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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끌어 온 여성

13회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살아있는 역사 아웅산 수지 외교장관

방송일 : 2018-05-18  |  진행 : 김소라  |  시간 :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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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시간에 이어 오늘도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나간 현대 여성 정치인의 세계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동남아시아의 미얀마에서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아웅산 수지 외교 장관입니다.
미얀마, 옛날 이름으로는 버마라 불리던 이 나라는 한반도의 서남단에 위치한 곳으로 태국, 방글라데시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수지 여사는 1945년 6월 19일, 아버지 아웅 산과 어머니 킨 치 사이에서 세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였던 아웅 산 장군은 당시 버마 국민들에게 국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버마는 1824년부터 영국과의 세 차례 격렬한 전쟁 끝에 패배하여 1886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이 때 아웅 산은 독립투사로 영국과 일본에 무력 항쟁을 하면서 당시 버마의 독립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는 3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차례대로 영국, 그리고 일본 세력을 버마에서 몰아내며 약 60여 년에 걸친 버마의 식민지 지배를 끝낸, 버마 건국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2년 후, 그의 나이 32세에 정적에 의해 암살을 당하고 맙니다.
아버지를 잃은 후, 수지 여사는 1960년 인도 대사로 부임하게 된 어머니를 따라 인도로 건너갔습니다. 2년 뒤 1962년, 아버지의 동료였던 네 윈이 일으킨 군사 쿠테타로 조국은 군부 사회주의 독재정권으로 바뀌어 버림에 따라 수지 여사는 어쩔 수 없는 망명 상태로 외국을 떠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 경제, 철학을 공부하고 미국 뉴욕에 있는 국제 연합에서 일했습니다. 그리곤 영국인과 결혼하여 아들을 키우며 평범한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1988년, 그녀는 조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됩니다. 당시 버마는 26년간 계속된 군부 독재에 따른 경제파탄과 인권유린으로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아웅 산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네 윈은 변절하여 군부정권의 최고 권력을 잡고 탐욕스러운 독재자로 변했습니다. 버마의 군사 독재정권은 강력한 쇄국 정책을 펴고, 서방사회를 적대시하며 불교의 색채를 입힌 버마식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표방했습니다. 시대 착오적인 정책, 그리고 독재 권력의 부정부패는 버마의 경제를 곤두박질하게 했고, 국민들은 폭력과 가난 속에서 신음했습니다.
군부 독재정권은 독재에 맞서며 시위하던 대학생들에게 총격을 가했습니다. 그동안 참고 있던 국민들이 드디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988년 8월 8일, 버마의 수도 양곤의 대학생들, 불교 승려들, 시민들이 대거 참여한 이른바 8888항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군부는 여전히 폭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하려 했지만, 성난 민심은 쉽게 잠재워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병간호로 인해 마침 버마에 돌아와 있던 수지 여사는 이 항쟁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 자신이 조국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민중들은 국민영웅 아웅 산의 딸이 나서서 군부에 대항하고 새로운 세상을 가져다  주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수지 여사는 이러한 부름에 응하여 8월 15일, 국민들의 요구에 응할 것을 촉구하는 <화평안>을 군부에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8월 26일에는 희생당한 시위대의 시신이 안치된 양곤 종합병원 앞에서 수십만의 버마 국민들이 운집한 가운데 민주화를 위한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민주주의민족동맹을 만들고 그 의장이 되었으며, 결국 네 윈을 물러나도록 만들었습니다. 1990년 5월, 총선거를 실시한 결과 수지 여사가 결성한 민주주의민족동맹이 82%의 지지를 받아 압승했습니다. 그러나 군부는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고, 도리어 민주 인사 수백 명을 투옥했습니다. 다시금 총과 칼이 다스리는 군부의 공포정치가 시작된 것입니다.
수지 여사는 가택연금. 즉 감금되어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맙니다. 그녀의 민주화 운동은 그 공적을 인정받아 199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무려 12년이라는 세월동안 감금되어 있었기에, 남편과 아들이 그녀의 사진을 들고 대신 참석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녀에 대한 감금은 약 24년 동안이나 지속됐습니다. 그러나 수지 여사는 끈질기게 버텼습니다. 남편이 죽었을 때 장례식 참석을 위한 출국도 거부했고, ‘미얀마’로 이름을 바꾼 버마 군부가 눈엣가시와도 같은 수지 여사의 출국을 권유했음에도 끝까지 조국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녀는 1992년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패한 정권은 권력이 아니라 공포입니다.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를 부패시키고, 권력의 채찍에 대한 공포는 복종하는 사람들을 타락 시킵니다.”
독재에 맞선 그녀는 인권과 평화를 수호하는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에 역대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이 모여 그녀의 석방을 요구하고, 미얀마의 군부 독재를 규탄하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2010년, 감금에서 풀려난 수지 여사는 2012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무려 85%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습니다. 헌법상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그녀였지만 대통령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한 채 외교장관이라는 이름으로 미얀마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수지 여사는 평화와 인권을 수호하는 상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1991년 노벨 평화상 수상을 시작으로 같은 해 유럽 국회 인권상, 2000년에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자유의 대통령 메달 수여, 2002년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 인권상 수상, 2004년 남조선 광주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기념하여 수여한 광주 인권상 수상, 2009년과 2012년에는 국제사면위원회 엠네스티에서 수여한 양심대사상을 받는 등,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힘쓴 공적들을 충분히 인정받은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처럼 한 때 곧은 절개로 조국의 민주화에 목숨을 바쳤던 그녀가 최근에는 소수민족 탄압과 관련하여 비난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군부에 맞서던 수지 여사의 현재 행보는 마치 군부와 연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지 여사의 인생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현재 그녀의 모습이 안일함에서 온 변심이든 순간적인 판단 착오이든 간에, 수지 여사는 자신의 인생 전부를 바쳐 조국의 평화를 이룩하고자 노력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긍정과 부정을 둘 다 지니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긍정의 힘을 강화하고 부정의 힘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역시 인간의 능력 범위 내에 있습니다. 우리 세계에서 절대적인 평화는 도달할 수 없는 목표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그곳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오늘 방송을 들으신 청취자 여러분들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평화를 꿈꾸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언젠가 북조선 민주화를 위해 누군가의 힘이 필요한 순간,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과 마음을 아낌없이 쏟아낼 수 있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진출처 : www.India.com
입력 : 2018-05-18 (조회 : 41)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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