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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최정석씨가 그리운 삼촌에게 보내는 편지

방송일 : 2018-03-16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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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얼마 전 제가 경남 합천 해인사를 다녀왔습니다.
언젠가부터 가 봐야지 가봐야지 하던 우리나라 3대 사찰 합천 해인사, 산세가  주변의 산들보다 훨씬 높은데다 기묘한 위치에 있어 신비함까지 느껴졌습니다. 대한민국에서 3대 사찰하면 양산 통도사, 전남 순천의 송광사, 합천 해인사를 꼽거든요
해인사는 역사도 오래 되었지만 무엇보다 유네스코에 문화재로 등록된 보물 팔만대장경이 보존된 곳이라 더 이름이 높은 절입니다. 8만장 이상의 목판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온 것도 불가사의 하지만 이 목판을 다른 지역에 가져가면 썩는다고 하니 신기할 분이었습니다.
비록 불자는 아니었지만 깨끗하고 오랜 우리민족의 유구한 역사도 둘러보고, 청정하고 싱그러운 가야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이 날만은 마음의 짐을 다 내려놓고 실컷 걸어보았습니다.
더불어 가야산주변에 금속문화가 보급되었던 옛적의 가야 역사를 보존한 가야 고분군과 박물관도 둘러보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날, 작지만 강하고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한 민족의 일원으로 살고 있음에 새삼 감사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이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우리 한 민족이 오늘 날 어쩌다 이렇게 분단의 아픔을 안고 갈라져 살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 체신소를 찾으신 분은 대한민국 생활 6년 차 되신다는 최정석 씨인데요. 북한에 계신 삼촌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한국에 온지도 벌써 6년이 되어 옵니다.
저는 북한에서 모진 배고픔과 가난을 겪으면서도 그 것이 타고난 운명인 줄 알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저처럼 사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먼저 탈북했던 어머니를 따라 탈북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대한민국 서울에서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풍요롭고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길지도 짧지도 않게 살면서 이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도 알게 되었고 열심히 노력해 부자가 되어보고 싶은 꿈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득, 북한을 떠 올리면 저를 많이 사랑해 주시던 삼촌이 보고 싶어집니다.
저는 한국에서 제가 사는 이야기도 삼촌에게 해 드리고 싶고, 그리고 어렵지만 잘 버텨 건강하게 계셔달라는 부탁도 하고 싶어 파랑새 체신소를 찾았습니다.
언제나 그리운 삼촌에게
삼촌, 그간 안녕 하셨나요? 저 정석입니다.
삼촌, 제가 삼촌과 헤어진지도 꽤 오래 되었네요. 나는 그래도 삼촌의 모습이 또렷하게 떠오르지만 아마 삼촌은 그새 훌쩍 커 어른이 되어버린 저를 잘 알아보시지 못할 수도 있을 겁니다.
강냉이를 가지고 국수 방앗간에 갈 때마다 따라가면 따끈한 국수 떡을 삼촌엄마 몰래 뚝 떼어 얼른 먹으라며 제게 주시던 삼촌이 이 밤 따라 왜 이렇게 보고 싶어지는지 모르겠어요. 사촌동생은 이제 다 자라 군대에 갔을지, 아니면 대학에 갔을지,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삼촌, 제가 어릴 적에 아빠를 잃은 제가 불쌍하다고 항상 아버지의 빈자리를 지켜주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우리 집은 남달리 가족 간에 우애가 깊어 그렇게 가난하게 살면서도 명절이나 기념일이면 한 번도 빠짐없이 모여 국수 한 그릇이라도 나누 군 했죠.
지금 생각해 보니 제가 학교에 가는 날보다 산에 나무 하러가고 나물 뜯으러 다닌 날이 더 많았잖아요. 그리고 맨 날 무료교육을 하는 나라라고 하면서 하루가 멀다하게 학교에 바치라는 돈 독촉으로  가고 싶어도 가기 싫던 곳이 학교였어요.
더군다나 소학교 시절에 아바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몸으로 우리 가정을 먹여 살려야 했기에 우리 집은 늘 가난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혼자 애쓰는 어머니에게 어린 마음에도 돈을 달라는 말만은 할 수가 없었죠.
삼촌, 봄이 되면 사람이 버티고 서 있기도 어려운 경사지에 그 것도 밭이라고 일군다며 애쓰던 삼촌을 도와 제가 밭을 파 드리면 어린 조카가 기특하다며 삼촌은 그렇게도 좋아 하시군 했지요.
어느 해인가 겨울에 허리를 치게 눈이 왔는데 산에 나무하러 갔던 생각도 나네요.
든든한 겨울 신 한 켤레 없이 발가락이 나오는 신을 신고  50리가 넘는 산에 갔다가 발가락이 얼고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지금도 눈보라치는 산 중에서 헤매던  모습이 잊혀 지지 않아요.  뭐, 저만 이런 고생을 한 것은 아니고 그 당시 북한에서 제 나이또래 애들은 거의 대부분 이렇게 살았지요.
삼촌, 이렇게 고생하면서도 저는 북한을 떠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또 그렇게 살면 안 되는 줄 알았어요. 어린 마음에도 그 건 나쁜 일인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삼촌, 제가 북한을 더나 중국으로, 지금은 한국으로 오면서 정말 귀중하고 소중한 경험을 많이 했어요.
우리가 어머니, 라고 부르던 나라, 아버지라고 부르던 지도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겨죽였나요? 그래도 누구 하나 미안하다고 사죄하는 간부도 없고 배가 고파 중국으로 가면 반역자라면서 감옥에 보냈잖아요.
삼촌,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중국은 길가에 강냉이 쌀이 널려 있고 짐승도 잘 안 먹어요. 그 한 줌의 강냉이가 없어 우리 가족 중에도 굶어죽은 사람들이 많은데 제가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지 짐작이 가세요?
삼촌은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당원들이고 당이 없으면 죽는다고 그렇게도 매달리더니 막상 죽어갈 때는 모르는 척 하더라고요.
삼촌, 삼촌도 이제는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어저다 보니 조카인 제가 먼저 북한 밖의 세상을 먼저 보게 되었지만 저는 대신에 북한에 비할 수 없는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세상을 먼저 체험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통령도 탄핵하고 감옥에 보낼 수 있고 어떤 사람이라도 법을 어기면 정당한 법 처분을 받아야 해요.
그리고 누구나 출신성분이나 재산에 관계없이 대학에 갈 수 있고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 노력을 한 만큼의 댓 가가 주어지는 곳 이예요.
친척집에 가고 싶어도 통행증이 없으면 한 발자욱도 못 움직이는 것이 북한이지만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든 마음만 먹으면 여권 한 장만 들고 여행을 다닐 수가 있어요.
아마 삼촌은 제가 무슴 이야기를 하는지 잘 이해가 안 가실 수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물론 자유가 보장된다고 해서 누구나 그저 잘 산다는 말은 아니 구요. 저도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인식이 없어 사기도 당해 보았고 돈을 벌다가 쓴 고비도 겪었어요.
하지만 선택과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자기 자신만이 져야 하는 곳도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을 이제는 확실하게 알았어요.
삼촌, 저는 할머니랑 어머니 가족이 다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 합니다.
이제는 자격증도 많이 땄고 확실하게 전공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고 일 하는 만큼의 보상도 받으니 정말 사는 것이 매일 재미있어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좋은 세상에서 삼촌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건데 삼촌이 제가 올 때 함께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것 뿐 이예요.
삼촌, 이제 저는 열심히 돈을 벌어 장가도 가고 그러려고 해요. 그리고 열심히 살아 통일이 되면 삼촌도 좀 돕고 싶어요.
따스한 남쪽나라 한국에는 봄꽃이 다투어 피어나고 축제가 시작되었지만 삼촌이 계시는 북쪽에는 언제 진정한 봄꽃이 피고 축제가 시작 될까요?
삼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이제 여기서 아쉬운 펜을 놓아야 할 것 같아요. 다음에 제가 사는 한국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더 많이 전해 드릴게요.
삼촌, 부디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서울에서 조카 정석 올립니다.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흠~ 어린 나이에 북한을 떠난 최정석 씨지만 탈북, 이라는 어려운 시련을 겪으며 그리고 대한민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통해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어른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 속에서도 가족의 따듯한 정을 잊을 수 없어 삼촌에게 쓴 정석씨의 편지가 북한 사시는 삼촌 분에게 꼭 가 닿았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조카가분이 한국에서 열심히 잘 살고 있고 삼촌을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도 아신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고생스럽던 어린 시절을 잊지 않고 열심히 사시는 최정석씨에게 저도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또, 북한에 계시는 삼촌 분께서도 조카를 만날 때까지 건강하시길 진심으로 바라며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8-03-16 (조회 : 159)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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