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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조진희씨가 그리운 동생에게

방송일 : 2018-02-16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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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북한에서 살 때 저는 따스한 남쪽에만 핀다는 동백꽃은 어떻게 생겼을까, 무척 궁금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살면서부터는 그 동백꽃을 실컷 보게 되었습니다. 눈 속에서 꽃망울을 피우고 벌써 1월말, 2월 초가 되면 꽃망울을 터뜨리는 붉은 동백꽃.
제가 언젠가 거제도에 가 본 적이 있는데 거제 섬의 해금강으로 가는 길은 아예 동백꽃을 가로수로 심은 곳도 있던데요.
북한에서는 이름도 잘 몰랐던 이 아름다운 동백이 넘치게 피어나는 아름다운 남쪽나라에 흠, 지금 제가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동백꽃이 많으니 동백과 관련된 노래며 시 또한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며칠 전 저는 제일 남쪽지방에서 제일 먼저 피어난 동백꽃을 보았는데 이 아름다운 동백 숲을 북한 동포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다면 정말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평창 동계올림픽에 남과 북이 단일팀으로 참가하고 대표단, 예술단들의 왕래가 잦아지고 있어 남쪽의 아름다운 동백꽃 소식보다 남북통일의 기쁜 소식이 먼저 오는게 아닌가, 그런 마음이 듭니다. 저는 사시절 아름다운 꽃이 피는 아름다운 삼천리금수강산에서 남북한이 함께 살아갈 평화롭고 자유로운 그 날을 벌서 동백꽃 숲에서 그려보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 파랑새체신소를 찾으신 조진희씨는 씨는 북한사시는 동생 분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자매 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에 사는 조진희입니다.
다정하고 행복했던 가족들이 뿔뿔이 헤어져 서로 얼굴도 못 보고 심지어 목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안타깝게 산지도 벌써 10년하고도 몇 년이나 지났습니다.
인간으로서 도덕과 의리, 심지어 천륜마저도 지킬 수 없던 가난하고 어렵던 북한 생각을 하면 지금도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저는 자유의 땅 대한민국으로 와서 인생 행복을 마음껏 누리며 잘 살고 있지만 한 피줄을 나눈 제 동생은 아직 어두운 북한에서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어쩌다 우리 형제가 이렇게 비참한 운명에 놓이게 되었는지, 이 참담한 현실이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할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리운 제 동생이 하루 빨리 저처럼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고 다시 만날 그 날까지 건강하게 잘 살아 있어 주기만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제가 동생에게 쓰는 이 편지가 우리 동생에게 꼭 가 닿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동생 연희에게
사랑하는 내 동생 연희야, 그 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니?
너에게 편지를 쓰려고 이렇게 오랜만에 책상에 앉으니 무슨 말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벌써 눈물만 앞을 가린다.
요즘은 날도 찬데 본래부터 앓고 있던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지 않는지?
사랑하는 내 동생 연희야, 묻지 않아도 뻔 한 것이 북한 생활이지만 그래도 너와 네 가족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하고 기쁘다.
연희야, 언니가 너무 보고 싶고 너무너무 미안하구나.
행복해서 살고 있겠냐만 그저 죽지 못해 살고 있으리라 본다.
내가 언니인데 아버지, 어머니 산소를 너에게 다 맡기고 한 번도 가보지 못 해 너무나 미안하다. 북한 같은 나라에서 도대체 사람이 도리를 다 지키고 살 수가 없으니 내가 자식 된 도리도 못하고 산다.
사랑하는 내 동생 연희야, 이 언니가 정말 체면이 없고 미안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어찌하겠니? 아마 언니가 북한에 지금도 살고 있었다면 이 몸은 벌써 오래 전에 하늘나라로 갔을 것이다.
너나 우리 가족들이 나를 욕할지 몰라도 그 당시 내가 한국으로 오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고 이렇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도 없었을 것이야.
사랑하는 내 동생 연희야, 북한 사람들의 최고 소원은 차를 사는 것도 별장을 사는 것도 아니고 이밥에 고깃국 한 번 실컷 먹어 보는 것이 아니었니?
그런데 그 소원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근 70년 동안이나 이루어질 수 없는 나라가 북한이었다.
아직도 그 소박한 꿈마저 이루어지지 않는 나라에서 내 동생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언니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구나.
여기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밥에 고깃국이라는 말이 이제는 옛말이 되었고 먹을 것이 넘치고 살이 넘치니 그 속에서 더 몸에 좋고 더 맛있는 것 더 영양이 좋은 걸 골라가며 먹고 있단다.
이런 말을 하면 네가 믿을까 모르겠는데 농민들에게서 국가가 쌀을 사 놓고도 국민들이 소비를 하지 않아 몇 년 째 보관해 주는 값이 더 들어간다고 한다.
얼마나 쌀을 안 먹는지 쌀로 빵도 만들어 쌀을 소비하고 술도 쌀로 만드는 나라야.
사랑하는 내 동생 연희야, 여기 한국에는 넘쳐나는 것이 이밥에 고기이다. 그 걸 먹어보려고 지금도 애쓰고 있을 너나 내 조카들 생각을 하면 나는 삼시세끼 목구멍으로 밥을 넘길 수가 없다.
나는 좋은 음식만 보면 언제나 너희들 생각이 나고 이걸 어떻게 가져다줄 수 없을까, 그 생각 뿐 이다.
해방이 된지 73년이 되었는데 북한은 아직도 먹는 문제조차 온전히 해결 하지 못하고 있고 지금도 배가 고파 북한을 떠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랑하는 내 동생 연희야, 우리가 북한에서 남조선, 이라고 부르던 대한민국은 작지만 아주 강하고 세계 발전된 나라들과 당당히 맞서는 잘 사는 나라이다.
물론 어느 나라라도 열심히 살아야 하겠지만 한국도 열심히 노력한 만큼 잘 살 수 있어.
너는 복지, 라는 말을 들어도 보지 못했겠지.
한국은 국민들의 평균 생활수준이 높은 나라지만 특히 복지가 너무 잘 되어 있어 노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천국, 이란다.
나는 매일 내가 사는 보람과 긍지를 느끼며 산다. 얼마 전에 언니는 제주도 여행도 갔다 왔어. 제주도는 겨울에도 꽃이 피고 채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인데 우리나라 끝자락에 있는 섬이야.
사랑하는 내 동생 연희야, 언니는 물질적으로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풍요로운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내가 나서 자란 고향, 북한을 한시도 잊어 본적이 없어.
비록 가난하고 그 나라의 정치가 싫어 그 곳을 떠났지만 언제라도 한 달음에 달려가고  싶고 내 고향의 향수를 느끼며 고향의 들길을 걸어 보고 싶어.
아~ 언제면 사랑하는 내 동생 연희야,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언니는 고향이 그립고 북한이 그리울 때면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고향 이야기도 하고 고향 가는 날까지 건강하게 잘 살자는 약속도 하곤 한단다.
연희야, 그 날까지 나도 그리고 너도 이를 악물고 죽지 말고 살자. 살아서 꼭 다시 만나자, 알았지?
사랑하는 내 동생 연희야, 이렇게 오랜만에 너에게 편지를 쓰니 자꾸만 네 얼굴이 떠오르고 함께 행복했던 일, 함께 고생하던 일들이 어제 일처럼 생각난다.
너무나 보고 싶다. 내 사랑하는 동생아, 그리고 조카들....
연희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이젠 너도 많이 늙었을 테고 나 역시 많이 늙었다. 내 조카들은 이제 다 애기 엄마가 되었을 것이니 조카들 얼굴은 길에서 보아도 몰라볼 것 같아.
그 동안 변했을 모습이 전혀 상상이 안 돼.
그래서 더 조카들 모습이 잊혀 지기 전에 빨리 만나야 할 텐데 나는 그 것이 제일 걱정이다.
내가 한국에서 너나 조카들에게 신이며, 이쁜 옷들을 보내주고 싶은데 보낼 수도 받을 수도 없어 정말 가슴이 아프다.
연희야, 지척에 살면서도 안부도 물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이 현실이 언제면 끝장날까? 원한의 군사분계선 장벽이 언제면 독일처럼 무너질까?
언젠가는 반드시 그 날이 오겠지.
그러니 연희야, 부디 아프지 말고 살아만 있어다오.
내 사랑하는 내 동생 연희야~ ~~ 언니가 큰 소리로 불러 본다.
연희야, 언니가 너무 미안하고 많이많이 사랑한다. 아쉽지만 오늘 편지는 여기서 마친다. 안녕히. 서울에서 언니로부터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조진희씨는 자매사이가 참 다정한 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선산부터 고향의 뒷일은 동생에게 다 맡기고 자신만 행복하게 사는 것이 미안하다시던 조진희씨의 이야기가 제 가슴에도 남았습니다.
철없던 형제자매가 어언 노인이 되어가고 어린애 같던 조카들이 시집을 가고 장가를 가 애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되어 가는데 자매 분들이 다시 만날 날은 언제가 될지, 아직 기약할 수가 없습니다.
배가 고파 어쩔 수 없이 떠난 고향이지만 언제라도 달려가 고향의 향수를 느끼며 고향 들길을 걷고 싶어지는 건 아마 고향 떠난 이들 모두의 한결같은 마음일 겁니다. 
아무쪼록 이 밤, 북한 사시는 조진희씨의 동생 분께서 언니의 진심어린 이 편지를 꼭 받아 보시길, 그리고 두 분 다시 만날 때 까지 건강하시길 저도 간절히 바라면서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8-02-14 (조회 : 109)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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