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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이경선씨가 사랑하는 동생에게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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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낮이면 따가운 햇살이 비치지만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한결 시원한 것 같은데요, 아, 그러고 보니 벌써 추석이 되었네요.
우리가 북한에 살 때는 1년에 가장 큰 명절이 지도자들의 생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서민들의 마음속에 가장 큰 명절은 설이나 추석이 가장 기다려지고 가장 큰 명절이었죠.


설이나 추석은 정치적부담도 적은데다 일가식솔이 모두모여 부모님 선산도 찾고 명절처럼 웃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날이었으니까요. 아마 그 중에도 제일 즐거운 명절은 당연히 추석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우리 조상대대로 “더 두 말고 덜 두 말고 꼭 한가위만 같아라”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가을의 중심에 있는 절기인 추석에는 그 해에 지은 햇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조상님들께 감사하고 가족과 친척, 온 마을이 추석에 뜨는 보름달을 구경하며 가무를 즐기는 기쁨이 어디에도 비할 바 없이 좋았다, 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북한을 떠나 한국에 정착한 사람들은 추석이 돌아오면 고향이 그립고 돌아가신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오히려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 체신소를 찾으신 이경선씨는 저 북한땅에서 사망한 남편 생각도 간절하고 가을 들녘을 함께 거닐던 동생도 떠오른다면서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아무리 살아보려고 발버둥 쳐도 도저히 살 수 없어 자식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온 성ㄹ에 사는 이 경선입니다.
저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은 다 뜯어 먹으며 어머니 당에서 언젠가는 우리를 살려주겠지, 하면서 어리석게 북한정권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남편도 세상을 떠나고 남은 자식들마저 굶어죽게 되자 정말 살고 싶어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그렇게 제 가족은 목숨을 걸고 탈북을 했고 지금은 한국에서 세상 부러운 것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향에서 살고 있는 사랑하는 동생과 그 가족들이 그립고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더군다나 추석이 되니 고향앞산에 누워 아내와 자식들이 언제 한 번 찾아오지 않을까,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을 남편 생각도 간절해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랑하는 내 동생에게

 

그립고 보고 싶은 내 동생 현화야, 그 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니?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만날 수도 가 볼 수도 없는 가깝고도 먼 북한고향에 있는 너희들 생각을 하면 너무 가슴이 아리고 슬프고 찢어지는 것만 같구나.


내 동생 현화야, 너무 너무 보고 싶구나.
어쩌다 꿈에라도 너를 본 날에는 그 날 하루 종일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그러면서도 혹시 네가 아프거나 좋지않은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그리운 동생아, 고향의 언니와 회령의 현옥이네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우리자매들은 나도 그렇고 남편들을 다 먼저 보내고 자식들을 데리고 어려운 세상을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니. 아마 지금도 여전히 어렵게 살고 있겠지?
추석이 되니 고향앞산에 묻고 온 남편 생각도 간절하고 우리 자매들 생각도 너무 간절해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고향 소식을 들어보니 권려, 직위, 재산이 없는 사람들은 아직도 어렵게 살고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지.
내 동생 현화야, 여기 소식을 전할게.


너도 알다시피 나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탈북을 했고 한국으로 오는 길을 선택했어. 그런데 그 선택은 내 인생에 제일 잘 한 선택이었고 그렇게 우리식구가 한국으로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우리는 굶어죽었거나 꽃제비가 되었을 거야.
동생아, 한국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좋은 나라이다. 옷 한 가지 변변한 것 없이 떠난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집을 주고 돈을 주고 돈을 주며 공부도 시키고 잘 살게 해주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저 오직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고향의 우리자매들이 다 같이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없는 것 이다.  살길을 찾아 떠난 탈북을 선택했는데 그 길이 우리 형제자매들이 영원히 다시 볼 수 없는 생이별이 될 줄을 꿈에도 몰랐다.
형제자매가 다 그러하지만 막둥이인 현화 네가 제일 그립고 보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맛있는 것 많이 사주고 좋은 옷도 다 사주고 싶구나.


현화야, 한국에는 거지도, 껌 팔고 구두 닦는 거지아이들도 전혀 없어. 오히려 아이들이 어느 집에서나 왕처럼 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다.


사랑하는 동생 현화야, 10년 전에 내가 중국에서 언니를 만났을 때 내가 언니에게 “언니야! 한국은 먹을 걱정,  땔감걱정, 물 걱정, 전기걱정 없이 잘 산다니 우리 한국 가서 살자!” 그랬어.
그랬더니 언니가 “동생아, 땔나무와 석탄이 없이 어떻게 밥을 해먹냐, 그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러면서 오히려 나를 보고 자본주의 물이 단단히 들었다며 내 말을 전혀 믿어주지 않던 언니였어. 그 처량한 목소리, 침울한 얼굴표정이 떠올리면 나는 지금도 눈물이 난다. 


동생아, 한국에 온 우리 가족들 소식을 더 전할게.
철민이와 철진이는 자그마한 회사에 다니는데 돈을 모으는 재미도 제법 쏠쏠한 것 같아.
그리고 혜선이는 어려서부터 제 아버지를 닮아 그런지 글 뒤주란다. 대학에 이어 대학원을 마치고 지금은 박사학위를 받을 논문을 쓰는 중이다.
여기 저기 초성강사로 강연을 다니는 혜선이 모습을 보노라면 너무나 고생하며 살던 북한 생각도 나고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보람도 느끼곤 한다.
눈은 또, 얼마나 높은지 아직 시집을 가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이제 나이가 많다고 국가에서 생활 보조금도주고 여기 저기 취미생활도 하고 그렇게 다니면 돈도 조금씩 주니 돈 걱정 없이 살고 있지.
내가 너무 우리가족 자랑만 한 것 같구나.


그리운 동생 현화야, 이 작은 종이 장에 어떻게 그 동안의 일들을 다 적을 수야 있겠냐만 추석이 되니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들의 산소에도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구나.
어린 시절 우니 4자매가 손잡고 뛰어다니던 고향의 풀밭, 고기잡이하던 하천의 맑은 물, 나란히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던 뒤 동산 코스모스 밭이 이 밤 따라 왜 이렇게 그립고 가고 싶은지 모르겠구나.


그 꽃밭 속에 우리 애들 아빠 묘도 있는데..... 참 불쌍하고 그립고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마음이다. 물론 너희들이 잘 돌봐주고는 있겠지만 아내나 자식들이 올리는 술 한 잔이 얼마나 그립겠니?
추석 보름달은 하나인데 우리는 어쩌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서로 다른 곳에서 저 달을 바라보게 되었을까.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구나.


사랑하는 그리운 동생 현화야, 우리 어떻게 하든 죽지 말고 살아서 꼭 다시 만나자. 꼭. 알았지?
그 때가 언제일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해 나는 열심히 노력할 거야. 이제는 70고개를 넘긴 우리 언니도 다시 만나야지...
현화야, 동생아,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꼭 살아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네가 첫째도 둘째도 건강해야하니까 제발 아프기 전에 건강 잘 챙기기 바란다.
사랑하는 동생아, 할 말은 태산 같은데 오늘은 여기서 펜을 놓으려 한다. 재삼 당부하지만 꼭 살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언니와 회령 동생에게도 내 소식 꼭 전해주어야 한다. 우리 4자매가 다시 만날 그 날까지 기다려주고 살아 있어달라고 전해 줘.


다음에 또 편지 할게.
사랑한다, 내 동생 현화야.  잘 있어라.

추석에 서울에서 언니가.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오늘 밤은 둥굴게 차오른 추석달이 왜 이렇게 쓸쓸하게만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정선씨의 편지를 듣노라니 저도 사랑하는 아빠, 남편, 할아버지, 할머니, 동생의 무덤이 눈앞에 아련히 떠오르고 갈 수 없는 북한하늘만 정처 없이 바라봅니다.
고향 떠나 온 이들의 사연은 어쩌면 이리도 서로가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 고향에 부모님의 선산을 돌봐 드리는 형제자매들이 있어 마음 한 구석에 위안은 조금 될지 모르겠지만 손 수 부어 드리는 술 한 잔만 할까요? 
아무쪼록 이정선씨의 동생분이 언니의 간절한 부탁이 담긴 이 편지를 꼭 받아 보시고 언니의 부탁대로 다시 만날 그 날까지 건강하게 살아계셔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럼 오늘 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6-09-22 (조회 : 2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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