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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끌어 온 여성

14회 국민을 품은 칠레의 어머니,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

방송일 : 2018-06-15  |  진행 : 김소라  |  시간 :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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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끌어 온 여성>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은 인류 역사를 이끌고 발전시켜온 위인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여성 인물을 떠올린 분은 아마 많지 않으실 겁니다. 인류 역사의 아주 오랜 시간동안, 여성들은 단지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존여비의 벽에 부딪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남성을 위한 역할을 담당하며 살아왔습니다.
여성은 정말 열등하고, 연약하기만 할까요? 그래서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존재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들은 더 이상 불평등을 운명으로, 또한 무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조선개혁방송에서는 북조선 여성들의 자존감을 향상시키고, 이들이 북조선 사회의 주체로 당당히 살아가도록 <세상을 이끌어온 여성>이라는 프로그램을 준비하였습니다.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았던 여러 여성 인물의 삶을 살펴봄으로써, 북조선 여성들도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실력을 쌓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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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주간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간 현대 여성 정치인을 살펴보고 있는데요, 오늘의 주인공은 멀고 먼 남미에 있는 나라, 칠레의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를 만나봅니다.
칠레의 국토는 가로 폭이 매우 좁고, 세로로 긴 막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조선반도에서는 비행기를 타고도 스무 시간 이상을 가야 도착할 만큼 무척 멀리 있기도 하죠.
1970년대 초반, 칠레의 기다란 국토 안에서 살아가던 국민들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라는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사회주의 정부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인접 국가였던 자유주의 진영의 미국은 경제적 압박으로 경계했고, 칠레의 군부와 기득권층도 아옌데의 정책에 노골적으로 반발했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 속에서 1973년 9월 11일, 아옌데 정권은 쿠테타에 의해 침몰해 버리고 맙니다. 아옌데 정부의 공군 장성 중 한 명이었던 알베르토 바첼레트도 쿠테타 세력에 의해 고문당하다가 사망하게 되는데요, 이 사람이 바로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의 아버지입니다.
평범한 의대생이었던 미첼도 수차례 고문실에 끌려가 고통을 겪다가 탈출하여 호주, 동독 등을 전전하다가 1979년, 다시 칠레로 돌아와 의사가 되었습니다. 자기 전공을 살려 보건 의료 분야에서 활약하던 미첼이었지만, 아버지를 닮아 국방 분야에도 관심을 가졌던 그녀는 2000년, 보건부 장관에 이어 2002년, 남미 최초로 국방부 장관에 임명됩니다.
 
남미 사회는 여성을 경시하는 풍조가 뿌리 깊게 배어 있는 곳입니다. 서유럽 스페인 문화의 영향을 받은 남미 문화 역시, 스페인 문화처럼 <마초>, 즉 남성 우위를 과시하는 경향이 짙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국방부 장관이 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미첼은 이를 특유의 여성적인 리더십으로 극복해 냅니다.
이와 더불어 그녀는 군 현대화를 앞장서서 주도하였고, 덕분에 군부와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칠레 공군은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비행 점퍼를 선물하기도 했고, 한 장교는 그녀를 1973년 군사 쿠테타 이후 군인을 껴안은 최초의 사회당원이며 국가 화합의 상징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로써 미첼은 자신에 대해 가장 강력한 반대 세력이었던 이들을 가장 튼튼한 지지 기반으로 변화시키는 정치적 능력을 보인 것입니다.
이렇게 차근차근 경력을 쌓은 미첼은 2005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합니다. 12월에 열린 첫 선거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 2006년 1월, 결선투표까지 치르는 치열한 접전 끝에 그녀는 53.49%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칠레뿐 아니라 남미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영광을 안게 됩니다.
그녀가 겪은 정치적 난관은 쉽지 않았고, 두 번의 이혼경력이라는 사생활도 천주교 문화가 주류를 이루는 남미 사회에서는 늘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군부독재의 잔재와 민주화가 섞여있는 칠레의 국내적 현실 역시 어려움 그 자체였지만, 미첼은 특유의 리더십으로 국정을 이끌어 나갔습니다. 그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직언할 수 있는 참모를 곁에 두어야 한다. 현장을 다 가볼 수 없기 때문에 대통령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주변에 둬야 한다. 필요한 것은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 충성심이다. 어떤 경우든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옳지 않다, 이건 이렇게 바꿔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신뢰한다.”
여성 정치인으로서 미첼이 심혈을 기울였던 것 중 하나는 바로 불평등의 해소였습니다. 특히 칠레에서 현격히 낮은 지위에 있던 여성을 위한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갔고, 소득이 적은 이들을 위한 무상 교육, 무상 급식 등을 시작하고 점차 확대했습니다. 특히 2010년, 칠레를 강타한 대지진의 현장에서 그녀의 리더십은 빛을 발했습니다. 지진이 나자 종적을 감췄던 아이티 대통령과는 달리, 대부분의 공공서비스를 하루 만에 회복시키고 각지의 재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꼼꼼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피해 지역을 찾아가 위로하는 한편, 군 장성들에게 질서 회복을 명령하고 긴급 지원물품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그녀는 “칠레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퇴임하는 순간 도리어 미첼의 인기는 최고점을 찍었고, 연임이 금지되어 헌법상 퇴임해야 하는 그녀에게 국민들은 “4년 후에 봅시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4년 후, 거짓말처럼 그녀는 다시 대통령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여성 정치인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긴 해도, 미첼처럼 성공적인 행보를 보이는 정치인은 많지 않습니다. 여기서 성공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많은 이들의 지지와 존경을 받는 것을 뜻하는데요.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은 자신이 직면한 정치적 어려움을 <곧은 신념과 올바른 인성>으로 극복해 냈습니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 권력을 사용하여 자기의 안전을 확보하기 보다는, 희생과 헌신으로 리더의 소임을 다 했던 모습 가운데 그녀는 국민들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수가 사망하였을 때도 <용서할 수 없어도 용서하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긴 채, 비록 장례식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예를 다해 그의 장례식을 치러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원칙을 고수하되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훌륭한 성품 또한 지지자들의 존경을 이끌어낸 요인이 되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북조선에 어머니의 마음으로 인민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 여성 정치인이 등장하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이 바로 그 정치인이 될 수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머지않아 북조선에 민주주의가 실현되었을 때, 이 방송을 듣는 청취자분들 중에서 여성의 따뜻함으로 조국을 품어내는 훌륭한 정치인들이 나오게 되리라 기대해 보며 오늘 방송을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의 김소라였습니다.
여러분, 행복하십시오.
입력 : 2018-06-15 (조회 : 133)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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