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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전거 여행 (5) 여행 속 작은 감사

방송일 : 2018-03-21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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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내 맘대로 떠나는 자유 여행’의 이야기꾼, 장은광입니다.
지난 이야기에서는 일본의 천년 고도, 교토까지 이르렀는데요. 교토는 일본에서도 제일가는 관광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라, 엄청난 인파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몇 군데 중요한 곳들만 둘러보고, 하루 만에 교토를 빠져나가기로 했어요.
교토를 벗어나면 비와 호수라고, 비파 모양으로 생긴 일본 최대 호수가 있습니다. 얼핏 봐서는 바다 같은 느낌이 들 정도랄까요. 밤에 이 호수변에서 노숙을 했었는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모기 없이, 시원하게 잠들 수 있어서 여행 중 최고의 잠자리였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어요.
호수가 얼마나 컸던지, 아침부터 하루 종일 달려야 반 바퀴 정도를 갈 수 있는데요, 호수를 둘러싼 지형이 다 험난해서, 그나마 나지막한 고갯길이 있는 곳으로 향해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길은 예로부터 일본의 서부와 동부를 이어주는 주요 가도가 있던 곳으로, 치열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죠.
그렇게 힘겨운 고개를 넘고 나면 ‘세키가하라’라는 곳에 도착합니다. 예전에 매우 큰 전투가 있었던 곳인데요, 지금은 그저 한가로운 마을에 지나지 않는 곳이에요. 어둑어둑해져가는 시간, 그런데 어디선가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궁금해서 찾아가보게 되었는데요,
예전에 구경하러 가려다가 자전거 고장으로 엄청난 고생을 했던, 그 일본 전통의 축제가 여기에도 있었던 것이었어요. 물론 자그마한 마을이니만큼 큰 규모로 이루어지는 축제가 아니라, 이름부터 ‘어린이 축제’라고 해서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자그마한 마을 축제였어요.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끊이질 않았어요. 축제를 함께 즐기는 데엔, 크기는 상관없죠. 예쁜 전통 옷을 입은 아이들, 부모님과 함께 작은 고기를 잡는 아이들, 얼음 과자와 옥수수를 구워서 파는 상인 등등 모두가 즐거운 시간이었죠. 친구랑 저도 작은 폭죽을 받아 함께 불꽃놀이를 즐겼죠. 소박한 시골의 축제지만, 생기가 흘러넘쳤던 축제였어요.
예전에 일본의 역사를 배운 적이 있어서, ‘세키가하라’라는 지명은 저에게 계략과 배신의 장소,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전투의 지명으로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행 이후에는 축제의 장소, 즐거운 기억으로 남게 되었어요. 여행이란 이런 것이겠죠. 말로만 듣던 세계,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세계가 아니라 내가 경험한, 삶의 현장으로 다가오는 것.
이 세키가하라를 지나면, 길고 긴 평야 지역이 펼쳐집니다. 이틀을 꼬박 달렸는데요, 도중에 나고야라는 큰 도시도 있었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어요. 매번 보던 경치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듯해서, 한여름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우리는 지쳐가고 있었죠.
야트막한 고개였을까요. 시즈오카 현의 초입에서 마주한 언덕을 힘겹게 오르던 여행자들은,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살짝 구부러진 듯이, 무한히 펼쳐진 수평선, 끝없이 이어진 모래해변에는 거친 파도가 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때려 부술 듯이 달려들다가, 부드러운 모래에 흰 포말을 남기고 스르르 물러나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어요. 그 박력에 ‘피로’와 ‘권태’는 모조리 부서져버렸습니다.
그래요, 제 눈 앞에 펼쳐진 바다는 바로 ‘태평양’이었어요. 지금 제게 불어오는 거센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 것일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막막한 바다. 제 고향 마산은 섬이 많은 남해안 지역에 있어서, 수평선이라는 것을 본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 경치가 그렇게까지 인상적으로 와 닿았나 봅니다.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당연히 바다로 뛰어들어야죠! 시원한 바닷물에 몸을 던지며 더위를 잊고 신나게 놀았습니다. 얼마나 정신없이 물놀이를 즐겼는지, 안경이 없어졌는지도 모를 정도였어요.
시력이 나빠 안경을 쓰던 사람이 안경을 잃어버리면 정말 난감하죠.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있을 정도인데, 도로를 살펴야하는 자전거 여행에서는 이보다 위험한 일은 없었어요. 특히 어둑어둑해지는 시간, 도로의 굴곡이 제대로 보이지 않기 시작했고, 도로에 턱이 있는지, 그냥 평지인지도 분간이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먼저 앞에서 자전거를 달리며 도로 사정을 보아줍니다. 그동안은 일본어를 읽을 수 있는 제가 길을 찾는 데 앞장섰거든요. 하지만 안경 하나 없다고 이렇게 무력해질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도 짜증이나 좌절보다는, 마음 속에서 감사가 일어납니다. 제가 약하게나마 가지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앞장서서 달려가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도요. 안경 하나 사기 위해 하마마츠 시내 변두리를 이리저리 헤매어가며, 잘 하지도 못하는 일본어로 한 사람 한 사람 물어봐주는 친구를 보면서, 왜 사람을 한자어로 <사람 인>자에 <사이 간>, 즉 인간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다 한 안경점을 찾게 되었는데요, 일본의 안경 가격은 왜 이다지도 비싼지. 도쿄가 가까워지면서, 우리의 재정 상황은 점점 바닥을 향해가고 있어서 차마 안경을 맞출 수가 없더라구요. 그냥 안경 없이 여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순간 더 저렴한 가격의 안경테가 있다고 말하더군요. 안경점 주인이 나름대로 싼 것이라고 열심히 설명을 하지만, 렌즈 값도 만만치 않아 우리에게는 싸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니, 그제서야 무료 렌즈가 있다고 말을 꺼냅니다. 비록 도수가 맞지 않았지만 없는 것보다는 안전하겠다 싶어서 결국 큰 지출을 결심하게 되었죠.
여전히 글씨는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뚜렷해진 시야가 확보되어 나름 만족스러웠어요. 하지만 안경은 역시 제 눈에 맞는 안경이 좋아요. 싼 값에 쓰고 다닌 도수 안 맞는 렌즈로 인해, 여행 이후 난시가 조금 생기고 말았어요.
그렇게 며칠이 흐르는 동안, 넘어져 무릎이 까지기도 하고,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면서 마침내 누마즈라는 도시에 도착하니 저 멀리 높고 높은 산맥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저 산 속에 하코네 고개가 있는데요, 그 고개만 넘으면 도쿄까지 하루 만에 주파할 수 있는 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시간. 우리는 어떤 선택을 했고, 또 그 선택의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었을까요?
기나긴 자전거 여행의 끝,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입력 : 2018-03-21 (조회 : 122)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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