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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파랑새 체신소] 정순옥씨가 보고싶은 통일이 엄마에게

방송일 : 2017-04-07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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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한국의 가요 중에 무조건, 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무조건이란 조건 없이 그냥, 이라는 말인데 북한 사람들은 이 무조건을 덮어놓고 혹은 덧대놓고 라고도 하죠.
한 가지를 놓고도 너무나 많은 표현을 할 수 있게 훌륭하게 잘 만들어진 우리나라 한글을 만들어주신 세종대왕님께 저는 방송인의 한 사람으로 새삼스럽게 감사하다는 말이 나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조건 없는 복종이나 헌신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실 수 있지만 북한에 사시는 분들은 살아있는 신 인 김일성의 3대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대를 이어 충성을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내 목숨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일가 3대가 멸족을 당하거나 정치범으로 몰려 평생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현명한 사람들은 그저 덮어놓고 좋다, 옳다, 그러면서 그 제도에 박수를 치면서 살고 있고요.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체신소를 찾으신 정순옥씨 역시 억울하고 고된 삶을 사시면서도 덮어놓고 그 사회, 그 정치가 좋다고만 해야 했던 분입니다. 그래서 정순옥이라는 이름이 엄연히 있음에도 늘 가까운 이웃들에게 덧대놓고 엄마, 라 불렸다고 합니다.
그 덧대놓고 엄마였던 정순옥씨가 오늘은 고향에 살고 계시는 혈육보다 가까운 이웃이었던 통일이 엄마, 아빠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두 분 사이에 어떤 남다른 사연이 있었는지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북한에서도 가장 추운 양강도에서 오랫동안 살다 몇 년 전에 자식들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온 정순옥입니다. 그렇다고 그 곳이 제가 태어난 고향은 아니고요, 하나님을 믿었던 제 부모님들 덕분에 평양에서 살다가 그 추운 산골오지로 우리 가족모두가 부모님들과 함께 추방을 당해서 쫒겨 간 곳이 양강도였습니다.
그렇게 천대 스럽고 고통 스럽던 제 인생이었기에 북한, 하면 사실 별로 즐거운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그렇지만 가난하고 어려운 제 삶에 잠시나마 희망을 주고 기쁨을 주었던 저와 제일 가까운 이웃이었던 통일이 엄마, 아버지와 그 들을 통해 숨어서 몰래 듣기 시작한 한국의 라디오 방송은 제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행복이고 즐거운 추억입니다.
서로 비슷한 정치적 핍박을 받는 사람들이라 우리 두 가족들은 별 말이 없어도 통하는 사람들이었고 서로 한국의 라디오방송도 함께 들을 만큼 가까운 둘도 없는 이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행복한 삶을 살면서도 둘도 없던 이웃이었던 통일이 엄마 아빠가 가끔씩 생각나고 오늘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편지가 그 들에게 꼭 가 닿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보고 싶은 통일이 엄마 아빠에게
추운 겨울이 물러가고 어느덧 꽃이 피는 봄이 왔습니다.
그립고 보고 싶어 마음속에 잊은 적 없는 통일이 엄마, 아빠! 차마 아이들 이름을 그 대로 부를 수 없어 제가 통일이라고 불러봅니다.
제가 누구냐고요? 저는 통일이네와 가장 가깝게 지내던 “덧대놓고”아주머니입니다. 생각나세요?
서로 처지가 비슷했던 탓에 누구보다 가깝고 북한에서는 해서는 안 될 소리도  털어놓고 할 정도로 우리 두 가족은 남달리 가까웠지요.
어느 날, 서로 생활총화의 헛된 놀음을 두고 이런저런 한담을 하다가 제가 “덧대놓고 잘못했다고 해라” 이 한마디를 하는 바람에 그 날부터 덧대놓고 아주머니가 되었던 정수엄마입니다. 그렇게 저는 정수엄마, 라는 이름보다 덧대놓고 아주머니로 더 잘 통했지요.
보고 싶은 통일이 아빠, 불편한 시력을 가지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매일 땅을 뚜지고 일을 하느라 늘 힘들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렇게 삶이 고달플 때마다 미신을 찾아 위로받기를 원하는 통일이 엄마를 보며 통일이 아빠가 제게 이런 말을 했죠. “사회주의는 인간을 우상화해 백성을 다스리고 자본주의는 없는 하나님을 신격화 해 사람을 다스린다.”
그 당시 전 그 말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어요. 하지만 지금 저는 인간우상화가 실패한 북한을 떠나 하나님을 우상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님의 신실한 신자가 되어 살아가고 있어요.
늘 불편한 몸으로 한 해 농사를 하느라 손발이 따로 없던 통일이 엄마가 유난히 한국노래를 많이 알고 흥얼거리고 자식들까지 함께 부르던 모습이 잊혀 지지 않아요.  
전 서로 잘 있다는 소식조차 전할 길 없어 이렇게 어렵게 편지를 하게 된 이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요. 그리고 이 밤, 덧대놓고 아주머니가 보내는 이 편지를 통일이 아빠, 엄마가 들을 수만 있다면 저는 더 바랄 것이 없어요.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시죠? 저는 98년 가을 통일이 아빠 엄마와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탈북에 성공했고요. 그 동안 속고만 산 세월을 봉창이라도 하듯 넘치는 행복, 넘치는 풍요 속에 한국에서 잘살고 있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해외여행을 다니며 한가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며 남의나라에 사는 슬픔과 설음을 얼마나 뼈저리게 느꼈는지 아세요.
늘 눈칫밥에 북송의 위기가 그림자처럼 따르던 지긋지긋한 난민 같은 삶을 벗어나 제가 모든 사람이 자유로운 자유대한민국으로 온지도 벌써 10년이 되어 옵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하나님을 믿었다는 죄로 평양에서 쫒겨나 그 곳까지 흘러갔던 저였고 그 런 부모 덕분에 꿈도 희망도, 미래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덧대놓고 잘못했다, 덧대놓고 그들이 옳다고만 하면서 바보처럼 산 저였습니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어느 부모라고 다르랴 만 그 나라에서는 감히 꿀 수도 없던 꿈을 제 자식들은 이 땅에서 마음껏 꽃피우고 있어요. 북한에서는 문 열고 집을 나서는 자식들의 뒷모습이 항상 불안했는데 지금은 자식들의 뒷모습에서 엄마 된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어요.
돌아보면 제가 북에서 산 세월이 꿈인지, 아님 한국에서 산 세월이 꿈인지, 분명 어느 하나는 꿈이었을 텐데.. 싶을 때가 많아요.
어제 저는 서울역에 가서 자원봉사를 했어요. 참, 통일이 아빠, 엄마, 자원봉사란 말도 낯설죠? 자원봉사는 나 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제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거든요.
이런 저런 사정으로 어려운 분들에게 점심을 챙겨주는데 하얀 이밥에 계란찜, 빨간 김치가 든 도시락을 드리고 따스한 무국에 간식으로 빵에 우유까지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하던 이 도시락이 대한민국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한 끼 점심식사였어요. 
누구도 더 욕심내지도 않고 당연하게 점심식사를 제공받는 이런 모습은 대한민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저는 자원봉사에 참여할 때마다 너무나 큰 감동을 받곤 해요.
통일이 아빠, 여기 남조선은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밥을 굶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여기도 누가 더 많이 가질까, 누가 더 잘 살까 이런 경쟁은 치열하거든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분명 다른 것은 많지만 북한처럼 국민들이 굶어죽게 내 버려두는 일은 절대 없어요. 
통일이 아빠엄마, 대한민국의 4월은 꽃 속에 묻힙니다. 여기 사람들은 꽃 속에 묻혀 살면서도 철마다 꽃 축제를 열고 차타고 일부러 꽃구경을 다녀요.
생각해 보면 북한에도 분명 꽃은 폈지만 일상이 즐겁지 않고 굶어죽지 않으려고 뛰어다니다보니 꽃은 그저 절로 피었다 지는 것 인줄만 알았지 축제를 열고 구경을 다닌다는 말은 저도 여기 남조선에 와서야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여름에는 덥다고 시원한 바다로, 계곡으로 피서를 다니고 가을이면 단풍구경, 겨울에는 겨울대로 겨울 축제를 즐겨요.
저도 아들 둘, 딸 하나, 다 차가 있고 해마다 산으로 바다로 피서를 다니고 있으니 제가 북한에서 살고 있었더라면 감히 상상도 못 했을 호강을 하는겁니다.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행복한 순간들이면 통일이 아빠, 엄마 생각이 간절합니다.
종일 땀 흘리며 흙과 씨름을 하다보면 옷인지 넝마인지 모를 모습이 되고 그럴 때마다 통일이 엄마가 하던 말이 생각나요? “우린 언제면 잘 먹어보고 미끌미끌한 옷을 입어보나?”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미끌미끌한 옷은 대체 어떤 것일지, 감조차 잡지 못했어요. 
근데 지금 나는 미끌미끌한 옷이 너무 많아 매일 무엇을 입을지가 고민인 나라에 살고 있고 그때 통일이 엄마 말이 무슨 뜻 이였는지를 알게 되었어요.
참으로 통일이 아빠, 엄마는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긴 사람들이고 고향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매운 것을 유별나게 좋아하던 통일이 아버지, 정말 그립 습니다.
배추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빨갛게 양념을 한 김장김치를 먹을 때마다 매운 것을 좋아하던 통일이 아빠 생각이 납니다.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맛없던 것이 북한의 음식들이지만 그 맛이 고향의 맛이어서 고향에 대한 추억을 더 올리면 가끔을 그립기도 합니다.
참, 통일이 아빠, 우리 서로 머리를 맞대고 숨소리까지 죽여 가며 밤마다 듣던 한국방송 생각이 나세요.
안 그래도 늘 굶주려있는 우리에게 방송에서 먹자골목을 소개하는 시간이면 귀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침을 삼키곤 했죠.
북한에서는 지짐, 한국에서는 전이라고 하는 음식을 소개할 때면 고소한 기름 냄새가 우리 코에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고 방송 끝에 흥겨운 음악이 나올 때에는 그 장단에 맞추어 어깨까지 들썩이던 수많은 밤들, 
북한에서는 귀로만 맛보던 전이 넘치는 먹자골목이 한국에는 어디가나 있고 그 신비한 세상에서 지금 제가 살고 있답니다.
그런데 통일이네는 아직도 그 맛난 음식들을 귀로만 맛보며 살고 있을 생각을 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부지깽이도 뛴다는 어느 해 가을이었죠?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하고도 저녁이 되면 한국의 음악방송을 들으려고 하던 일도 내 던지고 방으로 숨어들어가던 딸들 생각이 납니다.
저도 그 때 통일이네 딸들에게 한국노래를 배웠는데 그 노랫말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눈물 먹고 행복은 크네 바람불어도 눈이 내려도 사랑만은 안고 살았네”
그렇게 한국라디오방송을 몰래 들으며, 어떤 날에는 드라마를 몰래 보며 조금씩 익힌 한국 말씨가 어느덧 나에게도 익숙해지고 있어요.
사람의 간을 녹이는 서울 말씨, 그 방송을 듣던 어느 날, 통일이 아빠가 “야! 저 여자 한 번 안아보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 이러면서 실없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다 같이 한바탕 웃던 일이 어제 같아요.
하긴 목청이 찢어져라 고함을 치며 혁명을 부르짖던 북한의 아나운서들과는 너무 다른 한국아나운서들의 그 목소리에 저도 홀딱 반할정도였어요.
통일이 아빠, 엄마, 그 땅에도 봄은 오고 있죠?
“봄이 오는 것이 제일 무섭다”그러시던 통일이 아빠 말이 생각납니다.
배불리 먹지도 못하고 여윈 몸에 쟁기로 땅을 세 번 찍기도 어렵다, 던 통일이 아빠의 목소리가 새삼 제 가슴을 허빕니다.
전 아무런 도움도 위로도 드릴 수 없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부디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통일은 언젠가 반드시 옵니다. 통일을 바라는 남과 북의 염원은 하늘에 닿았고 북한의 독재체제를 끝장내려는 전 세계의 움직임도 바쁩니다.
그러니 부디 힘내시고 살아만 계셔주세요. 통일이 되면 이 덧대놓고 아줌마가 제일 먼저 달려갈게요. 꼭 기다려 주세요.
그럼 오늘 편지는 여기서 마칠게요.
안녕히 계세요. ~~서울에서 덧대놓고 아줌마가 ~~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무조건적인 충성심, 무조건 적인 복종만 강요하는 북한에서 덮어놓고 잘못했다고, 만 해야 살 수 있기에 덧대놓고 그렇게 사셨다는 정순옥씨의 이야기였습니다.
고탈프고 어려운 북한 같은 나라에서 서민들이 그 나마 버티고 살 용기를 주었던 한국방송, 자칫 잘 못 걸리면 온 가족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야 하는 커다란 위험이 있었지만 그래도 한국라디오방송을 듣는 그 순간만은 배고픔도 어려움도 잊고 거기에서 새 힘을 얻었다던 정순옥씨와 통일이 엄마, 아빠 이야기 저도 참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낮에는 사회주의에 박수를 치고 밤이면 자본주의에 환호하는 이런 분들이 세월이 갈수록 더 많아졌으면 저도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덧대놓고 아줌마가 가슴으로 전하는 편지를 북한 사시는 통일이 아빠, 엄마가 꼭 들으시길 저도 간절히 바라면서 그럼 오늘 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7-04-07 (조회 : 111)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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