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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끌어 온 여성

[세상을 이끌어 온 여성] 9회 청나라의 태평성대를 잉태한 국모, 효장문황후

방송일 : 2018-01-05  |  진행 : 김소라  |  시간 :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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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은 인류 역사를 이끌고 발전시켜온 위인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여성 인물을 떠올린 분은 아마 많지 않으실 겁니다. 인류 역사의 아주 오랜 시간동안, 여성들은 단지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존여비의 벽에 부딪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남성을 위한 역할을 담당하며 살아왔습니다.

여성은 정말 열등하고, 연약하기만 할까요? 그래서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존재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들은 더 이상 불평등을 운명으로, 또한 무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조선개혁방송에서는 북조선 여성들의 자존감을 향상시키고, 이들이 북조선 사회의 주체로 당당히 살아가도록 <세상을 이끌어온 여성>이라는 프로그램을 준비하였습니다.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았던 여러 여성 인물의 삶을 살펴봄으로써, 북조선 여성들도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실력을 쌓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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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나볼 역사 속 위대한 여인은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나라의 기틀을 다졌던 효장문황후입니다.

중국의 기나긴 역사상, 소수민족 출신으로 중국 대륙을 평정하고 제국을 통일한 정권은 단 두 개뿐입니다. 몽고의 사막에서 일어난 징기즈칸의 원 제국과, 여진족인 누르하치가 세운 청 제국이 바로 그것인데요. 청나라는 중국 역사에 3백 년 동안이나 등장하면서 1830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청 제국의 서막은 몽고의 박이제길특 가문과 여진의 애신각라 가문의 결합에 의해 열렸습니다. 강한 권력욕과 힘을 가지고 있던 누르하치는 주위 부족과 동맹 관계를 향상하기 위해 많은 혼사를 거행했는데, 그런 과정에서 청 제국의 탄생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효장황후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실제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적은 없었지만, 지금까지 청 제국의 가장 위대한 통치자 중 한 명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후세의 역사가들은 효장황후가 없었다면 청 제국은 탄생하는 순간 분열했을지도 모른다고 평가합니다.

몽고의 대 초원에서 자라난 효장황후는 원나라 시조인 징기즈칸의 직계 후손이었습니다. 그녀는 청나라 초기의 네 왕조를 경험했고 그 가운데 두 명의 어린 황제를 보필했습니다. 건국 초기의 치열하고 참혹한 정치투쟁 속에서 효장황후는 민첩하고 과감한 결단을 통해 청 제국을 단결과 발전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사람들은 제국 건립과 안정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는 의미에서 이 여인을 흥국태후, 즉 나라를 흥하게 만든 황후라고 불렀습니다.

효장황후는 1613년 3월 28일, 종실 가문의 차녀로 태어납니다. 본명은 박이제길특, 포목포태로, 효장황후라는 이름은 사후에 지어진 엄청난 시호, <효장인선 성헌공의 지덕순휘 익천계 성문황후>를 줄여 만든 것입니다. 그녀는 열 세 살의 나이로 청 제국의 시조인 누르하치의 아들 황태극과 결혼하면서 황실세계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누르하치가 사망하고 1626년 9월 황제에 등극한 황태극은 일후사비, 즉 한명의 황후와 네 명의 황비를 책봉하였습니다. 일후는 박이제길특씨 몽고 과이심 패륵 망고사의 딸로, 효장의 친고모였습니다. 사비는 황태극이 총애했던 네 명의 황비를 지칭하는데, 황태극이 가장 총애했던 사람은 첫 번째 황비이자 효장의 언니였던 신비 해란주였습니다. 효장은 마지막 네 번째 황비였는데, 황태극은 그녀를 별로 총애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후궁들의 정치 참여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효장은 마치 그림자처럼 조용히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효장은 자신의 정치적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도무지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효장에게 위기이자 기회가 찾아옵니다. 1643년 9월, 황태극이 갑작스러운 병으로 사망한 것입니다.

황제의 승하는 폭풍 같은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제국은 분열의 조짐을 보였고, 황제의 형제였던 다이곤과 호격의 권력다툼으로 인해 극도의 긴장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다이곤과 호격은 세력이 비슷했기 때문에 누구도 먼저 황제의 자리에 오르겠다고 나설 수 없었습니다. 효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선황의 총애를 받지 못해 지위가 보잘 것 없었던 그녀이지만, 특유의 총명함으로 정세를 꿰뚫어 볼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다이곤에게 자신의 다섯 살 난 아들, 복림을 황제로 세우자고 제시합니다. 그리고 주변 권력자들에게도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내보이며 아들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 협상을 계속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효장은 자신의 가문과 다이곤 사이의 동맹을 결성하여 호격으로 하여금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이끌었습니다. 효장은 정치권력의 구도를 누구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으며, 무척이나 예리한 혜안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지혜와 역량을 어떤 시기에 어떻게 발휘해야 하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1643년, 마침내 아들 복림이 청의 황제 순치제로 즉위하자, 효장은 다이곤과 연합하여 위협적인 대상이었던 호격을 몰아냈습니다. 이후 다이곤은 전 중국대륙을 향해 진군하며 중국땅의 절반을 정복하였고, 이로 인해 청 제국의 300년 기반이 굳건히 다져지게 됩니다. 한동안 평안했던 청 제국은 다이곤의 사망, 그리고 효장과 순치제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다시금 혼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순치제는 어머니에 의해 좌우되는 정치 섭정, 결혼 동맹, 그리고 후계자 선정 등 많은 부분에서 환멸을 느꼈고, 참다못해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해 버렸습니다.

이에 순치제의 셋째 아들, 애신각라 현엽이 여덟 살의 나이로 황제에 오르게 되는데 이 사람이 바로 강희제입니다. 황제의 나이가 어리니, 조정의 연륜 있는 대신들이 너도 나도 섭정을 하겠다 나서기 시작했는데, 그들을 일컬어 섭정대신이라 합니다. 효장황후는 이들 세력에서 손주를 보호하기 위해 동맹과 숙청을 반복하면서 강희제의 황권을 안정시킵니다.

게다가 효장은 강희제의 교육에도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녀는 황제가 몽고어, 만주어, 한어 등의 문자를 익히고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도록 힘썼습니다. 그 결과 강희제는 학식이 풍부한 제왕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데요, 그는 후일에 “나는 걸음마를 하기 전부터 조모의 가르침을 받았다. 식습관, 행동, 말투 등의 예법을 익혔고 성현의 가르침을 들었다. 어린 시절에는 적잖이 고됐지만 이 노력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었다. 조모가 아니었으면 나는 오늘날의 성공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효장의 공을 치하하기도 했습니다.

효장은 강희의 교육뿐만 아니라 청 제국의 치국 정책에 대해서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1927년에 간행된 청나라 역사서인 <청사고>의 ‘효장문황후전’에는 “태후께서 정사에 간여하지 않으시면 조정은 혼란 속에 빠졌다. 윗전에서 말씀하시면 아래에서는 그대로 따랐다”고까지 기록되었을 정도입니다. 강희 14년, 몽고의 한 세력이었던 포이니라는 인물이 청 제국에 반란을 일으켰을 때, 불안에 떨던 강희제와 달리 효장은 눈부신 용병술을 발휘하여 나라를 지켰습니다. 그녀는 주도면밀하게 사태를 파악하면서 대담하게 군사를 진두지휘했고, 황실의 보석과 비단을 내어 군사금을 충당하였으며 귀족의 사치를 근절했습니다. 이후 강희 26년, 수도에서 지진이 일어나자 효장은 기회를 빌어 손주의 과오를 질책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일부 대신에게 내렸던 부당한 처사나 보필하는 대신을 힘들게 하는 일 등을 조목조목 비판하였습니다. 이러한 효장의 가르침은 강희제를 중국 역사에서 가장 지혜롭고, 검소하고, 인간미 넘치는 황제로 만들었습니다.

평생을 뛰어난 정치가로 살았던 효장황후는 1687년 12월,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지만, 권력을 탐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아들과 손자가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군주가 될 수 있도록 전심을 다해 옆에서 도울 뿐이었습니다. 자기 명예를 쌓기에만 급급한 여느 지도자와는 달리, 그녀는 탁월한 정치력으로 국가의 혼란을 수습하여 ‘대청제국의 어머니’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권력과 지위, 영향력은 아주 극소수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이것은 누구와 무엇을 위해 사용하느냐에 따라 한 나라가 태평성대를 이루기도 하고, 고난에 빠지기도 합니다. 효장문황후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면 어떤 유익이 있는지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혜로웠던 이 여인의 삶이 오늘 이 방송을 듣는 청취자 여러분들에게 도전이 되었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의 김소라였습니다.
여러분, 행복하십시오.

입력 : 2018-01-05 (조회 : 28)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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