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후원안내

자유게시판

Home > RADIO >시사·대담 > 베를린에서 온 소식

[북한인권특강] 38회 납북자의 인권-1

관리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북조선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는, 북조선측이 6.25전쟁시기와 휴전 이후에 납치해간 남조선 인사들의 인권문제와 관련해서, 함께 생각하며 말씀 나누고자 합니다.

 

북조선측이 남조선 사람들을 납치해간 일은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그 첫째는 1950년에 일어나서 약 3년간 치룬 6.25전쟁 시기의 납북 즉, ‘전시 납북이고, 둘째는 1953727일 휴전이 성립된 이후 즉 전후의 납북입니다. 같은 납북이지만 시기와 성격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후 납북은 더 큰 범죄행위입니다.

 

먼저 6.25전시 납북자에 대해 살펴보면, 그 규모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1952년 내무부 치안국이 조사한 피납자 수는 126,325, 그리고 1953년의 공보처 통계는 84,532명 등입니다. 수치가 각기 다른 것은 전쟁 와중의 어수선한 상황하의 조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대체로 10만명 내외로 추정되는 규모입니다.

 

남녁의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에서는 이미 발견된 명부를 기준으로, 중복된 분들을 제외한 납북자 명단 96,013명의 명단을 분석한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석자료는 전시납북자의 연령별 분포도 함께 제시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 21세에서- 30세까지가 가장 많은 53.6%51,436명이고, 16세에서-20세까지가 그 다음으로 21.2%20409, 31세에서 -40세까지가 15.4%14,773명 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16세에서 20세까지는 다른 연령대 구분과 달리 절반의 연령대 구분인데도 불구하고 21.2%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북조선군이 남녁의 학생층을 이른바 의용군에 강제 동원한 결과로 보인다고 합니다.

 

한편 전시 납북자 중 귀환자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그들 대부분이 노년으로 변했고, 북조선체제에 불가피하게 적응해야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또 북조선의 식량난 이후 탈북자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귀환납북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 역시 대부분이 고령이고 또 납북자 본인들이 북측 가족들에게 전시 납북자 여부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합니다.

 

국제법인 제네바 협약 가운데 민간인에 관한 제4협약은 제49조에서 민간인을 점령지역에서 다른 국가로 강제 이송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 제 79조는 민간인의 억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조선의 민간인 납북행위는 국제법상 반인도 범죄전쟁범죄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9681126일 채택된 전쟁범죄 및 반인도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부적용에 관한 협약에 따라 북조선의 전시 납북행위에 대한 공소시효는 적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북조선은 1984118일 그 협약에 가입했습니다.

 

한편 20029월에 열린 제4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남과 북은 지난 전쟁 시기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자들의 생사와 주소확인 문제를 협의 해결할 것에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20056월의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 그해 8월의 제6차 남북적십자회담, 9월의 제16차 남북장관급회담 등에서도 협의해결하기로 잇다라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실적은 아직,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2006322일의 제13차 이산가족 상봉 시 남측에서는 처음으로 전시 납북자 가족을 포함시키고자 4명의 생사확인을 요청했지만, 납북된 당사자 모두 확인이 불가능했고, 20066월의 제14차 이산가족 상봉 시에도 8명의 전시납북자 가족이 상봉신청을 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때 북측은 1명의 생존을 확인했었으나 2주일 후 다른 사람이라고 번복한 바 있었습니다.

 

20075월의 제15차 이산가족 상봉 시에도 남측의 4명이 의뢰했으나 사망이 확인된 1명의 가족이 상봉하고, 3명은 확인불가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2010년에도 5명의 생사확인 의뢰가 있었으나 전원 확인불가능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전쟁이 멎은 지 60, 그러니까 두 세대가 지난 지금까지도 전시에 헤어진 가족들의 생사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비극입니다. 당사자와 가족은 물론이려니와 온 겨레의 아픔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전시에는, 자의든 타의에 의해서든 많은 사람들의 이동이 따르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20년 또는 30년이 지나면, 그로 인한 고통,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포함한 대부분의 고통은 풀려나가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겨레의 경우, 60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 그 고통의 실마리도 풀리지 않고 있는 현실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타의에 의해서 이산가족이 된 그들의 인도적 고통은 하루 빨리 해소되어야 합니다. 그 첫 걸음은 생사와 주소의 확인입니다. 그 다음 소식을 주고 받고,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희망에 따라 재결합을 이루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 다음 이 시간에 이어서 말씀 나누고자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입력 : 2014-02-04 (조회 : 2314)
Copyright ⓒ 북한개혁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