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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곽선옥 씨가 그립고 보고 싶은 딸에게

방송일 : 2018-05-18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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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봄, 하면 당연히 꽃이 먼저겠죠. 북한에도 흔한 진달래. 철쭉이 자기 자태를 마음껏 뽐내는 5월이 왔습니다. 잎보다 먼저 꽃이 피는 진달래와 달리 철쭉은 잎과 꽃이 동시에 피는 아름다운 꽃입니다.
철쭉은 진달래와 달리 사람이 먹을 수는 없는 꽃이죠.
제가 얼마 전에 사천 황매산 철쭉축제장에 가 보았습니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작품이 되는 황매산 철쭉은 1000미터에 가까운 군락지와 함께 볼거리 먹 거리 즐길 거리가 넘치는 곳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남쪽바닷가가 지척인 사천 황매산 철쭉군락지는 원래 그렇게 유명한 곳은 아니었다고 해요. 언젠가부터 방목지로 쓰이는 산등성이에 짐승들을 방목하고 나면 그들이 남긴 철쭉만 남아 삼을 붉게 물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볼거리가 많아지고 입소문을 타고 오늘은 이름난 축제의 장소로도 되었다고 합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체례를 지내는 제단도 있었고 영화 촬영지로도 소문이 나 한 번 갔던 사람은 반드시 다시 찾아 갈 만큼 중독성을 지닌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을 지닌 곳입니다.
그 아름다운 철쭉 축제장울 돌아보면서 저는 언젠가는 북한의 우리 형제자매들과 함께 갈 날을 그려보며 잠시나마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았습니다.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 체신소를 찾으신 곽선옥씨도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행복한 삶을 삵 계시지만 늘 북한에 두고 온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하시면서 따님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그럼 오늘은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을 떠나 한국에 온지도 벌써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늘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것은 북한에 두고 온 제 딸 생각입니다.
살길을 찾아 떠난 저의 탈북의 길이 이렇게 한국으로 이어질 줄 미처 몰랐지만 그 길이 사랑하는 자식과 영원히 헤어지는 영 이별이 될 줄은 더더욱 꿈에도 몰랐습니다.
내 딸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국으로 온 나 때문에 어떤 불이익을 받고 있는지, 매일이 근심이고 걱정입니다. 그러다가 북한개혁방송의 파랑새체신소가 이런 안타까운 편지를 전해 준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저는 제 목소리가 우리 딸에게 꼭 전해지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그립고 보고 싶은 딸 진옥이 에게
진옥아, 그 동안 잘 있었니?
내가 고향을 뒤로 하고 살길을 찾아 두만강을 건넌 후 하루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은 바로 너의 생사여부 때문이다.
나로 인해 네가 어떤 불이익을 받지나 않았는지? 그 모진 세월 속에 하루하루 연명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 삶인지를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더욱 마음이 무거워지는구나.
고향을 떠난 엄마 때문에 네가 얼마나 괴로움과 학대를 받았을 것인가, 를 생각하면 잠자리에 누워도 잠에 들 수가 없어 뜬 눈으로 지샌 밤이 얼마인지 모른다.
그립고 보고 싶은 딸 진옥아, 귀한 내 딸, 몸 건강은 어떠한지, 그리고 정빈이와 정희도 잘 자라고 있겠지, 또, 정빈이 아버지는 나를 원망하고 있지나 않는지, 직장에는 잘 다니고 있는지.... 매일 눈을 뜨고 잠을 잘 때마다 세월이 갈수록 근심만 쌓여간다. 
때 없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손자, 손녀가 얼마나 보고 싶은지 나는 어떤 날에는 그 또래 애들이 다니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가서 또래 아이들을 넋 없이 멍 하니 바라보곤 한단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정빈아, 정희야, 저도 모르게 손자들 이름을 부르며 울며 집으로 돌아 온 적이 얼마인지 모른다.
그립고 보고 싶은 딸 진옥아, 나도 이제는 늙었는가보다. 엄마가 두만강을 건너기 전까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니? 그러다가 이렇게 두만강도 무사히 건너고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누구보다 잘 살고 있지만 너에게 소식 한 장전할 길이 없어 더 안타까웠다.
그런데 그렇게 답답하던 차에 이렇게 고향에 편지를 보낼 수 있는 곳이 생겼다고 기쁜 마음으로 편지를 섰다.
나의 소식이 참말로 내 딸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진옥아, 너도 알다시피 두만강이 오늘처럼 설음 많고 한 많은 강이 된 적이 일찍이 없었다. 우리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안고 내나라 북변을 유유히 흐르는 두만강이 오늘은 눈물의 강, 죽음의 강으로 불리고 도망 강,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구비마다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면 한 많은 원한을 이야기 하는 것 같거든. 
그립고 보고 싶은 딸 진옥아, 엄마도 두만강을 건너려고 마음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니, 그리고 너랑 헤어지면서까지 두만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너도 잘 알거라고 믿는다.
내 나이 어언 70이 다 되도록 북한이라는 나라에서 출신성분이 좋지 않다는 한 가지 이유로 받아 온 수모가 얼마이고 억울하게 겪어야 했던 불이익은 얼마인지 엄마가 자식들 모르게 흘린 눈물이 얼마인지 너는 다 알 수 없을 것이다.
우선 나는 물론이고 자식들까지 대학에 가려고 해도 갈 수 없었고 그 것을 보는 내 가슴은 얼마나 괴롭고 무거웠는지 모를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런 저런 아픔을 뒤로하고 우선은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고 모든 것을 다 했고 어디에 내 놓아도 당당하게 너희들을 키우려고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아왔다.
다행이 내 자식들은 다른 집 자식들보다 무엇이든 잘 했고 부모를 실망시키지는 않았지.
그리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마음을 조금 놓았었지.
그러나 억눌려 살아 온 내 인생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억울하기 짝이 없었고  당장의 끼니 걱정으로 어절 수 없이 나는 두만강을 건너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북한을 떠났지만 지금도 생각해보면 양지바른 언덕아래 내 고향마을이 떠오르고 냇가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이 눈에 밟힌다. 아마도 내 한 생에서 그 시절이 제일 행복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 시절마저 맘속에서 지워진다면 나는 한 생을 거의 지옥 속에서 산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립고 보고 싶은 딸 진옥아, 북한에서 제일 싫어하고 제일 나쁜 나라라고 선전 하던 그 남조선에서 지금 엄마가 살고 있다. 그런데 눈부신 야경과 발전된 경제, 그리고 외화 돈이 아니래도 이 세상에 사고 싶은 것을 다 구매할 수 있는 그런 별천지가 한국이다.
엄마는 이 별천지 같은 한국 생활을 너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슬프고 가슴이 아프다. 사람이 살만한 곳에 너를 두고 왔다면 엄마 마음이 이다지 아프지는 않을 것 같다.  진옥아, 하지만 너는 아직 젊었으니 마음속에 꿈을 키우고 그 어려운 역경을 잘 견디어 내리라 엄마는 믿는다.
지금까지도 항상 그래왔지만 너와 너의 가족 항상 모두 무사하게 건강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엄마는 헤어진 우리모녀가 언제면 다시 만날까, 자나 깨나 애타게 그리워하며 괴로움에 몸부림친다. 엄마는 이 안타까운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정말 모르겠구나.
하지만 진옥아, 언젠가는 우리가 반드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아무쪼록 열심히 살아다오. 우리는 멀고도 가까운 한 강토에서 산다는 것, 우리는 늘 한 하늘을 이고 살고 한 곳만 바라보며 산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이 순간, 나는 네 생활이 어렵고 막막할 것이 새삼스럽게 걱정되고 더 가슴이 아파지는구나. 그러나 어떻게 하든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기면서 아프지 말고 살아만 있어주기를 엄마는 간절히 바랄 뿐이다.
하고 싶은 말은 끝도 없지만 그립고 보고 싶은 딸 진옥아, 오늘 편지는 여기서 마치려고 한다.
이제 통일이 멀지 않았으니 그 날이 오면 우리 서로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자꾸나. 오늘은 이만, 안녕히.
~너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사랑하는 엄마가~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북한과 남한 사회를 다 경험하시고 세상풍파를 다 겪으시며 살아오신 곽선옥씨가 따님에게 쓰신 편지 사연 이었습니다.
살붙이 같은 자식과 부모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살 수 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이야기, 전해드리는 제 마음도 저려오는 아픈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 어느 부모가 자기자식이 귀하지 않겠냐만 어쩌다 우리는 서로 안타까이 찾고 부르는 이산가족이 되었을까요?
인간의 존엄을 지켜주고 자유가 주어지고 먹고 살 수 있는 생활환경이 주어진 곳으로 자유를 찾아 북한을 떠나는 이런 이산가족들이 이제 더는 생겨나지 말아야 할 텐데,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북한에 사시는 곽선옥씨의 따님 분께서 어머니의 진심이 담긴 이 편지를 꼭 들으시기를, 그래서 어머님의 부탁대로 열심히 잘 살아주시기를 저도 간절히 바랍니다.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8-05-18 (조회 : 93)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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