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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김복화씨가 그리운 언니에게

방송일 : 2018-04-20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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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대한민국 구석구석에는 참으로 볼거리, 먹을거리가 많고 오랜 역사가 간직되어 있습니다. 6~7백년 자란 나무들은 보통이고 천년의 찬란한 역사를 안고 있는 신라도읍지, 경주등 한 마디 말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역사 유적들이 정말 많습니다.
얼마 전, 제가 경주를 다녀왔습니다. 벌써 경주는 두 번째지만 아직 보지 못한 곳이 더 많고 볼수록 그 방대함과 신비함에 감탄을 합니다.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들에게는 첨성대, 라는 북한 담배의 상표정도로 기억되시는 그 유명한 첨성대가 바로 신라 시대에 만들어졌고 천년고도 신라, 경주에  지금도 여전히 보존되어 있죠.
대한민국의 화페에도 그려진 불국사 탑이며 바위를 뚫고 천연바위에 불상을 조각한 석굴암, 그리고 1300여년을 살았다는 회화나무까지, 참으로 경주는 천년고도답습니다.
저는 이런 것을 볼 때마다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우리민족이 너무 자랑스럽고 한 민족의 일원이 된 긍지 또한 남다릅니다. 그리고 북한에도 이렇게 멋진 곳들이 참 많은데 언제면 한국처럼 개발이 되고 마음대로 다니면서 관광을 할 수 있을까, 아쉬운 생각도 듭니다.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 체신소를 찾으신 김복화씨는 북한 사시는 사랑하는 언니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두 자매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에 살고 있는 김복화입니다.
고향을 떠 올리면 사람이 살 수 있는 여건이 조금만 보장되었더라면 이렇게 사랑하는 형제자매들, 수십 년 정든 고향을 훌쩍 떠나지는 않았을 겄인데, 하는 후회도 듭니다.
그렇지만 저는 생사를 판가름 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진정한 나라가 어딘가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보장되지 않아 비록 북한을 떠났지만 두고 온 혈육들 생각을 하면 늘 그리움에 사무칩니다.
그리고 나 혼자만 누리는 넘치는 행복에 미안하기도 하고 죄스러운 마음도 듭니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 어떤 나라도 어떤 나라도 갈 수 있는 이 자유로운 세상에 소리쳐부르면 들릴 것 같은 지척의 혈육들 생사여부도 알 수 없는 이 참혹한 현실에 화가 납니다.
저는 제가 언니에게 쓰는 이 편지가 제발 우리 언니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기도 하면서 편지를 썼습니다.

불러 도 불러도 대답 없는 언니에게
언니~ 언니야~
세월이 흐를수록 언니가 너무 너무 보고 싶어.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는 언니도 영락없는 할머니모습이 되었겠지만 아직도 눈 감고 언니를 그려보면 언니의 젊은 시절 모습만 떠올라.
언니, 성국이도 이제는 어엿한 가장이 되었겠지? 언니를 잘 모시고 있는지요?
이제는 중년을 넘겼을 조카 모습도 상상이 잘 안돼요.
어려웠어도 명절이면 다 함께 모여 웃고 떠들고 우리 현수와 조카들이 한 마당에서 뛰어놀던 모습이 어제 같아.
언니야, 우리 부모님 산소는 지금 누가 돌보고 있나요?
언니는 형부산소도 있고 큰 언니네 산소도 여러 곳인데 언니 혼자서 그 많은 산소를 다 돌보자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언니, 금년 겨울은 유별나게 추웠는데 그 추운 겨울을 어떻게 지냈는지요?
내가 언니와 헤어지던 날, 생각나세요?  마 가을바람에 나뭇잎이 떨어지고 북방에 찬바람이 불던  차가운 두만 강변, 기약 없는 이별에 함께 울던 모습이  어제련듯 눈에 선합니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너무 아파요.
언니는 두만강 건너 중국에 친척들이 있었지만 시퍼런 두만강물이 무섭다고 선뜻 들어서지 못했지만 나는 죽을 각오를 하고 그 강에 뛰어들었지요. 돈을 벌어다 우리 식구 어떻게 하나 살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으니까요.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나는 중국에만 가면 금방 돈을 벌어가지고 집으로 갈 줄 알고 있었어요.
언니야, 그렇게 언니와 잡았던 두 손을 놓은 것이 우리의 영원한 이별이 될 줄을 그때는 미처 상상도 못 했어요.
그런데 어니야, 중국도 북한 못 지 않게 어려운 곳 이었다는 것을 나는 중국에 가서야 알게 되었어요. 그처럼 바라던 돈은 쉽게 모여지지 않았고 중국에 있는 동안 북한에서 들려오는 온갖 흉흉한 소문, 만행을 들으면서 다시는 내가 고향으로 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제 내 인생은 앞으로만 가야하고 다시 돌아 설 수 없음을 느끼면서 자식들의 손을 잡고 넓은 중국광야를 헤매면서 대한민국으로 오는 길을 택하게 되었거든요.
언니, 동남아가 뭔지 알아. 그 수만리 먼 노정을 생사를 가르는 어려운 길을  오직 하늘에 운명을 맡기고 내가 왔고 우리 자식들이 옸어요.
그 길을 걷다가 한국까지 오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얼마나 많고 그 길에서 북송당해 수용소로 잡혀간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머니라 부르며 늘 매 달리던 어머니 당이 우리처럼 살길이 없어 집을 나간 자식들을 철 처 하게 외면했고 북한으로 다시 갈 수 없는 장벽을 만들고 죽음에로 내 몰았어요.
언니야, 나는  우리는 북한정권에 죄를 지은 적이 없어요. 배가 고파 북한을 떠난 것은 살아 남기위한 인간의 본능이었고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었어요. 언니가 이 동생이 떳떳하게 살았다고 고향의 남은 형제들에게 잘 전해 주세요. 내 동생은 정말 양심 적으로 살았다고 말해 부세요.
언니, 생각나세요. 우리가 식량구한다고 온성으로 갈 때 기차에서 내가 하던 말, ...언니, 남조선에선 밥 가마가 저절로 밥을 하고 말도 한 대... 아니 너는 어디서 그런 도깨비 같은 말을 하니...ㅎㅎㅎ  ...
그런데 언니야, 나는 그 도깨비밥솥으로 매일 밥을 해 먹으면서 살고 있어.
북한 밖으로 나서 자란 내 고향을 돌아보니 왜 이렇게 서글퍼질까.
세상은 이렇게 넓고 자유로운데 여행증이라는 족쇄에 묶여 북한에서 살아도 혈육끼리도 서로 마음대로 만날 수 없는 곳,
나는 지금 가는 세월이 너무 아까워.
그리고 쌀은 베고 살고 있고 북한에서 상상도 할 수 없던 좋은 화장품을 쓰고 살아. 사람들은 나보고 다들 젊어 보이고 이쁘대.
근심걱정이 전혀 없으니 얼굴에 주름도 없어. 언니야, 70이 넘은 것이 무슨 화장이냐고  그럴 수도 있는데 이게 한국의 문화이고 8~90이 넘은 분들도 너무 이쁘게 하고 다녀서 나이를 헛갈리거든
한 끼 밥을 위해 어렵게 살고 있을 언니에 이런 얼빠진 소리를 하가는 내가 너무 미안해요. 용서해주세요. 
언니야, 언니도 나랑 같이 한국에서 이렇게 아름답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형제 중에서 언니가 제일 이 쁘고 똑 똑 했잖아.
나는 언니가 이제라도 그 모든 고난과 시련을 다 털어버리고 남은 세월이라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해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는데... 참, 나 언니 만나면 선물하려고 금 목걸이를 준비해두고 있어요. 만약 이제라도 만날 수만 있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전부 언니에게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언니 한 번 꼭 안아보고 싶어요.
그러면 이 다음 부모님을 만나서 형제간의 의리를 지키고 살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날이 언제 오냐고요. 금방 통일이 될 것 같다가도 자고나면 금방 원수가 되어 당장 전쟁을 한다고 으르렁거리고, 정말 그 날이 오긴 할까요?
이렇게 언니에게 편지를 한다고 펜을 드니 우리 형제의 우정과 그 간 있었던 일을 10장, 아니 100장에 다 적으려고 해도 모자랄 것 같아요.
난 사랑하는 우리 언니 만날 날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어요. 언니도 기도 할 줄은 알잖아 우리 함께 같은 맘으로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살아요.
언니야, 부디 건강하시고 또 건강해야 돼요. 그래야 통일 되면 다시 만나지.
울 언니, 너무너무 사랑해요.  ~서울에서 동생 보냄~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형제자매가 여럿이라도 김복화씨와 언니, 두 자매 분들은 우정이 남달리 각별했던 것 같습니다.
말을 하는 도깨비 같은 밥 가마가 밥을 해 주고 온갖 가전제품이 넘치는 나라, 여성이 참으로 긍지를 가지고 살 수 있고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알 권리, 볼 권리 누릴 권리를 가지고 사는 진정으로 나라다운 나라는 자유대한민국입니다. 
그리고 피눈물을 흘리며 고향을 떠나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 자유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어렵게 찾은 자유이기에 김복화씨처럼 대한민국에서 인생의 새 삶을 사는 분들은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행복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쪼록 북한사시는 언니 분께서 부디 건강하시어 사랑하는 통일의 그 날 동생분과 다시 만나시기를 저도 간절히 바라면서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8-04-20 (조회 : 83)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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