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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방송

7.27 정전협정 평화체제 특집 : 7.27정전협정 체결과정과 종전선언

방송일 : 2019-07-26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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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7.27 반미투쟁월간이 사라진 지난해부터 북조선 당국은 종전선언을 줄기차게 주장해왔습니다. 종전선언이 조선반도에서 항구적이며 공ㄷ  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ㄱ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력사상 처음으로 조미 두 나라 최고 지도자가 만나 회담을 하고 발표한 선언에도 종전선언의 내용이 있습니다. 공동선언 두 번째 항에는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만드는 노력에 참여한다.”고 밝혀져 있습니다.
지난해 3월 5일 문재인 대통령 특사단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비핵화를 하겠다는 말을 들은 때부터 종전선언이 강조됐습니다. 약 2년간 남조선의 문재인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도, 중국의 시진핑 주석도, 트럼프 대통령도 종전선언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지난해에 로동신문은 종전선언발표가 조선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선차적 공정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비핵화가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고 더욱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선언한 비핵화의 시작도 되지 않았기에 종전선언은 불가능합니다.
종전선언은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미국과 조선, 중국 세나라가 수표한 전쟁의 일시적 중지를 선언한 정전상태를 끝내는 것입니다. 현재 조선반도는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로 평화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상황입니다.
조선반도의 이러한 정전 상태는 북과 남의 항구적인 평화와 화해협력에 중대한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6.25전쟁의 실질적 당사자인 미국과 북조선, 남조선이 전쟁이 끝났다는 종전선언을 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한 리유가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종전을 선언하게 되면 조선반도는 새로운 긴장과 대립상태에 빠지게 되고 여기에 주변강국까지 개입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남조선과 북조선 사이에 대립과 대결을 낳게 되는 리념과 체제의 근본적 원인들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북조선 당국은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남조선에 있는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북과 남의 체제대결을 다시 시작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남조선 정부는 북과 남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진심으로 노려해왔고 그 실천을 지난 수십년간 보여주었고 증명해왔습니다.
반면에 북조선 당국은 기회가 있을때마다 북남관계에서 남조선을 군사, 정치적으로 자극하면서 남조선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조선 내부적으로는 6.25전쟁도 조국해방전쟁이고, 남조선 혁명이라는 리념과 체제를 토대로 하는 일방적 통일 야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북조선 당국과 중국 정부는 남조선에 종전선언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의 정치, 체제적 야심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또 북조선의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도 실현되지 않은 상황에서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조선반도의 불안은 매우 급격히 커지게 됩니다.
종전선언이 왜 합의되지 않는지, 또 단순하게 종전선언을 발표할 수 없는 리유는 정전협정 체결과정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6.25전쟁에서 전쟁을 중지할데 대한 론의는 1950년 말에 처음 있었습니다.
6.25전쟁 시작한지 한두달만에 남조선의 부산지역을 내놓고 거의 전부를 점령한 북조선은 미군이 주도하는 유엔군의 참전으로 후퇴하게 됩니다. 1950년 9월 미군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전으로 9월 23일 북조선 군대는 후퇴하게 되고 10월 1일 3.8선 이북으로 후퇴합니다.
남조선군대와 유엔군은 동쪽에서는 청진까지 서쪽에서는 청천강지역까지 북진하게 되는데 10월 말에 30만의 중국군대가 조선전쟁에 참전합니다. 이후 조선과 중국군대는 3.8선 이남까지 밀고 내려오기도 했지만 다시 후퇴하면서 3.8선에서 전선이 고착되고 장기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쏘련정부는 1950년 10월 유엔에 조선전쟁에 관한 총회 결의안을 제출해 외국군대가 철수하자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3.8선에 전선이 고착된 1950년 12월 7일 중국의 주은래는 베이징 주재 쏘련 대사와 만나서 조선전쟁을 끝내는 것에 대한 조건을 론의합니다.
당시 중국의 모택동과 쏘련의 쓰딸린은 조선전쟁을 중지하기로 하고 이 문제를 유엔으로 끌고갑니다. 미국에서는 1951년 5월 18일 미국 상원의원인 존슨이 1951년 6월 25일에 조선에서 전쟁을 중지하고 모든 외국군대가 12월 1일까지 철수하자는 휴전, 즉 정전안을 발표합니다.
이 과정에서 쓰딸린은 미국과 정전협상을 시작하되 장소는 개성으로 하고 중국을 참가시킬 것을 지시합니다. 그리하여 1951년 6월 23일 유엔주재 쏘련 말리크 대표가 조선에서 휴전협상을 할 것으로 공식적으로 제기합니다.
그리하여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처음으로 6.25전쟁을 중지하기 위한 휴전협상이 미국과 북조선, 중국 사이에 진행됩니다. 이 협상에 남조선이 참가하지 않은 것은 남조선의 리승만 대통령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겠다면서 정전협상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1951년 7월부터 1952년과 1953년 7월까지 만 2년에 걸치는 오랜 기간동안 정전협상은 지루하게 계속됐습니다. 6.25전쟁은 북조선과 쏘련, 중국을 한편으로 하고 남조선과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 카나다, 뽀루뚜깔 등 15개 국가가 참가한 유엔군이 맞선 국제전쟁입니다.
특히 6.25전쟁은 동북아시아에서 강대국들 사이에 놓여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조선에서 벌어진 정쟁이여서 더 정전협상이 어려웠습니다. 전쟁 초기에 북조선은 부산지역만 내놓고 다 점령했다가 후퇴해서 거의 괴멸상태에 이르렀다가 중국군대의 참전으로 기사회생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951년부터 전선이 고착되고 끊임없는 소모전으로 북조선 전지역이 초토화되고 군대와 인민들이 죽어갔습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자 김일성은 전쟁을 중지하는 것에 적극 찬성했고 모택동과 스탈린에게 정전협정에 합의하자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결국 6.25전쟁이 끝나게 된 것은 1953년 3월 쓰딸린이 갑자기 사망하게 되면서 협상이 타결돼 7.27일에 정전협정이 조인됐던 것입니다. 이처럼 6.25전쟁이 휴전을 하는 정전 상태에 들어가는 과정에서도 주변 강대국의 리해관계가 최우선됐습니다.
따라서 북과 남의 분단과 대립의 근본적 원인인 사상과 리념의 차이, 제도와 정치의 차이가 없어지지 않는한 종전선언은 매우 위험합니다. 종전선언은 조선반도에서 완전한 비핵화가 실현되고 북과 남이 사상과 리념에서, 정치와 제도에서 합의된 목표를 가지게 됐을 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북과 남이 불신과 대립의 근본적인 원인들을 남겨둔채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새로운 대립이 발생하고 주변강대국의 리익에 희생양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종전선언은 북조선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인민을 위한 개혁개방의 전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청취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입력 : 2019-07-26 (조회 : 145)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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