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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방송

2회 김일성주석의 정치방식과 교훈

방송일 : 2018-04-14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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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민의 안녕과 나라의 발전을 위한 조선개혁방송입니다. 김일성 생일 4월 15일을 맞으며 마련한 특집 두 번째 시간으로 김일성 주석의 정치방식과 교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북조선 인민들이 가장 좋아했던 지도자는 김일성 주석입니다. 특히나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또 지금의 김정은과 비교해도 가장 살기가 나았던 시기는 김일성 주석이 정치를 했던 시기입니다.
김일성주석 시대에 대한 평가가 좋은 것은 식량배급과 부식물 공급 등을 제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북조선 73년의 력사에서 가장 풍요로웠던 시기는 1960년대 말이였는데 그 때는 김일성 주석이 정치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조선로동당도, 조선중앙텔레비죤도, 혁명력사도, 강연회와 학습에서도 모든 분야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빛나는 과거뿐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는 과거를 캐내어 먹고 사는 나라입니다.
특히나 정치분야에서는 과거가 없이는 단 하루도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북조선의 정치는 과거를 캐내어 먹고 살아갑니다. 과거는 아주 명백하고 또렷하고 소위 정당성, 독창성, 위대성을 다 갖추었지만 미래는 추상적인 표현들로만 가득합니다.
북조선이 과거를 캐먹으면서 오늘을 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은 매우 불안한 것은 조선을 이끌어온 김일성 주석의 정치방식 때문입니다. 김일성 주석이 북조선의 지도자가 된 1945년부터 지금까지 북조선의 력사는 지도자 한사람을 위대하게 만들어온 력사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김정일이 죽자마자 곧바로 북조선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백두혈통이라는 과거를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인민들이 평생토록 배우는 지도자와 관련된 독창성과 정당성, 위대성의 삼대 요소는 지도자를 절대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도자를 절대화 하는 것은 지도자의 권위에 그 누구도 도전하지 못하게 해서 평생토록, 대를 이어 절대권력을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모든 것을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찬란하게 만들어 끊임없이 선전교육해서 인민들이 절대적으로, 무조건적으로 믿게 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자신의 과거 업적을 내세워 절대화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에 관해서는 능력이 부족하고 자신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원래 세상의 어떤 정치가도 모두 자신의 능력으로 업적을 쌓았을 때 대중의 인정을 받아서 지도자가 되고 정치를 펼쳐나갑니다.
그러나 정치라는 것은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발전하는 현실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변화해야 합니다. 북조선의 정치가 방식과 내용이 변화하지 않고 멀게는 100년이 훨씬 지난 것까지 내세워 지도자, 김일성 가문의 업적이라며 선전합니다.
현재의 정치, 현실에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인민들은 불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인민들의 불만을 억누르고 지도자의 자리를 유지하려면 지도자가 훌륭한 사람이고 능력자라는 것을 보여주어려면 과거를 내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김일성은 정치를 잘 했는데 김정일이 잘 못했다, 김일성은 우상화하지 않았는데 김정일이 우상화했다고 말하는데 잘못된 말입니다. 김일성주석이 과거를 내세우는 정치방식을 만들어 오늘날까지 오게 된 것은 김일성주석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지도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제국주의가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에서 원자탄 두발을 맞고 패망하면서 1945년 8월 15일 조선이 해방됐습니다. 이때 쏘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조선으로 진격해왔고 38선 이북을 점령하고 군정정치를 시작했습니다.
김일성은 모스크바에 가서 쓰딸린을 만나고 오느라고 9월 19일에야 원산항으로 들어왔는데 북조선림시정부는 쏘련군정이 만들어 준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김일성 주석은 쏘련의 괴뢰정부 수반이였던 것입니다.
당시 쏘련은 북조선 정부를 수립하고 운영하기 위해서 1945년부터 1948년까지의 사이에 약 300여명의 조선인 간부와 기술자들을 파견했습니다. 쏘련의 정부기관과 공산당, 군대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간부들과 군관들, 공장과 농장, 학교와 문화예술분야에서 활동하던 전문가들이 조선에 나왔습니다.
당시 방학세, 조기천 등은 쏘련공민이지만 민족은 조선사람이였던 이들은 쏘련군정이 세운 림시정부를 비롯해 조선의 행정,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활동했습니다. 김일성은 평양에서 쏘련군정이 세워주고 지도해주는대로 조선의 지도자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33세의 젊은 김일성은 쏘련의 도움으로 지도자가 되자 기세가 올라 쓰딸린에게 가서 남조선 해방전쟁을 하겠다며 승인해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렇게 해서 6.25전쟁이 일어났고 정전협정으로 사실상 패배하자 그 책임을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에 넘겨씌워 총살했습니다.
1953년 여름부터 쏘련과 중국,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은 전후복구건설을 위해 당시 가치로 약 13억딸라를 지원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전후복구건설 원조가 전후 북조선이 사회주의공업화의 결정적 성공요인이였습니다.
북중기계, 구성공작기계, 대안중기계 등 대표적인 북조선의 공장기업소들이 그때 지어졌습니다. 1960년대 말에 경제와 인민생활수준이 최고수준이였던 것은 김일성주석의 지도 능력이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들의 원조였습니다.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말까지의 기간은 김일성 주석이 반대파들을 종파라며 무자비하게 숙청하던 시기입니다. 김일성 주석이 능력이 있고 지도력이 있었다면 연안파니 쏘련파니 국내파니 하는 모든 정치집단들을 함께 이끌어서 훌륭한 정치를 펼쳤을 것입니다.
1950년대 후반의 반종파 투쟁 당시 북조선에서 무자비하게 총살된 사람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몇만명은 훨씬 넘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북조선 지도자인 김일성 수상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권력투쟁에서 반대쪽에 섰다는 리유만으로 숙청된 간부들입니다.
지도자가 능력이 부족하면 물러나야 하는데 물러나지 않으려고 하니 가장 먼저 반대하는 간부세력을 숙청합니다. 그 다음으로 통제해야 하는 것이 인민대중인데 인민대중 모두를 숙청할 수 없으니 과거의 업적을 내세워 지도자를 절대화, 신격화하는 것입니다.
이런 정치방식을 만든 사람이 바로 김일성 주석입니다. 김일성 주석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조선의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니라 쏘련군정에 의해 만들어진 지도자였기 때문에 과거를 내세우는 정치방식을 고집했습니다.
김일성주석이 과거를 내세우는 정치방식을 만들어놨기 때문에 아들 김정일이 지도자가 됐고 김정은도 지도자가 됐습니다. 따라서 새조선의 지도자는 과거가 아닌 현실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미래로 가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김일성 사망의 진실에 대해 알아봅니다. 이상으로 김일성 주석 사망의 진실을 마칩니다.

입력 : 2018-04-13 (조회 : 134)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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