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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방송

6.25전쟁 진실에 관한 특집 : 4회 러시아 정부가 공개한 한국전쟁 문서 (3)

방송일 : 2019-06-28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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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북과 남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지 69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6.25전쟁에 대해 북조선 당국은 전쟁이 일어난 그날부터 지금까지 남조선이 일으킨 북침전쟁이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조선개혁방송은 6.25전쟁 69주년을 맞으며 6.25전쟁의 진실에 관한 기록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오늘 네 번째 1994년 6월 2일 모스크바를 방문한 당시 남조선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한 6.25전쟁 관련 문서 중에서 정전협정에 대해 알아봅니다.
북조선에서는 6월 25일부터 7월 27일까지 반미투쟁월간으로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합니다. 그리고 7월 27일은 조국해방전쟁승리 기념일이라고 기념하고 있는데 이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김일성이 조국해방전쟁을 진두에서 지휘하여 승리에로 이끌었기 때문에 정전협정을 체결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정전협정이란 전쟁 당사자들이 전쟁의 끝을 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도중에 휴전, 즉 싸우지 않기로 한 협정입니다.
남조선에서는 휴전, 다시말해 전쟁 도중에 일시적으로 중지하고 쉰다는 뜻으로 휴전이라고 하는데 북조선은 정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6.25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 휴전, 다시말해 정전협정을 하자는 요구가 나온 것은 3년간의 전쟁에서 초기인 1950년부터입니다.
1950년 8월 말에 전선은 락동강 지역에서 고착되게 되는데 그 리유는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군이 본격적으로 참전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1994년 6월 2일 로씨야의 보리스 옐찐 대통령이 모스크바에서 남조선 김영삼 대통령에게 넘겨준 조선전쟁 문서에도 잘 나타나있습니다.
 
1950년 8월말 9월초에 모택동은 두차례에 걸쳐 북조선 대표를 만나고 조선전쟁에 대해 협의합니다. 오랫동안 최고 지휘관으로 싸워 중화인민공화국을 창건했던 모택동은 조선전쟁에 대해 많은 지적을 합니다.
모택동은 북조선이 쏘련의 붉은군대와 중국 인민해방군의 경험을 기초로 싸우지 않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모택동은 군사력을 분산시키지 않았고 적절한 시기에 시간을 놓쳤으며 락동강전선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고 일보의 전진을 하지못한 것도 지적했습니다.
특히 모택동은 군사지휘관으로서의 경험으로 앞으로 조선전쟁이 장기간에 걸친 어려운 싸움이 될 수 있다면서 대비하라고 지적합니다. 1950년 9월에 들어서면서 중국은 미국이 중국령토에까지 전쟁을 확전시키려고 한다며 우려를 모스크바에 보고합니다.
1950년 9월 15일 미군은 대규모 함대를 동원해 인천상륙작전을 벌려서 서울 이남의 북조선 군대를 고립시켜 전세를 완전히 역전시킵니다. 이에 따라 김일성은 9월 23일 락동강전선에 고착되어 있던 북조선 전체 군대에 퇴각명령을 내립니다.
1950년 8월에 들어서면서 미국과 쏘련은 유엔을 통해 조선전쟁에서 서로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쟁 상황이 악화되자 쏘련정부는 10월 1일 유엔대표부에 조선전쟁에 관한 유엔총회 결의안의 대안을 보냅니다.
첫째 쏘련정부가 보낸 유엔총회 결의안 대안에는 조선반도의 교전 당사자들은 즉각 적대행위를 중지한다. 둘째 미국 등 외국 정부는 즉시 자기나라 군대를 조선반도에서 철수해 조선민족이 스스로 문제해결을 하도록 한다.
이것이 조선전쟁의 중지에 관한 최초의 노력이였습니다. 쏘련정부의 이 대안에는 전쟁을 중지하고 유엔의 감시하에 북과 남에 선거를 해서 단일정부를 구성한다는 내용도 들어있었습니다.
1950년 12월 7일 주은래는 베이징 주재 로신 대사와 만나 유엔사무총장이 중국 대표에게 한국전쟁 종전조건에 대해 만났다고 알려줍니다. 그러면서 조선에서의 전쟁 종료에 대한 쏘련의 립장은 어떠한지를 물어봅니다.
스딸린은 조선전쟁을 끝내는 것에 대한 주은래의 질문에 대해 곧바로 답변하면서 중국이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조언을 줍니다. 이를 계기로 유엔을 중심으로 전쟁 당사자들과 참전국가들이 조선전쟁을 중지하는 것에 대한 론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됩니다.
1951년 5월 18일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인 존슨은 상원에서, “유엔군은 38도선 이남으로 철수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면서 전쟁 만 1년이 되는 1951년 6월 25일에 휴전하고 12월 1일까지 모든 외국군대가 철수하자는 휴전안을 발표합니다.
 
이 제안에 뒤이어 유엔의 쏘련 말리크 대표는 1951년 6월 23일 한국문제 해결을 위한 휴전을 정식으로 제기했습니다. 이 말리크 대표의 정식 제기가 있기 전인 1951년 6월 중순 쏘련의 그로미꼬 외무차관은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에게 조선반도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유엔과 미국에서 휴전에 대한 주장들이 나왔지만 유엔에서 정식으로 휴전협정을 제기한 것은 쏘련입니다. 1951년 6월 29일 김일성은 모택동에게 편지로 “미국 유나이티드 프레스에 의하면 쏘련 말리크 유엔 대사의 정전협정 발언 이후 미국 군부 내에서 휴전을 지지하는 여론히 형성되고 있다”면서 대응방안을 물어봅니다.
1951년 6월 30일 모택동은 쓰딸린에게 미국 리지웨이 장군이 김일성에게 원산항의 네덜란드 선박에서 휴전회담을 개최할 것을 제의해왔다고 보고합니다. 스딸린은 모택동의 보고에 대해 휴전협상을 시작하되 장소는 개성을 고수할 것과 북조선과 중국이 반드시 참가할 것을 지시합니다.
7월 1일 김일성은 휴전협상 대표단 구성에 대한 지침을 만들어 스딸린에게 보내면서 승인을 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김일성의 보고에 대해 스딸린은 휴전협상과 관련된 립장을 정리하기 위해 중국과 반드시 협의를 할 것을 지시합니다. 이를 토대로 7월 1일 휴전협상이 마침내 성사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처음으로 6.25전쟁을 중단하기 위한 휴전협상이 시작됩니다. 휴전협상에는 남쪽에서 미국이 그리고 북쪽에서는 북조선과 중국이 참가했는데 남조선은 리승만 대통령이 휴전협상을 거부하면서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만 2년에 걸쳐 휴전협상이 진행됐다 말았다를 반복하면서 전쟁은 계속되게 되고 그 과정에서 1953년 3월 쓰딸린이 사망합니다. 스딸린이 사망한 직후 북조선과 중국은 미국의 정전협정 요구조건을 대부분 수락하면서 1953년 7월 27일 마침내 정전협정이 조인됩니다.
1994년 6월 2일 쏘련을 계승한 로씨야의 보리스 옐찐 대통령이 남조선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한 조선전쟁 문서는 력사의 진실을 담고 있고 있습니다. 6.25전쟁을 승인하고 지원하고 조종했던 쏘련의 문서는 김일성이 주도한 남침이고 정전협정은 결코 승리한 협정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6.25전쟁 진실에 관한 특집을 마칩니다. 지금까지 김승철이였습니다.
입력 : 2019-06-28 (조회 : 133)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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