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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남정상회담의 력사와 교훈: 1회 2000년 이전의 북남 정상회담 역사

방송일 : 2018-04-17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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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전의 북남 고위급 회담 역사
4월 27일 판문점에서 북남 최고위급 회담이 열립니다. 북조선의 김정은 위원장과 남조선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만남을 갖습니다.  이번 북남 최고위급 회담은 조선반도 긴장과 대립, 대북조선 제재의 원인을 제거하는 비핵화를 위해서 열리게 됩니다.
조선개혁방송은 4월 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리는 북남 최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북남 최고위급 회담의 력사와 교훈을 짚어봅니다. 오늘 첫 시간에는 2000년 이전의 북남 고위급 회담의 력사에 대해 알아봅니다.
이달 말인 4월 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리는 북남최고위급 회담에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번 북남 최고위급 회담은 과거 북남관계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것과는 다르게 북조선의 비핵화를 위해서 열리는 회담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최고위급 회담은 김정은 위원장이 남조선 문재인 대통령 특사단을 만나는 과정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북남, 북미 최고위급 회담이 결정된 것입니다.
이번 회담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고 그 결과가 조선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것은 초미의 관심입니다. 북과 남이 분단 된 지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북과 남은 많은 만남과 회담을 가졌지만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하였고, 분단과 대립에 따른 부작용들을 해소하는 데는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특히 북과 남 최고지도자 회담은 2번 개최되었으며, 고위급 회담도 여러차례 하는 과정에 선언과 성명, 합의문도 많이 발표됐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언과 성명, 합의문들이 실천되지 못한 것은 회담의 목적이 서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과거의 북남간의 회담들을 살펴보고 교훈을 찾는 것이 이번 판문점 최고위급 회담의 성공을 위해 중요합니다. 또한 인민들이 북남최고위급 회담의 력사와 과정과 결과들을 잘 알아야 시대의 흐름을 읽는 안목, 미래를 바라보는 시야가 높아질 것입니다.
북남대화는 북과남의 체제경쟁, 북-남조선 각자의 국내 정치적 요인, 국제적 냉전시기와 탈냉전의 흐름들이 복합적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전개되었습니다.
먼저 북남분단이후 70년대까지의 북남대화를 알아봅니다. 해방후 미소대립에 의해 북과남이 분단되고, 조선전쟁을 치루면서 북조선과 남조선은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60년대 말까지는 북남간의 대화접촉이 전혀 없었으며, 1971년이 되어서야 북남적십자 1차예비회담을 통해 북남대표가 최초로 만나게 되는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7.4 공동성명의 준비작업이 드디어 이루어 진것입니다. 남조선 적십자사의 정홍진, 북조선 적십자사의 김덕현을 실무자로 하여 판문점에서 비밀접촉을 통해 북남간의 정치적 의견을 교환하였습니다.  이후 11차례에 걸쳐 계속된 두 실무자간의 판문점 비밀접촉은 72년 5월초에는 이후락 남조선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을, 5월과 6월사이에는 북조선의 박성청 로동당 조직지도부 제 2부수상이 서울을 방문하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민족사의 커다란 이정표인 7.4 북남공동성명이 평양과 서울에서 발표되었습니다.
7.4 북남공동성명은 7개항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1항. 조국통일의 원칙으로 통일은 자주적이고 평화적으로 실현하며,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할 것을 합의하였으며, 제2항부터 6항까지 상호 중상 비방과 무력도발 금지,다방면적인 교류,적십자회담의 조속 성사,상설 직통전화 설치,남북조절위원회 운영을 규정하였습니다. 마지막 7항에서는 이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민족 앞에 약속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7.4 북남 공동성명은 70년대 초 북남대화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이후의 북남대화를 지속적으로 또한,  제도로서 강화되었다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후 몇차례의 회담이 이루어지다가 중단되었던 북남간 대화는 80년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적십자회담을 비롯하여, 북남경제회담, 체육회담, 고위당국자회담 등이 시도되었으며 1984년에는 북한의 수해물자 지원명목으로 적십자 회담이 성사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국제정세가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말 탈냉전의 시대, 소련의 몰락,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의 변화, 독일통일 등 공산주의의 종식이라는 역사가 북조선에게 큰 타격이 가져오는 시대가 다가온 것입니다. 이 시기 남조선은 좀 더 적극적인 태도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조선과의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또 하나의 중요한 역사, 제5차 고위급회담을 통해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게 되었습니다. 
이는 1990년 9월 제1차 고위급회담을 시작한 이후 15개월만에 채택된 합의서로서 1991년 12월 13일 서울에서 열린 제5차 고위급회담에서 북남이 화해 및 불가침, 교류협력 등에 관해 공동으로 합의한 기본문서입니다.
1992년 2월 평양에서 열린 제6차 고위급회담에서 합의서 문건을 정식으로 교환하였으며, 그해 9월 제 8차 고위급회담에서 최종적으로 3개 부속합의서를 채택함으로써 효력을 발생시킨 합의서입니다.
북남기본합의서는 서문과 4장 25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합의문에서는  북남공동성명에서 천명한 조국통일 3대원칙의 재확인, 민족화해이룩, 무력침략과 충돌방지, 긴장완화와 평화보장, 교류협력을 통한 민족 공동의 번영 도모,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북과남의 고위급회담은 본회담만 8회, 기타 분과위원회 및 행통제공동위원회, 대표접촉 등 총 113회가 개최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3년간의 협상기간 끝에 발표된 합의서는 북조선과 남조선이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고, 군사적 침략이나 파괴, 전복행위를 하지 않으며 상호 교류협력을 통해 민족 공동 발전과 점진적, 단계적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고 평가받았습니다. 또한 불신과 대결의 시대를 청산하기 위해 성립된 합의문 자체가 북남관계의 역사적인 전개과정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2년후 북조선의 핵확산금지조약 NPT탈퇴후 북남관계가 경색되면서 내용은 무용지물이 된 아픔의 역사를 함께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1990년대 중후반 말 또다른 북남관계, 북남 정상회담의 역사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김영삼 전대통령과 김일성 당시 국방위원장의 북남정상회담이 추진되던 과정 중 김일성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냉랭해진 북남분위기 속에서 남조선 김대중 정부가 새로 출범한 것입니다.
본격적인 대북포용정책이 추진되었으며, 본격적인 화해 협력으로서의 정책이 모색되었습니다. 특히 그 당시 남조선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도 대북조선 정책 ‘햇볕정책’을 추진하고자 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강한 의지,  김일성 사망이후 이어진 고난의 행군으로 인한 북조선 체제붕괴의 위기가 서로 맞닿아 있던 시기였습니다. 북남 각자의 상황속에서 북남관계는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북과 남의 정상,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로 손을 잡고 평양에서 만남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2000년 6월 북남정상회담의 역사를 다루어봅니다.
청취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입력 : 2018-04-17 (조회 : 68)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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