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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방송

9.9절 특집: 1회 소련 군정과 북조선 림시정부

방송일 : 2018-09-07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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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해는 북조선 정부 수립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조선개혁방송은 중국과 쏘련의 자료와 력사적 사실을 토대로 북조선 정부 수립에 관한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오늘 첫 시간에는 쏘련 군정과 북조선 림시정부에 대해 알아봅니다.
북조선 력사에서는 1945년 김일성 주석이 일제를 패망시키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1946년 2월 9일에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수립했고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를 수립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수립 과정에서 쏘련군정이 김일성을 내세우고 도와주었다는 진실을 모두 숨기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을 숨기고 력사를 왜곡한 것입니다. 진실을 숨기고 력사를 왜곡하게 되면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없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이후 평양은 해방의 감격으로 넘쳐났지만 정치적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때까지 평양에는 김일성주석, 당시 이름으로 김성주는 없었고 국내에서 반일투쟁을 했던 민족주자 조만식이 가장 명망 높은 지도자였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한 것은 8월 6일과 9일에 미국이 가한 두발의 원자탄 공격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8월 9일 대일선전포고를 한 쏘련은 곧바로 조선으로 진주하며 청진과 라남의 일본군대와 싸웠고 8월 24일에야 평양에 진주합니다.
소련은 8월 말까지 미국과 약속한 3.8선 북쪽의 북조선 전지역을 점령했고 평양에 곧바로 쏘련군정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평양시를 점령한 쏘련 극동방면군 제25군 사령관 치스쨔꼬브 대장은 8월 25일 ‘북조선 주둔 최고사령부’를 설치하고 포고문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치스챠꼬브 대장이 발표한 포고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조선 인민들이여! 조선은 자유국가가 되었다.
조선인민들이여! 기억하라! 행복은 당신들의 수중에 있다. 당신들은 자유와 독립을 찾았다. 붉은 군대는 조선인민이 자유롭게 창조적 노력에 착수할 모든 조건을 지어주었다.“
치스챠꼬브 대장의 포고문에서는 조선인민이 자유롭게 창조적 노력을 할 수 있는 조건을 쏘련군대가 지어주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쏘련 극동군 사령부가 평양시에 군정사령부를 설치하고 포고령으로 군정통치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자주적인 국가건설 노력이 있었습니다. 일제가 항복선언을 한 다음날인 8월 16일 국내에서 유명한 독립운동가였던 조만식을 위원장으로 하는 평안남도건국준비위원회가 설립됐습니다.
뒤이어 8월 24일부터 함경남도를 시작으로 전국 각도에서 도 인민위원회가 조직됐습니다. 조만식은 건국준비위원회 대표 자격으로 쏘련군 사령부와 만났고 8월 31일에는 평양에서 평안북도 림시인민위원회가 결성됐습니다.
북조선 건국 과정에서 국가정부를 대표하는 림시인민위원회가 평안남도에서 처음으로 결성됐는데 이때까지도 김일성은 조선에 없었습니다. 평양에서 쏘련군정이 통치를 하고 조만식이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활발하게 활동하던 1945년 9월초에 김일성은 모스크바에서 스딸린을 만났습니다.
김일성은 9월 19일 소련 군함 ‘뿌가쵸브’호를 타고 다른 70여명의 조선사람들과 함께 원산항으로 귀국했습니다. 원산항에서 뿌가쵸브 호에서 내린 김일성은 자신을 맞이했던 조선출신 쏘련군 간부들과 인사를 하면서 “김성주입니다.”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혔습니다.
김일성, 당시의 이름 김성주가 평양에 도착한 것은 9월 22일이였습니다. 북조선 혁명력사에서 잘 알려진 평양시 공설운동장에서 있었던 김일성 장군 개선연설은 평양에 도착한지 12일만이였습니다. 당시 김일성의 연설문은 소련군 군관이였던 전동혁이 썼습니다.
쏘련군정은 쓰딸린의 비밀명령에 따라 김일성을 내세우는 정치적 공작들을 진행했는데 그 첫 시작이 평양시 공설운동장 연설이였습니다. 1993년 3월 26일 남조선 김영삼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보리스 엘친 대통령의 소련정부는 수많은 조선관련 극비문서들을 공개했습니다.
이때 공개된 극비문서에는 1945년 9월 20일 스딸린이 와실리옙스끼 극동전선총사령관에게 보낸 명령서가 있는데 북조선 점령에 관한 7개 항목이 있었습니다.
명령서에는 북조선에 소베트 정권을 설립하지 말 것, 부르죠아 민주정권 형식의 정부를 수립할 것, 북조선 인민에게 소련군정은 일본을 내쫒기 위해 진주한 것, 쏘련군정이 북조선을 보호하는 것 등 이었습니다.
김일성이 평양공설운동장에서 환영연설을 하기 이틀 전인 10월 12일 소련군정 사령부는 포고문을 공표하고 사령관의 명령서 제7호를 발표했습니다. 명령서 7호에는 북조선에서 8.15 이후에 수립된 각 정당 단체들은 지방자치기관과 소련군정 경무국에 정관과 명단을 등록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평양에서는 10월 8일 각당, 각정파들이 모여 ‘이북 5도 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고 28일에는 ‘북조선 5도 행정국’을 설치했습니다. 북조선 5도에서 림시 인민위원회의 설립과 북조선 5도 행정국의 설치는 쏘련군정의 적극적인 지원하에서 진행됐습니다.
그리하여 1945년 11월, 북조선 전 지역대표 1,157명이 참석해 대의원 237명을 선출, 북조선인민회의를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6년 2월 8일 제1차 회의를 열고 위원장에 김일성, 부위원장을 김책과 홍기주로 하는 22명의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당시 쏘련군정은 북조선을 통치하면서 조만식을 지도자로 하는 국내의 독립운동가들의 저항을 받자 조만식을 체포해버립니다. 그리고 쏘련 공산당과 군대, 내각 등에서 일하던 조선인 출신 간부 약 200여명을 조선에 내보내 북조선 림시정부 구성을 도와주었습니다.
북조선 력사에서 종파라고 하면서 연안파와 쏘련파 하는 파벌 중에 쏘련파의 대부분은 1945년에 북조선에 파견된 사람들이였습니다. 이 중에는 그 유명한 시인 조기천, 정전협정에 수표한 남일, 종파로 몰려 숙청된 조선로동당 부위원장 허가이와 박창옥, 사회안전상 방학세 등이 있었습니다.
김일성은 1945년 8월 9일 쏘련이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조선으로 진격할때에는 쏘련 우스리스크에 있다가 9월 19일에야 조선으로 귀국했습니다. 1945년과 1946년 평양에는 약 20여개의 정당이 설립돼 있었고 국내파와 국외파,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로 갈라져 복잡한 정치정세였습니다.
그런 난국속에서 9월 22일에 평양에 혼자서 왔던 김일성이 당을 창건하고 림시정부를 수립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쏘련의 쓰딸린에 의해 검열되고 선택되어 북조선에 들어와 쏘련군 군정통치의 절대적인 지지와 도움으로 북조선 지도자로 내세워졌습니다.
결론적으로 김일성은 쏘련의 괴뢰가 되었기 때문에 김일성을 중심으로 하는 임시정부를 쏘련군정이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신탁통치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의 경덕현이었습니다.
입력 : 2018-09-07 (조회 : 53)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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