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후원안내

자유게시판

Home > RADIO >청년과 여성 > 세상을 이끌어 온 여성

세상을 이끌어 온 여성

15회 도전하는 여성의 상징, 힐러리 클린던 미국 전 국무부 장관

방송일 : 2018-07-06  |  진행 : 김소라  |  시간 : 화요일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0:0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은 인류 역사를 이끌고 발전시켜온 위인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여성 인물을 떠올린 분은 아마 많지 않으실 겁니다. 인류 역사의 아주 오랜 시간동안, 여성들은 단지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존여비의 벽에 부딪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남성을 위한 역할을 담당하며 살아왔습니다.
여성은 정말 열등하고, 연약하기만 할까요? 그래서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존재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들은 더 이상 불평등을 운명으로, 또한 무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조선개혁방송에서는 북조선 여성들의 자존감을 향상시키고, 이들이 북조선 사회의 주체로 당당히 살아가도록 <세상을 이끌어온 여성>이라는 프로그램을 준비하였습니다.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았던 여러 여성 인물의 삶을 살펴봄으로써, 북조선 여성들도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실력을 쌓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
오늘은 현대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간 여성 정치인, 마지막 주인공으로 힐러리 클린턴 미국 전 국무부 장관을 만나봅니다.
어쩌면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께도 조금 익숙할지 모르는 힐러리 클린턴은, 미국의 제42대 대통령인 빌 클린턴의 아내이자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던 정치인입니다.
힐러리는 1947년 10월 26일, 미국 일리노이주의 큰 도시 시카고에서 2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휴 엘스워스 로드햄은 작은 사업을 하다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덕분에 힐러리는 중산층으로서 탄탄한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똑똑하기로 유명했던 힐러리는 고등학교 동급생들 사이에서 진행된 “나중에 가장 잘 될 것 같은 학생” 투표에서 1위에 선정될 만큼 남다른 리더십과 장래성을 보였습니다. 지는 것을 싫어하고 토론에 강했던 힐러리는 누구에게도 압도당하지 않을 만큼 논리정연한 토론 능력을 보였습니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학생들끼리 모의 토론회를 가지곤 했는데, 누가 봐도 질 것이 뻔히 보이는 후보의 역할을 맡아 토론을 펼쳐 모의 결과를 뒤집기도 했습니다.
힐러리는 웰슬리 여자 대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의 명문대 중 하나인 예일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법대 전체 졸업생 가운데 여성은 힐러리를 포함해 단 27명 뿐이었습니다. 힐러리는 이곳에서 남편인 빌 클린턴을 만났고 1975년 10월, 힐러리는 빌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녀는 보통 결혼하면 성씨를 남편 성으로 바꾸는 당신의 관습을 거부하고 그대로 “로드햄”이라는 원래의 성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이후 남편이 대통령 선거에 나가면서 보수파의 표를 의식해 남편의 성을 따르기로 하고 이름을 바꾸었지만, 그마저도 완전히 바꾸지 않고 “로드햄”을 중간 이름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가는 여성이었는지를 전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죠.
힐러리는 대학을 졸업한 후, 아동 및 가족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정치적 야심을 가진 남편 빌 클린턴이 정계로 진출하는 것을 물심양면으로 도왔습니다. 빌 클린턴은 1978년 아칸소 주의 주지사로 당선되었으며, 그로부터 2년 뒤인 1980년 주지사 재선에 도전했으나 실패했습니다. 다시 2년 후, 재기에 성공한 후 정계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힐러리의 역할은 매우 컸습니다.
1992년, 드디어 빌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영부인이 된 힐러리는 기존의 다른 영부인들처럼 조용히 남편을 내조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했습니다. 힐러리는 야망이 큰 사람이었기 때문에,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영부인으로서 적극적인 대외 활동을 펼쳐, 스스로 대통령이 되려는 준비 작업을 해 나갔던 것입니다.
힐러리가 얼마나 야심찬 인물인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힐러리와 빌은 차에 연료를 넣기 위해 주유소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그 주유소 사장은 힐러리가 예전에 사귀던 옛 연인이었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 빌이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저 사람과 결혼했더라면, 당신은 주유소 사장의 부인이 되어 있겠지?” 그러자 힐러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그럼 저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되어 있었겠지요.”
이렇게 자신만만하던 힐러리에게도 인생 최악의 치욕스러운 순간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것은 남편의 외도 소문이었습니다. 백악관에서 대통령을 보조하며 일하던 모니카 르윈스키라는 여성과 매우 추잡한 염문설이 터지면서, 미국의 모든 언론은 영부인인 힐러리에게 이목을 집중했습니다. 이 때 힐러리는 매우 침착하면서도 냉철한 태도로 도리어 남편의 잘못을 감싸안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동정 여론을 통해 지지율을 70%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힐러리의 모습을 보고 “무서운 여성”이라고 표현하거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연기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눈도 마주치기 싫은 남편을 참아주며 이혼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나 상황이야 어찌되었든, 이런 상황에서 보통의 사람처럼 이성을 잃고 흥분하거나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미래를 내다보며 인내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힐러리가 얼마나 뛰어난 자질을 가진 사람인지를 보여줍니다.
남편 빌은 1993년부터 2001년까지, 만 8년을 대통령으로 재임한 후 불명예스러운 퇴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힐러리는 본격적으로 단독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합니다. 1998년, 뉴욕 상원의원 자리가 공석이 되자 그녀는 선거에 출마하여 55%의 높은 지지를 받으며 2000년, 상원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이 선거에서 그녀는 뉴욕 상원 의원들 가운데 최초의 여성 상원의원인 동시에, 정치에 도전한 최초의 영부인 출신 여성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6년 임기의 상원의원직을 완수한 후 2006년에 다시 재선에 도전하여 또 당선되었습니다.
정치인으로서 승승장구하던 그녀는 2008년, 권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여 미국 역사상 어떤 여성 후보들보다 많은 대의원수를 확보합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에 의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에서 탈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여기서 실망하지 않고 태세를 전환하여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녀의 공으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되었고, 오바마 전 대통령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2009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 힐러리에게 국무장관직을 제안했습니다. 이를 수락한 힐러리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제67대 국무장관직을 역임하면서 총 112국가를 방문하며 1,358,027Km, 그러니까 지구를 약 33바퀴정도 돈 길이만큼의 출장 기록을 세우며 국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녀는 2015년에 다시 한 번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고자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그녀는 2016년 7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공식적으로 대통령 후보에 올라, 여성 최초로 미국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2016년 11월 8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그녀는 공화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에게 밀려 다시금 낙선하였습니다.
영부인이라는, 수많은 여성들이 선망하는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힐러리는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에 의해 주어진 자리가 아닌, 자기 힘으로 쟁취할 수 있는 권력과 명예를 추구했습니다. 비록 대통령에 당선되지는 않았지만, 힐러리의 도전은 많은 여성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자기 인생은 자기가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고 배우셨을 겁니다. 오늘 만난 힐러리처럼, 북조선 여성들도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수용하는 것에 멈추는 인생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응원합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의 김소라였습니다.
여러분, 행복하십시오.
 
입력 : 2018-07-06 (조회 : 103)  |  북한개혁방송
Copyright ⓒ 북한개혁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