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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이옥녀씨가 사랑하는 딸에게

방송일 : 2018-06-29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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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엊그제 새싹이 움트는 것 같더니 벌써 신록이 짙어가는 여름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요즘 북한의 지방주권기관 대의원 선거와 같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진행되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뽑는지도 모르고 참가하던 북한의 선거에 비하면 한국에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가 뽑아야 할 후보가 누군지 그가 당선되면 내 생활이 무엇이 개선될지를 꼼꼼히 체크하고 뽑고 시은 사람 하나를 찍거든요.
그리고 선거에 참여하기 싫거나 후보가 마땅치 않으면 선거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게 어디 있냐고요? 여기 대한민국에 있습니다. 선거에는 반드시 100%참가해야하고 100%찬성을 하라고 강요하는 북한의 선거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선거에 참여해 보면서 저는 이것이 참다운 민주사회이고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 체신소를 찾으신 이옥녀씨는 탈북과 북송이라는 삶과 죽음의 어려움을 겪으시면서 가장 아기고 사랑하던 맏 따님이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북에 남겨져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도 알길 없는 맏딸 생각을 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시며 따님에게 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대한민국으로 온지도 벌써 10년도 넘었습니다.
저는 북한에 비하면 천국 같은 세상에서 매일을 꿈같은 생활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제 삶은 행복이 넘치지만 먹고 살려고 택했던 탈북의 길에서 제 맏딸은 살아서는 다시는 이 세상구경을 할 수 없다는 정치범 수용소로 가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 못 되었는지, 왜 우리는 이렇게 버러지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했는지, 저는 그 것이 지금도 궁금합니다.
지금 제 곁에 함께 있다면 40대 중반이 되었을 사랑하는 제 딸이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죽은 것도 아니고 살아 있는데 볼 수도 없고 소식조차 물을 길이 없는 맏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습니다.
저는 제 딸이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래도 행여나, 하는 마음에 간절한 바람을 안고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혹시 기적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래서 우리 딸에게 엄마의 목소리라도 전해진다면 저는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꿈에도 그리운 맏딸에게
사랑하는 내 딸 복녀야, 그 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니?
보통 사람들도 살기가 어려운 북한에서 그 것도 짐승보다 못한 인간지옥, 정치범 수용소에서 지금 살아나 있는지.
나는 딸만 셋을 낳았어도 맏딸인 네가 항상 자랑스러웠고 누구보다 엄마와 함께한 세월이 많아 그런지 다른 두 딸보다 더 정이 가곤 했다.
생각해보니 엄마는 너에게 세상에 태어나 행복보다 고생을 더 많이 시켰던 것 같아.
사랑하는 내 딸 복녀야, 북한이라는 나라 밖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평생 그 나라를 위해 모든 걸 다 바치며 살던 순진한 우리가정이었지.  그런데 이밥에 고깃국이 아니고 강냉이 밥이나 죽도 배부르게 먹을 수 없게 되는 바람에 탈북이라는 어려운 길을 택하게 되었어.
복녀야, 혹시 기억이 나니? 우리 온 식구가 열병에 걸려 다 죽을 번했던 일을. 열병을 앓아도 약 사먹을 돈도 없는데다 하루 세끼 죽도 온전히 못 먹던 때라 너희 아버지는 끝내 파라티브스라는 열병으로 먼저 저세상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니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엔 배부르게 이밥이라도 먹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결국 내가 먼저 막내딸을 데리고 중국으로 갔지. 처음에는 돈을 좀 벌면 고향으로 가서 장사를 하면서 살려고 했는데 딸들을 데리고 오면 고생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중국 사람의 말을 듣고 너와 둘째를 데려오게 되었거든.
너도 알다시피 그 당시에 우리는 중국으로 가면 아무고생도 안하고 그래도 밥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막상 중국으로 가 보니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 것도 아니었다.
밥을 먹여주고 잠자리를 얻은 대신 인신매매로 짐승처럼 팔려 다녀야 했고 늘 북송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어야 하지 않았니.
중국에서의 생활은 지금도 생각하기 싫지만 우리 가족은 철저하게 방랑자였고 거지보다 약간 나은 정도 였다고 할까.
산 설고 물 선 중국으로 가면서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믿고 자식들을 다 데리고 들어갔던 걸 엄마는 그 일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안 그랬더라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맏딸이 북송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더군다나 다시는 살아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정치범수용소로 가지도 않았을 것 아니냐.
복녀야, 내 딸아, 내가 한국으로 올 때 너는 해산한지 10일 밖에 안 되는 몸이라 엄마가 너를 두고 올 수 밖에 없었고 너를 아끼는 마음으로 너를 두고 온 것이 결국은 이렇게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마지막이 될 줄은 나는 꿈에도 몰랐다. 
엄마가 북송이 되어 북한으로 갔다가 친척언니의 말을 듣고 집에 들려 네 전화번호와 사는 곳을 알게 되었어. 그래서 엄마는 너를 만날 생각에 다시 중국으로 갔는데 말도 모르는데다 중국영감의 도움을 받고서야 겨우 너를 다시 만 날 수 있었지.
그 때 네가 엄마에게 해산 방조를 부탁했는데 엄마가 되어 가지고 가보지 못해 너무 미안했어. 영감 되는 사람이 허락을 하지 않아 갈 수도 없었거든.
사랑하는 내 딸 복녀야, 그런데 한 열흘이 되어 엄마라고 나를 찾아왔던 네 모습은 정말 눈이 감길 정도로 비참했다. 거지라도 상 거지꼴을 해 가지고 왔는데 얼마나 한심한지 영감이 애기 옷이며 포대기를 사 주던 생각이 난다.
복녀야, 엄마가 한국으로 먼저 온 둘째와 막내를 찾아 떠니 올 때 그 당시 네가 해산만 안 했어도 너를 중국에 두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하는 후회를 엄마는 지금도 천 백번 하고 있어.
사랑하는 내 딸 복녀야, 엄마가 네 소식을 자상하게 알 게 된 것은 너와 연사에서 감옥살이를 11개월을 함께 했다는 김경희라는 분을 통해서이다. 연사 감옥에서 증산교화소로 가게 된 이 여자 분이 감옥살이를 마치고 다시 연사에 와서 네 소식을 물었는데 사람들이 네가 수성교화소라는 정치범 수용소에 갔다고 알려 주었다고 하더라.
내딸아, 복녀야, 엄마와 동생들, 손자, 손녀들, 조카들까지 한국으로 와서 아무근심 없이 다 잘 살고 있는데 맏딸인 네 생각만 하면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이 안타가운 엄마의 사연을 누가 알 수 있을까, 너와 나는 과연 살아서 다시 만날 수가 있을까, 그 누가 나의 이 한 맺힌 사연을 풀어준단 말이냐?
생각하면 할수록 원통하고 가슴이 아프구나.
사랑하는 내 딸 복녀야, 두 딸이 먼저 한국으로 오면서 잠깐 나에게 맡겼던 손자, 손녀들은 이제는 다 이쁘게 자랐고 그리고 둘째가 먼저 시집을 가서 네 동생은 잘 살고 있다. 막내는 애를 데리고 지금도 혼자 있는데 서로 분가를 해 이제는 엄마 혼자 덩그렇게 남았단다.
한국은 나라에서 먹고 살만 한 조건을 잘 보장해 주어 북한에서였다면 이미 저 세상으로 갔을지도 모를 나 같은 사람도 잘 살고 있어.
아파트에 난방이 잘 되고 불을 안 때도 밥을 해 먹고 기계가 빨래를 해 주니 사람이 할 일이 없구나.
아마 북한이었다면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하지 않으면 저녁끼니 걱정으로 고달팠을 내 인생이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행복하게 산다.
다만 오직 네 걱정 하나 때문에 엄마의 가슴은 시도 때도 없이 무너져 내린다.
자나 깨나 엄마는 내 딸이 살아 있어 주기만 간절히 바라면서 하루에도 북쪽을 향해 천백번씩 기도 하고 있다.
언제면 , 내 딸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통일이 되면? 아니 내가 죽기 전에? 제발 소식이라도 들 수 있다면 엄마는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딸아, 부디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는 엄마 생각을 해서라도 꼭 살아 있어 주기 바란다. 엄마는 네 소식을 항상 기다릴게.  오늘은 이만 할게. 안녕히
너를 제일 사랑하는 엄마가~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갑자기 이런 말이 생각납니다. 죽기보다 살기가 더 어려운거라고 누가 그러던데요. 살다보니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죽기보다 낫지 않을까, 하고 선택한 삶의 길이 이렇게 어렵고 비참할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고향에서 식구가 다 같이 죽을 먹으면서라도 버텨 볼걸, 하는 생각이 드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육체와 영혼마저 돈에 팔리며 어렵게 택한 탈북과정, 그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가 없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조차 안 될 겁니다.
더욱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를 알아도 잘 아는 저 같은 사람들은 이옥녀씨의 따님이 얼마나 인간이하의 천대와 멸시, 아니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고 계실지 잘 알거든요.
부디 하나님이 굽어 살피시어 이옥녀씨의 따님이 살아만 있어주기를 저도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사신다는 두 따님들도 언니를 꼭 다시 만나시기를 바라면서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8-06-29 (조회 : 178)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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