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후원안내

자유게시판

Home > RADIO >편지와 사연 > 파랑새 체신소

파랑새 체신소

강옥선씨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방송일 : 2018-04-06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0:00:00

 

<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예년과 다름없이 아름다운 벚꽃이 만발한 한강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 걸 보니 여의도 벚꽃축제가 시작 되려나 봅니다. 제가 북한 살 때도 해마다 봄이면 갖가지 꽃들이 만발하지만 국민들이 꽃 축제를 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없습니다.
나물 뜯으러 다니면서 잠깐씩 본 진달래, 철쭉, 살구꽃이 제가 제일 많이 본 꽃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흔히 청춘시절을 꽃 시절이라 부릅니다. 그 건 아마도 청순하고 혈기 왕성한 청춘시절이 피어나는 꽃처럼 아름답고 행복했기 때문일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인생의 새 봄을 맞은 저는 매일이 봄이고 매일을 꽃 축제인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은 사계절이 봄이고 축제장이기에 딱히 봄이 아니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즐길 거리가 넘칩니다. 얼마 전 저는 남해 기슭에서 먼저 피어난 동백꽃이며 매화꽃을 보면서 제 혈육들 얼굴을 떠 올려 보았는데 누렇게 뜬 얼굴로 오늘도 한 끼의 삶을 위해 고생할 그들에게 왜서인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투어 피어나는 봄 꽃 소식이 즐겁지만 않고 혼자누리는 행복이 괜히 미안한 마음은 저 뿐일까요. 아닐 겁니다. 고향 떠난 모든 이들에게 공통분모 같은 이 미안함이 온전히 행복으로 채워지길 바라며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문을 열어 봅니다.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 체신소를 찾으신 강옥선씨는 북한 사시는 사랑하는 둘째아드님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고향을 떠나 대한민국으로 온지도 벌서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려운 고난의 길을 걸어 지금은 이렇게 제가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아직도 고향에 두고 온 아들생각을 하면 하루도 온전히 행복하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며칠씩 함께 굶어도 보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난을 함께 겪으면서도 그래도 그 때는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 하나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가난하고 어려워지는 살림을 더는 이어 나갈 수 없어 탈북, 이라는 어려운 길을 택했고 가난했지만 화목했던 우리가정은 서로가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그 고난의 과정을 한 마디로 다 말 할 수는 없지만 제가 오늘은 우리 둘째 아들에게 엄마가 사는 대한민국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고 어렵지만 부디 잘 살아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어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불러보고 나를 울리는 귀중한 내 아들에게
사랑하는 내 아들 현석아, 그 동안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느냐?
네 이름만 불러 보아도 엄마는 너무나 보고 싶고 너무나 미안하고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생각이 든다. 하루에도 그 몇 번,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 때까지 엄마는 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
현석아, 엄마는 고향을 떠나 자유대한민국에서 잘 살고 있지만 어느 하루도 너와 내 고향땅을 잊어 본 적이 없다. 고향, 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고 어려워도 너무 어렵고 가난해도 너무 가난하게 살았지만 내 자식 거느리고 식구가 다 함께 모여 살던 그 때가 제일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쌀 한 톨 안 섞인 강냉이밥을 놓고도 온 식구가 즐거웠고 웃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이 엄마는 너무나 사무치게 그립구나. 지금은 서울에서 이밥에 고깃국을 매일 먹고 있지만 그 때가 더 그립고 마음은 늘 북한으로, 내 자식이 살고 있는 그 곳으로 가 있단다.
내 귀중한 아들 현석아, 나는 북한에 비하면 늘 천국에 살지만 부모형제 다 떠난 그 외로운 곳에 너 혼자 남아 어렵게 살고 있을 네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곤 한다.
현석아 네 형이 한국으로 올 때 브로커를 신고하지 않았다고 네 누나가 보위부에 잡혀갔지. 그 때 엄마도 집에 없었기에 그렇게 33살 꽃 다운 나이에 12살 먹은 딸, 14살 먹은 아들 두 오누이를 남겨두고 내 딸이 억울하게 정치범으로 붙잡혀 들어갔다.
지금은 어디에서 죽었는지, 혹시 살아나 있는지 이름만 남기고 사라진  네 누나, 내 딸 생각을 하면 엄마는 하늘이 무너지고 심장이 터질 듯이 아프구나. 
그 후 엄마나 네 형은 사람이 살아갈 방법이 더는 없어 큰마음을 먹고 북한을 떠났다.  그런데 식구들이 다 없어졌는데 유독 본 사람인 누나가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그렇게 영원히 올 수 없는 곳으로 내 딸을 데려간 곳이 북한이다.
어린 손자손녀만 남겨두고 말이다. 사위는 출신성분이 괜찮다고 남겨두고 애매한 내 딸만 잡아간 것이 아니냐?
내 귀중한 아들 현석아, 그렇게 그 나라는 철저하게 계급사회이고 우리처럼 가난한사람, 출신이 나쁜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약자로 살아야 하였지.
얼마나 째지게 가난했던지 우리식구들은 매일 미나리를 뜯어다 미나리 밥을 해 먹고 산에 나는 풀이란 풀은 거의 다 먹었지.
현석아, 그 어렵던 시절에 너는 이미 장가를 갔고 너 네 가족도 정말 죽지 못해 살았지. 그래서 엄마는 이래도 저래도 죽을 바에는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다가 죽고 싶어 북한을 떠났던 거야.
엄마가 살고 있는 한국은 북한에서 선전하던 그런 나쁜 사회가 아니다.
한국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자유를 보장해주고 사람의 기본 권리인 인권을 철저히 보장해주는 곳이다.
엄마처럼 늙은 사람들은 복지가 너무 잘 되어 있어 어디에서 살든 노래도 부르고 운동도 하고 더구나 북한에서처럼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잘 먹고 너무 살이 쪄 애들부터 어른들까지 돈을 주면서 살을 빼고 있다. 아마 너는 엄마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도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먹을 것이 생겨도 끓여먹으려면 땔감이 부족해 걱정이었지만 한국에서는 땔 걱정, 입을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
내 아들 현석아, 북한에서 힘들게 농사를 하면서도 배를 불리는 것은 고사하고 닭 알 한 개나 닭 한 마리 먹어 본다는 것은 꿈도 못 꾸고 살았지.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것들은 살이 찐다고 잘 먹지도 않고 눈보라치는 겨울에도 금방 캔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먹으며 산다.
쌀도 묵은 것은 맛이 없다고 햅쌀만 골라가면서 먹으니 우리는 분명히 한 민족이고 하나의 혈육인데 어쩌면 사는 모습이 이렇게 다를까, 엄마는 늘 이런 생각이 든다.
자식은 북한에서 고생하면서 어렵게 살고 있는데 엄마가 되어가지고 나만 이렇게 잘 산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히고 이렇게 작은 나라가 왜 두 동강이 나 가지고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나게 사는지 이해가 안 되는구나.
내 사랑하는 아들 현석아, 엄마는 이제는 손자손녀들의 자란 모습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먹을 것이 넘쳐나 애들에게 늘 맛있는 것을 사 주고 싶은데 그런 것도 할 수 없고 할머니가 되어가지고 손자 손녀들 자라는 모습도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 비참하다.
현석아, 한국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 구경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자가용이 많고 교통이 너무 잘 되어 있다. 부산에서 서울로 출 퇴근을 하는 사람이 있는 정도로 도로가 잘 되어있고 마음만 먹으면 외국으로 아무 때나 여행을 갈 수도 있다.
그런데 너는 그냥 사는 것만 바빠 아직도 세상 돌아가는 것도 잘 모르고 평생 배고픈 걱정 하나 덜어주지 못한 북한정권을 위해 오늘도 그렇게 살고 있겠지.
엄마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우리가 무엇을 잘 못 했는지 모르겠어.
한생 당에서 하란 대로 하고 살았고 자다가 일어나서도 바치라고 하는 것은 다 바치면서 살았는데 돌아 온 것은 굶주림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비참한 삶이었잖아.
내 사랑하는 아들 현석아, 이 늙은 엄마의 걱정은 오로지 통일이 되는 날까지 부디 네가 죽지 말고 꼭 살아있어 주는 것이다.
그래야 억울하게 보낸 세월에 대한 보상도 받고 엄마처럼 자유로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살아볼 수 있지 않겠니?
현석아, 우리 죽지 말고 살아서 꼭 다시 만나자. 내 사랑하는 아들, 이쁘고 착한 며느리, 안아도 못보고 부르는 내 손주들, 부디 다 잘 있어라.
할머니가 많이많이 사랑한다.
~ 서울에서 엄마로부터 ~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이름만 불러 보아도 눈물이 나고 그리운 아들에게 쓴 강옥선씨의 편지 잘 들으셨나요? 어쩌면 그 어디에서인가 어머니의 편지를 듣고 계실지도 모르는 아드님의 모습이 저에게도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두고 온 자식, 손자, 손녀들을 안타깝게 부르는 이런 부르짖음이 이제 여기서 멈추었으면 좋으련만 그 날은 남북한이 통일이 되는 날 일겁니다. 저는 요즘 남과 북의 정상 들이 만나고 미국과도 정상회담을 한다고 하니 생각했던 것보다 통일이 훨씬 더 빨리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아무쪼록 북한사시는 강옥선씨의 아드님께서 어머니를 다시 만날 때까지 부디 건강하시길 바라며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8-04-06 (조회 : 125)  |  북한개혁방송
Copyright ⓒ 북한개혁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