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후원안내

자유게시판

Home > RADIO >편지와 사연 > 파랑새 체신소

파랑새 체신소

황연주씨가 사랑하는 아들과 손자에게

방송일 : 2018-09-21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0:00:00

 

<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제가 얼마 전 문경새재를 넘어 보았습니다. 그 옛날, 과거시험 보러 영남의 선비들이 넘었다던 문경새재는 3개의 트래킹 코스가 잘 만들어져 있어 요즘은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등산코스로 그저 그만이었습니다.
저는 아침잠이 많아 조금 늦게 떠난 탓에 두 번째 코스까지만 가 보았지만 뼈가 시리도록 차가운 계곡의 샘물 맛도 보고 역사적으로 이름난 왕들의 사적도 둘러보며 기분 좋은 등산을 했습니다. 문경, 하면 오늘 날은 오미자가 트랜드가 되었지만 전 새재 입구에 한 개의 고을을 그 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드라마 세트장이 넘 인상 깊었습니다.
나는 새도 날아서 넘기 어려웠다는 문경 새재는 벼슬길에 오른 선비들에게는 이름 난 고개였지만 왜적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했던 임진왜란의 아픈 추억도 있는 곳이었습니다. 아무튼 다음에는 이화령을 넘는 세 번째 코스도 꼭 넘어 볼 생각입니다.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 체신소를 찾으신 황연주씨는 얼음과자 하나 사 달라며 떼쓰던 어린 아들이 이제는 다 자라 어른이 되고 장가를 갔지만 갈 수 없는 안타가운 사연이 있다시며 그리운 아들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에 온지도 많은 세월이 흘렀고 북한을 떠나 중국에서 방황하던 세월까지 합치면 20년 도 훨씬 넘는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강산이 두 번도 더 바뀐 긴 세월, 갈 수 없는 고향에 두고 온 아들은 엄마 없이도 억세게 자라 어른이 되고 이제는 장가도 갔습니다. 얼 마 전에는 아들이 손자를 낳았는데 인편으로 손자 사진까지 받아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제 모습은 십년 전이나 이십년 전이나 그 냥 그 모습 같은데 코 흘리며 마당에서 뛰어놀던 아들이 자란 모습을 보면 참, 세월이 많이도 흘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매일 보고 싶고 안아보고 싶은 손자의 얼굴을 떠 올리며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의 아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이 편지가 아들에게 가 닿을 수 있다면. 제 마음이 그들에게 전해 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고 부디 엄마의 소원이 아들에게 전해지기를 저는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랍니다.
통일의 그 날을 그리며 사랑하는 아들과 손자에게
내 아들, 내 손자응진아, 잘 있었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새끼들 엄마는 너희들 모습을 그리며 오늘도 이렇게 편지로나마 문안을 할 수 없구나.
아빠를 닮아 잘 생긴 내 아들이었지. 그런데 이제는 손자마저 너무나 훌륭하게 낳아주어 엄마는 그저 고맙고 감사 할 분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푹푹 지던 여름이 저 만치 가고 아침저녁으로 제 법 가을 내 음이 실려 오는 가을이 성큼 다가 왔구나.
야속한 세월은 간다는 말도 없이 빨리도 흘러가는 것 같구나.
고사리 같은 손을 내 밀며 장사를 떠나는 내 앞을 막아서며 엄마, 얼음과자 하나만 사줘요. 하던 내 아들이 이제는 다 자라 어른이 되어 장가까지 갔다니 나는 정말 믿겨지지가 않는구나.
아들아, 험악한 세월 속에 죽지 않고 살아남아 준 것만 해도 엄마는 눈물 나게 고맙다. 그렇게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엄마의 눈에는 다 꿰진 신을 신고 코 흘리며 뛰어다니던 10살 어린 아들 모습밖에 안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내 아들, 내 손자야, 금년 여름은 사람도 쓰러지게 만드는 살인적인 폭염으로 얼마나 더웠니? 사랑하는 내 아들, 내 손자가 그 긴 여름 더위를 견디노라 아, 얼마나 어려웠겠니?
엄마가 북한을 떠나던 때와는 북한도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더라만 무더위 속에 에어컨도 없이 어떻게 보냈을 너희들의 고된 모습만 눈에 삼삼하다.
엄마가 갈 수만 있다면 한 달음에 달려가 보겠지만 갈 수도 없고 더군다나 무엇을 보내줄 수조차 없으니 안타까울 뿐 이다.
생각 같아선 한 달음에 달려가 복덩이 같은 내 손자 볼도 비벼주고 매일 안아주고 싶은데 사진으로 보내 온 손자 사진만 매일 닳아빠지도록 만지고 들여다보는 내 마음을 네가 알 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내 아들, 내 손자야, 먹을 것이 풍족하고 입을 것이 넘치는 이 곳에서 사는 엄마가 어느 하루인들 네 생각을 잊은 적이 있었겠니?
엄마가 올 땐 그래도 아빠라도 있어 마음이 놓였는데 아빠마저 일찍이 세상을 떠났으니 부모의 사랑보다 힘들고 고달픈 세상풍파를 먼저 알게 된 내 아들이이구나.
그렇게 자라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그들을 먹여 살리노라 애를 태우고 있을 아들, 얼마나 고생이 많겠니. 어렵게 컸지만 잘 자라 장가도 가고 애 아빠가 된 네 모습을 네 아버지가 살아서 보신다면 얼마나 좋아 하시겠니.
아마 손자를 두 손에 떠받들고 땅에 발이 닿을세라 귀하게 여겼을 거야.
그런 아빠도 없고 엄마도 이렇게 멀리에 살고 있으니 얼마나 엄마, 아빠에게 원망이 많겠니.
엄마는 내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 죄 지은 마음을 매일 속죄하는 마음으로 산다.
어마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내 며느리는 얼마나 착하게 생겼을까, 보고 싶은 내 아들, 손자의 모습을 매일 눈을 감고 마음 속 으로만 그려 본단다.
사랑하는 내 아들, 내 손자야, 엄마는 한도 많고 시련도 많은 그 험난한 세월을 북한에 묻어두고 이렇게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 시도 너희들을 잊은 적이 없어.
그리고 이 자유롭고 행복한 대한민국에서의 풍요로운 삶을 너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 없이 슬프고 한 편으로는 미안하기 그지없다.
사랑하는 아들아,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어려운 살림에 가장 노릇을 하노라 네가 얼마나 어려울지를 엄마는 다 알고 있다.
어디 아픈 곳이 있으면 큰 소리 한 번 쳐 엄마에게 전해주렴.
엄마는 이렇게 먼 곳에 살고 있어도 내 아들이 어디를 얼마나 아파하는지, 얼마나 힘들지를 다 알고 있고 매일 듣고 있어.
사랑하는 내 아들, 내 손자야, 며칠 있으면 추석이구나. 네 아빠는 엄마가 북한을 떠난 후 세상을 떠났기에 마지막 모습도 보지 못 했고 세상을 떠난 이 후에도 제사상 한 번 차려 드린 적이 없어 추석이 오면 매 번 미안하기 그지  없다.
그래도 엄마 대신 네가 아빠의 산소를 돌보고 아들 노릇을 잘 하고 있어 그 나마 다행이지 싶기도 하다.
사랑하는 아들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엄마의 마음까지 합쳐 올 해 추석에도 아버지 산소를 네게 부탁하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통일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산 사람의 심정만은 아닌 것 같구나. 아마 저승에 계신 너의 아버지도 우리 가족이 다시 만날 통일의 그 날을 간절히 바라고 계시지 않을까.
아들아, 엄마와 함께 있는 네 누나 걱정은 하지 말아라.
네 누나는 엄마 곁에서 아들의 마음까지 합쳐 엄마의 힘든 일도 도와주고 있단다. 그리고 대학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어.
사는 것이 어려워 늘 생활고에 찌들었던 네 누나는 대학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공부를 하는데 이제 1년만 더 다니면 대학을 졸업한다.
너도 누나와 같이 왔더라면 누나처럼 대학도 다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늘 너의 빈자리가 아쉽구나.
보고 싶고 사랑하는 내 손자야. 내가 너의 할머니란다. 언제면 너를 꼭 안고 마음껏 웃을 수 있을까, 그 날은 언제일까.
그리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랑하는 며늘아, 부족한 것 많은 내 아들과 행복하게 잘 살아 주어 너무 고맙다. 또 예쁜 우리 손자를 낳아주어 정말 고맙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부디 앓지 말고 둘이서 서로 아껴주고 우리 아들을 더 많이 사랑해 주기 바란다. 오늘은 아쉬운 펜을 여기서 놓는다.
잘 있어라
내 아들, 내 손자응진아, 우리 건강하게 잘 있어야 한다. 꼭 다시 만나자. 안녕히.
-서울에서 엄마가-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잠깐 장사를 다녀온다며 아들의 손에 얼음과자를 사주고 떠난 길이 20년이 되도록 다시 갈 수 없는 길이 되어버렸다는 황연주씨의 이야기.
제가 중학교시절, 해방 후 고무신장사를 떠났다가 아들과 헤어졌다는 분이 그 아들이 자라 할아버지가 되어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때는 설마, 저것이 내 이야기가 될 거라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별의 아픔이 대를 이어 계속되고 있으니 이 아픔이 과연 언제가면 끝이 날까요?
얼음과자 하나가 세상 행복의 전부였던 철없던 아들이 다 자라 장가를 가고 손자가 태어났어도 할머니가 손자의 얼굴도 볼 수 없는 이 현실, 한 반도의 분단의 아픔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더군다나 세상을 떠난 남편의 묘소에 추석이 와도 술 한 잔 올릴 수 없는 황연주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요? 북한사시는 황연주씨의 아드님께서 이 번 추석에는 엄마의 이런 마음을 아버지에게 꼭 전해드리길 바라면서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8-09-19 (조회 : 192)  |  북한개혁방송
Copyright ⓒ 북한개혁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