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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여행

6회 음악의 아버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인생이야기 (3) 음악인생의 절정기를 보낸 라이프치히 교회시절

방송일 : 2018-06-19  |  진행 : 경덕현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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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독일의 작곡가, 음악의 아버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그의 인생이야기 마지막 시간을 나누어보겠습니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음악과 함께 성장하고, 부모님의 죽음이후 학교합창단원으로 활동했으며, 독일 여러 도시에서 악단의 궁정악장으로 일했던 그의 인생은 이제 어떤방향으로 나아갔을까요? 그의 음악인생의 최대 절정기를 맞이했던곳, 독일의 대표도시 중 하나인 라이프치히에서의 삶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나이로 39살이었던 바흐는 바이마르 궁정악단, 아른슈타트 성브라지우스 교회를 거쳐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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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 독일 라이프치히에 위치한 성 토마스 교회, 바흐가 30대 후반부터 사망할때까지 이곳에서 평생 음악활동을 하였다.
 
 라이프치히 성토마스 교회, 이 교회는 2018년 현재까지도 독일 동부지역 최대 도시인 라이프치히의 관광명소이기도 하며, 음악을 사랑하는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30대 후반부터 남은 일생을 몸바쳐 일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이곳 라이프치히 성토마스 교회의 음악감독으로 수많은 작품을 작곡하였으며, 바로크 음악의 꽃을 피운 위대한 장소였던 곳입니다.
27년 동안 그는 음악감독으로서 교회의 예배용 음악을 만들었으며, 합주단, 합창단을 지도하는 직책을 맡았습니다. 남은 평생을 그지역 왕, 또는 귀족을 위해 음악을 만든 것이 아닌 하나님을 찬양하는 종교음악, 즉 교회음악을 작곡했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특히 바흐는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가 바로 교회칸타타라는 종류의 음악인데요, 이전 시절 음악성과는 거리가 있었던 종교음악이 그의 머리와 가슴을 거쳐 신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선율,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시켰습니다.
특히 그는 그 누구보다 신을 위해 기도하고, 몸과 마음을 바쳤던 독일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음악은 직업적인 의무를 넘어서서 그의 창작의 원천이자 힘이었던 것이였죠.
음악의 본질적인 요소에 충실하고, 단순한 진리, 아름다움을 표현했던 그의 음악은 20명이나 되었던 그의 자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식구들이 너무 많아 평생 넉넉하게 살지 못했지만 교회에서 월급을 받으며 가정과 교회에 모두 충실하게 살아갔던 덕일까요? 오직 평생 음악가로서의 삶을 통해 그의 자녀들 또한 성장하여 음악가가 된 것입니다. 비록 아버지는 살아있던 시기, 세상을 떠난 직후까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의 막내아들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는 훗날 영국에서 큰 이름을 떨친 음악가로 성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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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2> 성 토마스 교회에 세워져 있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동상
 
 라이프치히, 성토마스교회의 음악감독으로 일하던 그는 1750년 뇌졸증의 발작과 시력감퇴로 체력이 두드러지게 약해졌습니다. 수술과 치료를 받았지만 의료기술이 좋지 못하던 시절이였기 때문에 큰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해 7월 28일 밤 8시 45분, 65세의 생애를 마감하였습니다.
바흐는 살아있던 평생 인기없는 작곡가에 속했습니다 그리고 사망한 이후에도 거의 잊혀져 갔습니다. 그의 자식들 또한 아버지의 작품들에 대하여 크게 관심을 갖지 못했을뿐더러 생계를 위해 싼값에 팔아 넘겼습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죠,  100여년이 지난 후 같은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활동했던 음악가 멘델스존이 뒤늦게 그의 음악을 발견하게 되고 사라진 악보들을 찾아내었으며, 1829년에는 그의 지휘 아래 바흐의 <마태 수난곡>이 연주되기도 했습니다. 비로소 바흐의 음악이 사후 100년이 지나 재조명된것이었습니다. 만일 멘델스존이 바흐의 음악을 알아보지 못했더라면, 북조선 청취자분들게 그의 아름다운 음악을 소개해드리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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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3> 결혼행진곡으로 유명한 펠릭스 멘델스존, 그가 바흐의 음악을 발견, 공개하지 않았다면
세계 음악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이상으로 클래식 음악여행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시간부터는 같은 독일인이었지만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던 바로크 음악의 대표 음악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을 소개해 드리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오늘 함께 들으실 곡은 바흐의 대표적 명곡 칸타타 147번 중  조선말로는 ‘인류의 기쁨되시는 예수’라는 곡입니다.
청취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입력 : 2018-06-19 (조회 : 116)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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