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후원안내

자유게시판

Home > RADIO >편지와 사연 > 파랑새 체신소

파랑새 체신소

장선옥씨가 그리운 친구에게

방송일 : 2019-08-23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0:00:00

 

<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일제식민지에서 우리나라가 해방 된지도 어언 일흔 네 해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광복절이라고 부르고 북한에서는 조국해방의 날, 이라고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8월15일은 일제의 식민지에서 우리한 반도가 해방된 역사적 기념일입니다.
한 반도는 역사적으로 큰 나라들 사이에서 크고 작은 전쟁, 끊임없는 침략을 받아왔습니다. 거기에다 광복 후 5년 만에 또다시 한민족이 원수가 되어 세계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처절한 전쟁을 3년이나 치렀죠.
오늘 날까지도 북에서 남침을 했다, 남에서 북침을 했다, 서로에게 책임을 떠  넘기며 도대체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누구의 전쟁이었는지, 역사의식마저 혼동이 되는 한국전쟁을요.
그러나 역사가 우리에게 가리켜준 “자유와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 라는 교훈은 남과 북 모두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체신소를 찾으신 장선옥씨는 북한에 있는 보고 싶은 친구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대한민국으로 온지 어느덧 17년이 되었습니다.
우리 속담에 부모 팔아 친구 산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생존을 위한 전쟁터 같은 북한에서 우리 가족이 살아남아 이렇게 한국으로 오기까지에는 피붙이는 아니지만 친 형제 같은 제 친구의 사랑어린 도움이 있었습니다.
어제까지 보았던 이웃이 오늘은 시체가 되어 나가던 어려운 시기였지만 이 고마운 친구 덕분에 제 가족이 목숨을 구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북한을 떠난 지도 오래 되고 그 친구와 연락도 못하고 살지만 늘 저와 제 가족은 그 친구를 잊지 못하고 있고 부디 잘 살아 있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보고 싶은 북한의 친구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보고 싶은 친구에게 전 한다
보고 싶은 내 친구야, 그 동안 잘 있었어?
내가 누구냐면 지지리도 고생하면 못살던 같은 인민 반에 살던 정숙이 엄마야.
친구와 헤어진지도 너무 오래서 혹시 잊고 산 건 아니지 모르겠어.
그 동안 연락도 못하고 편지 한 장 전 하지 못해 너무 미안해.
우리가 살던 함경북도 은덕군은 농사도 잘 안 되는 곳인데다가 사람은 많아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하던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어?
보고 싶은 친구야, 나이는 비슷해도 친구는 애가 하나였지만 난 애가 자그마치 넷이나 되었지.
지금 사람들의 나이로 보면 한창 젊은 나이인 39에 남편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나는 졸지에 애가 넷 달린 과부가 되었잖아.
그런데 그 애 넷을 벌어 먹이고 직장을 다녀야 했으니 내가 한 생 한 고생은 더 말 할 데가 없어.
친구도 알다시피 젊은 여자가 평생을 남자들도 하기 어려워하는 탄광 일을 한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야.
그런데 식구는 한 구들인데 배급을 안주니 농사도 할 수 없는 고장에서 우리 식구가 살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었어.
그래서 두 딸들이 한 해 사이를 두고 식구들 구한다고 중국으로 넘어 갔었지.
우리 딸들이 중국으로 가기 전 우리 식구들 모두가 연거푸 3일을 아무 것도 못 먹고 굶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보니까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이라더니 질긴 것도 사람의 목숨인 것 같았어.
그렇게 이제 온 식구가 죽을 시간만 기다리고 있던 그 순간에  친구가 우리를 살려 주었어.
친구네도 살기 어려운데 이러다가 식구가 전부 죽는다면서 집으로 뛰어가 냄비에 죽을 쑤어가지고 와서 친구야, 죽지 말 아, 이 죽 먹고 살아나라, 고 소리치며 방 에 누워있는 우리 식구들 입에 죽을 떠 넣어주던 고마운 친구!
지금도 조용히 눈 감으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저 세상으로 갔을 우리 식구 모두를 살려준 친구 생각이 떠오르고 그 생각만 하면 눈물이 앞을 가려.
그렇게 고마운 천사 친구가 있어 우리식구 모두 오늘 이렇게 한국으로 올 수 있었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었지.
친구야, 그렇게 목숨을 건진 우리 큰 딸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중국으로 간 게 98년이고 바로 다음해에 둘째도 중국으로 갔지.
군 복무하는 사람에게 시집을 갔던 우리 둘째가 제 언니 따라 중국으로 갔다가 그 곳도 북한 사람이 영원히 살 곳은 못 된다는 걸 알고 중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갔거든.
고마운 친구야, 그렇게 딸 하나가 한국으로 오면서 우리 애들이 하나 둘, 다 한국으로 오게 되었어.
그리고 나까지 대한민국으로 다 오게 되었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맨 마지막으로 한국에 왔어. 그런데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북송이 되는 바람에 얼마나 큰 고생을 했는지 몰라.
그 것도 세 번씩이나 말이지.
그리운 친구야, 나는 정말 아들 하나를 아주 잃어버리는 줄 알았어.
친구는 북한 실정을 너무나 잘 아니까 우리 아들이 세 번을 북송 당했다니 얼마나 많은 매를 맞고 고통을 당했을지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하고도 남을 거야.
친구야, 이렇게 온갖 시련을 겪고 나서 내 자식들 넷 다 대한민국으로 왔고 나도 지금은 노년을 한국에서 큰 근심 없이 잘 보내고 있어.
친구도 잘 알지만 내가 직장에서 연료보장을 받고 나오면서 수속도 하기 전에 곧장 중국으로 들어갔잖아.
그 때 중국에 간 딸이 오라고 연락이 와서 갑자기 갔는데 고마운 친구에게 인사도 못하고 온 것이 지금도 미안해.
보고 싶은 친구야,
언제면 우리 서로 만나 지나간 이야기도 하고 내가 친구에게 고마움도 전하고 그럴 날이 올까?
나는 별로 부자는 아니지만 자식들이 다 먹고 살 걱정 없는 나라에서 잘 살아가는 걸 보는 것 만 으로도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
나는 자식들이 모두 집을 받아 따로 살고 혼자 있는데 막내 손녀를 봐 주는 게 요즘은 큰 낙이야.
그리운 친구야, 이제 우리 이 나이에 무슨 큰 욕심이 있겠냐만 그래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주는 게 자식들을 도와주는 것이고 또, 그래야 통일이 되는 날 우리가 꼭 다시 만나 볼 수 있는 길이기도 하거든.
우리 애들은 가끔 맛있는 거 먹을 때마다 엄마, 우리 그 이모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 그 이모 땜에 우리 이렇게 살아서 한국으로 올 수 있지 않았냐, 고 늘 외우고 있어.
생각할수록 고마운 친구야, 요즘 따라 친구가 왜 이렇게 보고 싶은지 모르겠어.
그리운 사람이 많다는 것은 내가 나이를 먹어 간다는 말도 되겠지만 정말로 죽기 전에 나는 꼭 친구를 만나자.
내가 우리식구 살려준 고마운 친구에게 반드시 감사의 마음을 전 할 수 있게 친구도 아프지 말고 잘 살아주길 간절히 바라.
그리운 마음, 하고 싶은 말은 많고 많은데 오늘은 여기서 마칠게.
꼭 건강한 몸으로 잘 살다가 통일되면 만나자, 그리운 친구야.
친구야, 안녕!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오늘이 있어야 내일이 있다, 는 말처럼 어려운 고난의 시절 장선옥씨 가정을 살려준 고마운 친구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에서의 장선옥씨 가족의 행복이 있을 겁니다.
장선옥씨는 부모형제, 자식들도 서로를 돌아볼 겨를이 없던 생사를 판가름하는 어려운 시절, 천사처럼 나타나 온 가족의 목숨을 구원해 준 정말로 고마운 친구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흔히 성공한 사람들은 좋은 벗을 1명 정도 가지고 있다, 고들 합니다. 장선옥씨 가족 모두가 대한민국으로 올 수 있었던 성공의 뒤에는 친구를 위해 헌신한 훌륭한 친구가 있었음은 더 말할 것 없겠죠.
어렵게 성공한 장선옥씨 가족의 대한민국에서의 삶이 보다 더 행복하시길 그리고 친구를 위해 진정으로 헌신한 북한 사시는 장선옥씨의 고마운 친구 분께서도 통일의 그 날까지 부디 건강하게 잘 사시길 저도 간절히 바랍니다.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9-08-23 (조회 : 147)  |  북한개혁방송
Copyright ⓒ 북한개혁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