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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강좌> 9회 국제사회의 동맹관계(2)

방송일 : 2017-04-17  |  진행 : 노연아  |  시간 :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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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조선의 자유와 민주주의, 개혁과 개방의 새 정치를 위해 노력하는 조선개혁방송입니다. 오늘은 ‘국제정치란 무엇인가’의 아홉 번째 강좌이며 오늘의 주제는 ‘국제사회의 동맹관계(2)’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국제사회란 사회라는 개념이 국가 간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사회란 같은 무리끼리 이루는 집단 또는 공동생활을 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 집단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회가 구성되려면 사람들 간에 어떤 관계가 있고 그 관계를 규정하는 규칙과 제도, 공통적 관행들이 필요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국제관계에서 국가들의 동맹관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동맹은 주로 제3국으로부터의 공격에 대해 공동으로 방어하기 위한 양국간 또는 다수국간의 결합이라고 이야기했는데요, 그 구체적인 예로 남한과 미국의 상호방위조약에 대해 말했습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방위를 목적으로 한 조약입니다. 방위를 목적으로 한다는 이야기는, 남한이 외부로부터 무력공격의 위협을 받을 때만 미국이 원조한다는 내용이었는데요,
그렇다면 북조선이 맺은 동맹관계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오늘 이 시간은 북조선이 소련과 맺은 조소조약과 중국과 맺은 조중동맹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북조선은 한국전쟁 당시,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았지만 동맹을 맺은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 이후, 남한과 미국의 방위조약이 성립되는 것을 보면서 동맹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고 볼 수 있는데요, 북조선이 동맹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요인은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북조선 내에 있었던 중국인민지원군 철수에 따른 안보 공백의 불안감과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군사현대화에 대해서 위협을 느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당시 남한에서 4.19혁명이나 5.16군사쿠데타 등 내부가 매우 불안정했는데요, 이에 대해서 북조선은 한반도 상황이 더욱 불안정해 질 수 있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세 번째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군사동맹이 가속화 되자, 북조선의 동맹필요성은 더욱 커졌을 것입니다.
북조선은 앞서 말한 상황 때문에 동맹의 필요성을 간절히 느끼다가 1960년 3월, 중국에서 북조선과의 동맹에 대한 논의가 내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북조선은 중국보다 먼저 소련과 군사조약을 맺기 위해서 소련의 국가원수였던 흐루시초프를 초청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소련은 북조선과 동맹을 맺게 되면 미국이 인도차이나 반도의 전쟁에 참여하게 될까봐, 이에 대한 이유를 만들지 않기 위해 방북을 취소하였습니다.
1961년도의 당시 국제정세를 살펴보면, 세계는 라오스 내전문제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전은 한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인데요, 라오스는 좌파연합세력과 중립세력이 서로 맞서고 있었습니다. 좌파연합세력은 중국의 지원을 받고 있었고, 라오스의 중립세력(우파세력)은 미국, 태국, 남베트남의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라오스의 내전은 당시 베트남 상황과도 연결되어 있는데, 베트남도 북과 남으로 나누어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으로 나누어져서 북베트남은 중국의 지원을, 남베트남은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당시 미국이 남베트남에 미군을 파견하려고 시도했던 것입니다.
당시 중국은 라오스의 좌파세력과 북베트남을 지원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미국이 라오스와 베트남 전쟁에 뛰어드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행동을 조심스럽게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조선과 동맹관계를 빨리 맺을 수 없었던 거죠.
소련도 라오스의 문제를 미국과의 담판을 통해, 협상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에 역시 미국이 전쟁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소련 정부도 북조선과 동맹을 하게 된다면 미국을 자극시킬 수 있기 때문에 동맹을 맺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이렇게 동맹관계가 나와 내 친구만 동의한다고 해서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국제사회는 다양한 사건과 리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국가 간의 관계를 문서로 합의하는 과정은 결코 쉽다고 할 수 없습니다.
소련의 북조선 방문이 취소되자, 김일성은 직접 흐루시초프를 찾아가서 북조선은 중국과 동맹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중국과 소련도 사이가 악화되고 있었던 시기라 소련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조소동맹을 맺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1961년 7월 6일 모스크바에서 조소조약 체결이 공표되었습니다.
그러나 북조선과 소련이 동맹관계를 맺었지만, 여전히 소련은 미국을 의식하고 있었던 터라, 김일성에게 “미국과 평화공존이 달성되면, 소련과 북한의 동맹관계는 무효가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동맹은 공통된 적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요, 소련과 북조선의 동맹은 일반적인 동맹관계보다 신뢰가 없는 동맹조약에 가깝다고 많은 학자들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은 소련과 동맹을 맺자마자 바로 중국으로 가서 소련보다 더 강화된 조중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래서 1961년 7월 11일 동맹조약을 체결했고, 15일에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북조선의 소련과 중국과의 동맹은 이렇게 북조선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소련과의 동맹은 사라졌다고 볼 수 있고, 중국과의 동맹 조약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그럼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남과 북은 각각 동맹관계를 맺음으로 한반도를 지켜내려고 했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말이죠.
만일 북과 남의 관계가 신뢰로 다져진다면, 이러한 동맹관계가 과연 필요할까요? 북조선에서는 미국의 무기가 한반도로 들어오는 것, 그리고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것, 한국과 미국의 합동 군사훈련이 위협적이라고 늘상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북조선에서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사일을 발사하고, 몇 차례나 남한에 대해 선제공격을 하고, 북파간첩을 보내오면서 남한을 위협에 빠뜨렸습니다.
북조선이 한국과 미국의 동맹관계가 위협적으로 느껴진다면, 무력으로 선제공격을 할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대화의 자리로 나오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요?
이상으로 남한과 북한의 동맹관계에 대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다음시간부터는 국제정치의 리론을 함께 공부해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의 노연아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입력 : 2017-04-17 (조회 : 136)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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