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후원안내

자유게시판

Home > RADIO >편지와 사연 > 파랑새 체신소

[파랑새 체신소] 안복화씨가 보고싶은 딸 경희, 경란이에게

관리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삼복이라고 삼계탕 집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던 일이 어제 같은데 벌써 처서가 지나가고 있네요. 정말 쏜 살 같은 세월입니다.

 

제가 북에서 살 때 금이와 은이의 운명, 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습

니다. 쌍둥이 자매가 두 달을 다 보살피기 어려워 하나는 잠시 맡겨

두고 딸 하나를 데리고 북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 것이 이 자매

의 생이별이 되었죠.

 

그 후 춤과 노래를 잘 하는 언니는 북에서 중앙예술단체에 들어가

마음껏 희망을 꽃피우게 되고 남에서 카페나 노래방을 떠돌며 노래

를 팔며 천대와 멸시 속에 살던 동생은 매를 맞고 도망치다 미군 차

에 다리가 깔려 지팽이에 의지해살아가는 거지가 되었고요.

북한은 이 자매의 운명처럼 남과 북을 판이한 사회로 묘사했지만

막상 제가 한국에서 살면서 보니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습

니다.

 

수많은 북한의 여성들이 먹을 것을 찾아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

했고 그 과정에 말 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겪었습니다.

 

오늘 우리 파랑새 체신소를 찾으신 안복화씨도 그런 가슴 아픈 사

연을 간직하신 여성들 중의 한 분입니다.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14년 전에 북한을 떠났고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는 안복화입니다.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하던 1990년대 중반, 우리 가정은 하루 죽

세끼도 먹을 수 없이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여기저기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참다

못해 살길을 찾아 중국으로 탈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직 배고픔을 면해보려는 소박한 꿈을 안고 제 딸

들이 엄마의 만류에도 탈북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딸들의 탈북은 엄마인 저를 집에 있을 수 없게 했습니다.

그래서 딸들을 찾아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들어갔는데 그 넓은 천

지 어디에서도 제 딸들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매일같이 중국공안들이 북한사람들을 잡아 북송시키는 삼엄한 상

황에서 제 한 몸의 안전조차 담보할 수 없게 된 저는 혹시 딸들도

저처럼 한국으로 가지 않았을까, 하는 한 가닥 희망을 안고 한국으

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도 제 딸들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가 사는 생의 목표는 오직 제 분신 같은 사랑하는 딸들을 찾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딸들이 북한이던, 중국이던 어디서든 엄마의 목소리

를 들을 수만 있다면 반드시 엄마를 찾아오기 바라면서 편지를 써

가지고 파랑새 체신소를 찾게 되었습니다.

 

보고 싶은 내 딸 경희, 경란이 에게

 

사랑하는 딸들아, 그 동안 앓지 않고 무사히 잘 지내고 있니?

너희들과 헤어진지도 1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구나.

경희야, 경란아, 생각하면 어미가 되어 너희들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구나.

엄마는 밤마다 너희들 생각에 잠 못 이루고 너희들에게 편지를 쓰

는 이 순간 눈물을 흘리면서 글을 쓰고 있다.

사랑하는 딸들아, 우리가 함께 살던 곳은 함경북도 은덕군이었고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하던 시기 너희들이 배고픔을 참지 못해 중

국으로 탈북을 했지.

엄마는 지금 그 때 너희들을 붙잡았더라면, 아니 함께 탈북을 했더

라면 이렇게 서로가 소식도 모르고 안타까이 찾아 헤매는 일은 없

었을 텐데, 하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후회하고 있는지 모른다.

 

공부도 잘하고 제법 똑똑해 학급반장까지 하던 우리 큰 딸 황경희,

너는 198438일생이고 착하고 부지런한 우리 둘째 황경란,

198757일생이었다.

 

엄마가 너희들의 생일을 이렇게 밝히는 것은 혹시 어디서든 엄마의

이 편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어느 마음착한 사람이 듣고

전달이라도 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이다.

 

경희야, 경란아, 너희들이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품에 안고 젖을

먹여 길러준 이 엄마의 목소리야 잊어버리지 않았겠지?

 

북한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던 그 험악한 세월 이 엄마의 능력

으로는 너희들을 배불리 먹이고 입힐 수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식구

가 다 모여 살 수 있었으니 그 것으로 나는 좋았단다.

 

그런데 앉아서 굶어 죽을 수 없다면서 끝내 두만강을 건너간 내 딸들,

엄마는 너희들을 절대로 원망하지 않는. 그저 엄마가 돈이 없고

잘 먹일 수 없었던 것이 미안하고 끝까지 너희와 함께하지 못한 이 엄마는 딸들 앞에 죄인 된 마음이다.

 

두만강물이 아직은 차가운 20035월 말에 너희들이 회령에서 두

만강을 건넜다는 것을 엄마는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 당시 큰 딸 경희는 19, 둘째 경란이는 17살밖에 안 되었잖아.

세상을 알기에는 너무도 모르는 것이 많은 너희들이 살아보려고 거

친 두만강에 뛰어들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는 상상이 잘

안 된다.

 

그 때 몇 날 며칠을 기다려도 너희들이 집에 들어오지 않으니 엄마

는 미칠 것만 같은 마음이었다. 고생을 하다가 그래도 엄마의 품으

로 오겠지, 하는 기대도 있었지.

 

그렇지만 아무런 소식도 없으니 엄마는 더는 앉아 있을 수가 없어

20101월 초에 너희들을 찾아 두만강을 건넜단다.

 

중국에 가면 너희들 소식을 알 수 있을까,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갔는데 말도 모르지 땅은 왜 그리 넓은지, 게다가 매일같이 북한사

람들은 붙잡아 북한으로 북송시키는 경찰이 무서워 도대체 꼼짝을 할 수가 없었어.

 

사랑하는 딸들아, 그러니 다시 북한으로 갈 수도 없고 나는 너희들

이 나처럼 숨어 살기도 어려워 한국으로 오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

이 들었단다.

 

그래서 20102월에 브로커 손을 거쳐 3국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오게 되었다.

 

그런데 국정원에서부터 너희들 이름과 나이를 대면서 내 딸들을 좀

찾아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는데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니 엄

마는 또다시 하늘땅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왜 내 달들은 한국에도 없을까, 그럼 어디로 갔고 지금 어디서 살고

있다는 말인가, 도대체 어느 하늘아래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마는 이제 더 살고 싶은 생각도 없을 때가 많다.

 

사랑하는 딸들아, 너희들을 찾기 전에는 죽을 수조차 없는 것이 이

어미의 심정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북한에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편

지를 보내준다는 이야기를 고마운 분을 통해 알게 되었고 북한개혁

방송국을 찾아와 신청을 하게 되었어. 난 이 편지를 듣고 계시는 분

들 중에서 혹시 이런 나이의 제 딸들을 보시거나 들으신 기억이 있

다면 꼭 도와달라고 간절히 빕니다.

 

함경북도 은덕군에서 살았고 은덕군 은정고등중학교를 다녔으며

20035월에 중국으로 갔습니다. 한국에 사는 이 엄마가 죽는 순

간까지 찾고 싶은 사랑하는 딸들입니다. 꼭 도와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딸들 경희야, 경란아, 엄마는 죽기 전에 너희들을 보고 죽

었으면 이제 죽는대도 소원이 없겠다.

 

엄마는 눈을 뜨고 살아 있으니 사는 것이지 사는 목적이 하나도 없

단다.

아무리 조은 것을 먹어도 좋은 옷을 모아도 그저 달들 생각 뿐 이고

혹시 길가에서 네 나이또래 여자들이 길을 가는 모습을 보면 혹시

내 딸이 아닐까, 싶어 아닌 줄 알면서도 따라가 볼 때도 있단다.

 

우리 딸들과 헤어진지도 14년이 되었으니 큰 애 경희는 올 해33

이 되었을 것이고 둘째 경란이는 올해 31살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 어디서 살고 있든 지금은 시집도 갔을 것이고 손자, 손녀들도

있을 것인데 아무리 생각하고 상상해 보아도 엄마의 누에는 그 모

습이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사랑하는 딸들아, 어디에 살고 있어도 좋으니 부디 살아만 있어다

. 그리고 엄마의 소식을 들을 수만 있다면 얼마 좋겠니?

 

엄마는 너희들은 만나는 날까지 어떻게 하든 꿋꿋히 살아 갈테니

너희들도 부디 앓지 말고 엄마를 만날 그 날까지 잘 살아주기 바란

.

 

사랑하는 딸들아, 엄마는 우리 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인도로 무

사히 한국으로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서울에서 엄마가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엄청 부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저 주린 배를 채울 수만 있

, 살이 들어나지 않게 옷이라도 입을 수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

램을 가진 것이 북한을 떠난 사람들의 심정이었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자매가 손을 잡고 아직 살얼음이 진 차가운

두만강 물에 뛰어 들었을까요? 아마 20살 전인 그들의 머릿속에 그

순간에는 어머니 생각이 전혀 없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에서 사시든 낳아주고 키워주신 엄마가 그리워 그들도 엄마처

럼 울고 있을지 모릅니다.

 

도대체 왜, 누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수많은 혈육들을 갈라놓고 가

슴을 치며 그리워하며 살게 만들었을까요?

 

아마 역사가, 세월만이 그 대답을 해 줄 수 있을 겁니다.

이름만 불러도 목이 메는 딸자식들, 어디선가 그 엄마를 찾고 있는

황경희, 황경란 두 자매 분들이 사랑하는 엄마와 꼭 만나게 되실 거

라는 생각하면서 그럼 오늘 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

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6-08-29 (조회 : 2506)
Copyright ⓒ 북한개혁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