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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대학생이 전하는 미국이야기

1회 미국에서 경험하는 새로운 삶

방송일 : 2018-09-10  |  진행 : 김연아  |  시간 : 매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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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김연아라고 합니다. 개인적인 방송을 통해 여러분을 만나게  되는 건 처음이라서 셀레 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는데요, 저는 8년전에 한국으로 왔습니다. 지금은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데요, 마지막 학기를 미국에 있는 대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미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으로 와서 공부를 하다 보면, 보다 다양한 기회가 있는데요, 이번에는 미국 정부가 세계 각국에 있는 대학교 학생들에게 미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주기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결과 모든 것이 황홀하게 느껴지는 미국이라는 곳에서 살아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미국에서의 삶을 북한의 친구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따름입니다. 북한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볼 수 없는 새로운 세계, 그리고 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모든 것이 자유롭고, 수용되는 이 곳에서의 삶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최근 들어 미국에서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은 “ Everything is new. ”  라는 말입니다. 조선말로는  “모든 것이 새롭다.”  혹은 “모든 것이 낯설다.”  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고 눈이 방황을 멈추지 아니하고 입으로는 “우와”을 연발하는 건 내가 성장한 고향의 배경때문일가요. 사면이 산과 강, 논으로 둘러 쌓여 있는 곳이 내 고향이었어요. 지나가는 농구방 (스타렉스)을 보면 신기해서 눈이 훼둥그레 지는 곳,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친척같이 느껴지는 작은 동네, 자랑할 거라고는 비행장 뿐인 곳이 제가 태어난 곳인데요. 비행장을 보면서 나는 죽기 전에 비행기라는 걸 타볼 수는 없을 거라며 중얼거리던 내가 비행기를 4번이나 갈아타면서 미국이라는 곳에 와 있습니다.  이 곳에서 소스라칠 만큼 놀라운 일들도 많지만, 그 중 가장 충격적이기도 하고 인상적이기도 했던 3 가지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요.
우선 비행기를 4번이나 바꿔 타야 하는 것이 신기했는데요,  미국이라는 나라는 워낙 땅덩어리가 넓어서 내가 가야할 곳으로 가기 위해서 미국안에서만 비행기를 3번 갈아타야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비행기가 고향에 있을 때 시골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 듯, 누구나 편히 이용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이라고 하네요. 태어나서 이렇게 많이 비행기를 타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했지만, 옛날 고향에 있을 때 단짝 친구와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나 가슴이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살던 시골 동네에 유일하게 자랑거리가 비행장이 있는 거라고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비행장 근처에 살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지나가는 비행기 조종사 총각들을 보면서 친구랑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 우리 커서 비행사한데 시집갔으면 좋겠다.  길영조영웅처럼 잘 생겼는데, 죽지는 말고 그냥 영웅이 되어서 남편 덕에 비행기 한 번 타보면 소원이 없겠다고.. 우선 비행사한데 시집이나 가고 그런 말이나 해라.… 고! 
사실 비행사에게 시집을 가도 비행기를 탈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비행사한데 시집은 갈 수 있겠니?”라는 말로 비행기를 타보고 싶은 욕망을 묵살 시켜 버렸는지도 몰라요.  어쨌든 비행기를 타보고 싶다는 꿈은 이루어졌지만, 친구와 함께 아닌, 나 혼자 비행기를 여러 번 타게 되어서 쓸쓸 했었습니다. 언젠가 친구와 함께 비행기를 타며 비행기 조종사에게 시집은 안 갔어도, 비행기 타보고 싶다던 소꿉 시절 꿈이 이루어져서 행복하다고 말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해봅니다.
두 번째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미국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국 비행기장에서 내려서 걸어오고 있는데요,  오고 가는 사람들이 나와 눈만 마주치면  미소를 지었어요.  이 와중에는  “헬로우”, 북한 말로는 “안녕하세요.” 라고 말을 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색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 2주가 지나가는 지금도 어색해서 시선을 발 아래로 고정시키고 다닐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아는 사이가 아니어도 눈을 마주보며 웃어주고, 인사를 건네주는 것이 보편적인 것이고 예의라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어른들의 눈을 바로 쳐다보면서 말을 하면 버릇없다면서 혼나곤 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다닐 때 선생님의 눈을 쳐다 보면서 이야기하다가 혼났던 것이 기억이 나는데요, “눈알 깔아.” 라면서 혼내던 선생님!  북한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눈을 마주하지 않고 이야기하면 상대방을 무시한다고 느낀다고 하네요.  더 흥미로운 건 내가 체육경기때마다 미국 놈들은 철천지 원쑤라고 웨치며 달려가서 미국 사람을 풍자한 허수아비를 몽둥이로 열심히 때려눕히고 자랑스러워 했었다는 것이에요. 그때 내가 가졌던 무섭고 나쁜 미국사람들과는 달리 미국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힘들면 도와주려고 하고, 질문하면 친절하게 웃으며 대답해주네요.  이런 문화에는 이유가 있는데요, 미국이라는 나라는 다른 피부와  각양각색의 문화를 가진 다양한 종족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나라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처음에 만났을 때 말이 서로 통하지 않다 보니, 미소를 지어보임으로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인사를 교환하는 것이 굳혀져서 사람만 보면 웃는 문화가 생겼다고  하네요. 어쨌거나 북한에서 철천지 원쑤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같이 느껴지고,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정말 또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아 스스로 놀라게 되는 순간이 굉장히 많아요.
마지막 이야기는 소름 돋게 하는 이야기라고나 해야 할가요. 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중 총소리가 들렸습니다. 선생님이 들어와서 문이 다 잠길테니, 창문 쪽으로 가까이 가지 말고 나오라는 신호가 있을 때까지 조용히 교실에 있으라고 했어요. 북한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면 전쟁을 연상했을 법하지만, 그 총소리는 전쟁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것이었는데요, 왜냐하면 미국은 특정한 죄를 지운 사람들 빼고는 총을 소유할 자유가 있다고 하네요.  누구나 총을 소지할 자유고 있고, 들고 다니기도 한답니다. 간혹 감정을 못 이겨 총을 겨냥해 사람을 죽게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고 하네요. 그날 총성은 말려도 끝나지 않는 몸싸움 때문에 누군가 쏜 거라고 합니다. 모든 자유가 허락된 곳에서 사는 걸 꿈꿨고, 그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곳에서 살게 되었지만, 총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유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 북한에서는 누릴 수 없었던 내 생각을 마음껏 말할 수 있는 자유,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을 수 있는 자유, 돈을 벌 수 있는 자유,  그 돈으로 어느 나라든  여행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살게 되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Everything is new to me.” 라는 말을 연발하며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에 적응해가는 저의 최근까지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다음에 또 새로운 이야기들로 만나요. 청취자 여러분!
입력 : 2018-09-10 (조회 : 156)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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