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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끌어 온 여성

[세상을 이끌어 온 여성] 5회 - 스웨덴을 유럽의 문명국으로 만든 군주, 크리스티나 여왕

방송일 : 2017-06-09  |  진행 : 김소라  |  시간 :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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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은 인류 역사를 이끌고 발전시켜온 위인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여성 인물을 떠올린 분은 아마 많지 않으실 겁니다. 인류 역사의 아주 오랜 시간동안, 여성들은 단지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존여비의 벽에 부딪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남성을 위한 역할을 담당하며 살아왔습니다.

여성은 정말 열등하고, 연약하기만 할까요? 그래서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존재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들은 더 이상 불평등을 운명으로, 또한 무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조선개혁방송에서는 북조선 여성들의 자존감을 향상시키고, 이들이 북조선 사회의 주체로 당당히 살아가도록 <세상을 이끌어온 여성>이라는 프로그램을 준비하였습니다.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았던 여러 여성 인물의 삶을 살펴봄으로써, 북조선 여성들도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실력을 쌓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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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개혁방송의 새 프로그램 <세상을 이끌어온 여성>. 오늘의 주인공은 청취자 여러분들에게 조금 낯설 수도 있는 나라, 유럽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스웨덴의 여왕 크리스티나입니다.

스웨덴은 현재까지 왕조를 유지해오고 있는 왕정 국가 중 하나입니다. 스웨덴 왕실은 과거시절부터 국민들에게 매우 큰 지지를 받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스웨덴 왕실이 귀족적 분위기를 버리고 친 인민적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치적 뿌리는 오늘 소개해드릴 크리스티나 여왕 때 기틀을 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크리스티나는 스웨덴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왕이었던 구스타프 2세의 딸로 1926년 12월 8일에 태어났습니다. 왕은 오랫동안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스웨덴 왕조는 오로지 왕자가 태어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랬기에 크리스티나의 탄생은 국민들로부터 큰 환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구스타프 왕은 크리스티나가 남성보다 훨씬 더 강인한 군주가 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여왕으로서의 자리를 견고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국왕은 ‘이 아이는 스웨덴의 희망, 스웨덴의 국왕이 될 것이다. 바로 이 아이가 스웨덴의 왕위 계승자이자 통치자이다.’ 라고 선포하며 전 유럽에 여왕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실제로, 당시 스웨덴 왕실 예법에 따르면 국왕이 외출할 때마다 50발의 포를 쏘아 영접 의식을 거행했다고 합니다. 이에 구스타프 국왕은 자신 뿐 아니라 크리스티나 공주가 지나갈 때에도 포 50발을 울리도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적극적인 믿음에 힘입어, 크리스티나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고집과 담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구스타프 국왕은 크리스티나가 왕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갖가지 위험하고 중대한 사안을 경험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공주는 점차 두려움을 모르는 담대한 용사로 자라나게 됩니다.

그러나 여왕은 생각보다 빨리 홀로서기를 해야 했습니다.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던 아버지 구스타프 2세가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치르던 중에 전사했기 때문입니다. 1633년 2월, 6살의 나이로 크리스티나는 정식 여왕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선왕의 충직한 신하였던 악셀 수상은 최선을 다해 여왕을 보필했습니다. 그는 의회의 동의를 거쳐, 대법관이었던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섭정원이라는 기구를 설치했습니다. 총 다섯 명으로 구성된 섭정원은 스웨덴의 내정과 외교 등 각종 정무를 처리하며 어린 여왕을 도와 국가를 운영해 나갔습니다.

무엇보다 악셀 수상은 여왕을 군주로 만들어가기 위한 교육에 집중했습니다. 여왕은 매일 새벽 네 시부터 수업을 받았는데, 첫째는 언어 교육이었고 둘째는 군사학이었습니다. 천부적으로 총명했던 여왕은 지적 욕구도 강했고, 매우 근면성실했습니다. 가혹할만큼 엄격한 교육을 받으면서도 여왕은 전혀 힘겨워하지 않았습니다. 섭정원에서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여왕의 학습 성과에 대한 엄격한 검증을 실시하기도 했는데, 호된 교육 속에서 여왕은 점차 훌륭한 군주의 면모를 갖춰 나갔습니다.

어른이 된 크리스티나 여왕은 직접 국가를 돌보기 시작합니다. 여왕이 가장 먼저 집중한 것은 바로 ‘국민들의 안정된 삶’이었습니다. 아버지 구스타프 대왕은 전쟁에 매우 능한 왕이었지만, 전쟁으로 인한 국민들의 삶이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 여왕은 알았습니다. 여왕 역시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에, 그녀는 전쟁을 종결시켜 스웨덴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만들기 원했는데요. 바로 그 이유로 여왕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립니다.

여왕의 가치관은 매우 뚜렷했습니다. 여성으로서의 자주 독립과 자유로운 정신을 추구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인 자신이 결혼을 함으로써 일어나게 될 국가적인 혼란과 외교적 문제를 정확히 인식했습니다. 대신 그녀는 변방국이었던 스웨덴을 문화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들을 수립했습니다.

여왕은 조국 스웨덴을 보다 진보한 문명으로 이끌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스웨덴은 부유한 군사강국이었지만 문명 수준은 유럽 중심에 있는 프랑스나 영국 등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왕은 문화 예술 사업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 스웨덴 최초의 신문이 발간되고, 전국 규모의 정규 대학이 설립되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여왕은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이탈리아에서 6백여 점에 달하는 예술품을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철학자를 스웨덴으로 불러들여 직접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 데카르트가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데카르트와의 교류를 통해 여왕은 ‘세상에 무릎 꿇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자’는 신조를 갖게 됩니다.

예술을 통해 넓은 시각을 갖게 된 여왕은 급기야 유럽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일을 하기에 이릅니다. 당시 스웨덴은 엄격한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프랑스 등과 교류를 하는 과정에서 여왕은 천주교에 점차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국가의 국왕이 천주교로 개종한다는 것은 당시 사회에선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왕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둘 중 하나였습니다. 다시 기독교를 지켜나가든지, 아니면 여왕의 지위를 포기하고 천주교를 택하든지.

마침내 여왕은 1964년 6월 6일, 퇴위를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국왕이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난 일은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전 유럽 일대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곧 여왕의 선택을 인정해 주었고, 여왕은 이탈리아로 넘어가 천주교의 수장인 교황청의 보호를 받으며 남은 삶을 살아가다 1689년, 예순 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여왕이 여생을 보냈던 이탈리아인들은 종종 ‘크리스티나의 17세기’라는 말을 즐겨 한다고 합니다. 이는 여왕이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머물렀던 기간을 일컫는데요, 그만큼 크리스티나는 모국인 스웨덴뿐만 아니라, 제2의 조국인 이탈리아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평생을 왕위에 있으면서도 국민들의 삶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는 왕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티나는 무척 짧은 기간 동안 재위했음에도, 고통스러운 전쟁을 종결시키고 평화를 정착시켜 국가의 안정을 이룩했습니다.

평생 동안 남성에게 기대어 자기 운명과 존엄성, 주권을 내팽개치는 여성들 또한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크리스티나는 정치적이고 정략적인 결혼의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 나갔습니다.

평생 방황하며 자기 신념에 대한 혼란에 빠져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크리스티나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종교적 선택을 위해, 모두가 부러워하는 왕위조차도 서슴없이 내던졌습니다.

평생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살면서도 가치 있는 물건 하나 남기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크리스티나는 문화예술에 아낌없는 지원을 하며 진정한 가치를 창출해 내었고, 무엇보다 스웨덴이라는 한 나라의 문화를 놀라울 정도로 발전시켰습니다.

이처럼 자주적으로 자기 인생을 꾸려나갈 줄 알았던 크리스티나 여왕의 인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자기 내면의 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남이 아닌 자기가 원하고 바라는 인생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의 김소라였습니다.
여러분, 행복하십시오.

입력 : 2017-06-09 (조회 : 124)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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