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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조경숙씨가 사랑하는 언니에게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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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서 해방이 되어 남북한이 함께 해방의 기쁨을 노래하던 광복절이 바로 엊그제였습니다.

저는 해방 동이도 전쟁동이도 아닌 평화시절에 태어난 사람이지만 그 기쁨과 아픔은 남북이 함께 했기에 그 당시에는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절반이 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누가 그러던데요.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고요. 해방과 함께 한 가족이, 한 형제가 서로 갈라져 가슴 아픈 분단의 역사가 시작 된지도 71년이 되었습니다.

71년 분단의 역사는 어찌 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오늘 날에도 계속 진행형인 우리민족이 안고 갈 길고 긴 아픔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과연 그 끝은 어디일지, 누가 이 가슴 아픈 한 민족의 분단역사에 종지부를 찍게 될지 저 역시 그 날을 안타깝게 고대합니다.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 체신소에는 언니와 헤어 진지 13년이나 되신다는 서울 사시는 조경숙씨가 찾아오셨습니다.

두 재매 분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13년 전 북한을 떠나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는 조경숙입니다.

이런 저런 인생고초를 겪으며 제가 북한을 떠나 대한민국에 살게 된지도 어느덧 13년이나 되었습니다.

행복하게만 살다가도 모자랄 인생에 아프고 슬픈 사연이 너무 많아 늘 뒤를 돌아보면 좋았던 날보다 굳은 날이 더 많았던 것이 제 인생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자매라고 하지만 엄마 같았던 사랑하는 언니를 북한에 두고 온 제 마음은 매일 누리는 행복이 언니에게는 미안하고 항상 미안하기만 합니다.

어려서부터 고생도 많이 하고 남들보다 생활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나이보다 먼저 세상사는 이치를 깨달은 것이 우리 자매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늘 저와 함께하던 우리 언니가 너무나 보고 싶고 제가 사는 우리 가족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어 언니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저는 파랑새체신소에서 보내는 제 편지가 언니에게 꼭 가 닿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우리 언니에게

 

사랑하는 언니!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뭉클하고 뜨거운 눈물이 두 눈을 적시네.

언니, 우리가 헤어진지도 어언 13.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이 한 번 하고도 거의 절반이 흘러가고 있어.

우리엄마의 꿈에서처럼 언니가 만약 형부가 있는 저 세상에 먼저 가 있다면 후에 내가 만나면 언니를 절대로 용서 안 할 거야. 언니, 내말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

지금 언니에게 편지를 쓰려고 앉았는데 왜 자꾸 주책없이 눈물이 나는지 종이가 잘 보이지 않아. 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은 이 세상의 하나 뿐인 내 언니야.

언니도 나처럼 이 동생이 그립겠지?

난 알아, 넷씩이나 되는 자기 자식들보다 이 동생을 더 아끼고 사랑해 주었던 바보 같은 우리 언니를 말이지.

언니, 내가 산 후 우울증으로 고생할 때 언니는 만사를 제쳐놓고 형부와 둘이 나에게 약이 된다는 까만 토끼, 노란암캐, 가물치, 까막조개, 산죽 등... 많은 약을 구해 아들을 시켜 보내 주었지. 그리고 내가 살 수만 있다면 그 것이 무속 인이건 이름난 의사건 가리지 않고 다 찾아다니면서 방법을 가리지 않던 엄마 같은 어니였어.

나는 한 살, 언니는 네 살, 험한 세상에 23살의 젊은 아내와 딸들을 남겨두고 무정하게 세상을 떠나가신 25살의 야속한 아버지!...

그 끔찍한 세상에서 소녀가장 같은 우리 엄마는 우리 자매를 키우시느라 죽을 고생을 다 했고 우리 자매는 여러 번 친척집에 맡겨지면서 서로 그리워하며 수 년 세월을 보냈지.

아마 그런 사연이 있어 그런지 우리자매는 남들보다 더 끔찍했는지도 몰라.

언니, 오랜만에 펜을 들고 보니 유년시절의 어련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이말, 저 말, 편지가 두서가 없네.

언니, 내년이면 구순이신 우리 친정엄마는 아직 연세에 비해 건강하시고 옛 성격대로 부지런하고 깨끗하셔서 우리 엄마라고 하면 여기선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계셔.

일요일마다 교회에 오시는데 우리 식구만 해도 여섯이나 모이고 그 때마다 서로 이 주일간 있었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젊어서 누리지 못한 행복을 마음껏 누리지.

그리고 언제나 명절 때면 12명 대식구가 다 모여 하루 종일 잔치를 하곤 해. 그리고 또, 문구 같은 언니 제부는 정년퇴직을 하고 그 좋아하는 술을 맘껏 마시며 무사태평 세상 근심이 없이 살고 있고.

언니, 언니가 사랑하던 조카들도 다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자기 분야에서 나름 열심히 잘 살고 있어. 다만 눈이 눈썹위에 붙은 세 명의 조카는 가정을 이룰 궁리는 전혀 안하네. 제 어미 속 타들어가는 것은 아랑곳도 않고 말이지.

지금 막내만 예쁜 대학동창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벌써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어. 물론 회사도 좋은데 다니고 있고.

언니, 그 곳에서 우리가정에 대한 나쁜 이야기는 악선전일 뿐이야.

그 때 우리 식구는 그렇게 북한을 떠나 무사히 한국까지 도착했고,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참다운 인생의 행복을 누리며 잘 살고 있어.

별로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한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와 인간의 참다운 권리를 매일 페부로 느끼면서 말이야.

지금 나에게는 북한에서는 말로만 듣던 자유가 정말로 우리에게 주어지고 그 자유로움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았어.

그와 함께 북한에서 반평생 나를 괴롭히던 고질병인 두통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어.

언니, 나는 이렇게 인생 말년에나마 진정한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 민주 국가에서 복 받으며 살고 있지만 언니 생각을 하면 너무 가슴이 아파.

산전, 수전 다 겪으며 6~70대가 되어버린 우리 머리에는 어느덧 흰서리가 내려앉았고 이제 남은 생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서로가 그리움과 기약 없는 이별로 울며 살게 되었어.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언제인가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과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야.

언니를 그리며 편지를 쓰는 오늘 밤만은 순간이나마 옛 시절로 돌아가 어린애들 마냥 언니와 즐거웠던 추억을 하고 있어 넘 좋았어.

하나의 민족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서로 안부조차 물을 길 없는 비통한 현실 속에 산다는 것이 너무나 실감나는 밤이야.

유별나게도 이 동생을 엄마처럼 사랑해주었던 내 유일한 언니야!

물어보기도 차마 두려워 사랑하는 우리 조카들 문안조차 못했네.

차마 묻기가 두렵지만 그래도 묻고 싶고 조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알고 싶어.

언니, 엊그제 우리교회에 러시아에서 온 선교사분이 간증을 통해 북한에 대한 생생한 소식을 전해 주셨는데 어머니와 나는 언니 생각을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식량사정도 더 안 좋고 사람들을 점점 더 옥죄면서 살기가 어렵게만 되어 간다고 하는데 듣는 내내 마음이 너무 슬펐어.

그렇지만 언니, 구순의 어머니와 내가 언니를 만날 날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돼.

우리를 만나기 전에 절대로 천국에 먼저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거 알지! 이건 이 동생의 언니에게 내리는 꼭 지켜야 할 명령이니까 반드시 지켜야 해. 알았지, 언니.

우리 모두 얼싸 않을 그 날까지 엄마보다 앞서 떠나는 불효자가 절대로 되지 말기. 그 때까지 아무쪼록 살아 있어만 줘, 언니. 부디 안녕히...

그리고 사랑하는 조카들아, 너희 네 가족 모두 건강해서 다시 만나는 날, 엄마 손 꼭 잡고 와야 해. 이모와의 약속이다.

언니 앞에선 아직도 푼수 쟁이 동생 드림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우리가 북한을 떠난 사연은 서로가 다르지만 한국에서 사시는 모습은 서로가 비슷한 것 같네요.

저의 어머니도 팔순이지만 저 보다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계시는데 그 모습이 저의 삶에서는 늘 큰 활력소가 되거든요.

조경숙씨의 어머니께서도 따님과 손자, 손녀들을 만나시는 그날까지 살아야 할 명분이 있어 그렇게 강한 정신력으로 사시는 것 같고요.

북한에 계시는 조경숙씨의 언니 분께서도 아마 그런 정신력으로 어머니와 동생을 만나실 날까지 씩씩하게 살고 계실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럼 조경숙씨가 엄마 같은 언니분과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되실 그 날을 기대하며 오늘 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6-08-19 (조회 :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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