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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파랑새 체신소] 차명순씨가 그리운 동생에게

방송일 : 2017-12-22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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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해마다 12월이면 대한민국의 거리에 울려퍼지는 귀에 익은 저 캐럴송이 올 해는 유난히 더 정답습니다.
성탄절을 기념하는 장식등이 거리를 밝히면 올 성탄절엔 어떤 선물을 받을까, 하며 설레는 아이들 마음이 되거든요. 한국에는 날씨가 추워지면 길거리에서 즐길 수 있는 길거리 음식이 아주 많은데요. 군밤, 군고구마, 떡볶이, 붕어빵, 뜨끈한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먹는 어묵까지 이런 건 사실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했거든요.
저는 오늘도 길거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을 먹으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거리에 울려 퍼지는 즐거운 저 캐럴송이 북한에도 울려 퍼질 날이 언제 올까, 북녘 내 혈육들과 붕어빵을 함께 사 먹으며 손잡고 이 거리를 걸어 볼 날이 과연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뜻밖의 큰 것보다 사소한 것에 감동한다고 합니다. 북한의 우리 혈육들과 소박하고 잔잔한 이 감동을 함께 할 날을 그려보면 벌써부터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행복해 집니다. 행복하고 따듯한 생각은 따뜻한 행동을 낳는다고 하니까 저도 올 겨울에는 자원봉사도 많이 하고 저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열심히 도우려고 합니다.
따뜻한 생각에 잠기게 하는 고요한 이 저녁, 우리 파랑새체신소를 찾으신 차명순씨는 고향에 두고 오신 그리운 동생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에 사는 차명순입니다.
제가 한국에 온지도 벌써 8년도 넘었습니다.
사랑하는 자식들이 먼저 탈북을 하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엄마인 저도 탈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험난한 길이었지만 오직 자식들을 찾아야 한다는 모성애 하나만 가지고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 하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사람, 제 동생이 못 견디게 그립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 잊혀질 번도 하겠건만 세월이 갈수록 더욱더 또렷한 기억으로 내 가슴에 남아 있는 사랑하는 우리 동생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저는 제 동생에게 쓰는 이 편지가  꼭 전달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립고 그리운 동생에게

사랑하는 동생 명애야, 너와 헤어진지도 9년이 되었구나.
강산이 한 번 변했을 그 긴 세월 너나 네 자식들 모두 다 많이 변했을 거야.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진옥이 아버지를 비롯해 네네 식구 다 무고한지?
너와 헤어 진지 근 10년이 되어 오지만 언니는 너를 한 번도 잊어 본 적이 없어. 네 얼굴을 떠 올리면 오늘은 무엇을 하고 또 무엇을 먹었을까, 무슨 장사를 하면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끝없는 걱정만 하고 있단다.
네 딸 진옥이는 사회에 나와 직장에 다니고 있겠지?
북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도 그렇게 간고하게 살고 있다고 하더라.
그런 말을 듣는 날이면 내 동생네는 어쩌고 있는지 더 걱정되고 도와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분이야.
진옥아, 너도 알다시피 내가 북한에서 떠날 때 우리 딸들을 찾아온다고 탈북을 하지 않았니?
우리 딸들이 먼저 집을 떠난 다음에 내가 몇 년을 기다리다가 더는 기다릴 수가 없어 나 역시 두만강을 건너지 않았니.
그런데 중국은 땅이 얼마나 넓은지 딸들의 소식을 어디에서도 알아 볼 수 없는데다 매일같이 중국공안들이 북한 사람들을 잡아서 북송을 하는 바람에 중국에서 내 한 몸도 살 수 없게 되었어.
명애야, 난 그냥 무작정 그렇게 중국으로 갔다가 잡히지 않으려고 매일 숨어 살았어. 그러다가 북한 사람들이 한국으로 많이 갔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는데 혹시 그러면 내 딸들도 한국으로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 역시 한국으로 오게 되었어.
무작정 그렇게 한국으로 왔지만 여기에서도 우리 딸들 소식을 듣지 못했다.
명애야, 그렇게 돼서 언니는 딸들 찾으러 떠났다가 결국 자식들은 찾지 못했지만 나는 한국에서 참 잘고 있다.
네 딸도 그렇지만 내 딸들도 이제는 시집도 갔을 나이고 아마 손자들도 있겠지만 이제는 나 혼자만이 세상에 남았어.
명애야, 나는 지금 비록 혼자 살고 있지만 나라에서 집도 받았고 기초수급자로 돈도 주는 바람에 먹고 살 걱정은 안 하고 살고 있어.
한국은 노인복지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보다 노인들이 살기가 너무 좋은 나라야.
나는 간혹 상점에서 좋은 옷을 사 입거나 좋은 음식을 먹게 되면 네 생각이 나서 정말 목이 메곤 한다.
매일 눈만 뜨면 무엇을 먹을지, 그 생각만 하며 거지처럼 살던 북한에 비하면 천국이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명절이면 홀로 명절을 보낼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선물도 주고 복지관에서 무료로 구경도 시켜준단다.
매일 먹고 남는 이 좋은 음식, 옷들을 보면 앉으나 서나 마음이 아프고 목이 멘다.
명애야, 지금도 북한은 전기가 부족 할 테지? 캄캄한 밤이면 등잔불 밑에서 배고픔을 달래던 그 긴긴 밤들을 잊을 수가 없구나.
그리고 지금 내 동생이 그 때처럼 그렇게 주린 배를 움켜쥐고 어두운 곳에서 울고 있을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고 눈물만 난다.
비가 오는 날이면 저 비를 내 동생이 다 맞을 테지, 눈이 오면 저 눈보라 속에서 우리 동생이 떨고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만 들어.
북한이 아직도 계속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다고들 하는데 어떨 때는 그렇게 어려운데 내 동생 가족들이 혹시 잘못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무서운 생각까지 들어.
그러다가도 설마 그 곳도 사람이 사는 곳인데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 하고 안심하기도 하고 어쨌든 네 생각을 하는 날에는 밥도 먹고 싶지 않고 종일 북쪽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한단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너와 비슷한 네 또래 나이의 사람들을 보면 스칠 수가 없어 다시 한 번 쳐다보곤 한단다.
사랑하는 내 동생 명애야, 너무 그립고 그리고 보고 싶구나. 금년 한해도 다가고 이제 양력설명절이 가까워 오니 더 간절하게 그리워진다.
명절이면 명절이 돼서 보고 싶고 비가오고 눈 오는 날이면 그 속에서 떨고 있을 가봐 더 그립고  이래서 혈육은 어절 수 없는 거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
남과 북은 몇 시간이면 서로가 오갈 수 있는 크지도 않는 나라인데 우리 한 민족은 언제쯤 서로 마음 놓고 오고 갈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날이 과연 언제 올까, 답답하고 막막한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내 동생 명애야, 그래도 절대로 맥을 놓고 주저않으면 안 돼.
그 날은 반드시 오니까.
너나 나나 씩씩하게 그리고 아프지 말고 살아서 꼭 다시 만나자.
부디 금년겨울을 따뜻이 보내고 온 가족 건강하기를 바라면서 오늘 편지는 이만 하련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서울에서 언니가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헤어진 딸들을 찾아 정처 없이 떠난 탈북의 길이 한국으로까지 이어졌고 결국 사랑하는 동생과도 헤어지게 되었다는 차명순씨의 이야기 잘 들으셨나요?
사람은 목적의식적 존재라 하지만 북한처럼 한치 앞도 가늠이 잘 안 되는 나라에선 이 것도 제대로 지킬 수가 없는가 봅니다.
차명순씨가 비록 사랑하는 딸들을 찾지 못했지만 저는 하늘아래 그 어디선가 그들이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실 거라 확신합니다. 적어도 북한은 떠났으니까요.
그리고 그립고 그리운 차명순씨의 동생 분도 언니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살고 계시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깊어가는 12월의 겨울 밤, 따뜻한 가족들의 상봉이야기를 다시 전할 날이 꼭 오기를 저도 간절히 바라면서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7-12-20 (조회 : 104)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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