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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조선로동당 창건기념일 특집 : 2회 조선로동당은 창건이 아니라 합당이다

방송일 : 2018-10-10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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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인민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조선개혁방송은 조선로동당 창건 기념일을   맞으며 조선로동당의 근본을 알아보는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오늘 두 번째 시간에는 조선로동당은 조선공산당에서 시작되었다는 력사적 진실을 알아봅니다.
북조선에서 조선로동당을 김일성, 김정일의 당, 김정은의 당으로 만든 것은 조선로동당이 김일성이 창건했다는 주장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정당이 창건한 사람 개인의 정당이 되어서는 안되지만 독재자의 경우에는 자신이 직접 창건했다는 논리를 내세워 권리주장을 할 수도 있습니다.
 조선로동당은 처음부터 로동당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 시간에 언급한 것처럼 조선로동당의 창건일인 1945년 10월 10일은 조선공산당 북조선 5도 당 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가 시작된 날입니다.
10일부터 13일까지 4일간에 걸친 북조선 5도 당 책임자 및 열성자대회에서는 조선공산당 총비서 박헌영의 승인 아래 북조선 분국이 창설됐습니다.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의 책임비서 겸 제1비서 김용범, 제2비서에 오기섭과 무정 그리고 집행위원으로 김일성, 안길, 박정애가 선출됐습니다.
이 같은 조선공산당의 조직구조는 쏘련군정 사령부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쏘련군정 사령부는 이미 9월 초에 쓰딸린으로부터 북조선에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하고 북조선만의 공산당을 설립하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 창설 다음날인 10월 14일 평양시 공설운동장에서는 7만여명의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조선해방 축하집회가 열렸습니다. 이 행사에서 쏘련군정의 니꼴라이 레베데트 소장과 평안남도 인민정치위원회 위원장 조만식은  김일성을 “김일성 장군”으로 평양시민들에게 소개합니다.
9월 19일 김성주라는 이름으로 해방된 조선에 귀국한 김일성은 10월 14일부터 ‘김일성 장군’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져 공개적인 정치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원래 김일성은 평양에 공산당 중앙조직을 만들고 자신이 책임비서가 되려고 했지만 국내파 공산당 지도자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닥쳤습니다.
1945년 12월 17일 열린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에서 김일성은 책임비서로 선출됩니다. 김일성이 북조선 공산당 책임비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쓰딸린의 지시를 받는 쏘련군정의 지원 때문입니다.
12월의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에서 책임비서가 된 김일성은 당의 명칭에서 ‘분국’이라는 이름을 떼버립니다. 이 때부터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은 북조선중앙조직위원회가 되어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 시점부터 북조선지역 공산당운동을 이끌었던 박헌영은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합니다.
한편 1945년 12월 미국과 쏘련, 영국은 모스크바에서 열린 회의에서 조선을 신탁통치, 즉 대리통치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여기에서 립장이 엇갈립니다.
박헌영은 처음에는 신탁통치가 자주적인 독립국가인 조선에 부당하다고 반대했고, 반대로 김일성은 쏘련의 지시대로 처음부터 찬성했습니다.
1946년 4월, 김일성은 조선공산당 북조선 중앙조직위원회 제7차 회의에서 당의 명칭을 “북조선 공산당”으로 정하고 남조선 공산당에서 독립합니다. 이를 계기로 조선공산당 총비서인 박헌영과 북조선 공산당 지도자 김일성 사이의 갈등과 대립은 더욱 격화됩니다.
1946년에 들어서면서 박헌영은 남조선에서 고립되고 탄압을 받으면서 쏘련군정, 평양의 재정지원을 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박헌영은 어떻게 해서든지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로서의 지위와 역할을 지켜내려고 노력하다가 1946년 5월 쓰딸린에게 편지를 써보냅니다.
그 편지를 계기로 1946년 7월 하순 쓰딸린은 김일성과 박헌영을 모스크바로 불러 만나보고 김일성을 북조선 지도자로 최종적으로 확정합니다. 1920년대 초부터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며 조선공산당을 창건하고 활동해온 노련한 박헌영 대신 33살의 젊은 김일성을 선택한것입니다.
스탈린은 김일성에게는 “소련군정의 협력을 받아 북조선의 쏘베트화 정책을 조기에 실현시키도록 투쟁하라”고 지시했고, 박헌영에게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분투하는 그대의 혁명 투쟁을 높이 평가한다”라며 격려했다.
결국 김일성을 더욱 높이 평가해준 것이였습니다. 스딸린은 김일성을 북조선 지도자로 정하고 동시에 다른 지시를 내렸는데 그 지시의 내용은 북조선을 통치할 유일하고 강력한 정치정당을 만드는 것이였습니다.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에서 북조선 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로, 다시 북조선 공산당으로 이름을 바꾼 김일성은 다음 단계로 합당을 추진하게 됩니다. 1945년 8.15 해방 이후 북조선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정치 정당이 만들어졌는데 1945년 말에 그 숫자는 20개를 넘을 정도였습니다.
1946년 7월 조선신민당은 쏘련군정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북조선공산당에 합당을 제의합니다. 조선신민당을 창건한 사람은 김두봉으로 1960년대에 종파로 몰려 숙청된 사람인데 1889년생으로 3.1운동에 참가했던 애국자입니다.
김두봉은 1942년 7월 조선독립동맹의 주석이 되었는데 8.15 해방 후 1946년 2월에 조선독립동맹을 토대로 신민당을 창건합니다. 조선신민당은 중국에서 활동했던 공산주의자들이 핵심이였으며 훗날 종파투쟁때 연안파로 불리던 사람들로 부위원장은 역시 종파로 몰린 최창익이였습니다.
1946년 8월 28일부터 8월 31일까지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이 합당하여 북조선로동당을 창립하는 창립대회가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조선로동당이 되지는 않은 상태였는데 그 리유는 남조선에는 아직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조선 조선공산당도 인민당과 신민당이 합당해서 남조선로동당으로 변하는데 여기에도 쏘련군정의 막후에서 조종이 있었습니다. 조선인민당을 창건한 려운형은 1946년 8월 조선공산당과 남조선신민당에 합당을 제안하게 됩니다.
이렇게 돼서 1946년 11월 23일 남조선에서도 조선인민당과 남조선신민당, 조선공산당이 합당을 해서 남조선로동당, 즉 남로당이 탄생하게 됩니다. 남조선 로동당이 북조선 로동당에 흡수된 것은 1949년 6월 24일인데 이 때부터 북과 남의 로동당에는 북조선 로동당, 남조선 로동당이라는 이름이 사라집니다.
1949년 6월 30일 북과 남의 조선공산당이 북조선로동당과 남조선로동당으로 다시 유일의 조선로동당으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와 같은 당이 되었습니다. 초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에는 김일성, 부위원장에 박헌영, 허가이, 비서는 이승엽, 김상룡이 선출됐습니다.
이처럼 지금의 조선로동당은 김일성이 창건한 것이 아니라 박헌영이 창건한 조선공산당, 그리고 조선신민당이 합쳐져 북조선 로동당이 된것이며, 남조선 로동당과 합쳐서 조선로동당이 되는 아주 복잡한 과정을 거친 역사의 산물인것입니다.
이상으로 당창건 기념 특집을 마칩니다. 청취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입력 : 2018-10-10 (조회 : 60)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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