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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한승필씨가 둘도 없는 그리운친구 우진이에게

방송일 : 2019-10-18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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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9월부터 첫 눈 소식이 들리던 백두산에는 지금 쯤  흰 눈이 날리고 있겠죠?
게다가 백두산 주변에선 가뭄에, 태풍에 제대로 자라지 못한 가을 채소지만 이제는 얼추 김치가 되어 김장독에서 맛있게 익어 가고 있을 것 같습니다.
담백하고 수수하고 무엇보다 쩡~하고 이가 시리게 시원하던 북한고향의 김치 국물 맛이 그리워지는 밤이네요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체신소를 찾으신 한승필씨는 북한에 있는 그리운 친구 분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친구 분에게 어떤 사연을 전하고 싶으셨는지 그럼 오늘은 그 사연을 함께 들어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대한민국으로 온 지도 8년이나 되었습니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그 세월, 저는 북한과 전혀 다른 대한민국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혈유들이 남겨져 있고 잊을 수 없는 친구들이 살고 있어 그런지 늘 고향이 그립고 언제든 가 보고 싶습니다.
저는 하루가 다르게 낙엽이 물들어 가는 가을, 멋지고 훌륭한 오래 된 친구와 등산 한 번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어 이렇게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한 해 한해 머리는 은빛으로 변하고 이제는 지나간 청춘시절이 그리워지는 나이지만 그래도 고향에서 생사를 함께 넘어온 친구들이 늘 그리워집니다.
친구에게 전하는 제 마음이 담긴 이 편지가 부디 북한으로 가길 간절히 기대합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친구 우진이 에게!
우진이, 나 승필이네.
그 동안 잘 있었나?
나는 한국 땅에서 이 글을 쓰네. 놀라지 말게,
내가 한국 땅을 밟은 것은 2011년8월 이였네.
금년 봄에 강원도 철원을 탐방할 기회가 생겨 북한이 코앞에 바라보이는 분계선까지 갔댔어.
철원 땅을 밝은 순간 김화군에서 쏘련에 왔던 우진이, 자네 생각이 문뜩 떠 오르 더 구만,
돌이켜 보니 구두자르강 지류인 삐께다강 기슭에서 나는 자네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지.
인생은 참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는 것 같아.
그렇게 이국 만 리 외국에서, 인연도 없던 쏘련 땅에서 나와 자네의 친구 인연이 시작 되었어.
사실 생각해 보면 북한에서는 여행의 자유가 없는데다 국경지역이면 국경이라서 못 간다, 평양은 수도라서 못 간다. 강원도 분계선지역은 군사지역이라 못 간다, 군수공장이 많은 곳은 또, 그래서 못 간다, 경치 좋고 아름다운 명소는 북한지도자들의 별장이 있는 특별구역이라 못 간다...... 자네와 나는 쏘련에 가지 않았더라면 북한에서 죽을 때까지 살아도 한 번도 만나지 못할 운명이었는지도 몰라.
그렇게 귀한 인연으로 만난 자네와 나는 어떤 일에서나 성실함을 인정받아 도로중대 식당 취사원으로 선발되었지..  그게 아마 1972년 겨울이라 생각되네.
지금생각하면 내가 좀 더 자네를 도와주지 못한 것이 후회되네. 그 때 도로중대엔 강원도 친구들이 퍼그나 많았어,
영구, 허성도, 심규, 엄기종. 등등 ...
지금도 그 이름을 외우면서 그 친구들의 생각을 하게 되네, 그때 우리나이가 아마도 세상 무서울 것 없고 어떤 걱정도 없는 20대 후반, 30대초반이였지.
자네는 집에 홀어머니를 두고 왔다면서 일을 하면서 숙소의 잠자리에서 늘 그 어머니 걱정을 입에 달고 살았지.
자네가 항상 걱정을 하던  홀 어머님은 지금 쯤 어찌되었는지? 
친구 우진이, 생각해보니 지금은 자네가 70대 중반이 되였으니 어머님의 운명이 짐작이 가네만  지금도 김화 땅에서 그냥 살고 있는지?
강원도 땅을 밟고 보니 자네생각이 간절하게 떠올라 이 편지를 쓰게 되었네.
그리운 박우진이
내가 여기 생활의 한 토막을 써 보내니 잘 들어보게.
나 지금 남조선 서울에서 살고 있네. 내 기억대로라면 이성계가 개성에서 서울로 수도를 옮긴 것이 1396년으로 알고 있네만.
600년 역사를 가진 서울은 인구가 지금은 1000만 명을 넘는다네.
그 많은 인구가 쓰고. 먹고 버리는 물의 양이 얼마나 될지 자네는 짐작이나 가나?
한강을 복판에 두고 도시가 생겼으니 한강다리가 25개 넘고 다리마다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이 잘 건설 되었어.
서울시 중심에 경복궁이 북한산을 병풍처럼 감싸고 잘 자리 잡고 있지. 그리고 서울의 중심이 광화문광장이라 생각하면 되네,
광화문광장은 평양으로 비교하면 김일성광장과 같다고 할 수 있네. 나는 69살에 한국에 왔는데 나라에서 주는 돈으로 별걱정 없이 살아가고 있네.
친구 우진이, 내가 서울에 와서 제일 놀란 게  뭔지 아나?
수도의 중심인 광화문광장에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있고 우리글,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님의 동상이 있다는 거야.
이 좋은 자리, 이 좋은 명당에 북한이었으면 당연히 김씨 부자의 동상이 있었을 텐데.... 대한민국은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 명인, 명장들의 동상을 세웠더라고. 그러니 내가 정말로 놀라 뒤로 넘어 갈 번했다니까.
65세 이상은 지하철도 무료로 타고 다닐 수 있는데다 북에서 온 우리들도 대한민국국민으로 인정해주고 모든 정치적 권리와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네.
우리가 사는 주택들은 보통17층 정도인데 나는 5층에서 살고 있네.
가스나전기로 취사요리를 다 하니 우선 굴뚝이 없고 겨울에도 뜨뜻한 온돌에서 살고 있다네.
전기가 1년 열 두달 하루도 안 오는 날이 없이 24시간 빵빵하게 오니 밝은 세상, 자유로운 세상. 근심 걱정 없는 세상이 여기가 아닌가 싶네.
친구 우진이, 내가 살아왔던 북한. 사회주의 사회와 여기 남한 자본주의 사회를 목격한 모든 것을 대비해서  글로 쓰자면 끝이 없네.
정말 감탄할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이 건 꼭 알아두게.
서울에만 지하철이 큰 것만 9개선이 있어.
작은 지선도 여러 개가 있는데 아무시간대에 나가도 가고 싶은 데로 가고 오고하지.
지하에도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스하게 화장실은 웬만한 호텔정도야.
북에서는 외국인을 보면 놀라지 않나.
여기 대한민국에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다 와서 일도하고 공부도하고 관광도 하고 그게 여기에서는 평범한 일상이야.
그리고 서울은 대한민국수도이지만 우리 같은 탈북자들도 거주시켜주고 누구든 자기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살게 해주고 있네. 거주의 자유가 확고히 보장된 나라지.
집집마다는 북에서 보던 "볼보"보다도 더 값비싼 승용차를 두 대 세 대 있어 여자든 남자든  다 자기차를 가지고 출퇴근도 하고 일보러 다니기도 한다네.
우진이, 오늘은 시간상 이만 하려 하네 .
자네도 만약 여기에 와서 함께 서울거리를 누비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펜을 놓겠네.
쏘련에서 사귄 둘도 없던 친구에게 대한민국에서 이런 편지를 쓰는 게 나로서는 행복인지 비극인지 잘 모르겠네.
분단의 비극과 아픔을 체험하면서..우진이  잘 있게...
건강 하라구...서울에서 한승필 보냄.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러시아, 라는 나라에 노동자로 파견 가서 우연히 만났던 군사분계선 마을 강원도 친구 우진씨,  아, 북한에서는 쏘련, 이라고 하죠.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평생을 갇혀 사는 북한주민들에게 그 당시 쏘련에 한 번 가보는 것은 소원이고 노망이었죠.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외국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은 단지 그들이 못살고 어려워서 뿐 아니라 인간으로써 당연히 누려야 하는 자유, 가 그리웠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비무장지대가 평화지대로 변해가는 땅에서 반대편 북한 사시는 친구 분에게 쓰신 한승필씨의 편지가 친구 분에게 꼭 가 닿기를 기대하면서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9-10-18 (조회 : 124)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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