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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방송

<김정일 생일특집> 3회 김정일은 왜 김정은을 후계자로 만들었는가?

방송일 : 2017-02-16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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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은 왜 김정은을 후계자로 만들었는가?
 
북조선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민의 안녕과 나라의 발전을 위한 조선개혁방송입니다.
조선개혁방송은 북조선을 절망과 파멸로 이끈 독재자 김정일 생일을 계기로 김정일의 진실에 대한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시간으로 김정일은 왜 김정은을 후계자로 만들었는가에 대해 알아봅니다
 
2017년 2월 13일 오전 9시경에 김정일의 맏아들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의 국제비행장에서 북조선 여성요원들에게 암살됐습니다. 이는 김정은이 형 김정남을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는 유일한 경쟁자라고 생각하며 눈엣가시처럼 여겼기 때문입니다.
력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김정은 대신 김정남이 후계자가 되었다면 지금의 북조선은 어느 정도 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김정남은 고난의 행군이 끝난 개혁개방을 하겠다고 주장하다가 아버지 김정일과 크게 싸우고 눈밖에 나서 해외를 떠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이 왜 셋째 아들 김정은을 후계자로 만들었는지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김정일은 단 한 순간도, 절대로 인민을 위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만든 내막을 알게 되면 김정일은 정말로 인민의 지도자가 아닌, 인민의 주인으로 군림하려 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왜 북조선은 세계 제일의 폐쇄국가가 되었고 북조선인민은 왜 지금처럼 살아야 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김정은이 왜 자신의 고모부도 죽이고 배다른 맏형도 죽였는지, 김정은 통치가 왜 그토록 무자비한지도 모두 드러날 것입니다.
 
김정일의 아들은 두 번째 부인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1971년 낳은 김정남과 네 번째 부인 고영희 사이에서 낳은 김정철, 김정은이 있습니다. 김정일은 1960년대말 성혜림과 살림을 차리고 김정남을 낳은 상태에서 1970년대 중반에 피바다가극단 출신의 배우 고영희와 사귀게 됩니다.
김정남의 생일은 1971년이고 고영희의 맏아들 김정철은 1981년인데 이때, 즉 1970년대 중반부터 김정일 부인들 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김정남이 8살 되던 해에 김정일은 어린 맏아들 김정남을 자신의 중앙당 집무실에 데려가 자기 의자에 앉히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다음에 네가 앉을 자리다. 저 자리에 앉아서 나를 불러보아라”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당시 김정일이 북조선을 김정일 개인의 나라로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인민들이 배우는 혁명의 수령론과 완전히 배치됩니다.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수령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서 북조선인민들이 어려서부터 죽을때까지 배웁니다. 그 리유는 수령이 인민을 위해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 이끌어주기 때문에 수령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것인데 김정일은 자기 아들에게 그 반대로 가르친 것입니다.
 
“이 다음에 네가 앉을 자리다” 이 말은 내 아들만이 북조선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즉 공식적으로는 혁명의 수령, 지도자는 오로지 김정일 아들만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인민들은 혁명력사와 사상을 매일매일 배우면서 김정일이 인민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을 믿고 충성하는데, 김정일은 인민의 충성심을 발판삼아 그저 자기와 자기 혈육만을 챙겼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김정일이 얼마나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없는지 확인됩니다.
 
 북조선에서 김정일 부인들과 그 자식들의 후계자 권력을 위한 투쟁은 이렇게 1980년대부터 시작됐습니다.
고영희는 일본 째포출신으로 자본주의, 일본 특유의 사교적인 성격으로 인해 김정일의 마음에 들었고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내세우려 했습니다. 1980년대에 김정일의 둘째부인 성혜림이 신경병을 앓는다고 모스크바로 쫒겨나고 김정남이 류학 보내진 것은 바로 이런 리유에서였습니다.

1991년 김정남이 북조선으로 돌아왔지만 그때는 고영희와 그의 아들 김정철과 김정은이 김정일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었습니다. 김정은이 원산을 대대적으로 꾸리는 것은 그가 째포출신에 첩의 자식으로 김일성 주석의 눈을 피해 원산초대소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당당하지 못하게 성장한 김정철과 김정은은 항상 첩의 자식, 옛날말로는 서자로 설움 속에 살며 기회를 노려왔습니다. 특히 둘째 김정은은 경쟁심과 욕망이 큰 성격이었는데 김정일을 만나려 온 장성들까지 발로 차면서 제 멋대로 하던 못된 어린이였습니다.
김정은은 어려서부터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고 자기가 모든 것을 해야 하며 자신이 선물도 가장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성격이었습니다. 특히 어린시절에 형 김정철은 큰대장, 김정은은 작은대장이라고 불리웠는데 이마저도 싫어하면서 걸핏하면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김정일은 어려서 어머니가 죽고 이붓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면서 정신적으로 가난하고 남들에게 따돌림을 받아 말을 더듬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눈치를 보면서 살아왔던 김정일은 후처 김성애의 아들 김평일이 후계자로 정해지려고 할 때 그를 물리치고 아버지의 눈에 들어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당시 타자수였던 김성애와 바람이 났기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아버지를 미워했습니다. 어렵게 김평일을 물리치고 후계자의 자리를 차지한 김정일은 자신의 자리를 물려받을 자식도 마음이 연약하거나 독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아들로 후계자가 되고 1980년대부터 김일성의 권력을 완전히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거치는 것이 없었습니다. 북조선을 김정일 개인의 나라로 만들고 옛날 왕보다 더 부귀영화를 누리던 김정일은 자신의 권력을 당연히 자기 아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럴려면 배다른 형제와 치열한 싸움을 벌여서 후계자 자리를 차지한 자신의 경험으로 보아, 자기 아들 중에서 자신과 가장 비슷한 자식을 원했습니다. 이에 야망이 크고 신경질적이면서 경쟁심이 강하고 독한 김정은이 마음에 들었던 것입니다.
인민들은 혁명사상이나 로작을 통해 혁명의 계승론에 대해 배우고 끊임없이 계속 혁명을 공부했지만 김정일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무조건 자신의 왕국은 자신의 아들이 가지되 가장 강하고 독하고, 무자비한 아들이어야만 자신의 자리를 계속 지켜나갈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2001년까지 김정일의 요리사를 했던 일본인 후지모도 겐지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김정일이 김정은을 선택한 리유를 밝혔습니다. 김정일은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은 마음이 여자 같아서 안되겠다고 여러차례 후지모토 겐지에게 이야기 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김정일은 자신의 자리를 이을 후계자는 자신처럼 절대권력을 위해서라면 인민들의 목숨을 파리목숨처럼 여길 자식을 선택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북조선이 처한 엄혹하고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은 김정일이 절대권력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순간 결정된 것입니다. 그러니 김정일은 죽어서도 인민들을 죽음과 고통으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김정일이야말로 북조선 인민이 두고두고 잊지말아야 할 불구대천의 원쑤입니다. 이상으로 김정일 생일 특집을 마칩니다.
입력 : 2017-02-16 (조회 : 348)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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