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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장순희씨가 그리운 동생 영희에게

방송일 : 2018-09-14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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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가을 하늘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 간다, 싶더니 휘영청 밝은 달도 하루가 다르게 둥굴어 지는 걸 보니 추석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잘 된 햅 곡식으로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돌아가신 조상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 할 추석이 오면 조상님들의 선산에 갈 수 없는 저 같은 사람들은 둥근 추석 달마저 야속합니다.
하늘이 높아지고 말이 살 진다는 천고마비, 의 계절이 와도 늘 배가 고팠던 북한에서 추석은 한 번 잘 먹어볼 수 있는 놓칠 수 없는 행복한 날이기도 했죠.
먹을 것이 넘쳐 오히려 과잉영양을 걱정하는 한국에서 산지도 6년이나 되어 오는데도 왜서인지 추석이면 늘 그 생각부터 먼저 나거든요.
조상님 선산에 벌초라도 해 드리고 정성껏 술 한 잔 올려드리지 못하는 자식 된 도리를 지킬 수 없는 수많은 불효한 자식들이 올 추석에도 갈 수 없는 북녘의 하늘만 바라보며 바라보면서도 갈 수 없는 고향, 그 곳에 남겨진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 체신소를 찾으신 장순희씨는 동생에게 고향의 뒷 일을 다 맡겨놓고 오셨기에 동생이 더 사무치게 그립다시며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에서 사는 장순희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저는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어두운 세상, 북한에서 매일 끼니걱정을 하며 살았습니다.
체제에 길들여지고 그 체제에서 벗어나면 죽음이라는 생각으로 당과지도자를 칭송 했지만 당장 끼니를 어떻게 해결할 방도조차 없어  눈물을 흘리면서 저는 북한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누구 때문에 왜 이렇게 어렵게 사는 지는 그 때까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한국으로 오게 되었고 북한사람들이 왜 이렇게 가난하고 참혹한 인권유린을 당하고 살면서도 아무 말도 못하고 사는지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그 곳에 사는 제 동생은 아직도 그러고 살고 있을 걸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그리운 동생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운 동생 영희에게
내 동생 영희야, 그 동안 잘 있었니? 놀라지 말고 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바란다.
다섯째 언니 순희가 동생 영희에게 편지를 보낸다.
너와 나는 10년 차이니 나는 70대, 너는 60대가 되었겠구나.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들 했지만 우리가 헤어진지도 퍼그나 되어 이제는 영희, 라는 이름을 부르면 네가 그저 우리형제의 막냉이었지 하는 생각밖에 없다.
그리운 동생 영희야, 우리 형제들은 모두가 예술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지.
우리 맏언니는 무용수로 이름을 날렸고 둘째 언니는 암기를 잘 하고 발표력도 좋아 이름이 났었지.
셋째언니는 연극배우로, 너는 손풍금수로 전국학생예술축전에 참가해 함경남도 대표로 2등상을 받았지.
하나뿐인 오빠는 기타 수 였는데 기타를 메고 만세 교 다리에 나타나면 여학생들이 줄을 서서 따라 다니는 인기스타였거든.
그 때 너는 형편없이 어려서 그 기억을 다 하지 못할 테지만 나는 모든 기억이 어제 일처럼 또렷하단다.
그리운 동생 영희야, 내가 왜 오랜만에 너에게 쓰는 이 편지에서 우리 형제들의  특기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하는지 너는 아마 모를 것이다.
맨 위에 두 언니들은 돌아가시고 나 역시 기약 할 수 없는 먼 곳에 떨어져 살고 있으니 누가 너에게 우리형제들에 대해 자상히 전해 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 내가 살아 있을 때 너에게 조금이라도 알려주고 싶어서란다.
이제 세월이 지금보다 좋아져 남과 북이 서로 오갈 때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하고 그러면 우린 반드시 만나야 할 것 아니냐.
그리운 동생 영희야, 누가 뭐래도 우린 한 핏줄을 나눈 형제이고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야 한다.
그런데 헤어 진지 너무 오라 우리 둘 다 서로의 모습이 많이 변해 형제를 몰라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 그 때가 되면 우린 우리형제의 이런 특기를 명심해 두었다가 서로 찾자꾸나.
너하고 나는 2중창을 불렀던 적도 있지. 나는 지금도 네 생각을 하면 그 노래가 생각나 조용히 불러보곤 한단다.
~실버들 가지는 푸르고 푸르러
시냇물 맑고 맑아 아름다운 내 고향 ...~
너는 낮은 음을 잘 부르곤 했으니 언제든 모습은 변하고 기억이 조금씩 사라진대도 이 노래를 같이 부를 수 있다면 내 동생이 틀림없을 거다.
어려서부터 너와 나는 모습이 비슷하게 생겨 어떤 사람들은 쌍둥이라고들 했어.
내 동생 영희야,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니?
너는 50살에 혼자가 되었다면서? 어쩌다 그렇게 되었니? 그 나이에 자식 4명을 너 혼자 맡아 홀로 얼마나 고생을 했겠니?
영희야 지금 철수와 철호는 장가를 갔을 것이고 이제는 손자, 손녀도 있겠지?
딸 금희도 시집을 갔을 것이고? 그 애들이 모습도 너무 보고 싶구나. 
그 험한 세상, 그 험한 세월을 벗어나 나는 지금 한국에서 잘 지내고 있단다.
내가 고향을 떠난 후 네가 그 무서운 고생을 다 하고 살았을 생각을 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나는 좋은 옷 한 가지를 보아도 형제들 생각, 찬 밥 한 그릇을 보아도 조카들 걱정 뿐 이다. 나는 한국에 와서 살면서 산에 나무가 뒹굴고 썩어가도 누구 하나 가져가는 사람이 없는 걸 보면서 저 아까운 나무를 다 가져다 땔감 없어 고생하는 우리형제들에게 겨울이 오면 따뜻이 지내라고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 집 베란다 한쪽에는 형제들 생각, 스므명 남짓이 되는 내 조카들 생각에 기회가 될 때마다 옷이랑 신발이랑 심지어 수건이랑 비누까지 철따라 이름을 지어 모아 놓은 짐이 우리가 헤어져 산 세월만큼 자꾸 쌓여가고 있어.
보따리, 보따리 이름을 지어 싸 놓은 저 짐들 보낼 길 없는 저 짐들을 바라보면 형제들 그리운 마음도 보따리만큼 커져가고 있단다.
그리운 동생 영희야, 나는 지금 친손자 3명, 외손자 3명을 거느린 할머니가 되어 부러운 것 없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현주와 은영이는 대학을 졸업했고 이제는 제 살길도 스스로 개척하면서 잘 살고 있어. 영희야, 혹시 세월이 좋아지고 통일이 되면 나는 지금 서울에 살고 있으니 꼭 언니를 찾아야 하고 우린 반드시 만날 수 있다는 꿈을 절대로 포기 하지 말아라.
나는 그 꿈을 한 시도 포기 한 적이 없고 그 꿈이 있어 이렇게 지금도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이거든.
그리운 동생 영희야, 언젠가 내가 몸이 많이 아파 너희 집에 갔을 때 네가 시장에 나가 검정 암탉을 사다가 당 콩이며 찹쌀을 넣고  곰을 해 주었지.
그 때 나는 네가 해 준 그 닭곰을 먹고 빈혈이 없어졌단다.
고마운 내 동생아, 지금은 내가 너를 도와야하는데 갈 수도 전할 수도 전혀 없으니 세월이, 내 인생이 너무 원통하구나.
영희야, 언니가 제주도에 간 적이 있어. 나는 그 날 한라산에 올라 통일 만세!  를 목청껏 불렀단다. 내가 백두산에서 한라산으로 왔으니 이게 통일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그리운 동생 영희야, 언니의 부탁이 있다. 네가 이제 우리 형제들 중에서 제일 젊었으니 고향의 부모님 산소를 잊지 말고 꼭 찾아뵙고 이 언니의 소식을 꼭 전해 드려다오.
이렇게 펜을 드니 백장이라도 더 쓰고 싶은 마음이지만 오늘은 여기서 펜을 놓을게. 사랑하는 동생아, 부디 건강하고 또 건강하여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반드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반드시 만나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 힘을 내어 살자. 언니가 너를 많이 사랑한다. 안녕히.
서울에서 언니로부터.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분단의 세월만큼 깊어지고 간절해진 이산가족들의 아픔이 절절히 느껴지는 밤입니다.
미물의 짐승들도 자기가 살던 터를 어지간해서는 바꾸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만큼 이들에게는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사연들이 있었을 겁니다.
장순희씨 역시 한 핏줄을 나눈 동생을 반드시 다시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혹시라도 동생이 모를 형제들의 특징까지 하나하나 알려주신 것 같습니다.
더욱이 추석이 오면 남겨진 혈육들에게 고향의 선산을 부탁해야만 하는 미안하고 또 미안한 저 같은 사람들의 아픔은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향은 반드시 꼭 돌아가야 할 곳인지도 모릅니다.
북한에 사시는 장순희씨의 동생 분께서 올 추석에는 대한민국에 오셔서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신다는 언니의 소식을 꼭 조상님들에게 전해 드리길 바라면서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8-09-14 (조회 : 140)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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