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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조선로동당 창건기념일 특집 : 조선로동당은 조선공산당에서 시작됐다

방송일 : 2018-10-09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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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인민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조선개혁방송은 조선로동당 창건 기념일을   맞으며 조선로동당의 근본을 알아보는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오늘 첫 시간에는 조선로동당은 조선공산당에서 시작되였다는 력사적 진실을 알아봅니다.
2016년 수정된 조선로동당 규약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 당이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조선로동당의 창건자이시고 영원한 수령이시다’.
하지만 조선로동당 규약에서 밝힌 김일성이 조선로동당을 창건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조선로동당은 김일성이 창건한 것이 아니라 조선공산당에서 분리되여 이름을 바꾸고 나중에 다른 정당들과 합당한 당입니다.
조선로동당의 전 정당인 조선공산당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창건된 것은 1925년 4월 17일입니다. 1921년 1월 고려공산당 대회가 상해에서 열리고 1924년에 조선공산당 지부가 베이징에서 설립되었고 이듬해인 1925년에 서울에서 정식으로 창립되었습니다.
이후 조선공산당은 내부의 분란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일제의 탄압으로 몇 번이나 강제해산을 당해왔습니다. 그러다가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면서 박헌영이 서울에서 조선공산당 재건 활동에 나섭니다.
1945년 8.15해방 직후 남북조선 전 령토에서는 독립운동을 벌렸던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공산주의 애국자들이 일제히 정부수립 활동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인민들이 해방의 기쁨, 새 조국 건설의 꿈을 펼치는 활동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북조선에는 쏘련이, 남쪽에는 미국이 들어왔습니다.
평양에는 쏘련군이 들어와 군정사령부를 세우고 군정통치를 시작했고 서울에는 미국이 들어와 군정통치를 시작했습니다. 평양의 쏘련군정사령부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활동가들을 내세워 정부수립을 시도했고 서울에서는 민족주의 활동가들을 내세웠습니다.
평양에서는 유명한 민족주의 지도자 조만식이 8월 16일 조선건국 준비위원회 평안남도를 조직했고 평안남도 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됐습니다. 1945년 8월 16일 당시 김일성은 쏘련 극동지역의 우스리스크 제88극동려단에서 머물고 있었고 9월 19일에야 원산에 도착합니다.
반면에 남조선에서는 1945년 8월 15일 지방에 숨어있던 박헌영이 서울에 나타나 조선공산당 재건을 준비합니다. 전라남도 광주의 방직공장에서 김성삼이라는 가명으로 일하던 박헌영은 8월 15일 일본이 패망을 선포하자 바로 서울로 올라와 공산당 재건준비에 나섭니다.
박헌영은 8월 16일 최원택, 이승엽 등과 만나 1928년에 해체된 조선공산당 재건에 관해서 토론했는데 이들은 재건파 조선공산당이라고 합니다. 조선공산당 창립 초기부터 활동했던 박헌영의 인기는 8.15 해방이 되자마자 남조선과 북조선 모두에서 대단했습니다.
서울 각지에 붙은 벽보에는 “근로대중의 위대한 지도자 박헌영 선생은 어서 나와 우리를 지도해달라”, “박헌영 동지여 어서 출현하라, 우리는 박동지를 기다린다.”등의 구호들이 나붙었습니다.
기자출신으로 조선공산주의 운동력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활동도 많이 했던 박헌영은 사상과 리론에서도 대단한 전문가였습니다. 8월 20일 박헌영은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라는 론문을 발표하고 조선공산당 창건 준비위원회를 만들고 위원장으로 선출됐습니다.
그러나 박헌영 중심의 조선공산당을 반대했던 서울지역의 토착 공산주의자들은 이영을 수반으로 하는 또다른 조선공산당을 창건합니다. 이들은 세력싸움에서 져서 10월 초에 박헌영의 재건파 조선공산당에 흡수되고고 북조선 5개 도에는 박헌영의 조선공산당 도당이 결성되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박헌영이 공산당 세력을 강화하고 있을 때 북조선에서도 오기섭, 김용범 등의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이 맹렬한 활동을 벌렸습니다. 서울에서 박헌영이 가장 먼저 조선공산당을 창건했기 때문에 평양과 원산, 신의주 등에는 “박헌영 만세”라는 구호와 삐라가 많이 붙었습니다.
평양의 소련 군정청은 북조선을 토대로 하는 공산당을 내세우고 싶었지만 평양의 공산당 세력은 서울보다 약했습니다. 당시 쏘련군정을 담당했던 쏘련 제25집단군 사령부는 “공산당원이 북조선 지도자가 되어야 하지만 이미 조선공산당 지도자 박헌영은 서울에 있고 북조선에는 믿을만한 공산당원이 없다”라고 보고했을 정도입니다.
그리하여 소련군정은 9월초에 모스크바에서 쓰딸린을 만나고 9월 22일에야 평양에 도착한 김일성을 조선공산당에 입당시켰습니다. 김일성이 박헌영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10월 8일 처음으로 박헌영을 만나게 되는데 이때 김일성은 조선공산당이 북조선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쏘련군정 사령관인 로마넨꼬도 평양에 당중앙을 평양에 두자고 했지만 박헌영은 조선공산당 중앙은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쏘련군정까지 평양을 주장하자 박헌영은 한발 물러서서 평양에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을 설치하자고 주장합니다.
10월 8일 밤새워 토론한 끝에 쏘련군정사령부와 박헌영, 김일성은 마침내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을 세우기로 결정합니다. 이틀 뒤인 10월 10일부터 13일까지 평양에서 이북 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를 진행하고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 창설을 선포합니다.
조선로동당 창건 날짜인 10월 10일은 정확하게는 조선공산당 북부지역 5도 책임자 및 열성자대회가 열린 날입니다. 이때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의 총비서는 김일성이 아닌 김용범이였고 제2비서에 오기섭과 무정 그리고 김일성, 안길, 박정애는 집행위원으로 선출됐습니다.
김일성이 초대 북조선 분국의 총비서인 김용범을 밀어내고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 총비서가 된 것은 한달이 지난 11월이었습니다. 김일성이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 초대 총비서가 되지 못한 것은 조선공산당을 위해 아무런 역할도 없고 성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쏘련군정의 정치담당이였던 레베데프 소장도 김일성을 내세우려고 했지만 경력도 없을뿐더러 리론수준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국내 공산주의자들을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서울에 있던 조선공산당 중앙이 평양의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설립을 당적으로 승인하고 통보한 것은 10월 24일입니다.
이후 북조선 분국은 의도적으로 서울의 조선공산당 중앙의 지시를 받지 않고 북조선 중앙국이라는 명칭으로 독립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김일성이 창건했다는 조선로동당 창건의 진실입니다.
다음시간에는 조선로동당은 창당이 아닌 합당이였다는데 대해 알아봅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의 경덕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입력 : 2018-10-08 (조회 : 116)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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