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후원안내

자유게시판

Home > RADIO >특집방송 > 기념일 방송

기념일 방송

천안함 침몰 8주년 특집 : 2회 천안함 조사과정과 결과

방송일 : 2018-03-24  |  진행 :  |  시간 :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0:00:00

 

 
안녕하십니까. 2018년은 북조선 지도자 김정은의 파격적인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는 특별한 한해입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조선과 미국에 화해의 손길을 보내는 그의 모습에 전 세계는 놀라움과 우려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 달전만해도 잔인함을 드러냈던 그였기에 북남 사이의 군사적 대결은 가장 심각한 시기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의 남조선 경비함 천안함 침몰사건은 김정은의 도발이 얼마나 위험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입니다. 그래서 조선개혁방송에서는 천안함 사건 8주년을 맞으며 특집방송을 마련했습니다.
오늘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천안함 조사과정과 결과에 대해 알아봅니다.
2010년 3월 26일 저녁 9시 경 남조선의 텔레비죤과 인터네트, 신문, 라지오 등은 일제히 경비함 천안함이 침몰한 소식을 실황으로 보도했습니다. 이어 46명의 해병들이 실종된 것이 알려졌고 이때부터 두동강이 나서 침몰한 배에 타고 있던 해병들을 구조하는데 모든 국가적 력량이 집중됐습니다.
남조선 국방부와 해군은 천안함의 침몰은 강력한 수중 폭발로 인해 배가 두 동강이 나면서 침몰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천안함에 탔다가 구조된 병사들도 강력한 충격을 느꼈고 일부 병사들은 물기둥을 보았다고 증언을 했고 백령도 해안초병도 폭발에 의한 불빛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조선 5천여만 국민들 중 절반정도의 국민들이 천안함 침몰 사건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평화로운 시기에 너무나도 리해가 안되는 방법으로 갑작스럽게 배가 두동강이 나서 침몰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남조선에서 살고 있는 탈북자들은 북조선의 공격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놨고 전문가들도 북조선의 공격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경비함 천안호가 군사분계선에서 12키로메터 떨어진 남쪽 지점이고 그것도 섬 백령도 남쪽 지역에서 침몰했다는 것 때문에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특히 백령도 지역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바다 물의 류속도 빠른 지역이여서 북에서 잠수함이 내려오기도 어려운 지역이며,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백령도 남쪽의 바닷물 흐름이나 수심이 47메터로 비교적 깊이가 낮은 지역에서 잠수함의 활동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천안함이 강력한 수중폭발로 배가 두 동강이 났을 때 나타난 각종 현상들을 근거로 들며 어뢰공격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중요하게는 남조선 정부와 국방부, 여당은 천안함 침몰이 어뢰공격에 의한 것이고 의혹의 대상은 북조선이라고 밝혔지만 야당과 좌파 단체들은 반대였습니다.
야당과 좌파단체들은 천안함 침몰 당시 보여진 여러 현상을 근거로 내세우고 어뢰공격의 증거가 없다는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면서 미군 잠수함이 천안함과 충돌했다는 가설을 내세우면서 정부주장을 반박했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먹혀들면서 여론이 혼란스러워 졌습니다.
이렇게 되자 남조선 정부는 천안함의 침몰 원인을 밝혀낼 민간전문가와 군인 전문가 등의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본격적 조사에 나섰습니다. 남조선 정부는 천안함 침몰사건의 객관성과 진실성을 보장하기 위해 미국, 오스트랄리아, 스웨덴, 영국 등에서 온 전문가를 포함해 24명으로 조사단을 구성했습니다.
이와 함께 남조선 정부와 국방부는 해군군함과 구조선을 비롯한 여러 해군함정과 민간 선박과 탐색선 등을 총동원해 증거물 찾기에 나섰습니다. 이와 함께 폭발과정과 원인을 밝히기 위해 두 동강이 나서 바닷속에 침몰한 천안함을 꺼내는 작업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남조선의 합동조사단의 조사는 과학적인 수사와 폭발물 유형의 분석, 선체구조의 관리와 수집한 정보 분석 등 4개 분과로 나누어 진행되였습니다. 동시에 천안함이 침몰한지 20일만에 천안함 뒷부분이 인양되었으며, 약 한달만인 4월 24일에는 앞부분이 인양됐습니다.
천안함이 북조선 어뢰의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천안함 침몰 지역 바다 밑바닥 수색이 시작된지 50일만에 발견되였습니다. 천안함이 침몰된 장소는 류속이 빠르고 조사가 진행된 당시 바닷물의 온도는 섭씨 3도로 매우 추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조선 정부와 국방부는 군함과 민간 어선을 총동원해서 바다 밑 바닥을 샅샅히 훗는 저인망식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천안함이 침몰한 장소 주변을 그야말로 싹쓸이 하는 방법으로 바다 밑을 수색한지 50일만에 어뢰를 추진하는데 사용하는 전동기 회전자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어뢰를 추진하는데 사용되는 전동기 회전축에 달린 프로펠라도 발견하는 등 천안함을 침몰시킨 어뢰의 결정적 증거들을 회수했습니다. 남조선 해군이 발견한 어뢰 추진 전동기 회전자에는 조선글로 ‘1번’이라고 씌여있었고 조종장치도 북조선 제품으로 밝혀졌습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뢰의 부속품들이 북조선당국이 외국 수출을 위해 만들어 외국에 소개했던 선전자료의 어뢰의 도면과 100% 일치했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천안함을 침몰시킨 어뢰가 북조선 제품이라는 완전한 증거자료를 확보한 것입니다.
이 외에도 합동조사단은 천안함이 두 동강이 난 부분을 정밀하게 검사하고 분석하고 또 어뢰 폭발실험까지 해서 원인을 밝혔습니다. 천안함의 침몰은 수중에서 약 250키로그람의 어뢰에 장착된 고성능 폭약이 폭발하면서 발생시킨 공기풍선효과로 천안함이 두동강이 났다는 것입니다.  
북조선은 300톤급 잠수함 40척과 130톤급 소형 잠수정 10척 등 70여척의 잠수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잠수함 중에서 남조선 천안함을 공격한 잠수함의 승조원들과 함장 등은 후에 영웅칭호와 각종 훈장을 수여받고 입당까지 한 것이 밝혀졌습니다.
2011년 이후에 탈출한 탈북자들 중에서 서해함대 잠수함 부대에 있다가 천안함 어뢰공격이 성공하고 훈장을 탄 가족의 이야기를 직접 들은 탈북자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범죄로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 김정은이 특별히 배려해서 사면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남조선의 합동조사단은 과학적인 수사와 연구, 모형실험 그리고 국방부가 천안함 침몰 장소에서 발견한 어뢰 증거물로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2010년 5월 20일 남조선 국방부가 발표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관련사실과 비밀자료 분석에 근거하여, 천안함은 북한제 어뢰에 의한 외부 수중폭발의 결과로 침몰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또한, 이상의 증거들을 종합하여 볼 때 이 어뢰는 북한의 소형 잠수함정으로부터 발사되었다는 것 이외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북조선 당국은 자신들의 도발행위가 아니라며 오리발을 내밀었고 그해 10월 남조선 연평도에 방사포 공격을 가해왔습니다. 당시 김정은 후계자는  자신의 업적을 쌓기 위해 이처럼 도발적이고 위험한 공격을 가하여 최악의 북남관계에 이르게 하였으며, 남조선 국민들은 이 각종 음모론에 혼란스러워했습니다.
당시 남조선 국민들의 절반 이상이 천안함이 북조선 어뢰 공격이 아니라 잠수함 충돌이나 기타 원인에 의해 침몰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남조선 인민들의 이런 생각이 절반 이상을 넘고 각종 소문이 돌아다닐때쯤 김정은은 2010년 가을 남조선 연평도에 방사포 공격을 가하는 어마어마한 도발을 또 하게 됩니다.
연평도 포격도발을 받고서야 남조선 국민들은 북조선의 무자비함과 도발에 대하여 꺠닫게 됩니다.
다음시간에는 천안함 사건의 교훈과 남조선의 대응 그리고 보복에 대해 알아봅니다.
입력 : 2018-03-22 (조회 : 199)  |  북한개혁방송
Copyright ⓒ 북한개혁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