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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파랑새 체신소] 정성길씨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친구에게

방송일 : 2017-04-21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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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참 많은 친구와 동료, 스승, 이웃들을 만납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별다른 추억 없이 헤어진 사람도 있고 때로는 혈육보다 더 진한 추억을 가슴에 남긴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평범한 일상가운데 한번쯤은 뒤를 돌아보면 가슴에 짠하게 남는 그런 사람이 물론 있겠죠.
아무리 바쁜 일상이고 아무리 숨 가쁘게 사는 우리 생활이지만 가끔은 그런 친구덕분에 그래도 웃음도 있고 잠시나마 그 시절로 돌아갈 수도 있거든요.
조금씩 내리는 봄비에 더 풍성해진 꽃들, 가족들과 함께 떠난 상춘객들로 붐비는 저녁거리를 바라보는 제 마음에도 저 꽃 속을 함께 걸었던 잊지 못할 사람이 떠오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봄에 피어나는 꽃보다 시커먼 아지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 연록색의 잎이 더 아름답습니다.
봄은 설레임의 게절이라 그런지 어찌됐든 그냥 까닭 없이 즐거운 것 같아요.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체신소를 찾으신 정성길씨도 꽃피는 봄날, 문득 떠오르는 고향의 친구 생각이 나 그 분과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더듬어 편지를 스셨다고 합니다. 그럼 오늘은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북한을 떠난지 5년이 되어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에서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고 부럼 없는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솔직한 말로 저도 북한을 떠나 대한민국으로 오기 전까지 세상 밖의 일을 전혀 모르고 북한정권에 진심으로 충성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북한 밖을 벗어나서 세상을 둘러보고 나서는 제가 한 생 얼마나 값없이 속혀 살았는지를 알게 되었고 또, 그렇게 산 제 삶이 너무 아깝고 허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온전한 저를 알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하고 다행스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현재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저처럼 속혀 살고 있을 거라는 것을 생각하면 참 답답하고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제가 살던 고향에는 저와 함께 오랜 세월을 함께한 잊을 수 없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오늘 문득 그 친구 생각이 떠올라 이렇게 두서없이 펜을 잡았습니다.
오랜 우정을 간직한 고향의 친구가 저의 이 편지를 꼭 받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친구에게
진영이, 나 성길 일세.
그 동안 잘 있었는지?
내가 자네와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고향을 떠난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5년이나 되었네. 참 세월이 유수같이 흘러갔어.
나는 그렇게 말 한마디 할 수 없이 고향을 떠나 자유 대한민국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지만 한시도 진영이 자네 생각을 잊은 적이 없어.
자네와 내가 고향인 갑산 땅에서 함께 딩굴며 팔씨름을 하던 어린 시절이 어제 같아. 우리는 정말 짜개바지 친구 사이었지.
그런데 서로가 가정을 이룬 후로는 생활고에 쪼들려 자식 먹여 살리느라 별로 거래를 잘 못하고 살았지.
그렇지만 마음은 늘 어린 시절 서로가 아무런 비밀 없이 어울려 뛰놀던 고향을 잊은 적 없고, 더군다나 고향을 떠 올리면 진영이 자네 생각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어.
그럭저럭 애들이 장성하고 어느덧 우리 둘 다 연료보장을 받고 은퇴를 했고 그 무렵 북한에 들이닥친 고난의 행군은 우리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어.
자네와 나 사이에는 이 밤이 다 가도록 해도 끝이 없을 수많은 사연들이 있지만 그 많은 사연 가운데 가장 어렵게 살던 그 시절의 추억이 나는 제일 잊혀 지지 않아.
자네가 식구들 먹여 살리겠다고 비탈진 산에 뙈기밭을 일구고 아득바득 애를 쓰던 어느 날, 내가 자네를 찾아갔던 적이 있지?  기억이 나나?
그날 자네가 하도 간청하기에 내가 돼지고기 2Kg을 사가지고 자네가 일군 뙈기밭 움막으로 갔었지. 그리고 그 움막에서 자네와 둘이 술도 마시며 하룻밤을 보내지 않았나.
아마 그 때는 해가 거의 넘어가는 황혼이 깃들 무렵이었지. 자네가 뙈기밭을 일구고 잠을 자면서 그 밭을 지키느라 지어놓은 그 움막이 오늘밤은 왜 이렇게 그리운지 모르겠구만.
나는 그 날 자네 손발이 다 닳도록 일구어놓은 자네의 창조물에 깜짝 놀랐어.
돌이 많은 밭에서 주어낸 돌로 정성껏 쌓아올린 돌각 담, 돌각담사이로 뻗어간 호박 숲에서 한창 피어나던 노란 호박꽃들, 움막 바로 옆에 주렁진 도마도, 달콤한 참외가 주렁진 참외밭, 어느 하나 그저 스쳐 지나칠 수 없는 자네의 피나는 노동의 창조물들을 나는 무심히 바라볼 수가 없었어.
진영이, 그날 밤, 자네 마누라가 끓여준 반찬에 술을 마시며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야기, 맑스주의에 대해서가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 눈을 감으니 그 광경이 영화의 화면처럼 흘러가는 것 같아.
그 날 잘 정리된 자네의 움막과 뙈기밭을 바라보면서 나는 다니엘띄포가 쓴 “로빈손 크르소”의 다락집이 생각났어. 로빈손의 다락집과 자네의 움막집이 비슷했거든...
진영이, 자네와 나는 정말 오랜 세월을 함께한 둘도 없는 친구이지만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을 한국에 와서야 알게 되었어.
그 많은 추억과 즐겁고 괴롭던 모든 일을 뒤로하고 지금 나는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자네는 아직도 지옥 같은 북한에서 살고 있네그려... 그렇게 서로 생사조차 모르고 산 세월이 어느덧 5년이나 되었네.
참, 내가 사는 대한민국이야기 좀 들어보겠나. 북한사람들은 남조선이라고 부르는 한국에 와서 내 인생에는 즐거운 일들이 많아졌어. 내 인생이 통째로 바뀐 그 많은 사연들을 다 말하자면 이 밤이 모자라니까 오늘은 내가 자유로운 왕래에 대한 이야기 한 가지만 하려고 하네.
다음에 편지를 할 대는 그 다음 이야기, 즉 교육, 문화, 보건, 철학...하나씩 차례로 남과 북의 다른 점을 알려주기로 하지.
남조선은 제한구역이 없어. 북한처럼 여행증명서라는 것은 더군다나 없고. 그리고 수도 서울은 물론 미국이나 유럽, 아프리카 어느 나라도 비자 없이 아무 때나 놀러 다닐 수 있거든. 나는 한국으로 들어 올 때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그 때 내 심정이 어땠는지 아는가. 북한에서 살 때 나는 내 평생에 비행기를 타 볼 거라는 생각을 꿈에도 못했어. 근데 그 꿈이 현실로 이루어졌으니 내가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한국에서 내 인생 후반이 시작되었고 그 때부터 거의 해마다 일본이며 제주도 해외에 나갈 때마다 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있어.
자그마한 수첩 하나면 세계를 다닐 수 있는 나라, 그게 내가 사는 한국이지. 여행을 다니고 세상을 보는 재미에 세월이 가는 것도 잊고 살아. 올 해는 가족들과 유럽여행을 한 번 가려고 계획하고 있어.
아마 자네는 상상도 안 될 걸세.
여기 와서 살아보니 북한정권이 국민들을 얼마나 구속하고 압박했는지, 뼈저리게 잘 알게 되었어. 같은 날, 해방이 되고 같은 날 전쟁을 하고 정전도 같은 날 된 남과 북의 이 현실이 나는 정말 믿겨지지가 않아.
정말 지구상에 북한처럼 굶주리고 말조차 자유롭게 못하고 조그마한 나라 안에서 가지 말아야 할 곳이 많은 그런 나라는 없어. 자윤ㄴ 고사하고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나라, 그 당에 사는 자네와 친지들, 가족들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할 뿐일세.
온 나라가 하루면 왕래가 가능한 이 좋은 세상 남조선 같은 세상이 북한에도 하루빨리 오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네.
친구 진영이, 자네와 내가 다시 만나 함께 외국여행을 갈 수 있는 날이 바로 나 북이 통일이 되는 길이야. 그러니 희망을 가지고 항상 건강하게나. 술은 적게 마시고 담배는 건강에 절대로 안 좋으니 끊고 ...알았지. 꼭 명심해서 우리다시 마날 그 날까지 서로 건강하기를 바라네.
그럼 영원한 나의 친구 진영이, 잘 있게 안녕.
서울에서 친구 성길이가.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저도 오랜만에 소주한잔 기울이며 고향의 친구와 마주앉은 것 같은 아련한 고향추억이 떠오르는 정성길씨의 편지였습니다.
온 집안 식구의 명줄 같은 뙈기밭이었기에 그렇게 자식처럼 정성으로 가꿀 수  밖에 없었던 정성길씨의 친구 진영씨의 뙈기밭이 마치 제 눈앞에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시절에는 그런 뙈기밭도 없는 사람들은 그냥 죽어야 했던 것이 북한이었죠. 그래도 정성길씨가 늦게나마 한국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게 되셨으니 정말 다행인 것 같아요.
이 밤, 자유대한민국에서 인생의 2막을 펼치신 성길씨의 행복한 이야기가 고향의 친구 진영씨에게 꼭 전해지기를 저도 간절히 바라면서 그럼 오늘 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7-04-21 (조회 : 209)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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