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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청년의 메아리

[조선청년의 메아리] 북조선 청년 김정석 군이 그리운 고향을 향해 외치는 말

방송일 : 2017-03-13  |  진행 : 남북한 청년  |  시간 :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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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청년의 메아리]는
분단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남한 청년들과 탈북 청년들이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코너입니다.
 
통일을 꿈꾸는 젊음의 열정과 패기로
북한에 외치는 남한 청년들의 가슴 뜨거운 메아리!
 
오늘 열 일곱 번째 방송에서는
북조선의 열혈청년 김정석 군이 
떠올리기만 해도 그리운 고향을 향해 외칩니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다!
 
 
사람들은 이름만 들어도 정다운 것이 고향이라고 말합니다.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저는 한국정착 5년 차 되어오는 김정석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저 같은 사람을 보고 새터민, 이라고 하더라고요.
ㅎ ...새터민, 새로운 땅에 새롭게 뿌리내린 사람이라는 뜻이겠죠?
북조선의 청년 여러분, 북한에서 우리는 남조선, 하면 정말 못 쓸 사람들만 사는 곳이고 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다 불행하다고만 배웠습니다. 근데 한국에 와 보니 우리는 생긴 모습도 문화도, 음식도, 다 같은 천상 누가보아도 한 민족이 틀림이 없습니다.

부모를 꼭 닮은 애들을 보고 한국 사람들은 붕어빵, 이라 그러던데 맞습니다. 남조선과 북조선은 누가 뭐래도 하나의 땅이고 누가 뭐래도 하나의 민족인 것 같습니다. 저는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그냥 중학교만 졸업해도 호위국 같은 곳에서 군 복무를 할 수 있었고 북한 같은 계급 사회에서는 그야말로 미래가 보장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북한 정권은 자기들의 사리사욕과 정권욕에만 눈이 멀어 수많은 사람들이 밥이 없어 굶어죽는 대 재앙을 겪었습니다.
어제까지 같이 뛰놀던 내 친구가 오늘 아침에는 시체가 되어 있고 친척과 혈육들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미처 그 세상을 원망할 사이도 없이 마구 죽어나갔습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역전 홀에서 같이 잠을 자고 죽은 사람이 겁나는 것이 아니라 산 사람이 나에게 해를 끼칠까 그 것이 더 두려웠던 그 고난의 행군시기가 90년대 중엽부터 2천 년대 초였는데 저는 그 대 겨우 일곱 살밖에 안 되었습니다.
장사를 떠난 엄마가 와야 죽이라도 한 숟가락 얻어먹을 수 있어 저는 매일 잿더미가 가득한 쓰레기장 계단에서 잠에 들곤 했습니다. 한국에 와서야 알게 되었지만 2천만의 북한 국민들이 그렇게 혹독한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을 때 만민의 어버이 ,20세기의 태양이라 자처하던 김정일은 이름도 다 알 수 없는 외국산 술에 온갖 산해진미를 배가 터지도록 먹으며 밤을 샜다고 합니다.
자기자식들은 굶어 죽어 가는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모르고 일본의 찰떡이 맛있다고 비행기를 띄어 사다먹는 사람을 북한 사람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며 눈물을 흘리며 칭송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그래도 그렇게 굶어죽고 계급적 차별을 받으면서도 북한 사람들은 그 아버지를 배신 할 생각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배려 심과 참는 마음에도 한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총소리 한방 울리지 않는 그 처절한 생사의 전쟁판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하나, 둘, 눈을 뜨기 시작했고,
 
나는 누구며 우리는 누구이고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지가 알고 싶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그 어버이가 보살펴주어서 성장한 것이 아니고 우리 어머니의 땀과 눈물이 섞인 시장에서 번 돈으로 자랐습니다.
그 과정에 저는 아빠와 형님마저 잃고 중국으로 먼저 떠난 엄마를 기다리며 고아 아닌 고아로 남게 되었습니다. 선택의 여지도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3년을 저는 고아처럼 살다가 브로커를 통해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고 거기에서 엄마를 만났습니다. 중국은 북한보다 먹고 살기가 좋다고 하지만 항시적인 북송의 위험 때문에 제가 살 곳이 못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대한민국으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중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오는 과정은 북한에서 두만강을 넘는 탈북과정에 대비조차 할 수 없는 고난과 위험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한국 생활은 시작되었고 20대 초반의 모든 청년들이 그렇듯 한국에서 새 출발을 시작할 때 꿈도 많았습니다. 대한민국은 저 같은 사람들에게 대학입학 등록금도 면제해주면서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도 주었고 하고 싶은 일도, 세상을 돌아보고 싶은 여행의 자유도 주었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이루지 못한 수많은 꿈 중에 연예인이 한 번 되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보다 먼저 영화촬영장에서 엑스트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다 아시다시피 북조선의 청년들은 하고 싶은 일보다 당에서 필요로 하는 일에 집단적으로 파견되거나 강제로 내 몰리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무작정 하고 싶은 일에 뛰어들었는데 남조선은 북한과 달라 영화도 산업의 한 형태라 경쟁력도 대단하고 투자한 만큼 매출이 올라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종으로 직업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아, 제가 서두에 미리 말씀을 드려야하는데 남조선에는 4천여 개의 직업이 있고 사람들은 그 가운데 어떤 직업이든 선택이 자유롭고 가능합니다. 정말로 무한한 자유가 있는 나라입니다.
대신 어떤 직업을 선택했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본인이 책임을 집니다.
제가 두 번 째로 선택한 일은 주점에서 술을 파는 일이었는데 돈이 좀 되는 대신 많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욕망만 가지고 시작한 일이라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가 전혀 부족했던 저는 사기까지 당하면서 부자가 되어보고 싶은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많은 빚까지 떠안게 되었습니다.
순간, 남조선으로 오면서 꼭 부자가 되어보려던 제 꿈은 졸지에 풍비박산이 나고 이 사회에서 과연 저 같은 사람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까지 생겼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이루고 싶은 꿈이 너무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은 20대 중반이라 저는 제 인생을 여기서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아프기 때문에 청춘, 이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고난과 시련을 수많이 겪어 보아야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넘은 두만강이고 어떻게 걸어온 탈북의 길인데 저는 여기서 주저앉지 말고 다시 일어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시작한 직업이 전기회사 인데 무한한 경쟁력과 실력을 갖춘 사람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매일 체험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북한에서 탈북을 계획하고 있던가, 아니면 대한민국에 대해 잘 모르는 북한의 청년들은 제 말을 잘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은 먹고 입고 살 걱정은 전혀 없지만 부단한 노력과 경쟁력을 가진 사람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저 역시 이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무한 경쟁에서 이기려고 매일같이 일을 하면서 저녁시간과 주말에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8개월 사이에 다섯 개의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저희회사에는 자격증이 20개 정도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고 또, 노력해 회사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사람으로, 높은 기능을 소유한 기술자가 되려고 합니다.
이제 저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 알게 되었고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치열한 자본주의 현장에서 계속 배워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인 대한민국은 우리가 북한에서 교육받은 것처럼 거지들만 많고 지주, 자본가만 잘 사는 사회는 결코 아닙니다.
이 나라는 분명히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이 철저히 보장되고 북한에 비할 수없는 행복한 나라지만 그 큰 행복은 이 땅에 살고 있는 국민들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북조선 청취자여러분, 저는 더 나은 미래, 더 좋은 행복을 마음껏 누리기 위해 북한을 탈출했고 지금은 자유의 땅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습니다.한국은 분명 기회의 땅이고 여러분들에게 자유로운 삶을 줄 수 있는 희망의 나라입니다.
 
저는 저의 짧은 한국 정착이야기가 북조선의 저 같은 청년들에게 조금이라도 한국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북조선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입력 : 2017-03-13 (조회 : 394)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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