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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방송

8.15특집방송: 2회 미국은 왜 일본에 원자탄을 투하했는가

방송일 : 2019-08-14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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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조선개혁방송은 일제 36년 식민지 통치에서 해방된 8.15 74주년을 맞으면서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오늘 첫 시간에는 일본의 공격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한 것은 김일성 주석의 항일빨찌산 투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국과의 전쟁에서 졌기 때문입니다. 1945년 8월 15일 낮 12시에 일본 천황이 라지오를 통해 항복선언을 한 것은 쏘련이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중국과 조선에서 일본을 공격했기 때문이 아니였습니다.
당시 쏘련 지도자 쓰딸린의 명령을 받는 쏘련군 제88극동려단에 속해있었던 김일성 대위가 독자적으로 일본을 패망시킬 수는 더더욱 없었습니다. 일본 군부와 천황은 결사항전을 웨치며 버티다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 공격을 받고 나서야 항복했습니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할 당시만해도 태평양에서 일본의 군사력은 미국을 릉가했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개항을 하고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1904년 시작된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세계적인 강대국이 됐습니다.
1941년 12월 7일, 항공모함을 네척이나 동원해 일본에서 6천키로메터나 떨어진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할만큼 일본의 군사력은 대단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일본의 전투기는 미국의 전투기보다 성능이 더 좋았고 항공모함과 순양함을 비롯한 전함도 강력했습니다.
일본은 진주만 공격과 거의 동시에 미국이 점령하고 있던 동남아시아의 필리핀을 공격해 함락시켰습니다. 당시 일본은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의 뉴기니와 과달카날 섬까지 진출해 오스트랄리아까지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진주만 공격을 계기로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 미국은 신속하게 전시체제로 전환해 거대한 경제력으로 전쟁에 돌입합니다. 그리하여 다음해인 1942년 6월 태평양 동남쪽 하와이와 인접한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이 크게 패하고 미국이 승리하게 됩니다.
미드웨이 해전을 계기로 미국은 태평양전쟁의 주도권을 잡게 되고 태평양에서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섬들을 하나씩 공격해 점령합니다. 그러나 일본군은 마지막까지 항복하지 않고 격렬하게 저항했고 또 미군은 미군대로 섬을 점령하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섬을 점령한 일본군은 끝까지 저항했고 마지막에는 항복하지 않고 자살하고 섬 주민들까지 강제로 자살하도록 강요합니다. 1942년에 미국이 일본을 향해 충격을 준 또다른 군사적 공격은 바로 일본 본토 공습이였습니다.
1942년 2월 24일 일본 함선이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의 정유소를 포격하자 루즈벨트 대통령은 도쿄 폭격을 계획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리하여 1942년 4월 18일 미국 육군 항공대는 일본 도쿄와 고베, 요코스카 등의 도시를 공습했으나 크게 피해를 입히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태평양 건너에 있는 일본 본토에 공격은 일본 군부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1943년부터 미국은 태평양에서 일본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태평양전쟁의 주도권을 잡은 미국은 일본 본토에 대한 폭격을 준비했습니다.
1944년 6월부터 미국은 일본의 도시들을 공습하기 시작했고 같은해 11월부터는 일본 본토를 본격적으로 공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본토 공습을 막기 위해 도쿄에서 남쪽으로 약 천키로메터 떨어진 이오지마섬을 사수하기 위해 미국과 결사적으로 싸웠습니다.
1945년 2월부터 3월까지 벌어진 이오지마 섬 전투에서 미국은 약 7천명이 전사하고 2만명이 부상당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오끼나와 전투에서는 4만 6천여명이 전사하고 5만 5천여명이 부상당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오지마 섬과 오끼나와에서 사망한 일본군은 총 13만여명이고 자살하거나 사망한 민간인도 12만명이나 됐습니다. 일본군은 마지막까지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다가 죽지 않으면 자살했고 민간인들도 미군에게 잡히지 않겠다고 집단 자살까지 했습니다.
이런 극단적 저항과 자살 상황은 전쟁 막바지에 더 심해졌습니다. 가미가제라고 하는 일본군의 자살공격은 공중과 바다, 지상에서 이어졌고 태평양의 섬들에서도 일본군은 항복하지 않고 자살했습니다.
미국은 1945년 봄부터 도쿄를 포함한 일본의 대도시와 공업도시들을 공습하여 초토화했습니다. 특히 1945년 3월 10일 일본의 전쟁 의지를 꺾기 위해 도꾜에 소이탄 공격을 가해 도꾜와 그 주변은 초토화됐고 이날 하루에만 10만여명이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천황과 군부는 군대는 물론이고 일본 국민 전부가 죽는 순간까지 결사항전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일본 본토를 점령하려면 작게는 수만에서 많게는 100만의 인명피해를 날 것을 우려해 원자탄을 사용하기로 결심합니다.
영국과 쏘련, 미국이 1945년 7월 26일 포츠담선언을 통해 일본에게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지만 거절했던 것도 계기가 됐습니다. 그리하여 미국은 8월 6일 히로시마에 첫 번째 원자탄 공격을 가했고 3일 후인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탄이 떨어졌습니다.
두 번의 원자탄 공격으로 약 12만명에서 24만명이 사망하고 도시는 완전히 폐허가 됐습니다. 나가사키에 원자탄이 투하되고 5일만인 8월 14일에 일본은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통보하고 8월 15일 항복선언을 방송했던 것입니다.
미국이 원자탄을 개발하게 된 것은 나치 독일과 일본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원자탄을 개발하고 있었던 리유도 있었습니다. 1945년 8월 미국이 일본에 원자탄 공격을 가한 것에 대해 지금도 많은 평가들이 있지만 원자탄 공격의 원인은 일본 제국주의였습니다.
당시 일본 천황과 군부는 군대가 괴멸되고 일본 본토가 초토화됐는데도 항복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자탄 공격을 받게 된 것입니다. 지나간 력사는 항상 현재를 살고 있는 인류에게 교훈을 주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얼마전 미국에서는 북조선이 비핵화를 거부하고 핵개발을 고집하면서 대결로 치닫게 될 경우 미국의 핵공격이 실행될 경우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만약 미국이 평양에 핵 공격을 가할 경우 최소 150만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올해 2월 미국인 33%가 100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해도 북한에 대한 예방적 핵공격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현실을 오판하고 불가능한 탐욕과 욕망에 빠져 인민과 국가를 파멸로 이끄는 지도자가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음시간에는 일본은 과연 누구에 의해서 패망하였는가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 김승철이였습니다.
입력 : 2019-08-14 (조회 : 98)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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