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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 붕괴 특집: 3회 독일 통일 과정에서 동서독 지도자의 역할

방송일 : 2018-11-14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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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과정에서 동서독 지도자의 역할
북조선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민의 안녕과 나라의 발전을 위한 조선개혁방송입니다. 11월 9일은 동부독일과 서부독일을 갈라놓았던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날입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 29주년을 맞으며 마련한 특집 마지막시간에는 독일통일 과정에서 동서독 지도자들의 역할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1989년 여름까지만 해도 동독과 서독 모두 베를린장벽의 붕괴, 독일의 통일이 가까워졌다는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양측 정부도 관련 전문가들도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분단이후부터 동서독 교류에 지속적인 노력을 추진해왔던 서독 정부 또한 통일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쏘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변화와 개혁개방이 매우 적극적으로 진행되던 1980년대 말에도 이 기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뽈스까(폴란드)와 웽그리아(헝가리)에서는 적극적으로 개혁개방정책이 진행됐고 쏘련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뻬레스뜨로이까가 진행중이였습니다. 쏘련공산당 총비서 미하일 고르바쵸브는 쏘련의 재건을 주장하면서 개혁과 개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때문에 누구도 1989년 여름까지만 해도 동독이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변화를 하면 했지, 서독과의 통일이 이루어 질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동독의 공산당 총비서 에리에 호네커나 모드로우 총리는 동서독의 적극적인 통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1989년 여름 옆나라 웽그리아가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을 개방하면서 독일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동독사람들이 다른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서독 대사관을 찾아가 망명신청을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동서독 지도자들은 이때까지도 이 사건이 곧 다가올 베를린 장벽 붕괴, 독일 통일의 시작을 알릴 줄은 몰랐습니다. 1989년 여름부터 동독에서는 여행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시위가 매일 같이 일어나면서 분위기가 고조됐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 11월 9일 동베를린 공산당 총서기 권터 샤보스키가 논의없이 여행자유화를 즉각적으로 발표하면서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당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후 동독과 서독 사람들은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두 나라가 통일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엄연하게 동독과 서독 각각의 정부가 있었고 각각의 통치가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동독의 모드로우 총리는 베를린장벽 붕괴 후 서독에 통일방안을 제시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 후인 1989년 11월 17일 모드로우 총리는 인민회의에서 성명을 통해 서독과 ‘조약공동체’ 창설을 제의했습니다. 그리고 12월에는 서독의 콜 총리와의 드레스덴 회담에서 이를 다시 제기하면서 통일에 관해서 계속 협의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해인 1990년 1월 30일 동독총리는 소련 공산당총비서 고르바쵸프와의 회담에서 국가연합 방식의 통일을 추진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다음달인 2월 1일에는 동베를린 기자회견에서 이른바 “하나의 조국, 독일을 위한 4단계 통일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동독총리의 이런 제안들은 진정한 동서독 통일을 위한 것이 아닌 서독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려는 술책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통일을 열망하는  동서독 인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척 하면서 4단계라는 과정을 통해 서독의 지원으로 공산당 정부를 계속 유지하려 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서독의 지도자들은 역사적으로 동부독일의 지도자들과는 전혀 다른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1969년 10월 총리가 된 빌리 브란트는 독일 통일을 위해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는 신동방정책을 추진하고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하는 등 독일통일을 위한 일련의 화해와 협력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 동서독 관계를 정상화하고 교류협력을 증진하여 분단에 따른 인간적 고통 완화와 민족의 이질화 방지에 기여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독일 통일에서 가장 큰 기여를 한 지도자는 서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책임을 지고 분할된 독일이 통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시대적 상황이었지만, 그는 1982년부터 1998년까지 가장 오랫동안 총리를 역임하며 베를린 장벽 붕괴, 독일통일을 이루어낸 지도자였습니다. 헬무트 콜 총리는 1989년 여행의 자유, 민주화의 시위를 향한 동독시민들의 시위가 본격화되자 통일의 기회가 온 것을 알고 뛰어난 정치적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동독에서 평화적인 혁명의 성공을 위하여 웽그리아와 비밀 협상을 통해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개방이 가능토록 했습니다. 웽그리아가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을 개방하자 동부독일 사람들이 같은 사회주의인 웽그리아를 거쳐 서독 대사관으로  들어가 탈출했습니다.
헬무트 콜 총리는 동부독일의 대량탈출이 일어나면서 동서독, 일부 지식인들이 통일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통일정책을 밀고 나갔습니다. 그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지 한달도 안된 1989년 11월 28일 “독일과 유럽분단 극복을 10개항 계획”을 발표하여 통일의지를 국제사회에 명확히 알렸습니다.
동시에 미국과 협상을 통해 베를린 장벽 개방을 통일로 련결시켜 나가겠다는 것을 공식화 화는 한편 국제적 통일환경을 추진했습니다. 헬무트 콜 총리는 적극적인 지도자 외교로 제2차세계대전 전승국인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의 동의를 얻는데 성공했습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 통일이 되기 전까지 10개월 동안 헬무트 콜 총리는 부시 미국 대통령과 8번, 미테랑 프랑스 대통력과는 10번, 고프바쵸프 소련 대통령과는 4번응 만나 이들 국가들이 독일 통일을 지지하도록 했습니다.
만약 헬무트 콜 총리가 1989년의 동독의 변화움직임을 그대로 방치했다면 독일은 아직도 동서독으로 나누어져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세계의 모든 력사가 그러하듯 한 나라의 운명은 그 나라, 그 시대를 알고 지혜와 결단을 발휘하는 훌륭한 지도자가 있을 경우에 강해지고 발전했습니다.
2018년은 북조선의 미래와 관련해 가장 중대한 기회를 만들어내는 한 해입니다. 올해 김정은 위원장은 성공한 지도자, 통일의 결정적 환경을 만들어낸 지도자로 평가 받음과 동시에 국제사회속에서 다향한 위기들을 끊임없이 겪고 있습니다.
북조선의 미래인 청취자 여러분들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의 역사, 1년만에 통일을  이룩한 독일, 통일을 이루어낸 지도자들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고, 북조선의 미래를 그려내고 또 만들어내야 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베를린장벽붕괴 특집방송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청취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입력 : 2018-11-14 (조회 : 123)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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