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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강영희씨가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방송일 : 2019-04-05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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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아유~ 어제 동네 마트에 들려 보았더니 봄나물이 벌써 지천이더라고요.
나물은 그냥 제가 아는 것이 세상 다 인줄 알고 살았는데 뭐, 요즘은 몸에도 좋고 약도 되는 이름도 모를 나물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떤 나물을 사 먹어야 할지, 헛갈리기도 합니다.
산에 들에 나는 풀, 짐승이 먹고 죽지 않는 풀은 무작정 많이 뜯어 먹어야만 살 수 있었던 북한 생각도 나고, 그래서 서둘러 소담한 돌나물이며 취, 참나물을 사다 새콤달콤하게 무쳐 먹어 보니 와, 봄이 제 입으로 다 들어온 느낌이었습니다.
나물 한 가지를 보아도 즐겁고 불행한 추억이 함께 스치는 행복한 봄밤입니다.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체신소를 찾으신 강영희씨는 북한을 떠날 때 본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한민국의 충청남도에 살고 있는 강영희입니다.
매일같이 축제가 열리고 즐거움 속에 더 즐길 거리를 찾고 맛있는 음식 속에 더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고 있는 풍요로운 세상에서 제가 살고 있습니다.
너무도 살기가 어렵고 비참하던 고향 생각을 하면 고향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그 곳에 살고 있을 혈육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가고 싶은 곳 또한 고향인 것 같습니다.
사시절 푸른 파도 일렁이고 흰 갈매기 춤추는 동해바닷가, 숲처럼 들어선 공장 건물들이 즐비한 동해 기슭이 제 고향입니다.
평온과 일상이 다 무너지고 가정이 파탄되어 천지로 헤어져야 했던 곳도 제  고향입니다.
저는 제가 떠날 때 이미 할머니가 되어버렸던 사랑하는 어머니를 그리며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저의 이 글이 우리 어머니에게 정말로 가 닿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그 동안 살아나 계시는지요?
어머니와 헤어진지도 많은 세월이 흘렀어요.
어머니,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한지 2년째 되던 해, 우리 집에도 많은 시련이 찾아왔지요.
한 생 총대로 당과 지도자를 받들다가 훈련도중에 사고로 허리를 다쳤던 우리 아버지는 그 후과로 감정제대를 받으셨고 이 후에는 약 한첩 써보지 못하시고 굶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뒤 동생들이 굶어죽고 두 언니는 너무 배가고파 살아보려고 중국으로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 언니가 중국에서 공안에 체포되어 북송되었는데 중국에서 교회를 알게 되고 하나님을 접했다는 이유가 온성보위부에서 밝혀지면서 보위부에서 맞아 죽지 않았나요?
어머니, 지금도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도 안 되는 죄 대문에 사지가 찢겨 죽은 둘째 언니의 시체를 붙잡고 피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짖겨 나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불효막심한어머니의 셋째 딸은 불쌍한 어머니를 두고 저 혼자 살겠다고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그렇게 떠난 탈북의 길이 대한민국으로까지 이어져  어머니, 지금 어머니 셋째 딸은  한국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뒤 돌아 보면 후회 뿐 이고 북한을 떠날 때 어머니에게 떠난다는 인사조차 제대로 못하고 떠난 것이 천 추 에 한 으로 남았습니다.
어머니,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없는 위험한 길을 떠나는데 어머니는 그 런 줄도 모르고 제가 장사를 떠나는 줄 알고 잘 갔다 오라고 다 굽어버린 허리에, 자식들 때문에 백발이 되어버린 머리로 저를 바래 주셨지요.
그 마지막 모습이 지금도 제 머릿속에 그 대로 남아 지금도 이 딸의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할 줄을 그 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어머니 곁을 떠날 때는 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다가 어머니랑 잘 살아야지, 그러고 떠났는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고향에 가지 못하고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어요.
엎어지면 코가 닿을 북한 땅이지만 분계선이 가로놓여 외국보다 더 먼 곳이 되어버린 북한을 생각하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세월의 연륜이 그대로 쌓여 주름이 밭고랑 같던 우리 어머니, 그 얼굴을 그려보며 이 딸은 밤마다 이렇게 웁니다. 가난과 시련으로 나이보다 먼저 휘어져버린 어머니의 새우같이 흰 등, 그 쇠약한 어머니를 도와 드리지 못하고 자식 된 도리조차 지킬 수 없었던 이 딸의 안타까움을 어디에다 하소연 하면 좋을까요?
어머니, 세월이 흘렀지만 저는 우리 막내 동생이 굶어죽던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며칠 동안 낟알구경조차 못한 동생이 쌀 밥 한 그릇만 먹어 보았으면 살 것 같다고 모기만한 소리로 애원했지요?
어머니, 원통하게 굶어죽은 막내 동생 생각을 하면 한국에서 매일 먹는 흰 쌀 밥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아요.
어머니, 제가 떠날 때, 굶어서 일어나 앉을 힘도 없던 우리 오빠는 살아나 있는지요? 제가 오빠에게 같이 탈북이라도 하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오빠는 자기는 이제 다 된 것 같다며, 이렇게 불행하게 우리 형제 다 헤어지지만 너라도 죽지 말고 꼭 살아남으라고 간절히 부탁했어요.
전 지금도 가끔은 오빠의 그 모습을 그려보는데 가슴이 갈기갈기 찢겨나가요. 그리고 제가 떠난 후에 우리 집의 비극도 어디까지 이어졌는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혹시 어머니는 두 조카 윤철이와 은실이 소식은 아시는지요? 오빠를 살리겠다고 집을 나간 올케가 2년이나 소식이 없을 때 제가 집을 떠났기 때문에 올케의 소식도 전 모릅니다.
그 조카들이 엄마를 찾으러 간다고 외가 집에 갔는데 그 애들 기다렸다가 같이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도 얼마나 후회되는지 모릅니다.
어머니, 온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고 굶어죽었어도 전 바보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우리처럼 사는 줄 알았어요.
한 날 한 시 해방이 되고 전쟁도 한 날 한 시 겪은 남과 북이지만 오늘은 이렇게 하늘과 땅 같은 전혀 다른 사회가 되었습니다.
해방이 된지 70년이 넘은 나라국민들이 아직도 배고픈 걱정을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나요? 그리고 고난의 행군, 이라는 악마가 수많은 주민을 굶어죽게 만든 세상에 정말 하나밖에 없는 나라가 북한입니다.
어머니, 한 민족이라고 한국정부는 우리에게 집도주고 일 할 능력이 없다고 달마다 생계비를 주어 저는 아무 걱정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이 좋은 나라에서 우리 가족이 다 함께 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는데...
그 행복한 장면을 저는 매일, 매 시간 상상해 봅니다.
어머니, 이제 저에게 남은 소원은 우리 어머니가 저를 만나는 날까지 부디 건강하게 잘 살아계셔 주시는 것뿐입니다.
세상 모진풍파 지금까지 이겨내신 것처럼 부디 건강하고 강인하게 살아 버텨 주시면 이제 나머지 효도는 이 셋째 딸이 다 할게요.
어머니, 부디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의 사랑하는 딸 영희 올림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전쟁을 겪은 것도 아닌데 강영희씨 가족 분들은 부모 형제, 모두가 굶어서, 병으로, 아니면 하나님을 믿었다고 맞아죽었고, 부모를 찾아 떠난 조카들과도 헤어졌습니다.
전쟁이 난 나라 사람들도 이웃국가로 망명을 하면 그래도 목숨은 부지 하던데...
저는 이게 이민위천, 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나라 북한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 더 믿겨지지 않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설마, 그 것도 사람이 사는 나라인데... 이런 말을 할 때면 저 역시 무슨 말로 이 상황을 설명해 주어야 할지 가슴만 답답합니다.
그래도 아직 어머님이 살아계시다니 천만다행, 이 지 싶은데요.
북한에 계시는 강 영희씨의 어머님께서 따님의 간절한 소원대로 부디 건강하게 잘 살아계셔 주시길 저도 간절히 바랍니다.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9-03-28 (조회 : 177)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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