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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우명희씨가 보고싶은 딸 복순이에게

방송일 : 2018-03-02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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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봄소식은 아래로부터 가을 소식은 위에서부터, 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도 끝자락에서 터져 나오는 아름다운 꽃 소식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행복하게 하는 따스한 3월입니다. 더군다나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워 따스한 봄소식이 더 그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올 봄에는 꽃소식보다 남과 북의 단일팀, 북한 응원단의 평창 올림픽 참가, 아, 그 보다도 북한 정부의 실세라고 하는 최고지도자의 여동생까지 방 남하면서 남북통일이라는 민족숙원의 꽃소식이 먼저 필수 있겠다는 기대가 듭니다.
아름다운 봄꽃이야 금년에 못 보면 내년으로 미를 수도 있겠지만 혈육이, 동족이 갈라진 분단의 아픔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이 한시가 급한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어쩌다 보니 저 역시 이산가족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려만 보아도 그리운 혈육들의 안녕을 바라며 남쪽 끝자락에서 올라오는 아름다운 봄꽃 소식을 전해 드리고 싶은 밤입니다.
오늘 저녁 우리 파랑새체신소를 찾으신 우명희씨는 씨는 북한에 따님을 두고 오셨다고 합니다. 요즘 웃기는 말로는 아들은 키워보았자 기차표나 사주지만 딸을 잘 키우면 부모가 비행기를 타고 다닌다는 딸 선호시대인데 우명희씨는 어쩌다가 소중한 따님과 헤어지게 되셨을까요.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에 사는 우명희입니다.
제가 가치는 별로 없어도 한생의 손때가 묻은 살림살이와 정든 고향은 등지고 한국으로 온지도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갈라져 남이 되어 간다는 이 아픈 현실이 남의 일이 아니고 제 일이 될 줄을 북한을 떠나기 전까지 저는 상상도 못 해 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무리 살아 보려고 몸부림쳐도 나 한사람의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웠던 북한이었습니다.
어려웠던 시절이 가고 저는 인생의 아름다운 봄을 한국에서 다시 살고 있지만 북한에 두고 온 딸을 생각하면 늘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지금 쯤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을지, 하루에도 그 몇 번을 북쪽 하늘을 바라보지만 어렴풋한 기억만 아물거립니다.
내 사랑하는 딸에게 쓰는 엄마의 이 편지가 반드시 내 딸에게 가 닿기를 기도합니다. 
언제나 그립고 보고 싶은 나의 딸 복순이에게
사랑하는 내 딸아, 그 동안 잘 있었니?
딸아, 엄마가 북한을 떠난 지도 벌써 오랜 세월이 흘렀구나.
내가 떠날 때 북한의 형편은 사람이 사는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생지옥이었지. 잘 산다는 말보다 굶지 않고 사느냐가 인사였던 세월이었고 자고 일어나면 길가에 굶어죽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널려있던 전쟁터보다 더 한 곳이 북한이었지.
보고 싶은 내 딸아, 22살의 꽃다운 처녀였던 너를 데리고 엄마가 장사를 한다고 정처  이 떠돌던 모습이 마치 어제 같구나.
장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주는 배급만 먹고 살던 내가 가족을 먹여 살린다고 북방의 추운 날씨에 굷으며 얼고 떨며 너와 함께 한 고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기가 막힌다.
돌덩이 같은 감자를 날라다 팔면 힘들기만 하고 돈도 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집 식구가 죽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는 기를 쓰고 다녔다. 돈이 좀 될까싶어 디젤유를 지고 다닐 때는 늘 빼앗길 위험이 있는데다 온 몸에 자동차기름 냄새가 배어 정말 나도 역겨운 적이 많았다.
마지막에는 추운지방에 귀한 채소까지 등짐으로 지고 다니면서 너와 함께 한 고생을 생각하면 엄마가 너에게 고생만 시킨 것이 너무 미안하구나.
한창 멋을 부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도 해야 할 꽃다운 나이에 거지같은 옷차림으로 매일같이 노상에서 떠돌던 내 딸, 어린 너에게 엄마가 좋은 옷 한 벌 못 해주고 고생만 너무 많이 시켜 지금도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보고 싶은 내 딸아, 사실은 그래서 엄마가 너무나 먹고 살 길이 어려워 중국에 가서 장사할 돈이라도 좀 얻을 수 있을까, 쌀이라도 가져다 너희들에게 쌀밥 한 번 배불리 먹여 볼 생각으로 중국으로 갔어.
그런데 그 단순하고 짧은 내 생각이 너와 영 이별이 될 줄 그 대는 상상도 못했지.
아마 조금이라도 그걸 알았다면 내가 너를 두고 올 수가 없잖아.
그 때는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이 여자들에게만 있었던 무정한 고난의 시기였고 사실 자기 한 목숨도 부지하기가 어려워 정말 많은 가정들이 기약한 마디 없이 갈라졌니?
그리고 너를 사랑한다고 목숨을 건 남자친구도 있었고 해서 엄마가 조금 망설였던 것도 있어. 엄마는 중국으로 갔다 오는 길이 어려운 길이라고들 하는데 같이 떠났다가 딸까지 잘 못되면 어쩌나, 싶었거든.
게다가 중국으로 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갈 줄 알았는데 아는 지인의 소개로 한국으로 오게 되면서 너에게 가는 길이 더 멀어졌어.
보고 싶은 내 딸아, 그래도 한국에 온 후에 네 오빠랑은 내가 데려올 수 있어 다행이었는데 일이 안 되려니 오빠를 데려올 때 너는 임신한 상태라 그 마저도 잘 안 되었지.
엄마는 너를 내 곁에 두고 싶어 무지 노력했는데 번 번히  일이 잘 안 되었고 끝내 너와 나는 이렇게 영원히 이산가족이 되었구나.
사랑하는 딸아, 못 살아도 정답고 그리운 내 고향 북한이 지금은 세계적으로 고립된 국가로, 악마의 국가로 되어버렸구나. 그 곳에서의 생활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고 지긋지긋했다.
그런데 그 어렵고 힘든 곳에 네가 아직 있으니 엄마는 정말 가슴이 아프구나.
등잔불도 아쉽던 북한 생각을 하면 한국은 밤과 낮이 따로 없는 지상낙원이다.
보고 싶은 내 딸아, 이제는 엄마도 이 생활에 조금 익숙해졌지만 한국은 본인만 열심히 노력하면 먹을 걱정, 입을 걱정은 물론 누구나 잘 잘 수 있는 나라이다.
남북은 일제 통치도 전쟁도 같은 날 겪고 어려움을 함께 겪었다. 전쟁 후에는 많은 나라들의 도움을 받으며 어렵게 살았지만 지금은 어려운 나라들을 도와주는 당당한 나라가 되었다.
엄마는 이제 정말 인간다운 생활을 하면서 아무 걱정 없이 잘 살고 있다만 오로지 너 하나 북에 두고 온 것이 제일 큰 걱정이다.
생활이 유족해지니 한국 사람들은 병 없이 오래 살기 위해 엄청 애를 쓴다. 보통 60세는 애들 취급 받고 있고 80이나 되어야 노인 취급을 받는다.
제일 좋은 것은 모든 선택이 자유라는 것인데 그 선택에 대한 책임만 본인이 진다.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나는 정말 매일 느낀다.
보고 싶은 내 딸아, 언제면 너랑 내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엄마는 오직 그 생각 뿐 이다.
그냥 잘 살고 있다가 문뜩 네 생각만 하면 목 이 메 고 눈물이 난다. 이제는 손자 손녀들이 많이 컸을텐데 자란 모습도 전혀 볼 수가 없으니 통일이 되어도 큰일이 아닌가 싶다
할머니가 자기 손자도 못 알아 본 다는 것이 말이나 되니?
엄마는 이 분단이 이제는 제발 끝장나고 통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보고 싶은 내 딸아, 통일이 되는 그 날까지 앓지 말고 부디 몸 건강하기 바란다. 엄마도 열심히 노력해 너를 만날 그 날까지 건강하게 살련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막상 글로 쓰려니까 잘 안 되는구나.
엄마는 우리 딸이 엄마의 편지를 꼭 받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그 날이 빨리 오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이 글을 쓴다.
사랑하는 내 딸 그리고 손자, 손녀들 잘 있어라. 다시 한 번 불러본다, 내 딸아 ~  엄마가 너를 많이 사랑한다.
~봄이 오는 길 목에서 엄마가~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한 번도 보지 못한 손자 손녀들의 얼굴을 그려보며 편지를 쓰는 우 명희씨의 아픈 구절구절 느껴지는 편지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지구상 그 어느 나라에라도 여행을 가고 외국의 물건을 인터넷으로 구매하면 집에서도 받아 볼 수 있는 이 자유로운 세상에서 혈육의 안부나 서신거래조차 할 수 없는 나라가 북한입니다.
지구상 유일무이한 이 분단국가에 여러분들이,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두고 온 자식, 두고 온 혈육들이 서로 찾고 부르는 이 애통한 부르짖음이 북한지도자의 귀에만은 혹시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겠죠?
제발 그들의 귀가 열리고 가슴이 열리길 간절히 바라며 저도 두 손을 꼭 잡고 기도해 봅니다. 우명희씨와 다님이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시길 바라며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8-03-02 (조회 : 397)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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