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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시민사회

17회 자유와 평등 그리고 여성

방송일 : 2019-09-09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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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인민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가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해 애기하면서 여성의 평등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아도 인류의 전 역사에 걸쳐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은 언제나 남성에게 지배당하고 통제되어 왔습니다.
여성들의 평등문제는 오랜 인류 역사에 걸쳐 존재해온 남녀 불평등과 민주사회에서 반드시 극복해야할 문제로 항상 제기되어 왔습니다. 지난 수세기동안의 역사를 보아도 우리는 여성운동을 통한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강의에서는 남녀평등의 관점에서 여성평등이 민주사회에서 노는 역할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인류역사에서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평등에 대한 논쟁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성의 평등에 대한 논의는 인류를 창조했다는 기독교의 성서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성서의 구약과 신약에도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평등하다는 주장도 담겨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명한 철학자 플라톤은 자기의 저서 『국가』에서 남녀는 평등하게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등하다는 생각을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남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근대 역사에서 여성의 자유평등을 위한 운동의 시초는 지금으로부터 227년 전 1792년 매리의 “여권의 옹호”라는 책의 출판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것은 이 책이 세게 최초로 여성이 남성의 노예가 된 이유를 지적하고 잘 못된 사회화에 대하여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여성들은 남성위주의 사회적인 관습과 제도로 여성의 지적발전이 저지된다고 보고 여성의 평등을 주장했습니다. 즉 여성의 삶의 목적은 남성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가르친 당시 사회관행의 그릇된 관점을 비판합니다.
하지만 17~18세기만하여도 계몽주의 사조 때문에 여성의 평등은 보장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은 계몽주의라는 합리주의적 사조가 확산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의 남성들은 이 합리주의를 남성 중심적으로 해석하여 여성은 남성에 비해 비이성적이고 감성적이라는 생각을 유포시켰지요.  그 결과 삶의 영역은 보다 합리적이라고 간주된 남성들의 영역과 비이성적이고 감성적인 여성들의 영역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남성은 공적인 영역에서 여성은 사적인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일반화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1776년 미국에서 발표된 ‘천부인권설’에서도 잘 볼 수 있습니다.
천부인권설은 생명권, 자유권, 재산권, 저항권 등을 하늘이 부여한 천부적인 불가침의 자연권으로 규정합니다. 하지만 천부인권설은 남성의 우선적이고 차별적인 역할을 주장하는 모순된 견해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울스턴크래프트와 같은 일부 여성운동가들은 이 모순을 지적하면서 남녀차별을 가져온 각종 법률과, 제도들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들의 주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모든 인간의 합리성을 확신합니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이성을 제도나 전통보다 더 확실한 진리의 원천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남성과 여성의 이성적 능력은 같다고 주장합니다.
다음으로 사회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발양시키는 교육을 신뢰합니다. 또한 개인들의 분리성과 독립성, 남녀를 포괄하는 모든 개인들의 평등과 존엄성을 주장합니다.
마지막으로 천부 인권설에 동의하면서 여성의 정치적 권리, 다시 말하여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강조했습니다. 여성이 성적인 차별을 없애고 동등한 임금과 시민권, 평등한 교육 및 복지에 대한 기회, 정치과정에 대한 동등한 참여를 주장합니다.
당시의 자유주의 여성운동은 포괄적인 사회구조의 개혁보다는 봉건적인 가족제도 및 남녀관계의 극복에만 관심을 돌리는 제한성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여 여성의 재산권, 취업 및 정권참여의 보장과 같은 시민적 권리의 획득만을  목표로 하는 한계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19세기 여성운동은 남성에 의한 여성억압문제를 사유재산 제도의 불평등뿐만이 아닌 지배계급의 책임도 묻기 시작합니다. 국가를 장악한 지배계급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여성에게 정조와 충성을 강조하는 가부장적 일부일처제를 확립했다고 주장합니다.
오늘 북조선에서 “조선의 어머니”, “혁명의 어머니”, 로 내세워지는 강반석과 김정숙의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것처럼 이들의 생은 오로지 남편과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충성한 것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 여성들이 정권에 참여하면서 많은 나라들에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권리가 보장됩니다. 하지만 북조선에서 “남녀평등”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을 기준으로 평가되어 실질적인 평등은 보장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북조선사회는 가부장제의 표본입니다. 수령은 아버지, 당은 어머니로 규정한 것 자체가 여성에 대한 억압의 뿌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조선의 여성들은 아버지인 수령을 보좌하는 “어머니 당”처럼 결혼, 가족, 여맹조직과 같은 사회제도 속에서 남성들에게 실질적으로 지배 당하고 억압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여성운동은 다양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종교문제, 사회적 지위문제, 가정에서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 등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관계를 평등하게 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말입니다.
‘민주주의’는 남성과 여성 모두가 소유해야하고, 모두가 원하고 바라는 신성한 것입니다. 하지만 북조선에서 노동당과 국가는 점점 더 개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공동체의 이익만 중시하는 폭력적 사회로 변화고 있습니다.
북조선은 최고지도자의 생각만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하면서 개인들이 자기 권리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못하도록 조장하고 있습니다. 오늘 세계의 많은 여성들은 북조선에서 민주주의는 존재한 바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절적인 의미에서 북조선 여성은 한 번도 민주주의의 주체인 시민의 범주에 포함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노이 정상회담을 위한 기차여행에서 김정은의 담뱃재를 받기 위해 재떨이를 두 손으로 받치고 있는 김여정의 모습이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평등한 분배와 행사를 지향합니다. 하지만 전 세계가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현재까지도 북조선에서는 아직도 가부장제에 기초한 여성억압과 성적불평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이런 불평등성을 시정하는 과정에서 계속 확장되고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사회·경제·정치적 불평등을  없애는 한편, 여성의 불평등도 인식하고 극복하려고 노력할 때 진정한 민주주의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여성의 평등과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북한개혁방송의 조현우였습니다.
입력 : 2019-09-09 (조회 : 19)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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