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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김은영씨가 사랑하는 시어머니 아키코 상에게

방송일 : 2018-09-28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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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초가을 들판에서 오곡이 익어가고 청초한 계곡에 단풍이 곱게 물들어갑니다. 오늘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몸으로 느낄 수 있음에 기쁜 마음이지만 감사와 기쁨이 커 갈 때면 저는 미안하고 고마운 분들이 항상 먼저 생각납니다.
물론 낳아주신 부모님은 당연한 거겠지만 사람들에게는 살면서 하늘이 맺어준 인연도 있고 살면서 덤으로 얻은 축복받은 자식들, 우연이던 필연이던 사랑과 믿음으로 맺어진 수 많은 인연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이 세상 다 하는 날까지 감사하고 고마운 사람도 있고 제발 다시는 안 보았으면 하는 악연도 있죠.
그러나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 다른 사람의 사랑이나 도움 없이 스스로  영웅이 된 사람은 없다고 해요. 그래서 어떤 인연이든 인연은 하나같이 소중하고 잊을 수 없는 것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체신소를 찾으신 김은영씨는 그렇게 소중하게 맺은 인연 때문에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걸어오신 분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사랑은 눈물의 씨앗, 이라고들 합니다. 김은영씨의 눈물의 씨앗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싹을 틔웠고 어떻게 자랐는지 그럼 김은영씨의 편지 사연을 들어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운명의 얄 굳은 장난인지 저는 남들보다 평범하지 않은 유년기를 보냈고 곡절 많은 청춘시절을 보낸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남들보다 욕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멍청해서도 더군다나 아닙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평양의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미래가 촉망되던 좋은 직업을 가졌던 저는 누가 보아도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 될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알게 되면서부터 제 운명은 정상궤도가 아닌 길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유달리 좋은 머리를 가졌던 재일동포청년과의 사랑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운명의 나락으로 저를 인도했고 불행하게도 그 과정에 만났던 제 시어머니 유키코상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계시는지 알 길이 전혀 없습니다.
아름답고 손재간이 뛰어나셨던 한 일본 여인과 시어머니와 며느리라, 는 이름으로 만났지만 저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고 북한 그 어디엔가 살고 계실 그 분을 마음 속 으로만 그리며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디 하나님께서 그 분에게도 은혜를 베푸시길, 그래서 며느리와 시어머니도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 글을 씁니다.
사랑하는 아키코상, 시어머니에게 드립니다.
사랑하는 아키코상! 제가 당신과 헤어진지도 10년도 넘었어요.
열다섯 어린나이에 북한 평양에서 진행되는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행사장에서 당신은 재일 조선인예술단 방문단 성원으로 저는 조선소년단 축하단 성원으로 만났습니다.
수많은 외국예술인들 중에 김일성을 칭송하는 피아노 연주로 사람들을 감동시킨 일본여성이었던 아키코상이 먼 훗날, 제 시어머니가 될 줄은 그 때엔 꿈에도 몰랐죠.
이미 그 당시 북한의 핵 물리학연구가로 들어 와 계시던 남편, 그리고 그 후에 김일성대학을 견학하러왔다가 핵물리학 연구가로 남게 된 아들, 그들과의 만남을 위해 북한으로 오게 된 당신의 불행한 운명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북한에 대해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던 당신은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사랑한 죄로 너무나 일찍이 많은 고생과 후회, 참담한 슬픔을 맛보게 되셨죠.
지금 생각해 보면 아직도 많은 뭇 사내들의 눈을 끌기에 충분한 아름다운 미인이셨던 당신이 핵실험에 참여한 남편을 너무 일찍이 잃고 하나 남은 아들마저 핵물리 연구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늘 격리된 시설에서 고독한 삶을 사셨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살았다는 것을 평양도 어머니고향인 도쿄도 그 때나 지금도 기억조차 하지 않지만 외진 산기슭에서 피아노를 치시던 당신의 아름다운 손은 갈퀴가 되어 손수농사를 지으시며 사셨지요.
지금은 세상이 다 아는 곳이 되어버렸지만 그 당시에는 호랑이도 정들기 어려운 북방의 그 외진 곳에서 연구사라는 누구나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에 몸을 던진 당신의 아들은 당신의 남편처럼 소리 없이 몸을 파고드는 방사능 피해자로 이름도 없이 죽어 가고 있었죠. 
사랑하는 아키코상! 외진 곳에선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들 하지만 사람이 그렇게도 그리울 수가 없었던 그 험한 산속에서 어머니 역시 영문도 이유도 없이 감시의 눈길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저 역시 당신의 아들을 너무나 진심으로 사랑한 탓에 보증이 완벽한 수많은 아름다운 유혹과 미래를 다 버리고 심심산골로 갔지만 그 당시에는 오히려 그 길을 가로막는 저의 친정식구들이 더 야속했어요.
많은 간부 집 자제들이 혼인을 하려했고 아름다운 미래를 약속했지만 당신의 아드님께로 향하는 저의 순정을 막을 수 없었고 그렇게 저는 감히 평양을 떠났고 그 뒤의 앞날은 조금도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 당시 어머니를 만나러 두메산골로 갔을 때 어머니는 이미 평양의 화려한 무대에서 피아노를 치시던 아름다운 일본 여성 아키코가 아니었고 그저 세월이 남긴 주름지고 까만 얼굴의 산골 여인이었습니다.
아, 그 당시 어머니가 일본에서 어깨너머로 배워두신 솜씨로 손수 돗자리를 만들어 주셨지요? 자료래야 나무껍질이 전부인 심산 속에서 어머니가 저희 신혼 방에 손수 짜서 갈아주셨던 돗자리, 푸른 다다미는 세상 어디에도 비길데 없는 따듯하고 포근한 잠 자리었어요.
전 어머니가 사랑을 기울여 몸소 만들어 주셨던 너무나 쫀쫀하고 푸른빛이 반짝이던 그 돗자리가 지금도 가끔은 그립습니다.
사랑하는 아키코상! 맡은 일에 열성인 당신 아들이 직장 일에만 너무 마음 쓴 다시며 혼자 있을 제 걱정 해주시면서 늘 제 편이 되어주시던 어머니.
물리학자로 한생을 북한핵물리학연구에 종사하다가 먼저 가신 시아버지. 젊은 아내를 고향으로 데려다 주지 못한 채 눈도 감지 못하고 떠나간 남편과 그리고 그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던 사랑하는 외아들. 늘 북한정부와 연구기지의 감시 하에서 집에도 마음대로 오가지 못하는 아들, 그 아드님에 대한 측은지심을 한 번도 내색치 않으시고 오히려 며느리만 걱정하시던 당신이었습니다.
그 후 4차 일본 방문단으로 일본 고향으로 가게 되셨다고 그리도 좋아하시더니 끝내 그 꿈마저 말도 안 되는 북한의 의도로 이룰 수 없었지요.
산골 생활의 어려움 앞에 제가 먼저 항복하고 고향 평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방사선피폭으로 살이 썩고 피부가 벗겨지는 몸서리치는 병으로 평양 병원에서 아드님을 다시 만났지만 저의 진심어린 성의와 현대의학도 아드님을 끝내 살려내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아키코상! 그렇게 저도 떠나고 아들마저 가버린 그 무서운 산골에 외로운 어머니 홀로 두고 떠난 이 불효막심하고 괘씸한 며느리를 어머니는 용서하지 않으실 줄 압니다. 
끝내 저는 그 정권이 용서가 되지 않아 북한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아키코상! 놀라지 마세요. 저는 한국에 온 후 일본과 전화연락이 되어 어머니의 쌍둥이 언니 유키코 이모님을 만났습니다. 이모님은 90대의 나이가 무색하게 정정하셨고 저에게 20대에 헤어진 동생 아키코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 주셨어요.
일본에 계신 이모님은 남조선 경주가 고향인 시아버님의 식구들의 사진을 차곡차곡 둘 춰 보시는 것이 일과이고 낙이라고 하셨어요. 저는 일본에 계신 언니에게 동생의 사진을 매일처럼 꺼내 보시던 북한동생 아키코 이야기를, 부산에 사신다는 시아주버니와 미남이신시동생이 일본에 계실 때 보내 오셨다는 결혼사진도 누가 가져갈세라 이불 솜 속에 고이고이 감춰 두시고 이웃이 안볼 때 가만가만 꺼내 보시는 것이 낙이셨던  북한동생 아키코 이야기를....밤  새도록 들려 드렸습니다.
또, 전기 불 신세도 못 지고 화전민처럼 사시는 어머니 이야기와 시어머니 아키코상이 손수 떠서 신혼 방에 깔아 주셨던 푸른 다다미 이야기도 해 드렸는데 유리코 이모님은 동생이 가엾어서 많이도 슬퍼하셨습니다. 
지금도 바람 부는 쓸쓸한 산간벽지 하늘아래서 50년 세월 반세기를 절망 속에 보내시고 계실 어머니 아키코상! 어머니를 홀로 두고 떠나와 한국에서 살면서 저는 이제야 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년세월 고향을 떠나 보니 어머니가 얼마나 고향이 그리워했을지 부모형제가 있는 도쿄에 얼마나 가고 싶어 했을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그 야속한 세월과 인권의 불모지 북한을 생각하면 진정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어머니 아키코상에게 진심으로 죄송함을 전합니다. 오래 오래 사셔서 우리 꼭 다시 만나요. 그리고 부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어머니 그립습니다.
당신의 못된 며느리 눈물쌔미 올림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참, 많은 분들이 5년 세월 파랑새체신소를 다녀갔지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쓴 편지는 그리 흔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랑, 이라는 말은 대단한 능력을 가졌죠. 우리가 하는 말 중에 사랑에 눈이 멀다, 콩 깎지가 씌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음, 사랑에 불타는 청춘 남녀들에게는 안 되는 것이 없고 통하지 않는 것 또한 없거든요.
사랑이 불타던 청춘시절, 전도가 보장되는 평양의 화이트계층이었던 김은영씨 의 눈에도 그 당시에는 부모님의 만류나 다른 훌륭한 짝들이 통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가족이 되고 시어머니가 되어 어쩌면 같은 운명의 길을 걷게 된 일본여성 아키코상에 대한 이야기는 편지를 전해 드리는 저의 마음까지 아프게 합니다. 아마도 이 것은 역사가 기억해야 할 일, 역사가 증명해야 하는 무수히 많은 북한의 비행 중 극히 일부 이야기일 겁니다.
만약에 아키코상이 아직 북한에 살아계신다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며느님이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신다는 걸 아셨음 좋겠고 부디 며느님을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살아 계셔주기 만을 저도 간절히 바랍니다.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8-09-28 (조회 : 168)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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