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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파랑새 체신소] 마순희씨가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방송일 : 2017-05-05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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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5,6월이면 북한에서는 한창 농촌지원을 한다고 공장, 기업소, 대학생, 군인, 소학교 학생들까지 호미며 물통을 들고 부지깽이 마냥 뛰어야하는 바쁜 계절입니다. 밥숟가락을 들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농사를 지었어도 왜 그렇게 해마다 많은 사람이 굶어죽어야 했는지 북한에 살 때는 저도 미처 몰랐습니다.
대한민국 농촌에서는 얼마 안 되는 나이 드신 분들이 농사를 지어도 해마다 쌀이 남아 국가가 쌀을 보관 해주는 값이 오히려 벼를 사들인 값보다 더 들어 간다며  밥을 많이 먹으라고 야단입니다.
북한은 학생들에게까지 계급을 나누어 공부를 시키고 온 나라를 계급사회로 만들다 보니 북한사람들은 아무리 잘해도 어려서부터 각 자 갈 길이 따로 있었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지금 같은 무한경쟁사회에서 어른이 되면 쓸 사람과 못 쓸 사람을 미리 갈라놓고 보지도 못한 조상의 잘 못까지 까마득한 후세가 책임을 지고 억울하게 사는 곳 또한 북한이었죠.  그 생생한 증언자들이 오늘 이 땅에서 얼마나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그들은 아마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오늘 저녁 우리 파랑새 체신소를 찾으신 마순희씨도 그런 분들 중에 한 사람이셨습니다. 마순희씨는 지난5월15일 스승의 날을 맞으면서 북한에 계시는 존경하는 스승님께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스승과 제자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에서 살고 있고 제가 북한을 떠난 지도 이제는 10년이 넘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하게 잡혀가신 아빠 때문에 북한에서는 이미 나쁜 사람으로 이름 지어진 제 운명은 철저한 계급사회인 북한에서는 말 그대로 죽지 못해 살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계급사회에서도 그 것이 옳지 않는 처사임을 아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었고 정의로운 일에 몸을 내대는 이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던 인간은 사랑받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고 세상은 사랑받는 사람들의 능력과 기술로 무한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제가 가장 어려울 때 제게 손 내밀어 주시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신 정말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스승이 한 분 게십니다.
세월이 갈수록 더 고마운 분인 그 스승님께 제가 이렇게 편지로나마 고마움을 전하게 됨을 저는 다행으로 생각하며 부디 이 사연이 그 분께 전달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존경하는 김충길 선생님에게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보내지 못할 편지인줄 알면서도 이렇게 적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선생님 제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저 선생님이 그토록 사랑하시고 열심히 가르쳐주신 , 사춘기 소녀시절에 제 가슴에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셨던 선생님의 제자 마순희입니다.
제가 북한을 떠난 지도 오래되고 제인생도 이제는 손자손녀의 재롱을 보며 여생을 즐기는 그런 때가 되었습니다.
참 사랑하는 따님과 사모님께서도 다 부고하신지요?
이제 와서 가만히 돌이켜보면 제가 북한에서 11년을 넘게 공부했지만 그 많은 선생님들 중에 제 기억에 오늘까지 남아 진정한 스승이라고 기억되는 분은 김충길 선생님, 한 분 뿐인 것 같습니다.
그 많은 분들 중에는 아무 잘못도 없는 저에게 나쁜 별명을 붙여 고립시킨 선생님도 있었고 전교1등이 대학에 못 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일부러 성적을 조작해 두 과목 때문에 저를 우등생으로 만든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교육부분에서도 당의 계급노선이 철저히 지켜질 수밖에 없던 그 시절, 오직 선생님만이 교육자의 순수한 양심으로 우리를 편견 없이 가르치셨기에 저는 지금도 선생님을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 제가 사는 한국에는 해마다 5월이면 어버이 날, 어린이 날, 스승의 날이 있어 고마우신 스승, 어버이에게 선물이며 꽃다발을 들고 찾아갑니다.
김충길 선생님, 다정한 스승님의 이름을 오랜만에 불러보니 가슴이 뭉클하고 선생님과 함께 걷던 초가을 들판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생각납니다.
나라전체가 감옥 같은데도 북한은 10리 밖에만 가려해도 통행증이 있어야 했죠. 그래서 시골에서 읍내에 있는 중학교로 다니는 우리 7명의 여학생들도 꼼작 없이 통행증이 있어야 학교로 오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통근 생 대표로 제가 통행증을 가지고 다니다가 어느 대청소를 하는 날 제 실수로 그 통행증을 그만 잃어버린 적이 있었지요.
단체 여행증 분실 때문에 행정위원회2부로 선생님과 함께 오라는 연락을 받고 그 때 제가 얼마나 가슴을 조이며 두려웠던 지요. 저만 욕을 먹든지, 아니면 벌금만 물어도 괜찮을 텐데 담임선생님까지 데리고 오라고 하니 정말 난감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은 저의 작아지고 미안한 마음을 풀어주시려고 안 나오는 웃음도 웃으시고 가을하늘에 나는 흔한 잠자리, 코스모스를 가리키며 농담까지 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어제 런 듯 눈앞에 선합니다.
농촌에서 금방 시내중학교를 온데도 있었지만 억울하게 잡혀간 아빠 문제로 하루아침에 적대계급이 된 저는 항상 소심했고 세상 모든 것이 그저 두려웠습니다. 더군다나 손 탁이 세기로 이름난 선생님을 담임으로 만난 지도 얼마 안 되었기에 선생님과 함께 걷는 발  걸음이 가벼울 리 없고 마음역시 간 곳이 없었습니다.
움츠렸던 제 마음을 풀어 주시려고 오히려 저 때문에 가쳐 있던 학교 밖을 벗어나 가을 들길을 걸을 수 있게 되어 고맙다고 즐거운 표정을 보이시던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 길을 걸으면서 제 일과에 대하여 학교생활에 대하여 차근히 물어주시었고 그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천세봉의장편소설 “안개 흐르는 새 언덕”을 읽은 소감도 함께 나누지 않았나요.
물론 그 당시 그 소설이 반동소설로 회수가 되었지만 선생님은 책을 좋아하는 저의 심정을 함께 이해해주셨고 몰래 대화를 나누며 공감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구속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였던 통행증의 불편한 진실도 그 당시 선생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선생님, 68년 봄에 칠성리로 원족을 갔던 일이 생각나세요?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데 선생님께서 우리나라 여성들은 산에 갔다 절대로 빈 손으로 오지 않는다, 나뭇가지 하나, 꽃 한 송이라도 꺾어가지고 돌아왔다, 그러시면서 우리 조선여성들의 근면성을 가르치셨죠.
그 날, 선생님이 허락하신 그 10분 동안에 저희들은 산에서 집에 필요한 걸 가지고 갈 수 있었고 선생님 덕분에 어머니들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 후에도 저는 선생님의 말씀을 늘 제 인생의 좌우명으로 간직했고 지금도 평생 간직하고 이제는 다 자란 제 아이들에게도 이야기 해 줍니다.
우리 딸들은 선생님 이야기를 하면 북한에도 그렇게 훌륭한 교육자가 있냐고 묻곤 합니다.
선생님, 참, 세월이 유수 같죠? 그게 벌서 49년 전 이야기니 말이죠. 제가 선생님과 함께 한 기간은 3년 밖에 안 되지만 저는 저와 함께한 가을 들길에서처럼 그렇게 마음 놓고 큰 소리로 웃으시는 모습을 별로 본 기억이 없습니다.
항상 지나칠 정도로 원칙적이고 매사에 과묵하고 책임성 높으시고 그래서 늘 선생님이 맡은 학급은 1등을 놓친 적이 없지만 그 속에 숨은 깊은 사연을 제가 알게 된 것은 그 로부터 썩 후의 일이였어요. 
처가의 출신성분이 안 좋은 문제로 늘 살얼음을 걷는 마음으로 남보다 더 노력하면서 사신 선생님, 그러시다 끝내 교육자 대열에서 밀려나 출판물보급소로 전근을 하신 우리 선생님, 제가 그 모든 사연을 알았을 때는 순종밖에 모르던 제 마음에서도 막 반감이 일었습니다.
선생님 같은 교육자를 내 보내면 북한에서 정말 교육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냐고 말이죠.
선생님이 애써 키워주신 제자들의 머리에도 이제는 흰 서리가 내렸습니다.
제가 북한에 그냥 살았더라면 선생님과 만나 참, 옛말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김충길 선생님, 선생님은 영원한 제 스승이시고 제 일생에 하나밖에 없는 참교육자이십니다. 올 해 스승의 날을 맞으며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 너무 그립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사랑해 주신 몇 곱으로 저희들은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스승의 날을 맞는 대한민국에서 선생님께 삼가 감사의 꽃을 드립니다.
선생님의 영원한 제자 마순희가 서울에서 올립니다.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누구에게나 철없고 꿈 많던 학생시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을 북한에서 마냥 행복하게만 보낼 수 없었던 마순희씨였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하루아침에 반동의 자식이 되어 버렸던 그 녀에게는 남들보다 좋은 머리, 근면하고 착한 성품, 누구보다 아름다운 미모까지 모든 것이 다 있었지만 철저한 계급사회, 북한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노력은 거기 까지였습니다.
세상을 알수록 부조리한 그 정권에 반감이 생기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아픔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던 진실한 스승이 있어 잠시나마 행복하고 즐거웠던 중학시절을 그녀는 49년이 지난 지금도 그토록 그리워하고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의 아픈 마음을 이해해주시던 그 고마운 스승님에게 고마웠다는 인사, 감사의 꽃 한 송이라도 드리고 싶은 제자의 마음인데 지금은 저 분계선이 저렇게 가로 막고 있습니다. 이 밤, 마순희씨의 영원한 스승이신 김충길 선생님께 제자의 따뜻하고 고마운 마음이 꼭 전해지기를 저도 간절히 바라며 그럼 오늘 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7-05-03 (조회 : 381)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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