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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장복란씨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방송일 : 2018-07-27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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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혹시 여름휴가, 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근로자에게 휴가가 주어진다는 것은 북한에서도 알고 있었지만 여름휴가를 떠나라고 회사가 권고하고 의무적으로 피서 철엔 여름휴가를 가야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그래서 여름이 오면 올 여름 휴가는 어느 나라 어느 곳으로 갈까, 누구랑 갈까, 이런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되거든요.
전 작년 여름휴가는 베트남 다낭에 갔다 왔습니다. 그럼 올 여름 휴가는 어디로 가냐고요? ㅎ ...올 여름 휴가는 내나라 북동쪽에 우리나라의 상징처럼 우뚝 선 그림 같은 섬, 울릉도와 독도에 가려고 합니다. 시원한 동해 바닷가에서 독도 아리랑을 룰 루 랄 라 부르고 있을 제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울릉도는 섬이라 배편은 많은데 대신 바다 날씨가 안 좋으면 섬에 하루나 이틀을 더 있어야 하는 곳이지만 1주일씩이나 되는 여름휴가라면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일한사람들은 무조건 떠나라는 피서 철, 그 것도 여름휴가를 어떻게 보낼까, 행복한 고민까지 덤으로 해야 하는 바로 그 때가 요즘인 것 같습니다. 울릉도 다녀온 이야기는 담에 또 전하기로 할게요.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 체신소를 찾으신 장봉란씨는 북한에 두고 온 아들이 그립고 보고 싶다 시며 아드님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어떤 사연인지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득한 인생의 눈보라 길을 헤치며 제가 한국으로 온 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저는 적지 않은 나이에 고향을 떠나 탈북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그 고향에 두고 온 아들이 있어 늘 가슴이 시리고 가보고 싶어집니다. 내 아들과 가족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과연 내 고향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지만 전화도 할 수 없고 편지조차 통하지 않아 잘 있다는 문안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삽니다.
그러다 북한개혁방송에서 고향에 부치지 못한 편지를 보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보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이 자식이 여럿이어도 부모에게는 다 꼭 같은 자식이고 그 자식들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꼭 같을 겁니다. 제가 쓰는 이 편지가 북한에 사는 우리 아들에게 꼭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북한에 두고 온 그리운 아들에게 전 한다
그리운 아들아, 맏이야 그 동안 잘 있었니?
엄마가 집을 떠난 지도 어언 10년이 다 되어 오는구나.
강산이 변했을 그 세월, 내 아들, 며느리, 손녀의 모습도 몰라보게 달라졌겠지?
내가 집을 떠날 때 강원도에 장사를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떠났지만 그래도 누나도 가고 동생도 가고 엄마까지 집을 떠났으니 그 후에 네가 받았을 그 끔찍한 고통을 생각해 보면 정말 미안하다.
북한이라는 나라가 어떤 곳인지 잘 아는데 그 어려운 곳에 너만 남겨두 고 온 엄마의 마음은 한시도 편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네가 얼마나 단련을 받았을 지를 생각해보면 엄마는 정말 가슴이 아프구나.
그리운 내 아들아, 북한에서 장사를 다니면서 너랑 같이 고생하던 일이 어제일 같구나. 손에 쥔 것이 하나도 없다보니 할 수 있는 장사도 별로 없고 중국 물건을 외상으로 받아 농촌으로 다니며 쌀을 바꾸어다 팔면서 죽지 못해 살았지.
그 나마 그런 장사라도 잘 되면 강냉이 밥이라도 먹고 살았을 수 있지만 매일 단속하고 빼앗고, 조금만 움직여도 여행증을 떼야하니 이렇게 저렇게 다 빼앗기고 나면 정말 죽을 먹기도 어렵지 않았니.
그리운 내 아들아, 한 번은 중국물건을 가지고 황해도에 쌀 바꾸러 갔다가 중국물건을 단속한다면서 안전원이 모두 빼앗는 바람에 통곡을 하며 집으로 온 적도 있었지. 그 바람에 우리 집은 외상으로 가지고 갔던 물건 값을 빚으로 몽땅 떠  안게 되지 않았니?
게다가 너의 아빠는 병으로 앓아누웠지만 약 한 알 온전히 잡숴 보지도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떠나게 되었어. 그 때 우리 가족이 살던 모습은 지금도 생각하기 싫지만 정말 사람 사는 모습이 아니었다.
아마도 너는 아직도 그 때 그 빚을 다 갚지 못 했을 거다. 그런 형편에서 아들아, 나는 한국으로 먼저 온 딸을 찾아 대한민국으로 오게 되었고 그 후에 네 누나와 동생도 한국으로 왔지.
나는 북한에 너를 두고 온 것이 늘 마음에 걸리고 더군다나 외손녀는 이제 몰라보게 자랐을 텐데 얼마나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네 생각을 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은데 마음대로 갈 수도 없고 소식조차 전할길이 없으니 엄마는 아들을 단 한 번이라도 보고 싶고 안아보고 싶은 마음 뿐 이다.
그리운 내 아들아,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라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면 굶어죽을 일은 절대 없다.
그렇지만 조금만 잘 못하면 망하기도 한다.
네 동생이나 누나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잘 모르는데다가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다 보니 사기도 당하고 빚도 지고 생각만큼 잘 살지는 못한다.
누나는 시집을 갔는데 아직 애가 없어서 나도 걱정이고 누나도 걱정이다.
이제 이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 우리도 잘 살 날이 분명히 오겠지, 하는 희망을 안고 여기에 온 우리 가족들은 매일 열심히 살고 있다.
그리운 내 아들아, 우리가 너를 조금 도와주기는 했지만 한국이라고 누구나 부자이고 잘 사는 것은 아니란다.
우리 식구들도 이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고 잘 적응하려고 모든 노력을 다 하고 있다. 한국은 분명히 북한보다 모든 것이 자유롭고 민주국가이고 적어도 조금만 노력하면 북한에서처럼 굶어죽는 사람은 없다.
가족이 서로 좋은 일은 나누고 어려운 일은 상논 해가며 그렇게 살면 어려움이 훨씬 작아질 것 같은데 우리는 그렇게 할 수가 없고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을 편지로밖에 전할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을 네가 이해해 주기 바란다.
엄마는 나라에서 집을 주고 기초수급을 받고 있어 사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으니 엄마 걱정은 절대 하지 말아라.
아들아, 어려울수록 가족이 소중하니까 네 마누라와 관계를 소홀히 하지 말고 서로 토론해가며 잘 살았으면 한다. 내 손녀도 이제 어른이 다 되었을 건데 애 마음이 다치지 않게 늘 관심해주고 어려운 점이 있으면 잘 해결해 부디 화목한 가정이 되기 바란다.
한국은 복지국가라 노인들을 위한 복지가 참 좋은 나라이다. 나는 너와 손녀, 며느리를 만나 보기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살려고 매일 운동도 하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엄마는 복지관에 다니며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영화도 본다. 그리고 많은 자원봉사자들, 적십자, 교회 같은 곳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정말로 한국에는 따뜻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리운 내 아들아, 나는 매일 천국에 온 기분으로 북한에서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고 더군다나 먹어 본 적도 없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걱정 없이 살고 있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은 옷을 보면 너와 네 가족들이 생각나 온전히 삼킬 수가 없다.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참에 나는 나에게 걱정 근심 없는 천국 같은 삶을 안겨준 한국정부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아들아,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너와 네 가족이 건강하게 잘 살아 있어주는 것이고 자나 깨나 우리나라가 하나로 통일이 되는 것 뿐 이다. 아마 이것은 엄마의 마지막 소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운 내 아들아, 부디 그 날까지 우리 꼭 살아서 다시 만나자꾸나.
엄마는 그 날을 자나 깨나 기다릴게. 엄마가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오늘은 이만 하련다. 잘 있어라. 안녕히.
~한국에서 엄마로부터~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삼복이라고 몸 보신을 위한 음식을 찾아 먹고 더위를 피해 여름휴가를 가는 요즘 같은 세월에 아직도 북한에는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봉란씨는 어려운 생활고를 견딜 수 없어 한국으로 오셨지만 아직 그 곳에 사랑하는 아드님이 살고 있기에 한 시도 그 땅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 속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먼저 알게 된 장봉란씨 이시기에 북한 사시는 아드님에게 소중한 가족을 잘 지키라고 이처럼 간곡하게 부탁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디에 살든 사람이 사는 곳에는 인정이 흘러야 하고 가족의 따뜻한 사랑이 때로는 돈 보다 더 소중할 때가 있거든요.
누구나 한 번 왔다 가는 인생, 우리 모두는 부자는 아니어도 마음만은 부자 된 마음으로 늘 즐겁고 행복한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북한 사시는 장봉란씨의 아드님이 어머니의 부탁대로 건강하게 잘 살아 있어주길 저도 간절히 바라면서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8-07-27 (조회 : 126)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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