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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일본 자전거 여행 (6) 여행의 끝, 다시 꿈꾸는 여행

방송일 : 2018-04-04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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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내 맘대로 떠나는 자유 여행’의 이야기꾼, 장은광입니다.
이제 자전거로 달린 날들도 제법 많이 쌓여와, 일본의 수도 도쿄도 120km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네요. 물론 그 도쿄를 가기 위해선,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산맥 속 하코네 고개를 넘어야하지만, 도로 표지판에는 고작 40km면 저 산 너머에 있는 도시에 도착한다고 되어 있으니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천천히 달려도, 보통은 1시간에 10km 이상 달려왔었거든요.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너무나도 순진한 착각이었어요. 오르막길이 시작된 도시는 바다 옆에 있던 도시였는데요, 가장 높은 지점까지의 높이 차이가 거의 900m에 달할 정도로, 길이로는 10km가 훌쩍 넘는 오르막길이 포함된 거리였기 때문이었죠.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냥 달려도 다리가 터지려고 할 만큼 힘든 오르막인데, 짐이 잔뜩 실린 자전거 페달은 도저히 밟을 수가 없었거든요.
점차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낑낑대며 올라가다가, 근처 인가에서 물을 얻으며 물어보았지만, 아직 하코네 고개 근처도 가지 못했다고 하네요. 그저 점차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묵묵히 자전거를 끌고 갑니다.
저 아래쪽, 우리가 두어 시간 전에 출발한 도시는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멋진 야경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만, 우리는 허기에 지쳐가며 고생을 하고 있었어요. 옆에서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이 마치 놀리는 듯 기운찬 소리를 내며 올라가고들 있었죠. 나름대로는 자전거 여행의 낭만, 그러니까 제 발로 밟아가며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그 여유로움에 자부심을 느껴오곤 했었는데요, 그 순간만큼은 정말 기름 넣고 달려가는 저 엔진들이 너무나도 부럽고 부러웠었죠.
식당 같은 건 보이지 않아, 작은 매점에서 음료수와 작은 빵 하나로 허기를 때웠습니다. 그 힘으로 또 한참 산을 오릅니다. 산 중턱 쯤 이르렀을까요. 가로등이 거의 없어 너무나 어둡고, 또 조용합니다. 밤이 깊어져 지나가는 차량도 거의 없었죠. 간혹 산새 울음소리만 불길한 메아리를 울리고 있었어요.
왠지 저 어둠 너머의 무언가가 노려보고 있는 듯한 느낌. 무지막지한 오르막은, 반대 방향으로 보면 무지막지한 내리막길이죠. 그 말은, 많은 교통사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도 많겠죠.
갑작스레, 어떤 소름이 산이슬처럼 피부에 스며듭니다. 이미 자전거에는 차가운 이슬이 내려앉았고, 제 옷도 땀과 이슬로 흠뻑 젖어있는 상태였어요. 새삼 한기를 느끼며, 빨리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했어요.
친구도 비슷한 기분이었던 것 같아요. 끝말잇기 같은 것을 하며 오르막길을 걸어갔죠. 언제고 잊혀진 서로의 첫사랑 이름을 불러가며, 또 이상한 문장들을 만들어가며 서로 웃고 떠들었죠. 그러다보니 음산하던 산이 어느새 편안해지고, 이슬이 마르듯 두려움이 사라지고 힘이 납니다. 친구가 있어 다행이죠. 혼자서는 도저히 이 산을 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길고 긴 오르막이 끝나서, 이제는 내리막이 이어지겠구나 싶었는데, 얼마 내려가지 않아 한 마을이 나옵니다. 산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유람선이 다니는 매우 큰 호수가 있었어요. 아하, 화산 호수였네요. 이 하코네 지역은 일본에서도 매우 유명한 관광지로, 후지산이 조망되는 멋드러진 풍경과 함께 온천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밤 늦게 도착한 우리에게 그런 관광을 할 마음도, 시간도 돈도 없었죠. 다시 조그만 언덕을 넘으면, 이제 이 지긋지긋한 하코네 고개를 지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래도 이 마을엔 간이매점이 있어, 따끈한 우동 한 그릇 먹으며 허기를 달랠 수 있었죠. 자 다시 힘을 내서 오르막을 올라가 보기로 합니다.
열심히 오르고 올라가니, 마침내 도쿄와 오사카를 관통하는 일본 국도 1호선의 가장 높은 지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표시가 되어 있더군요. 해발고도 874미터. 바닷가에서 여기까지, 이 무거운 자전거를 끌면서 수십 키로를 지나서 올라온 것에 감격해서, 우리는 마치 정상을 정복한 등산가마냥 서로 축하하며 사진을 찍어주곤 했죠.
그리고 시작된 내리막길. 와우, 자전거로 자동차 속력을 내게 될 줄이야. 최고 시속 60km에 도달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구불구불한 내리막길을 30분 넘게 달렸어요. 중간 중간 제동을 하지 않았다면, 분명 차에 치이거나 도로가로 미끄러지거나 했겠죠. 문제는 이 속도감 속에서 정말 기분이 좋아지고 신이 나서, 별다른 공포심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죠. 빠른 속도를 즐기는 폭주족의 기분을 알 것만도 같았죠. 지금 생각하면 참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는데요, 그 때는 페달 한 번 밟지 않고 몇 십 킬로미터를 달리는 기분이 말 그대로 날아갈 것만 같았어요.
마침내 우리 여행의 최대 고비였던 하코네 고개를 넘고야 말았습니다. 그 이후엔, 더 이상의 고비랄 것이 없었어요. 도쿄까지는 쭉 뻗은 좋은 길들이 이어지는, 별다른 오르막도 멋드러진 경치도 없는 도심지의 평지일 뿐이거든요. 그래도 도쿄에 입성해, 도쿄의 상징인 도쿄타워를 지나며, 마침내 일본 국도 1호선의 종점에 도달했을 때는 정말 뿌듯했답니다.
길고 긴 자전거 여행이었어요. 무려 18일을 달려왔었죠. 온 몸은 새카맣게 타고, 상처들은 따끔거렸죠. 몸에서는 땀냄새가 가득했죠.
하지만 우리는 결국 성공했어요. 공원에서 노숙하지 않았던 날이 드물고, 남들 다 가는 관광지 별로 가본 적 없었고, 값비싼 음식들도 먹어본 적 없었지만. 우리는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 무려 2000km가 넘는 거리를 페달로 밟아가며 달려왔었던 것이에요.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더 달리고도 싶었죠. 하지만 여행 자금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어요. 곧 돌아가야 했죠.
그래서 우리는 도쿄를 별로 둘러보질 못했어요. 밤늦게 도착해서 어떻게 밤을 지새우다가, 다음 날 여기저기 둘러보고 난 뒤 야간열차 표를 끊어 여행의 출발지였던 후쿠오카로 향했어요. 보통은 비행기를 타거나 고속 열차를 타는 거리, 돈이 없는 우리는 완행열차로만 환승해가며 가야했기에, 무려 23시간이 걸리는 엄청난 여정이었죠.
그래도 하루 종일 굴려야했던 우리의 다리가 이 날은 온전히 쉴 수 있었어요. 자전거 타기를 멈추자, 정말 피로가 몰려오더라구요.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 우리가 거의 3주 가까운 시간동안 밟아왔던 땅들을 되돌아가는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익숙한 강을 지나고, 사건사고가 있었던 도시들을 스쳐지나갑니다. 그렇게 후쿠오카에 도착해서, 부산으로 돌아가는 여객선에 몸을 누이기까지.
마침내 우리의 여행은 끝이 났습니다. 시간과 돈이 소모되었고, 그리고 몸에는 아직도 낫지 않은 흉터가 남기도 했죠. 제가 이 여행에서 무엇을 얻게 되었는지, 정작 여행을 마쳤을 때는 알지 못했어요. 그냥 쉬고 싶은 마음 뿐이었죠.
저는 이 여행 이후, 몇 달 지나지 않아 군 복무를 하기 위해 입대를 했습니다. 자유가 억압되었던 그 시절에, 비로소 내가 여행을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다는 그 자유가 정말로 소중한 것이었구나 하구요.’ 그리고 위기를 견뎌내어 목표를 달성하는 그 즐거움과, 낯선 나라 속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을 만끽하는 그 즐거움도요.
그래서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새로운 여행을 떠날 꿈을. 그래서 군 복무를 마친 뒤에는, 어떻게든 시간적 여유가 생기게 되면 꼭 여행을 떠나려고 계획을 세웠어요. 저보다 더 많이 여행을 즐기는 분들도 정말 많지만, 그래도 저는 나름대로 제가 생각하는 곳들을 어느 정도 다녀올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내 맘대로 떠나는 자유 여행’, 제 2부는 동남아시아로 떠난 여행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세 번에 걸쳐, 인도차이나 반도의 네 나라를 여행했거든요.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인도차이나의 중심, 태국 방콕으로부터 시작하려고 해요. 많은 기대 부탁드리구요, 그럼 다음에 뵙길 바랍니다.
입력 : 2018-04-02 (조회 : 107)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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