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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여행 (11) 태국 소수민족의 삶을 느끼다

방송일 : 2018-06-20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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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내 맘대로 떠나는 자유 여행’의 이야기꾼, 장은광입니다.
이제 우리는 치앙마이에서 이동해, 더 북쪽에 위치한 ‘치앙라이’라는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이 치앙라이 자체도 나름대로는 인기 있는 여행지이긴 한데요, 우리는 치앙라이보다는 다른 곳에 더 중점을 두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카족’이라는 한 소수민족의 마을에 머무는 것이었습니다. 이 치앙라이에는 아카족이 운영하는 식당 겸 사무실이 있어, 치앙라이에서도 제법 떨어진 산 속에 위치한 아카족 마을, 그리고 숙소로 연결시켜주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숙소에서 이틀을 머물며, 이전에 ‘투어’에서 스치듯이 지나갔던 현지인들의 삶, 특히 소수민족의 삶을 더 가까이서 바라보길 원했던 것이죠.
우선 아카족 사무실에 가서, 방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의 방이 있더군요. 사무실의 문을 닫고 아카족과 함께 마을로 향하는 것이기에, 그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어 그때까지 치앙라이를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시장에서 맛나게 밥을 먹고, 천천히 도시를 거닐었습니다. 그리고 방문한 곳은 바로 고산족 박물관이었습니다. 아카족과 같은 고산족들의 풍습과 문물들을 소개한 곳인데요, 적게는 몇 백 명부터 많게는 수십만 명에 이르는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태국에서 살고 있더군요. 미얀마, 태국, 라오스, 베트남, 중국의 국경이 모여 있는 지역에 정말 많은 소수민족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궁금했습니다. 지금껏 사라진 수많은 민족처럼, 나라를 이루지 못한 채, 문화를 잃어가고 언어가 사라져 마침내 타민족에 융화되어버릴지. 나름대로는 전통을 유지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그마저도 삶과 유리된 채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되어버릴지. 혹은 우리처럼, 세계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언어를 지키고 독자적 문화를 새롭게 쌓아갈 것인지.
전날 산을 탔기 때문에 조금 힘들었던 것인지, 이 날은 그냥 커피나 마시며 오후를 보내었습니다. 태국 북부의 커피는 자체적으로 생산되는 신선한 원두를 사용하기에 그 맛이 제법 뛰어나더군요.
여하튼 시간이 되어 아카족 사무실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제법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는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더군요. 그리고 꽤 많은 차밭이 산에 펼쳐진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비포장길을 덜컹거리며 얼마나 올랐을까...마침내 자그마한 아카족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우리 숙소는 오두막에 가까운 것으로, 방 하나에 침대만 덩그러니 있는 그런 공간이었죠. 그래도, 오두막 밖에는 마루 같은 것이 있어 의자를 두고 산세를 감상할 수 있게 해두었습니다.
이곳은 정말 산 중에 산. 이틀 동안은, 문명을 맛보기 어려운 곳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방이 트인 식당 건물 근처에서 아카족 사람들은 아카족 사람들끼리 모여서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서양인 여행자들 몇몇은 화로불 주위에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죠.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간단히 볶음밥을 주문했는데, 기대하지도 않은 볶음밥의 맛이 상당했기에 감탄했던 기억이 나네요. 우리도 이런저런 이야기로 밤을 보내었죠.
새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깬 아침. 숙소 앞 의자에 앉아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았습니다. 산 위의 신선이 된 느낌이었죠. 그날 일정도 신선 같은 하루를 보내었습니다. 마을을 둘러보고, 근처 폭포도 둘러보고, 차밭도 구경하고, 그렇게 하루가 흘러갔죠.
다음 날엔 치앙라이로 돌아와, 이번엔 ‘매싸롱’이라는 작은 도시로 향했습니다. 바로 가기 힘들어 다른 도시로 간 다음 차를 갈아타야하는 번거로운 여정이었지만, ‘매쌀롱’이라는 마을의 독특한 풍경이 저를 끌어당겼었죠.
이 또한 깊고 깊은 산 속에 위치한 곳인데요, 독특하게도 여기는 ‘한족’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다시 말해 중국 사람들로, ‘국공내전’ 이후 중국에서 쫓겨난 국민당 군대가 정착한 곳이었던 거죠. 그래서 마을에는 한자로 된 간판이 있고, 또 중국 음식들을 팔고 있습니다.
‘썽태우’에서 내리자, 우리 눈 앞에는 바로 시장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태국어, 한자, 그리고 간혹 영어로 된 간판들이 먼저 눈에 띄더군요. 정말 다양한 물품들을 팔고 있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지역 특산품인 ‘차’가 가장 많이 팔리는 듯 싶었습니다.
숙소는 매싸롱 한가운데 위치한, 매우 오래된 여관이었습니다. 1970년부터 영업을 했다는 곳으로, ‘미사락신생여관’이라는 이름이었어요. ‘미사락’은 곧 ‘매싸롱’이라는 지역 명칭이니, 결국 새로 생긴 여관이라는 의미인데 건물은 매우 낡은 목조 건물이라 상당한 괴리가 느껴지더군요. 아래쪽에는 길 양쪽에 목조 기둥을 세우고 2층을 올린 희한한 구조의 건물이었습니다.
짐을 풀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운남면교관’이라는 식당. 사실 향했다기보다는 점찍어둔 숙소로 이동하는 길에 만난 곳입니다만, 중국에 가지 않고도 운남성의 면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더군요. 맛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식후 운동 겸 해서 동네 뒷산을 올라, 산 정상에 위치한 사원에 이르러 매싸롱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산등성이의 도로를 따라 길쭉하게 위치한 작은 도시, 아니 큰 마을. 고향을 뒤로하고, 도망쳐온 그들에게 이곳은 어떤 의미를 지닌 곳일까요.  이념으로 인해 민족이 갈라져 내전이 일어나고, 그리고 고향에 돌아갈 수 없게 된 심정은, 할아버지 세대가 아닌 저희 세대에서는 상상하기 어렵겠죠. 이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유쾌하지만은 않은,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고, 슬픈 연민을 느끼게 되는 역사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될 때가 종종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역사가 이어져 눈앞에 생생한 현실로 펼쳐지기도 하죠. 지난 번 일본 여행에서도 그랬었고, 이번 여행에도 그렇게 되고 있으며, 다음 번 베트남 여행에서도 그렇게 됩니다. ‘전쟁’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죠.
책에서만 배운 역사는 죽은 역사라고 합니다. 그러나 경험으로 배우는 역사는, 강렬한 희로애락과 함께 교훈을 주죠. 다시 한 번 저의 눈앞에서, 그 역사가 생생히 펼쳐지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동시에, 바로 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함께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거리를 뛰노는 아이들, 새벽부터 시장을 여는 상인들, 물건을 팔기 위해 멀리서 찾아온 소수민족들, 그리고 낯선 문화를 맛보는 여행자들이 어우러져, 지금도 매싸롱 마을은 작지만 다양성으로 가득 찬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다음 번엔 드디어 육로로 국경을 넘게 됩니다. 그 시간을 기대해주세요. 청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입력 : 2018-06-20 (조회 : 87)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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