된 것에 대하여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두만강, 압록강 지역 홍수 소식을 접합 후의 저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홍수발생 지역의 인민들에게 신의 은총과, 빨리 거처를 얻으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무엇보다도 김정은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데 돈을 쓰지 않고, 홍수지역의 피해를 입은 인민들을 돕는데 노력을 기울인다면 더더욱 아름다운 일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마지막으로 청취자 여러분과 모든 가족분들에게 행복과, 만족함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좋은 날씨에 함께 야외에서 식사도 하며, 가족들 또한 즐겁게 잘 지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홍수 피해자들에게 신의 은혜와 평안이 깃들기를 바라며 더 나아가 다가오는 일정에 대하여서도 호랑이의 용기로 극복하시기를 기웝합겠습니다:

 

저 또한 자원봉사자로서 모래주머니를 채우며, 북조선 인민여러분과 함께 있고 싶지만, 이는 실제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 머나먼 독일에서는 저 이외에도 많은 시민들이 북조선에 계시는 여러분들을 생각하고 위로하고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이상 독일통일 26주년을 맞이하여 보 내드린 9월 베를린에서 온 소식의 찰스폰 덴코프스키였습니다.

 

여러분은 단파라디오를 통해 10월말에 다시 베를린에서 온 소식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독일어 원문>

Anjeong Hashimnika, sehr geehrte Hörerinnen und Hörer des North Korea Reform Radio in Nordkorea.

 

Je ireumeun Charles A. von Denkowski imnida. Jeoneun Berlin Togil e-seo wasseumnida.

 

Sie hören den am Ende des Monats September ausgestrahlten Bericht aus Berlin mit Nachrichten aus Deutschland in Europa und persönlichen Anmerkungen zur Lage in Nordkorea.

Verehrte Hörerinnen und Hörer,

aus gegebenem Anlass, wegen der schrecklichen Flut im Norden Ihres schönen Landes, möchte ich Ihnen einen Einblick in die Bewältigung des härtesten Hochwassers geben, welches das 1990 wiedervereinte Deutschland im Jahr 1997 im ehemaligen kommunistischen Ostdeutschland, an der Grenze zu Polen, traf.

Ursache der Flut des Jahres 1997 war eine sogenannte Vb-Wetterlage, ausgelöst durch die Tiefdruckgebiete Xolska und Zoe, die ausgedehnte Starkniederschläge längerer Dauer in den tschechischen und polnischen Gebirgsregionen (Riesengebirge, Altvatergebirge) auslöste. Die Flüsse, vor allem die March und die Oder im Osten Deutschlands an der Grenze zu Polen gelegen, traten über die Ufer. Binnen kürzester Zeit waren am 10. Juli weite Landesteile Südpolens und Tschechiens überflutet und tausende Menschen obdachlos. Die polnische Stadt Opole (Oppeln) wurde evakuiert.

Für den Grenzoderabschnitt gab das Umweltamt des Bundeslandes Brandenburg am 8. Juli eine Hochwasserwarnung heraus; am 14. Juli wurden für die betroffenen Landkreise und die Stadt Frankfurt (Oder) Alarmstufe I ausgerufen. Die Flut erreichte Brandenburg am 17. Juli bei Ratzdorf, am Zusammenfluss von Oder und Lausitzer Neiße. Mit 6,20 Meter stand der Pegel fast 3,50 Meter über den langjährigen Sommerwerten. Vorsorglich wurden die niedrigsten Deichstrecken erhöht. Eine zweite Hochwasserwelle, verursacht durch erneute starke Regenfälle, erfolgte vom 18. bis 21. Juli im oberen Odereinzugsgebiet. Deiche wurden aufgeweicht; der Wasserdruck betrug sechs Tonnen je Quadratmeter. Am Oder-Spree-Kanal in Eisenhüttenstadt kam es zu Rissen der Deichkrone. Sicherheitsmaßnahmen mit Sandsäcken und Faschinen verhinderten einen Deichbruch.

Der Deich bei Brieskow-Finkenheerd brach am 23. Juli auf einer Breite von anfangs 70 Metern, später auf 200 Metern durch die hohe Fließgeschwindigkeit aufgrund des Höhenunterschiedes zwischen Oder und der Ziltendorfer Niederung. Am 24. Juli brach etwa 9 Kilometer weiter der Deich bei Aurith. Somit war die Überflutung der 5.500 Hektar großen Ziltendorfer Niederung nicht mehr aufzuhalten. Die deutsche Armee, die Bundeswehr, hatte zwischenzeitlich bereits 8.300 Soldaten unter Führung eines Brigadegenerals und 36 Hubschrauber, zahlreiche Lastkraftwagen, Pionierpanzer und Boote bei der Deichbefestigung und der Evakuierung im Einsatz.

Im nördlichen Oderbruch bei Hohenwutzen wurde vorsorglich die Evakuierung von 6.500 Menschen angeordnet. Dabei wurden auch die Tiere aus dem Oderbruchzoo Altreetz abtransportiert. Am 25. Juli rutschten am Deichkilometer 70,4 bei Neuglietzen auf einer Länge von 150 Metern Teile des Deiches ab. Löcher bis zu sieben Meter tief mit bis zu 25 Metern Breite klafften an der Landseite im Deich. Mit Sandsäcken beladene Hubschrauber der Bundeswehr wurden unter Lebensgefahr von einem Kapitänleutnant auf dem Deich eingewiesen und füllten die Löcher. Dieser Offizier wurde hierfür mit dem Verdienstorden des Landes Brandenburg ausgezeichnet. Ununterbrochen brachten Hubschrauber tausende Sandsäcke, die die Soldaten in der Bruchstelle aufschichteten. Von Tauchern wurde der Deich von der Wasserseite mit Folie abgedeckt, so dass er schließlich gehalten werden konnte.[2]

Am 27. Juli erreichte der Pegel 6,56 Meter Rekordhöhe in Frankfurt (Oder).[3] Am 28. Juli starteten erstmals Tornado-Kampfflugzeuge zur optischen Aufklärung über dem Hochwassergebiet. Die ganze Zeit über wurden auch Bundeswehr-Hubschrauber zum Transport von Sandsäcken eingesetzt. Der Einsatzverband der Bundeswehr umfasst derweil 9.000 Soldaten unter der Führung eines Generalmajors.

Erst am 10. August sank der Pegel, da das Flussbett der Oder ein geringes Gefälle aufweist und das Wasser aus den Nebenflüssen nachrückte. Die deutsche Armee, die Bundeswehr, hatte zu dem Zeitpunkt insgesamt 30.000 Soldaten im Einsatz, das zusammen mit 40 Hubschraubern und 3.000 Radfahrzeugen, davon 2.500 Lkw.

Nachdem sich die Hochwasserlage auf der anderen Seite der Grenze verbessert hatte, wurde eine Hilfsorganisation nach Słubice für Internationale Hilfsmaßnahmen abgeordnet. Diese Gruppe verteilte Hilfsgüter (Lebensmittel- und Sachgutspenden) aus Deutschland an die evakuierten Personen in Polen und leistete bei Verletzungen Erste Hilfe.

Während die Bundeswehr gemeinsam mit Technischen Hilfseinheiten und den örtlichen Feuerwehren die Aufräumarbeiten aufnahm, begann das Landesumweltamt Brandenburg den Wiederaufbau der zerstörten Deichabschnitte vorzubereiten.

Unter der Leitung eines Armeegenerals waren zwischen dem 18. Juli und dem 10. Oktober 1997 über 30.000 Soldaten an der Bekämpfung des Hochwassers und seiner Auswirkungen beteiligt. Damit handelte es sich um den bis dahin größten Katastropheneinsatz der Bundeswehr. Mehr als 8 Millionen Sandsäcke wurden mit ca. 177.000 Tonnen Sand und Kies von Technischen Hilfseinheiten, dem damaligen Bundesgrenzschutz, Feuerwehren, zivilen Hilfsorganisationen und der Bevölkerung gefüllt. Die Bundeswehr war mit mehr als 3.000 Fahrzeugen und Spezialmaschinen im Einsatz. Am Ende des Einsatzes beförderten 50 Bundeswehr-Hubschrauber in über 2.700 Flugstunden rund 2.000 Personen sowie etwa 3.500 Tonnen Material.

Das Land Brandenburg und der Bund reagierten mit Soforthilfeprogrammen. Nach dem Hochwasser setzte eine Spendenaktion der deutschen Bevölkerung ein. Die Summe der Spenden belief sich auf mehr als 50 Millionen Euro.

Letztlich zeigte sich 1997 durch die starke Flut im siebten Jahr nach der deutschen Wiedervereinigung, dass diese Flut nur durch alle Deutschen gemeinsam zu bewältigen war. Vor allem aber zeigte die deutsche Regierung eine große Verantwortlichkeit für den Schutz von Menschenleben.

Verehrte Hörerinnen und Hörer in Nordkorea,

das war ein Schwerpunktbericht über die große Oderflut, die im 7. Jahr nach der deutschen Wiedervereinigung erfolgreich bewältigt wurde.

 

Es folgen nun Nachrichten aus Deutschland und Europa mit Bezug zu Ihrem Land Nordkorea.

 

 

 

Ausstellung über Foltermethoden in Nordkorea im Haus am Checkpoint Charlie in Berlin

Vom 05. August bis zum 5. September 2016 zeigte das Museum am ehemaligen Grenzübergangskontrollpunkt namens Charlie Foltermethoden aus Nordkorea, welche die Kuk Ga Anjeon Bowie Bu sowie die Polizei anwenden. Organisiert haben die Ausstellung die Gruppe Free NK aus Südkorea, die der damalige Nordkoraner Kim Yo II gründete, sowie die weltweit tätige Menschenrechtsorganisation Amnesty International. Die Ausstellung wurde in mehreren Zeitungen gelobt.

 

Fünfte nukleare Testdetonation durch die Regierung Nordkoreas

Die Regierung der Volksrepublik Korea testete am 09.09.2016 einen 5. nuklearen Sprengsatz im Gelände Punggye-Rye. Die internationale Gemeinschaft verurteilte den Test. Deutlich verurteilten ihn China und Russland. Das chinesische Außenministerium zeigte sich sichtlich verärgert über den erneuten Nukleartest der Regierung Nordkoreas. Und auch der Direktor der Internationalen Atomenergiebehörde sagte, dass der Nukleartest mehrere Resolutionen der Vereinten Nationen verletzt, die es Nordkorea unter Zustimmung Russlands und Chinas verbieten, ein Atomwaffenprogramm zu betreiben.

Auch die Bundesregierung verurteilte den Test und der deutsche Außenminister Steinmeier bestellte den nordkoreanischen Botschafter in Berlin in das deutsche Außenministerium ein, um ihm die Kritik der Bundesregierung zu unterbreiten.

 

Mitteilung des Außenministers Nordkoreas bei den Vereinten Nationen: Nordkorea werde weiter nuklear aufrüsten

Am 24.09.2016 kündigte Ri Yong Ho, der Außenminister Nordkoreas, in einer Rede vor den Vereinten Nationen an, sein Land werde weiter nuklear aufrüsten.

Japan reagierte verärgert und Südkorea forderte, Nordkorea aus den Vereinten Nationen auszuschließen, weil atomare Aufrüstung und Kriegsdrohungen zusammen Zweifel an der Friedfertigkeit des Landes annehmen ließen.

 

Flut im Norden Nordkoreas

Bei schweren Überflutungen sind in Nordkorea im September mindestens 133 Menschen gestorben. Fast 400 werden noch vermisst, wie die Notfallkoordination der Vereinten Nationen unter Berufung auf Angaben der Regierung in Pjöngjang mitteilte. Infolge der Überschwemmungen im Nordosten Nordkoreas seien rund 107.000 Menschen obdachlos geworden. Mindestens 140.000 benötigten dringend Hilfe.

Der Fluss Tumangang, der teils die Grenze Nordkoreas zu Russland und China markiert, war nach starken Regenfällen infolge des Taifuns Lionrock über seine Ufer getreten. Der Wirbelsturm hatte Ende August auch in Japan gewütet und dort mindestens 19 Menschen getötet.

Einige Gegenden im Nordosten des Landes seien von der Außenwelt abgeschnitten, teilte die Ocha Mitte September weiter mit. Mehr als 44.000 Wohnhäuser und öffentliche Gebäude einschließlich Schulen seien zerstört oder beschädigt worden. Laut den nordkoreanischen Staatsmedien wurden außerdem Schienenwege, Straßen und andere Verkehrsnetze sowie Stromnetze, Ackerflächen und Fabriken überflutet oder beschädigt. Daneben zeigte sich das Rote Kreuz über die Zerstörung von 16.000 Hektar Ackerland besorgt über die bevorstehende Ernte von Mais und Reis.

Nach Ocha-Angaben hatte vergangene Woche ein Team aus UN-Vertretern und internationalen Hilfsorganisationen Teile der betroffenen Region besucht, um das Ausmaß der Schäden abzuschätzen. Wegen der Fluten hätten Hilfsorganisationen aus Lagerbeständen im Land unter anderem Nahrungsmittel, Zelte, Kochgeräte sowie Wasserreiniger in die betroffenen Gebiete geliefert.

Die nordkoreanische Regierung ist dabei, die Straßen wieder zugänglich zu machen sowie außer Hilfsgütern auch Baumaterial zu verteilen. Das Regime selbst teilte mit, wegen der Überschwemmungen sei die derzeit laufende Massenmobilisierung zum Ankurbeln der Wirtschaft neu ausgerichtet worden. Sie solle nun die Flutopfer unterstützen. In ihren Berichten betonten die Staatsmedien die führende Rolle der regierenden Arbeiterpartei bei der Hilfe für die Flutopfer. Demnach sollen bis zum Winterbeginn im Oktober 20.000 Häuser in den Flutgebieten wiederaufgebaut werden.

In Nordkorea sind Naturkatastrophen besonders verheerend. Ein Grund dafür ist die fehlende Infrastruktur. Zudem hat Kahlschlag von Bäumen in bergigen Regionen zu großflächigen Erosionen geführt. Bei schweren Regenfällen strömt das Wasser dann ungehindert abwärts. Aufgrund von Misswirtschaft der Regierung Nordkoreas ist das Land seit Jahren auf Hilfe von außen angewiesen. Darüber hinaus verschlingt das nordkoreanische Rüstungsprogramm einen Großteil der staatlichen Ressourcen, die dann für andere Bereiche fehlen.

 

Armut in Deutschland geht 26 Jahre nach der Wiedervereinigung noch stärker zurück

Im 26. Jahr der deutschen Wiedervereinigung geht die Armut unter den fast 83 Millionen Einwohnern Deutschlands noch stärker zurück. In den ersten Jahren nach der deutschen Wiedervereinigung gab es durchaus Arbeitslosigkeit im ehemaligen kommunistischen Ostdeutschland, da viele staatseigene Betriebe abgewickelt wurden. Doch in Jahren danach entwickelten sich durch Förderungen Deutschlands und der Europäischen Union wie im ehemaligen Westteil Deutschlands prosperierende Wirtschaftsregionen.

Verehrte Hörerinnen und Hörer in Nordkorea,

es folgt nun als letzter Teil meiner Sendung eine persönliche Anmerkung zur Lage in Nordkorea.

Es tut mir sehr leid, dass eine Flut im Norden Ihres schönes Landes mehr als hundert Menschen das Leben kostete und vielen Familien das Haus zerstörte. Mit meinen Gedanken war ich den Tagen nach der Flut dort oben am Tumangang. Ich wünsche Ihren Landsleuten dort in der Flutregion Gottes Segen und das sie schnell Ersatzwohnungen bekommen.

Es wäre allerdings sehr schön, wenn Ihr Führer Kim Jong-UN statt Geld in die Entwicklung von Atomwaffen und ballistischen Raketen zu stecken, Ihren Landsleuten am Tumangang Fluss helfen würde.

 

Verehrte Hörerinnen und Hörer in Nordkorea,

zum Schluss meiner Sendung wünsche ich Ihnen und Ihren Familien Glück und Zufriedenheit. Ich hoffe, Sie können bei dem schönen Wetter draußen zusammen Essen und Ihren Familien geht es gut.

Allen Flutopfern wünsche ich Gottes Segen und Gelassenheit sowie den Mut von Tigern um die nächsten Wochen zu überstehen. Ich wäre gerne auch dabei Ihnen gewesen, um als Freiwilliger Sandsäcke mit Erde zu füllen und zu helfen, aber das ist für mich nicht möglich. Aber hier im fernen Deutschland denken noch mehr Menschen außer mir an Sie in Nordkorea, dieses jeden Tag.

 

Das war der Bericht aus Berlin im seit 25 Jahren freien wiedervereinigten Deutschland für den Monat September von Charles von Denkowski,

gesendet über die Kurzwellenfrequenzen des North Korea Reform Radio.
Verehrte Hörerinnen und Hörer in Nordkorea,

danach hören Sie mich am Ende Oktober wieder hier auf dieser Kurzwellenfrequenz.

Anjeong Hykye-seo!

 

 

<사진출처>

1. http://www.bpb.de/gesellschaft/umwelt/hochwasserschutz/

2. http://www.lr-online.de/nachrichten/brandenburg/Brandenburg-bereitet-sich-auf-Oder-Hochwasser-vor;art25,2916603

3. http://www.fotografie-hohlfeld.de/portfolio/aus-meinem-archiv-8/

4. http://www.yonhapnews.co.kr

5. http://www.yonhapnews.co.kr

6. http://www.faz.net/aktuell/politik/ausland/asien/steinmeier-in-seoul-deutschland-soll-bei-der-wiedervereinigung-helfen-13240629.html

7. http://www.houstonchronicle.com/news/world/article/North-Korea-vows-in-UN-speech-to-strengthen-9242490.php

8. http://www.donaukurier.de/_/tools/picview.html?_CMELEM=3348896

9.http://www.wetter.com/news/schwere-ueberflutungen-in-nordkorea_aid_57d69b60cebfc0fe3b8b456d.html

10.http://www.bpb.de/geschichte/zeitgeschichte/deutschlandarchiv/199207/25-jahre-nach-der-wiedervereinigung-welche-demokratie-wollen-die-deutschen

 

 

 

입력 : 2016-10-10 (조회 : 2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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