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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주선미씨가 그리운 언니에게

방송일 : 2018-11-16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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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요즘 대한민국주민들은 한창 김장준비로 바쁜데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김장김치를 할 때면 늘 김장전투를 치르어야 했던 북한 생각이 납니다.
살아가는 모든 일상이 전투가 아닌 것이 없는 곳이긴 했어도 가을김장은 북한주민들의 반 년 부식물을 마련하는 가장 중대한 전투였죠.
저도 턱 없이 부족한 배추, 무를 시장에서 비산 값을 주고 더 사거나 가을이 끝난 채소밭을 헤매며 주어온 시래기들로라도 어떻게 하든 한 독이라도 더 채워 넣으려고 손끝이 시린 줄도 몰랐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제 철을 놓치면 먹어 볼 수 없던 배추 무, 온갖 채소들이 눈 내리는 겨울에도 여름에도 어디가나 지천이니 김장철이라고 해도 제철에 김장을 하는 일부 분 들을 제외하고는 김치 담글 걱정조차 하지 않더라고요. 아이고, 게다가 굳이 땅을 파고 김칫독을 묻지 않아도 땅속보다 더 맛난 김치를 사시장철 먹을 수 있는 김치 냉장고가 집집마다 있으니 대한민국의 김치걱정은 이젠 영원히 끝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마 가을의 낙엽이 소리 없이 쌓여가며 향수를 부르는 저녁, 우리 파랑새 체신소를 찾으신 주선미씨는 북한에 사시는 보고 싶은 언니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일찍이 부모를 잃은 사람은 빨리 철이 든다, 는 말이 있습니다. 그 건 아마 어려운 세상을 어린 나이에 먼저 알게 되다보니 남보다 일찌기 어른이 된다는 말이기도 할 겁니다.
저는 어린 시절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언니를 엄마라 믿고 따랐습니다. 언니도 째지게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동생인 저를 남들보다 더 훌륭하게 내 세워주시려고 너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 때에는 잘 몰랐는데 저도 한 해 두해 나이를 먹고 세상풍파를 겪고 보니 어머니의 빈 자리를 채워주시려고 그렇게 애쓰시던 우리 언니가 새삼 고맙고 너무나 그립습니다.
아침저녁 찬바람이 불어오는 추운 날씨에 북녘 내 고향에서 아직도 험한 고생을 하며 열심히 살고 계실 언니를 그리며 이렇게 한국사는 동생이 편지를 씁니다. 제 가 사는 따뜻한 남쪽나라 이야기가 우리 언니에게 꼭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보고 싶은 언니에게
그립고 그리운 나의 언니, 그 동안 잘 지내고 있나요?
마 가을이라고 해도 한국은 그다지 춥지 않고 아직도 단풍구경 다니는 사람들도 있어요.
언니가 매일 속 태우며 기다렸을 무정한 동생이 이제야 펜을 들고 언니에게 소식을 전합니다.
언니, 북방의 겨울을 유난히 춥고 긴데... 올 겨울은 울 언니가 어떻게 지낼까, 벌서부터 걱정입니다. 우리고향은 워낙 북한에서도 북쪽지방이라 겨울엔 칼바람이 살을 에이는 곳이잖아요.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고 그 고향에는 남다른 추억이 있어요.
특히 언니가 계시는 내 고향은 어린 시절 부모를 일찍 잃은 가슴 아픈 상처도 있고 행복했고 즐거웠던 추억보다 아픈 추억이 더 많은 곳입니다. 늘 배고픔과 추위에 떨어야 했던 저의 남다른 어린 시절은 언니와 늘 함께였어요.
맨 날, 발가락이 밖으로 나오는 양말을 신고 맛있는 것, 배부르게 먹어 본 기억이 별로 없었지만 방이 식을세라 늘  아랫목에 펴 놓은 이불 밑에 발이라도 넣으면 세상에, 그렇게 따뜻한 곳이 더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전깃불도 없어 날만 어두우면 잠 자는 것 밖에 더 다른 일을 할 수 없던 언니네 집, 낡은 이불 한 장 깔려있고 그 속에 발을 넣고 늘 다음 끼니는 무엇을 먹을까, 먹을 걱정만 하던 언니네 집 아랫목이 이 밤 따라 그리워 져요.
그리운 나의 언니, 이제 한 해도 다 기울어 갑니다. 얼마 안 있으면 또 한 해가 지나고 그러면 설날이 오겠지요?
제가 언니를 그리며 이렇게 갈라져 산지도 벌서 6년이나 되었어요.
그러면 울 언니 나이도 60대 중반이 되었을 텐데... 많이 늙고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있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돌이켜 보면 일찍이 부모를 잃은 저에게 언니는 언니이기 전에 엄마와 같은 존재였어요.
언니 네도 매일 죽을 먹으면서 한 푼 두 푼 모아두었던 소중한 돈을 먼 길 떠나는 동생의 손에 꼭 쥐어주며 이제 몇 달 후에 꼭 만나자고 당부하던 우리 언니, 근데 그 이별이 6년이 넘어가고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영원한 생  이별이 될 줄은 언니, 나도 몰랐어요.
그리운 나의 언니, 나는 그렇게 언니와 헤어져 장사를 한다고 떠났다가 우연찮게 좋은 친구들을 만나 이렇게 한국으로까지 오게 되었어요.
어쩌면 내 인생의 행운일지도 몰라요.
언니, 전 지금 당당한 대한민국국민이 되어 북한에서 살 때 우리가 미처 생각해 보지도 못한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누리며 잘 살고 있어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언니에게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지만 이제라도 진정으로 사람중심인 자유 민주국가에서 살게 된 것은 정말로 다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언니, 우리는 여태껏, 우물 안의 개구리 모양으로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살았어요. 세상 밖으로 나와 보니 인간 생지옥이라고 하던 남조선은 세계10위권을 조금 넘는 부유하고 발전된 나라더라고요.
북한처럼 아직도 먹을 걱정, 입을 걱정을 하는 사람은 전혀 없고 누구나 꿈을 가지고 살 고 하고 싶은 일을 선택 할 수 있는 자유로운 나라예요.
언니, 저는 여기 와서 그렇게 힘들고 아팠던 결핵도 , 신장염도 말끔히 고치고 누구보다 건강하게 살고 있어요.
북한에서 그냥 살았더라면 아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고 이렇게 언니에게 편지를 쓸 수도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복에 겨운 행복한 삶이 가까운 남쪽에 있다는 것을 북한 사람들이 아직도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어요.
그리운 나의 언니, 나는 언니의 사랑 속에 자라고 북한을 떠날 때까지 언니 신세만 지고 살았어요. 이제는 제가 그 고마움을 언니에게 돌려드려야 하는데 돌려드릴 방법이 없네요.
제 주변에 부모님이나 자식, 형제들이 다 함께 온 분들이 많은데 그 들을 볼 때마다 언니 생각이 간절해지면서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어요.
추위와 굶주린 몸으로 누더기 같은 이불을 덮고 시커먼 연기가 나는 등잔불 밑에 맥없이 누워 있던 생각, 앞집, 옆집 사람들이 굶어죽던 일... 내 마음 속의 북한은 온통 상처 뿐 입니다.
그리운 언니, 나는 이쁜 옷을 보면 언니 생각하면서 사게 되고 사 놓고는 보낼 수 없는 현실에 기다리다 지쳐갑니다. 언니또래 분들이 이쁜 옷 입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울 언니는 얼마나 초라하게 늙어갈까,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고 쓰려요.
언니, 우리 형제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 날은 과연 언제 올까요?  
그리운 나의 언니, 언니를 그리워하며 잠 못 든 그 많은 사연을 이 한 장의 종이에 다 적을 수 있을까요. 나는 언니 곁을 떠나 이 곳에 살지만 마음은 어느 한시도 언니 곁을 떠나 본적이 없고 고향을 그려보지 않은 날이 없어요.
아마 언니 마음도 제 마음과 같을 겁니다.
울 언니와 손잡고 하얗게 바닷물이 배인 옷을 입고 바닷가에서 미역을 줍고 골뱅이를 줍던 일, 언 밥 한 덩어리를 나누어 먹으며 장사를 다니던 일들이 그 때는 힘들고 아프기만 했는데 이제는 나에게 아름답고 슬픈 추억이 되었네요. 슬픈 추억이었지만 언니와 함께 다시 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운 울 언니, 내 고향 사람들, 고향의 맑은 공기, 비릿한 바다내음, 고향의 흙 한줌이 그렇게도 소중하고 그리운지를 나는 타향에서 살면서 알게 되었어요. 언제 다시 만나 오늘의 이 그리움을 옛말처럼 할까요? 가끔은 고향으로 영원히 못 가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무서운 생각도 들어요.
전쟁인 난 것도 아닌데 우리가 이렇게 이산가족이 될 줄 언니, 나도 몰랐어요.
그리운 우리 언니, 언니는 지금보다 더 어려운 때도 잘 버텨왔잖아요. 앞으로 몇 배 더 어려워져도 잘 이겨내시고 오래 오래 살아서 우리 꼭 만나요.
언니, 이름만 불러보아도 눈물이 나는 울 언니, 나는 우리 자매 꼭 살아서 다시 만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할게요.. 안녕히 계세요.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서울에서 깜장 눈 이가 .....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참으로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자매였는데 뜻밖의 이별을 하고 서로 안타까이 부르며 찾는 이산가족이 되어버렸네요. 저는 언니가 없어 언니가 있는 분들이 늘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자매 사이의 정은 유다른 것 같습니다. 고향은 비록 해진 양말을 신고 늘 배고팠던 기억밖에 없지만 그 아픈 추억마저 향수가 되어 그리움으로 남은 주선미씨입니다.
우리 한 민족은 역사적으로 특별히 이산가족이 많은 민족입니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 자란 또 다른 세대가 이렇게 새로운 이산가족이 되어가는 가슴 이 아픈 현실, 이제는 전 세계가 한 반도의 통일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혹, 헤어진 가족들을 다시 만나지 못 할까, 흐르는 세월마저 무섭다는 주선미씨의 언니에 대한 남다른 그리움이 북한사시는 언니 분께 잘 전해 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주선미씨의 언니 분께서도 꼭 힘내시길 바라면서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8-11-16 (조회 : 122)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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